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모크가바라는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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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모크가바라는종교인 역시 CelebrationOfDifferences라는 노스모크의 철학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노스모키안이 경험했던, 혹은 노스모키안이 바라는 이상적인 종교인의 모습을 이야기해보자.


1. musiki가 본 스님과 구세군의 전쟁(?)


아래 글은 musiki가 나우누리에 쓴 글을 옮긴 것이다.

어느 추운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구세군은 추운 가운데 여전히 종을 딸랑이며
냄비를 흔들며 온정어린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돈을 넣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때 한 스님이 지나가던 중 그곳에 섰다.
그러더니 짐을 주섬주섬 푸르더니 그곳에 주저앉아...
시주를 받기 시작했다 -_-;;;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오묘하게 울려퍼지고..
구세군 사람들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으나...
그저 종을 두들기며 온정의 손길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

구경꾼들이....
이리저리...
마구마구 ...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심리란 참 이상하다.
양쪽에서는 응원전이 펼쳐졌다. 들리지 않는 보이지 않는..
그런 응원전이...
'스님 이겨라... -_-;;;'
'구세군 이겨라 -_-;;;;;'

그러던중 한명한명이 응원의 뜻(?)으로 시주와...
구세군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한명한명... 그러면서 은근슬쩍....
어느쪽에 돈이 더 모이나 보는 것이었다. -_-;;;
그러자 양측 진영(?)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쳐넣었다.
말도 안되게 돈이 쌓였다 -_-;;;
어.... 어이없었다.

스님은 한참 시주를 하다가 시주를 멈추고...
옆을 힐끗 쳐다보시더니 돈을 셌다...
뭉칫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_-
짐을 이리저리 싸들고 돈을 잘 집어들더니...
이때!

스님은 씨익 웃으면서 그 시줏돈을 구세군 냄비에 넣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셨다 -_-
그때 쳐다보던 사람들은 전부 머리에 총맞은 표정이었다.

이것은 TV에서 방금 나오던 실화라는 내용을..
통신에 맞게 나름대로 각색한 내용이다.
하지만 솔직히 난 스님이 처음 쳐다보는 장면에서부터..
어떻게 할지 뻔히 알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거나 대결 양상으로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실 이해가 안간다.
불교의 스님들이나 개신교 기반의 구세군이나....
불우이웃 돕는다는데 똑같은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은근슬쩍 누구 이겨라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실제로 신기하나 이는 한국인의 시기심에 의한 것이다.
구세군이, 스님이 잘되는 꼴을 볼 수 없어서
오히려 구세군 냄비에, 시주가방에 돈을 넣는 행동들이다.
스님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엿먹인채...
말그대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뒤로한채....
위풍당당하게 떠나가셨다.

참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고도...
"그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
"주님이 주라고 했다는 대사때문에 감동이 다 달아났다."
라는 식으로 유머를 만들어버린 모 여인님에게...
참으로 유감이다.

그 스님은 주님이 하라는대로 행했던 구세군 냄비에...
추운 바닥에 앉아 떨면서 받았던 시주를......
보란듯이 바쳤다.
아무런 편견없이 말이다.

2. 어느 산사(山寺)에서 있었던 예배

지난 96년, 잠수함을 이용해 강릉으로 침투한 무장간첩으로 인해 전 군에는 비상이 걸렸었다. 강원도를 주둔지로 하는 1군 지역은 발칵 뒤집혀 전 군이 출동하였고, 예비사단인 모 사단 역시 간첩 전원이 체포 혹은 사살될 때까지 주둔지에 복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간첩의 이동로 및 예상 도주로를 따라 다니게 되었는데...

오대산에서 작전이 이루어지게 되자 우리의 불쌍한 장병들은, 밤에 적이 지나가면 무너지도록 돌탑을 쌓아 산 전체를 빙 두른 다음, 개인호를 파고 위장을 하며 매복을 하게 되었고, 대대 지휘부는 오대산 꼭대기에 있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암자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절의 설암이라는 스님은 나라를 위해 애쓰는 장병들을 위해 망설임없이 절 경내를 개방하였고, 한달 가량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던 군인들을 돕기 위해 물과 땔감, 음식, 포목, 화장실 등을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결국 스님의 배려로 대대 지휘부는 절 안에 텐트를 치게 되었는데...

