기복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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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Dic:기복신앙(祈福信仰): 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

한국 교회의 문제점의 가장 큰 원인은 국인의국민성에 있다.

한국인은 현실적이며 이해타산적이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종교조차 현실적인 면에 치우쳐가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종교의 본래 목적(?)과 다소 차이가 있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내적인 삶에 기여할 때, 훨씬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정치를 함에 있어서, 사회의 질서유지에 있어서, 인간의 삶에 너무 깊숙히 관여하는 종교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갖가지 세세한 삶에 관여하는 기복신앙적 종교는 저급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복신앙에 젖어 있는 것같다. 즉, 한국 교회의 문제점의 가장 큰 원인은 국인의국민성에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군중에게 조롱당하면서도
예수는 가해자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000년 후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돈과 명예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 소리에 묻혀 버렸다.

2000년 전 예수를 누가 죽였느냐는 물음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조롱하고
그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Passion of Christ 시사회장에서 모 기자의 글 中

토론 제안: 기복신앙적 종교는 과연 저급의 종교인가 ?


왜 "저급"의 종교가 되는지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종교가 기복신앙이라는 점에는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만 그것이 왜 "모든 종교의 가르침과 상치되는 것"이라고 단언하시는지... 한국의 무속신앙은 종교가 아닌가요? 무속신앙은 애초부터 기복신앙이 아니었나요? (예컨대 "복채"가 없으면 굿의 효험이 없다고 하죠.) 유교처럼, "내세"가 아니라 "현세의 복"에 치중하는 종교는 저급한 종교입니까? --서상현

기복신앙적 종교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근의 개인주의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를 최상의 기치로 칩니다. 허나 일반적인 종교에 대한 견해는
자신을 위해 남을 밟을 것을 불사한다 -> 자신을 위하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 남을 위하며 남을 위해 죽기까지 불사한다.
의 순서로 발전해 왔으며 후자쪽일수록 고급의 종교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전자가 기복신앙이고 가운데는 이슬람이나 불교, 후자는 기독교등의 고급 종교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당연하다는 말이나 상식이라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노스모크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훨씬 심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 자체가 또 어떠한 궤변으로 반박당할지 두렵기까지 한건 사실입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점차 개인주의화되고 이기화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타적이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반박하는 젊은 계층들이 매우 많으며 서상현님이나 ChatMate님의 예와 같이 이러한 논리가 저급의 것이라는 것 자체를 공감하길 요구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musiki

개인주의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자신을 위하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것 보다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무게를 동일하게' 놓고 보는 것이 적합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어느 경전에도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저울 위에 오른 왕의 우화가 있지요. 이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 따위가 아닌, 생명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교훈을 주는 우화입니다. 내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도 소중하며, 다른 이가 소중한 만큼 역시 나도 소중한 것이 핵심인 셈이지요.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은 -그것이 남이 되었든 내가 되었든 간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 같이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복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처 역시 깨달은 이후에도 복을 구했습니다. (여기에는 부처 본인의 설명이 따릅니다만) 기복 -복을 기원하는-과 남을 밟는 것을 불사하는 것 자체에 직접적인 접점은 없습니다. 나와 남의 복을 함께 기원한다면 그것은 기복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것은 그의 '복을 기원'하는 것이 아닌 건가요? ChatMatemusiki 씨의 설명에서 기복신앙이 '왜' 저급한 신앙인가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찾기 어려웠습니다. (궤변으로 반박당한다는 이야기는 무척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표현을 수정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기복신앙ChatMate님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define)한다면 ChatMate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괴물눈깔님의 예도 그렇지만 노스모크에서는 간혹 상식의접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모든것을 처음부터 정의해야 하는 문제가 따릅니다. 기복신앙ChatMate님 마음대로 정의하셔도 되는 것이 노스모크입니다. 그럼 musiki는 대체 여태 뭘 떠들었는지 의구심이 오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토론최소주의를 위해서라도 보통사람들이 끄덕끄덕 할 선에서 말하는 것 정도는 "그럴수도 있겠군"해줘도 토론에 큰 문제는 안 들 것 같습니다. --musiki

기복신앙같은 개념이 내세의 복이 아닌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신앙으로 정의 됐을때, 그 정의에 동의하기 힘든 것은, 그 정의가 musiki님께서 기독교의 구원관에 기복신앙이라는 비난으로부터의 면죄부를 주기 위해 만들어낸 정의라는 정황적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런 musiki님의 정의가 뚜렷한 근거가 없이 주장되었고, 둘째로는 사전적인 정의와 musiki님의 정의간에 차이가, 전자와 달리 후자는 musiki님의 신앙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점 뿐이라는 겁니다. --괴물눈깔
기복신앙괴물눈깔님과 같이 정의하고 모든 종교는 기복신앙이므로 기복신앙에는 문제가 없다. 거나 모든 종교는 기복신앙이므로 모든 종교는 사회악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려면 musiki는 이러한 토론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죠. :) musiki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2003년 12월 28일 부로 종교에 관한 토론을 정지하도록 하겠습니다. --musiki

