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적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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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모크 혹은 위키위키에서 나타나는 집합적 감성에 대한 생각


감수성(sensibility), 취향(taste) 등은 분명 집합적입니다. 그것이 특정한 개인들의 사회적 조건들(출생, 교육, 지역, 직업 등)에 의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그 성향과 한계가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직관적 통찰"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일 뿐입니다). 사실 "지성적(intellectual)"이라는 것조차 사회적 차원에서는 일종의 "취향과 감수성"의 한 경향으로 여겨질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노스모크는 어느 정도 공유하는 감수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특정한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으로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선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집단들은 배제될 것이고, 육체노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찾지는 않겠죠.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곳은 지식인들의 놀이터입니다 (이 문장은 부정적인 평가를 함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위키 사이트들이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부에서의 취향과 감수성의 분화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지식인 사회 내부에서의 분화일 겁니다. 일반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문화예술 창작자 주체의 감수성은 전문교육을 받은 엔지니어 집단의 감수성과 다를 수밖에 없고, 룸펜 프롤레타리아(뚜렷한 직업이 없는 인문 계통의 지식인)들은 그들의 "개인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집단적 감수성은 이른바 중간 관리자층의 감수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감수성들이 "개별적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서 문화정치(자신들의 감성을 승인받거나 전면화하려는 일종의 인정 투쟁)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이 문제는 객관적인 분석적 개념들을 사용하는 대신 표현적인 어휘들(주관적 기술의 어휘들)을 사용함으로써 모호한 "개성"의 문제로 넘어가기는 하지만요. 저는 "다르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물론 그 "다름"이 충분히 인지되지 않고 어떤 특정한 감수성이 "전면적"으로 대표성을 띰으로써 다른 종류의 감수성들의 표현과 존재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는 건 중요한 문제겠지만), 그 "다름"에 대해서 우리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반복하고 싶은 겁니다. 그건 다시 말해, 이곳에서의 "집합성"과 "개인성" 사이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이른바 위키 사이트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다큐멘트 모드를 선호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객관적인 정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노스모크에서는 특정한 개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페이지가 적지 않죠. 사실 이것은 한동안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경향이지만, 그것이 서로 "이질적인" 마인드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정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수렴이 가능하지만, 개인적 감수성의 주관적 표현은 수렴이라는 것이 (우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니까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특정한 이름들"과 결부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는 (물론 "전문가"의 이름이 표시될 경우, 그 출처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지겠지만) 원칙적으로 "아무개"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정보의 가치를 따질 수 있지만, 개인적 감수성의 주관적 표현이란 특정한 이름이 없는 한, 다른 사용자들에게 "통계적 가치" 외에는 거의 가치가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온사이더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감상과 느낌을 적어놓지만, 만일 "온사이더들"에 전혀 개인적인 관심이 없는 사용자가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아마도 모든 글들이 "아무개"의 글들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에게는 그 "개인적인 토로"들이 갖는 정보적 가치는 아주 낮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런 점에서, 노스모크의 "집합적 감성"의 문제란, 노스모크의 크기(온사이더들의 규모)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이곳은 소규모이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생각보다 많은 것이라는 의미에서요)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감수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견해를 경청합니다. 하지만, 온사이더들이 더 많아질 경우, 객관적인 정보에 대한 선호가 더 높아지고, 이름이 갖는 "특수한 가치"는 평가절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수록, 주관적인 감수성의 표현이라는 것이 갖는 가치는 줄어들겠죠.

산만한 얘기지만, 위키를 통한 감성 언어라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규모가 확대된 위키에서 자기 페이지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 좋아하는 영화", "**가 최근 본 영화", "**가 싫어했던 영화", 이런 식으로 "감성적" 페이지들을 무한 생산하고, 따라서 페이지들의 정보적 가치가 극단적으로 작아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감수성이 교류"되는 곳이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통계적 페이지가 아니라면, "사용자 집단이 갖고 있는 무의식적인 감수성" 정도밖에 없겠죠. 다시 말해, 지식인 집단의 "객관적인 고급 정보 선호"의 감수성과 같은 "내재적 감수성" 말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충분히" 작은 곳이고, 따라서 우리는 지금 어느 정도는 불확실한 잠정적 상태 위에서 서로 다른 이질적 감수성들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도 때로는 "감성적으로 뜨거운" 페이지들을 만들어내면서 말입니다.


맑은씨가 최종욱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한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만 아픈게 아니라고요. 제 눈물이 노스모크 곳곳에 묻어있는 걸 보자면, 정말 맞는 말 같아요.

또, 마음이 닿는대로 다니다보면 지식이 쌓이게 되고, 지식이 쌓이면 새로운 관점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새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랑하면알게되고알면보이나니그때에보이는것은전과같지않으리라가 비슷한 말 같아요. -- 최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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