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우리에게시사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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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1. 인터넷


얼마전 국내 인터넷 이용자수가 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고가 있었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인터넷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기업들의 거품론과 함께, 블랙 먼데이 이후 최악의 증시사태가 빚어지면서 다시 생산 위주 산업의 가치가 부상하고 인터넷의 경제적·산업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단순히 인터넷의 경제적 효용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문화적, 조직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세간의 인터넷에 대한 잘못된 오해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인터넷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는 인터넷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중앙 관리소가 있고 내가 특정 정보를 보고자 하면 나는 그 중앙 관리소에 요청을 하고 그곳에서 정보를 가져오며, 전자우편을 보낼 때에도 항상 그곳을 통해서(마치 중앙우체국과도 같이) 배달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모든 네트워크 상의 개체가 동등하다. 내가 전자우편을 보낼 때는 받는 사람의 컴퓨터의 주소가 함께 묶여서 내 컴퓨터 밖으로 나간다. 그 편지를 받은 컴퓨터는 만약 그 편지가 자신에게로 온 편지가 아니라면 다시 다른 컴퓨터에게로 전달을 하여, 그 편지는 지도 없이 여행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곳으로 편지를 보낼지라도 매번 그 경로는 달라질 수가 있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V자 모양의 새 무리들의 경우에서도, 사실 가장 선두에 있는 새가 나머지들을 관리하거나 조정하고, 또 나머지 새들은 그 선두만 보고 모조리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MIT대학 미디어랩의 네그로폰테 교수는 그러한 오해가 "중앙집중적 사고"centralized mind-set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규칙들을 따르며 상호작용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관리자 없이 날아가고 있는 것으로, "조직자 없이 조직화되는 것"(organized without an organizer)이다.

이와 같이 인터넷의 본질은 네트워크, 즉 網으로 대변된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특징은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주인이 아무도 없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공유의 조직이고, 수평적 조직이요, 열린 사회인 것이다. 인터넷에는 권력을 가진 전체 관리자나 관리기구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정치"의 기본 전제가 성립하질 않는 것이다. 정치의 기본 도구인 권력(authority)은 인터넷 상에서 명시적으로 존재하질 않고, 대신 그 망의 사용자/참가자들에게 고루 분배되어 있다. 네트워크의 유용성은 그 네크워크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멧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은 이러한 '망 사용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 Bob Metcalfe 컴퓨터 네트워크에 근간이 되는 기술인 이더넷(Ethernet)의 창안자

2. LinuxMicrosoftWindows


여타의 모든 사회적 조직에서와 같이 이러한 "비계층화"(non-hierarchical)된 상태 下에서도 -- 그렇다고 비조직화(non-organized)된 것은 아니다 -- 분명 몇몇 비교적 힘있는 세력이 자본, 권력 등을 무기로 남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수평적 체계에서 수직적 체계로의 강제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반독점 금지법'에 의해 독점 판결을 받은 MicroSoft(MS)사를 가까운 예로 들수 있는데, 이 MS 소송 사건은 70년대 AT&T의 분할 이후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물론 MS사는 이 판결에 대해 항소할 것이라고 한다. 빌게이츠는 이번 판결을 그 조직의 '효율성'의 관점에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통합된, 그리고 좀 더 조직적이고 강력한 체제가 훨씬 높은 효율과 효과를 낼 것 인데, 법원에서 말하는 분할의 논리는 소비자들에게, 나아가서는 이 사회에 오히려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효율성'을 위해, 자신의 독점적 위치를 이용하여 수많은 네트워크 참여자(기업 및 개인)들을 제거하거나 자신의 발 밑에 종속시켜 왔다.

네트워크에서 그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단기적으론 수직적 체계가 더 효율적으로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독점을 야기하게 되고, 특정 소수의 개체에 전체 집단이 의존하게 되고, 자율성을 잃고, 종국에는 그 네트워크 자체를 붕괴시켜 버릴 수가 있다.

이런 MS사에 돌멩이를 들고 대항한 다비드가 바로 리눅스(Linux)이다. 리눅스는 철저하게 네트워크와 공유, 참여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리눅스는 1980년대 핀란드의 대학생 리누스 토발즈에 의해 가시화된 작업으로 컴퓨터의 가장 기본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의 일종이다. 비록 "리누스 토발즈"라는 스타를 갖고 있으나, 사실 운영체제로서의 리눅스는 전 세계에 걸친 수천명의 프로그래머와 사용자들(리눅스의 세계에선 대부분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의 일치한다)에 의해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진 결정체이다.

  • OperatingSystem, OS. 사용자나 응용 프로그램들이 컴퓨터 하드웨어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현재 대표적 PC용 운영체제는 윈도우즈이고, 리눅스와 경쟁 관계에 있다)

이 리눅스의 개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존의 존재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사용자가 불편을 느끼는 경우 그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설계도와도 같다)가 공개되어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 수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작업을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무제한적으로 공개한다. 그러면 수일, 수시간 내에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문제를 느껴왔던 사용자 혹은 개발자들이 그 공지를 보고 해당 프로그램을 무료로 전송 받아 사용을 해본다. 만약 효용을 충분히 느낀다면 계속해서 쓰게되는 것이고, 거기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한다면, 역시 스스로 몇 가지 개선을 해서 인터넷이라는 '밀림'에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과 유사하기도 한 이러한 개발과정은 인터넷이라는 밀림과 정보 공유의 정신, 자신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 권할 수 있다라는 황금률, 그리고 그 공간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 이것의 비근한 예를 들자면, 필자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구절에 대한 질문을 인터넷에 올린지 30분만에 세계에서 5명(영국, 미국, 호주인)으로부터 답장을 얻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지속적인 토론이 진행되었다.