그렇게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 일요일을 맞게 되었다. 헌데 이 대대의 대대장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었고, 긴 시간 작전을 수행하느라 예배를 볼 수 없었던 것을 마음에 걸려하였기에 대대 군종병을 불러 절 경내에서 예배를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주위의 간부들이나 병사들은 지휘관이 하는 일이기에 반대할 수는 없었으나, 절 안에서 예배를 보겠다는 그 발상에 모두 황당해 하였고, 적어도 예의가 아님은 분명한데 그간 많은 배려를 해주었던 스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스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였다.

...그러나 정작 지나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은 빙긋 웃으며 숙소 안으로 들어가더니 과일을 한아름 깎아다 '쉬실때 좀 드시라'며 예배를 보는 곳으로 넣어주도록 병사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독실한 크리스챤인 모 대대장, '절에서 나온 음식은 절대 입에 댈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밖에서 예배를 보지 않던 장병들은 맛있게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3. Raymundo의 룸메이트

Raymundo는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서 살았다. 2월 말에 이틀 동안 입주를 위해 짐을 나르는데, 룸메이트와는 계속 엇갈렸는지 얼굴은 보지 못하고 서로의 자리에 짐만 점점 늘어갔다. 당시 Raymundo는 나름대로 투철한(?) 가톨릭 신자였고, 제일 처음 책꽂이를 깨끗이 닦은 후 한가운데 십자가와 성경책을 올려놓았다.

이틀 후에 드디어 룸메이트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인사와 간단한 소개를 한 후, 룸메이트가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RaymundoRaymundo의 십자가,성경책을 번갈아 보더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사실은 제가 불교 신자라서... 밤에 기도(불교에서도 기도라 하는지는 모르겠다. 상대방이 크리스찬이라 그리 표현했는지도?)를 해야 하거든요?"

잠깐 놀란 표정을 ('왜 그것을 내게 양해를 구하지?') 지어 보인 후에 Raymundo가 대답했다.

"잘 됐네요, 저도 마찬가지니까, 같이 하면 좋겠네요 _ 그렇잖아도 혼자서 하면 참 뻘쭘할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룸메이트가 매우 놀란 표정을... :-)

그 날 이후 매일 밤 그 방에서는, 창가에 촛불 하나 밝히고 Raymundo와 그의 룸메이트가 각자의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각각 묵주와 염주를 손에 들고 웅얼거리며 기도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끔씩 놀자며 찾아 온 옆방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아이구, 놀 분위기가 아니네" 하면서 뒷걸음쳐 나갔다고 한다. :-)

4. 흔한 일 하나

1990년대 초반이었나? 아무튼, 요새는 모르지만 그때는 신기한 일이었던 것 하나. 12월 중순에 여주에 놀러갔는 데, 실륵사에 플랭카드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이야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크리스마스" 정도 될 겁니다. 같이 놀러가서 그 광경을 본 놈들이 할 일이 뭐겠습니까?
다 같이 박수.짝짝짝.
흔한 일이죠. 흔해야 하고.djshuin
2000년 이후, 꽤 흔해진 일이 된 듯 합니다. 더이상 12월 말 쯤에 절에서 성탄절 축하 플랜카드 걸어둔 것이 사진 찍혀서 게시판에 올라와도 화제거리가 안되는 듯 했고 ilzamusik도 지나다니면서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 반대의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종교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만.
단지 아쉬운 것은 그 반대의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성당의 현수막은 자주 목격됩니다. :-)