첫째 고급종교 저급종교의 이분법을 인정하기 힘드네요.[http]한국무교 연구의 역사적 고찰만 보더라도 우리의 무속이 소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님을 충분하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고급종교와 저급종교는 더 제도화 되었는가 덜 제도화 되었는가에 더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것이 명확하다고 봅니다.
둘째 고급종교 저급종교의 기준이 애매하군요.기독교가 남을 위하며 남을 위해 죽기까지 불사한다.는 교리를 배타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군요.
셋째 이슬람과 불교가 왜 두번째 단계인지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군요. 이것은 이슬람과 불교 신자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일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넷째 musiki님께서는 기복신앙이 기독교의 가장 큰 병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신자들은 교회에서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예수에게 복만을 빌까요? 그것은 애초에 신자들은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러 오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마을 회관 정도로 밖에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사교장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실을 목사님들도 알고 계실것인데 이들을 적극적으로 선교하기는 커녕 수수방관하면서 신도의 숫자를 늘리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는것이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불행히도 돈의 문제도 개입이되지요.(목사들이 신도의 숫자에 매달리는데는 한국에서 배출되는 목사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최준식 교수의주장도 있습니다.) 제대로 말씀을 귀담아 들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선교하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걸러내거나 아니면 교회의 재정문제를 투명하게 하거나 뭔가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잡종

먼저 musiki가 제시한 고급종교와 저급종교의 이분법은 사회학적 분류에 따른 것으로 다른 가치의 유입은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단순히 사회에 어떠한 이득을 주느냐가 이러한 가치의 척도였으므로, 이러한 분류에 대해 각종 다른 시각과 가치에서 보았을때 이견이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두번째 끝부분과 세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면, 역시 사회에 대한 이득의 정도에 따라 분류한 것이므로 두번째 단계에 있음이 불쾌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런 종교일 뿐이지 저급한 종교는 아니라고 주장하면 되니까요. 불교는 애초부터 남을 위해 자기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번뇌와 윤회를 끊기 위해 수행을 할 뿐이지요. 이슬람은 역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돼, 남이 공격해올 경우에 한해서만 갚아주는 교리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전해들은 것에 불과하고 다소 어설피 알고 있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슬람 교도들께서 반박하시면 겸허히 수렴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는 남이 뺨을 치면 반대쪽 뺨까지 맞는 것이며, 세상에서 고난받으면 천국에서 반대로 갚아질 것을 기대하지 세상에서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종교인 것이죠. 문제는 이 교리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 달라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좁은 길이라 하겠습니까. 진짜 좁은 길이라면 4천만중에 1천만이나 구원받을리 없지 않겠습니까. 1천만중 쭉정이가 8~90%에 육박한대도 이상할것이 없습니다.
참고로 불교의 일파인 대승불교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도 중시하며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합니다. 해탈을 했으되 속세에 남아 있는 것은 더 많은 중생을 피안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보다 현실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Zer0
넷째 말씀에는 100% 동의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겠느냐죠. 한국인이 현실주의자여서 기복신앙을 갖느냐 아니면 신앙심이 없어서 현실주의자가 되느냐는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musiki는 한국인이 러시아인 이상으로 현실주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실상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기독교 자체는 교회를 신앙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 뿐 아니라 마을회관으로 보는 사람들조차 수용하는 점에서도 보듯 배타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문제는 배타적인 사람들을 무차별 수용하다보니 이러한 배타적인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교회에 들어앉아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목하는 사람들을 전부 자신들을 욕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덤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신도라면 노스모크가바라는종교인의 일화에 있는 스님들처럼 행하지 이렇게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너무 수용적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사람들도 교회에 들어앉게 되고 이러한 배타적인 사람들에 의해 교회 자체가 배타적인 양 보여지는 것입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다보니 진정한 신도들은 정작 상처받고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지요. 이러다보니 주객이 전도되는 겁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배타적인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다보니 교회라는 종교가 아닌 "사조직"이 된다는 것이 musiki의 논점입니다.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기독교라는 조직은 예수의 뜻을 따르고 섬기는 종교조직인 기독교A가 아닌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인간들이 모인 사조직 기독교B인 것입니다. --musiki


벨로린이 보기에는 musiki님은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을 잘못 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musiki님의 주장은 결국 '기독교는 내세의 복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현세의 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벗어나야 한다' 인데, 비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가 현세의 복을 추구하건 내세의 복을 추구하건 별로 상관이 없거든요. 현세의 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충분히 이해를 해 줄만한 여지가 있습니다만, 노스모크 안에서 특히 비판받는 기독교의 모습은 '현세의 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 내세의 복을 위해 아무렇게나 행동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 모습이거든요. 더구나 이런 것을 방조, 권장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에 가깝다고 보이며, 이는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겠죠.

musiki가 답변하자면, 역시 벨로린님께서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 잘못 이해하시기 때문에 그런 논점을 세운 것이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교리대로라면 내세의 복을 위한다면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없고, 타인에게 폐를 끼칠 수도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행동하거나 타인에게 폐를 끼칠 경우 내세의 복이 달아나게 된다 정도로 비유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에서는 남에게 득을 끼치고 남에게 베푸는 만큼 내세에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musiki님이야말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게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벨로린과 토론해왔던 신도들이 들으면 이단이라고 매도당할만한 주장이십니다. :) 기독교에서는 내세에서 복을 받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믿음'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을텐데요? 남에게 얼마나 득을 끼치든 해를 끼치든 간에 믿지 않으면 내세의 복을 받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벨로린

