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패턴사용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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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패턴은 몇가지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자아를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크게 나뉠 수 있고, 세부적으로도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가진다.


1. 자아의 포기

1.1. 자아의 수동적 포기

글에 대해서 '나' 를 포기하는 것은 주로 겸손의 미덕과 스스로 낮춤의 의미이다.
심리적 예시 : 나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굳이 내 이름을 붙이는 건, 잘난 척 하는 걸로 보일 거야. 대단한 것도 아닌데.

1.2. 자아의 진취적 포기

인도의 위대한 저술들에는 대부분 저자가 없다. 인도인들은 그러한 저술들을 인간이 쓴 것이 아니라 신이 쓴 것으로 간주한다.
심리적 예시 : 내가 발견한 건 진리야. 내가 여기다가 이름을 안 붙이는 건 이것이 보편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이야.
성서(bible)는 인류 역사를 통털어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입니다. (종교적 거부감이 있는 분들께 죄송) 성서는 49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49권의 책 하나하나가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성서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것이 바로 각 책의 저자를 찾아내는 것이고(실제로 최근에 각권의 저자가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의 다른 행적과 저서들을 통해서 한차원 높은 해석을 해낼 수 있게 됩니다. 즉, 나를 포기하는 것이 겸손의 미덕과 보편타당한 진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면, 오늘날 진리라고 주장하는 많은 경전들이 '자신을 희생한' 저자들로 인해 그 진실성과 현실부합성을 상실하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보편적인 사실과 주장이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개미는 군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수십만년동안 변함없는 사실은 개미는 개미일 뿐이다.) -- 안형진

2. 자아의 비포기

2.1. 숨어서 말하기

떳떳하게는 말 못하는 것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
심리적 예시 : 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 야이... XX 야...

2.2. 관계 단절

글과 자신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 글로 인해 오는 파장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경우에 사용
심리적 예시 : 누가 이 글에 대해서 뭐라고 하건 말건 난 내 할말 다 했어. 이제 신경쓰고 싶지 않아.

2.3. 대화통로를 열어두기

황장군이 두꺼비에 대해 글을 쓰고, 거기에 필자를 밝혔다고 하자. 이로서 독자는 드러난 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의 출처를 통해서 다른 '길' 혹은 'link'도 함께 섭취하게 된다. 4년전에 작성한 게시물에 댓글을 달면, 40년이 지나도 아무도 그 댓글의 존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우연히 검색엔진의 저인망에 걸린다면 모를까) -- 안형진

2.4. 사기치기

말이 필요없다. 사기다.
심리적 예시 : 모든 글을 익명으로 써 놓으면, 더 신비하게 보이고, 내가 쓰지 않은 글까지도 익명으로 된 건 다 내 것인 것처럼 나중에 알거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미리 익명으로 깔아 놓으면, 나중에 내가 딴 사람 것인양 인용해도 될거야.

인터넷은 어쩌면 익명에 의한 폭력이 횡행하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ID나 IP address 같은 것이 그 사람을 알게 해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만 해도 ID가 여러 개 되는데 아주 가지각색입니다.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따라서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은 익명으로도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신독이라고 하나요? -_-; 어쨌거나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얘기할 때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얘기할 때랑은. 자기의 무의식이 검열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걸 노려봤습니다. 나는 내 행동과 말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가, 남이 전혀 제지할 수 없을 때도. 저는 그렇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름을 걸고는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가면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의식의 심연에서조차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자신이 생기게 되면 익명을 벗어던지고 제 이름을 걸고 행동과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죽을 때까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노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스스로 실망하기 때문에 참으로 괴롭더군요. 악하기 때문에 그런 건지, 나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너무나도 많이 스스로에게 배신을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거죠. 어쨌든 위의 어떤 경우와도 정확히 맞는 것 같지 않아서 써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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