실제로 한창 리눅스의 개발이 진행될 때,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리눅스의 버전업이 이루어졌고 이는 즉각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되었다. 역사상 이렇게 사용자에게 신속한 반응을 보이고, 개선되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한 적이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리눅스가 가진 개발상의 효용이 아니라, 배제에 대항한 공유의 정신이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지적재산권이라는 것도 사실은 해당 개발자에게 독점적 지위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에 이득을 주고 그것을 널리 공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재산과 달리, 지적재산,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경우 자신의 것을 남에게 주었다고 해서 자신에게 직접적 피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 자신이 먹을 사과를 남에게 주면 자신은 그것을 먹지 못하는 피해를 입는 경우와 달리. 디지털 세상에서는 복사라는 행위가 거의 비용을 소모하지 않으며 원본과 복사본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혼자 독점하는 것을 격려하고 자신의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죄악시하는 현재의 체제는 공동윤리의 오염을 야기한다는 것이 리눅스 진영(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유소프트웨어진영)의 목소리이다.

MS사의 경쟁업체였던 넷스케이프사의 웹브라우져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성당과 시장"이라는 에릭 레이먼드*의 글은 MS와 리눅스라는 양 체제를 성당과 시장에 비유를 했다. 수직적이고 지배적 체제인 MS가 성당과 유사하다면, 자유롭고 열려있으며 상호소통이 큰 역할을 하는 리눅스가 시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장의 구조가 가능한 요인으로 인터넷이라는 값 싼 네트워크 도구와 동시에,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꼽고, 이 구조의 산물은 성당의 수직적 체계의 산물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빠른 사용자 요구 수렴과 양질의 수많은 인력의 개발 및 보완 작업, 다양한 개발 인력과 사용자간의 상호 작용 등이 성당구조에 비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 Eric S. Raymond 리눅스 프로그래머이자 OSI(Open Source Initiative)의 주창자로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이라는 글을 통해 리눅스와 같은 정보 공유 방식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경제적 보상이 충분히 보장되는 성당구조에 비해 시장구조의 개발자들의 참여 동기는 무엇일까? 레이먼드는 첫 번째로, 자기만족을 말한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예술가와도 같이 스스로의 창조작업 자체에 가치를 두고 그로부터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는 사회적 존경 역시 큰 역할을 차지한다. "만들되 소유하지 않는다"라는 웨인버그*의 "非自我적 프로그래머"(egoless programmer)는 이러한 체제하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프로그래머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것들과 함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하는 "상호 이타적 행위*"(reciprocal altruism)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Gerald M. Weinberg 미국의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Computer Programming)에서 非自我적 프로그래머를 강조했다.

  • 1) Edward O. Wilson (에드워드윌슨) 하버드 대학교의 생물학과 교수로, 사회 생물학(sociobiology)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생물학적 공동체에 대한 자연 선택설 등의 진화이론을 연구하고, 이를 인간 행동에 널리 적용했다.

  • 2) 나중에 상대방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 하에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

3. 시민사회와 NGO


이제까지 인터넷이 만들어 낸 가장 대표적 산물, 리눅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럼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사회와 그 조직구조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총선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했다. 그 중 하나를 꼽는다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낙선운동에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WTO, IMF, IBRD 총회 등에 있었던 반대 시위 역시 인터넷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인터넷 이전의 시민운동과 NGO들의 양상이 지금과 질적으로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우편과 전화 혹은 직접적 만남 등을 통해 참가하고, 정보교환을 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반면, 인터넷 이후에는 기존의 미디어가 다다를 수 있는 지역적 거리를 확장하고 소요시간을 축소한, 속도의 증가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각 단체들은 좀 더 '상호 작용적'(interactive)이 되었고, 자신의 문턱을 낮춰서 좀 더 많은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하던, 범국가적, 범조직적 의사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까운 예로, 작년 연말에 있었던 WTO 논의의 경우, 인터넷의 십여개가 넘는 웹사이트를 통해 대략 1500여개의 NGO들이 전자우편 교환을 하고 참여를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한두 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의사 표명을 하고, 또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한 인터넷 사용자가 통신회사의 서비스 문제로 반대 웹사이트를 만든지 며칠만에 수천명의 회원을 모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사실 인터넷이 이러한 수평적, 네트워크적 운동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평적, 네트워크적 사고의 형성이 현재의 인터넷을 가능케 했고, 시민운동을 만들어 낸 것이며,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인터넷이 촉매 작용을 하면서 그 효과를 더 극대화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인터넷의 촉매 기능이 세계화로의 진행길에서 분화와 통합, 다름과 같음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역할에 일조하기를 희망한다. 정보화, 지식사회가 진행될수록 그 방향은 "20 대 80"의 구조로 향해 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런 추세는 더 많은, 더 강력한 MS사를 만들어 내어 죠지 오웰의 『1984』가 그리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우리 사회를 내몰지도 모른다. 지식과 정보가 자본이 되어 배제를 공유에 우선시하는 윤리사회로, 또한, 개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시하는 닫힌 사회로 갈 것이라는 회색빛 비관론에 이러한 네트워크적 접근이 한가지 희망이 되지는 않을까.

물론 이러한 NGO나 시민단체 등이 지금의 정부를 대치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단기적 시야만 가지고 효율만을 쫓아가는 "시장"과 장기적 시야를 가졌으나 하나의 소리만을 내야 하는 "국가"간에서 제 3의 지역으로 전체 사회의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는 없을까. 한 사회의 안정성은 그 사회의 가변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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