맞는 말이긴 한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요. 내세에 일단 가는 방법이 믿음이고, 내세에서 복을 받는 방법은 선행입니다. 일단 믿지 않으면 백날 선행해도 어짜피 복은 못받죠. 일단 믿은 후에 선행을 해야 내세에 복을 받습니다. 근데 한국 기독교는 앞에 말만 귀에 들어오고 뒤엣말은 듣는체마는체 해서 말이죠 :) musiki가 한국 기독교가 왜곡되어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유를 조금씩 공감해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musiki

'내세에서 받는 복' 이란것이 '구원' 이 아니던가요? 더 이상의 복을 원하시다니 욕심도 많으십니다. :) 벨로린은 '구원' 이외에 별도로 받는 '내세의 복' 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musiki님의 생각이나 신구약에 나타난 '구원' 이외의 '내세의 복' 은 무엇인지요?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벨로린은 '내세'를 '사후세계'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musiki님은 위에서 '천국'이란 의미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만. --벨로린

구원의 개념을 몇번이고 설명드려도 잘못 이해하고 계십니다. '내세에서 받는 복'이 아니라 '내세에 가는 방법'이 구원입니다. 물론 벨로린님에게 문제가 있기보다는 애초부터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니 당연하기도 합니다. musiki는 처음부터 그랬듯 기독교적 교리에 의해서만 설명드리오니 다소 위화감이 있더라도 자체로 받아들여주시길 바랍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을 면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해탈"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해탈의 과정을 대신 하고 인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믿기만 하면 공짜로 해탈시켜 줍니다. 이 과정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100% 예수가 구한 거지 인간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구원 이후에 영생을 살지만 성경의 비유대로라면 개털모자를 쓰고 사느냐 왕관을 쓰고 사느냐는 이러한 내세의 복을 쌓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헌금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불이익을 당해도 보복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들만 공짜로 받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선교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musiki
그 비유는 벨로린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긋나 있습니다. 벨로린은 내세의 어떤 복이 '왕관을 쓰고 사는 것'과 비유되는 것인지를 묻고 있답니다. --벨로린
성서상으로도, 교리상으로도 답변의 여지가 없네요. 비유로 막연히 기대할 뿐입니다. --musiki

... 상식의접점을 원하신다면 부디 상식적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지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의 세계가 '내세' 입니다. '믿음' 을 '내세에 일단 가는 방법' 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내세도 없다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불신자에게는 전혀 아쉬울게 없지요. :) --벨로린

그래서 위화감을 느끼실지 모른다고 말한 겁니다. 그렇다면 상식차원으로 비유해서 답변합니다. 죽으면 일단 죄지은 자는 내세에서 다 지옥에 가고 죄가 없는 자나 해탈에 이른자나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 갑니다. 일단 천국에 간 후 현세에서 쌓은 복의 양에 따라 상을 따로따로 받습니다. 기독교에서 지옥과 영원한 죽음은 동일한 의미일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내세도 없다죽으면 그걸로 끝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이점은 정해진 교리는 있으나 성경만 보고 어디가 맞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이러면 이해하시겠죠? --musiki

... musiki님은 지금 '예수 이외에 천국에 가는 길이 존재한다' 를 긍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텐데요? :) --벨로린
기독교 가운데 개신교가 아닌 카톨릭에서는 예수 이외에 천국에 가는 길이 존재한다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예수천국불신지옥 페이지를 살펴보세요. --ChatMate

이 밑의 예정론에 관한 단락이 구원토론으로 ExtractPage

지우기 전의 막간 코멘트 : Roman이 경험하고 알기로는 한국보다는 더 잘사는 구미 선진국, 일본이나 미국, 유럽 각국이 훨씬 경제적인 수치와 그 국민성에 있어서,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이고, 개인주의적입니다.(데이터 상으로나 만나본 경험들로나) 이른바 재테크나 보험, 금융산업에 있어서, 그들의 제도와 활동인구는 한국보다 훨씬 많고 정교하게 잘 체계화 되어 있습니다.(어렸을 때부터 금융교육이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죠). 그리고 그러한 국민성 또한 대단히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국민성의 문제로 그 나라의 기독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귀결일 수 밖에 없다면, 한국을 포함한 각 선진국들에 있는 기독교 교회들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필자의 의도 자체가 한국의 기독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함과 동시에 다른 선진국들의 종교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musiki씨의 이 페이지 위에 있는 글은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나라들의 종교들은 모두 뭔가 문제가 있다라는 사실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Roman

이상한 건.. 우리나라나 일본(일본이 더 심하겠군요)은 무슨 종교든 들어오면 다 기복신앙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무슨 신이든간에 복을 주면 다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신들의 나라...라고도 불린다.(신이 800만이라던데..) --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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