5. 언행 일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군대에 있었을 때, Roman은 소대에서는 군종의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 소대내에서 가장 적합한 군종의 자격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최원탁이라고 하는 신학 대학원과정 중에 군입대를 한 나이가 조금 많은 사병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자신이 소대내에서 특별한 신도라고 광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도 담담하게 기독교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탓에, 이른바 날라리 신자라고 불러야할 종류의 사람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의견으로 소대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대다수의 고참들 앞에서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일하고, 고통을 감내하고, 실수없이 일을 해내서 함부로 그 약점을 지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군생활을 했으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맞춰, 소대내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때때로 위로의 이야기들을 해주고, 성경에서 인용한 말들보다는 대다수의 소대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비유와 설명으로써 보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 이야기를 실천했다. 그는 기독교를 강요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그의 솔선수범하는 행동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소대원들의 인식을 좋은 것으로 이끌어갔다. 그는 실천하고 행동하는 리더쉽을 갖고 있었고, 소대원들은 그의 리더쉽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자세 자체가 소대원들에게는, Roman이 하는 설교보다, 기독교가 낳은 긍정적인 인간상이 어떤 것인가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소대 고참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행사를 가는 신도라고 등록한 병사들을 '일요일의 사역'을 교묘하게 피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 탓에, 그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일과가 끝나면, 종교에 관련된 서적이든, 기독교 서적이든, 에리히 프롬의 책이건 수많은 종류의 책들과 함께, 성경을 묵독하고 잠에 들었는데, 무라카미하루키에 대해서 갖고 있는 Roman의 열정 비슷한 것도, 그는 하나의 인간의 견해와 삶의 방식으로써 받아들여주었고, 기독교에 대한 비기독교 신자들의 평가나 일련의 반기독교적인 이야기에도 어떤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내는데 능통했다. 그리고 겸손하게 타인의 지혜나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점점 더 신자라고 자신을 등록했던 병사들 중에 '제대로 믿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GOP에 들어가서는 군종인 Roman이 소대내의 예배를 진행하였지만, 진행하는 내내, Roman은 그의 눈과 귀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온갖 현학적인 미사여구와 수식어,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의 다른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었는데, 결정적으로 이런 말들이 소대원들 중에 일부를 예배로부터 멀어지게 한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다만, 그의 행동을 닮는 사람들은 자기자신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기독교인 최원탁을 닮아가는 사람들이었다.

Roman은 그분처럼 기독교에 대한 보다 풍부한 지식과 삶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기독교인은, 그냥 신도가 된 것만으로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과는 그 차원이 다른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것은 지식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그에게 준 지혜이고, 때로 그가 기도함을 통해서 얻었던 (어느정도는 자기최면에 가까운) 훈련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어디에선가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는 그곳에서도 그의 말보다는 바로 행동으로써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이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Roman이 바라는 것은 신도들이 그의 말에 의해서 신앙을 찾기보다는 그의 행동에 의해서 기독교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가 마음 깊숙히 갖고 있었던 신앙의 참모습이 무엇이었는가는 명확히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Roman은 이제까지 만났던 기독교인이라 자기 자신을 칭하는 사람들 중에 그 사람 이상의 훌륭한 신도는 보았던 적이 없다.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지만, 혹시, 이곳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야말로, 기독교를 위한 글을 띄울 충분한 자격을 이곳에서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적어도, 섣부르게 기독교의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어라라고 이야기하는 누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누를 끼쳤었던 Roman의 어리석은 신도로서의 나날들을 다시 한번 후회해본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에 대해 가졌던 시기심을 반성한다. 적어도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보다 많이 있었다면, Roman은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며, Roman이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Roman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언행일치가 안되는 기독교인들이 주변의 이미 신자인 사람들과 장차 신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이른바 성경 구절에 따르자면, '실족케 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 기독교에는 최대의 수혜일 것이다. 그러나 언행일치가 안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옹호하는 중요한 문구가 설교에는 나오곤 한다. '사람을 보고 믿지 말아라'. 미안하지만, 기독교가 낳은 긍정적인 인간상을 목격하지 못하는데 신자가 늘고 전도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설교만큼 '자기 합리화'가 심한 설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바로 기독교인들을 실족케 만드는 설교인 것이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신자의 몫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는 것이 오히려 일상 다반사인 것이다.--Roman

아무개는 기독교인이지만, 어쩜 뼈속까지 기독교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드는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처럼 배타적인 종교는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중에 하나이다.

젊은날 혈기부리며 싸워봤던 두사람이 남들은 다들 존경하던 목사님이셨다. -_-;; 바로 몇년 전에도 젊은 목사와 싸웠다.

어쩜 그렇게 꽉 막히고 자비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고 자존심이 강하신지들...

종교는, 말이나 글귀나 머리속에만 맴도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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