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대우종합기계 노동자들이 결국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 회사 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졸속 매각 반대와 이해 당사자 참여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주장은 꽤나 새롭다. 어차피 팔려나갈 회사라면 노동자들이 직접 회사를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이른바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노동자 인수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초유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주가 7천원을 기준으로 대우종합기계의 시가 총액은 1조1756억원. 이번에 매각될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의 지분은 이 가운데 57%인 6700억원에 이른다. 물론 노동자들에게는 이만한 돈이 없다. 이들은 일단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한꺼번에 사들이고 그걸 앞으로 10년 동안 받게 될 상여금 등으로 나눠 갚겠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가 되고 노동자의 경영 참여도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거지를 쓰고 있을뿐 6700억원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 거냐는 이야기다. 심지어 자산관리공사는 이들에게 입찰의향서 조차도 내주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마감된 예비입찰에서는 11개 업체가 의향서를 냈지만 이 회사 노동자들은 결국 불참했다.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은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산을 갖고 있다. 먼저 산업은행의 지분은 굳이 서둘러 매각할 필요가 없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매각할 지분은 자산관리공사의 지분 35%, 모두 4115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대우종합기계의 전체 노동자 4400여명이 해마다 360만원씩 내면 10년 동안 1584억원을 모을 수 있다. 여기에다 회사가 나머지 절반을 부담한다고 하면 벌써 3천억원을 훌쩍 넘는다. 또 600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이 각각 1억~2억원씩을 출자하면 1천억원 정도는 쉽게 끌어 모을 수 있다. 회사의 지급보증을 받아 대출만 받을 수 있다면 당장 4천억원 정도 만들기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쉬운 일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실제로 이 회사 노동자들이 아닌 다른 누가 회사를 사들이더라도 일시불로 4천억원을 지불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데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가 외국계 투기자본에 온갖 특혜와 지원을 끼워주면서 헐값에 알짜배기 회사를 내다파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번 대우종합기계 매각 과정에서 정부는 의도적으로 이 회사 노동자들을 차별 또는 배제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기업 인수는 결코 공허한 이상이 아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그룹은 그 좋은 사례다. 1991년에 나온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에 담긴 주장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효할뿐만 아니라 어쩌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유력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몬드라곤 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회사가 아니라 아예 협동조합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게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몬드라곤 그룹에는 당연히 주식도 없고 모든 의결권은 주주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는다. 주주총회 역할을 하는 조합총회에서는 모든 조합원들이 똑같이 1표씩 의결권을 행사한다. 급여는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의 4.5배를 넘을 수 없도록 조합의 정관에 규정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몬드라곤 그룹은 공업 협동조합 133개와 교육 협동조합 8개, 농업 및 소비자 협동조합 6개를 거느리고 있다. 조합원 수는 일부 비정규 계약직 노동자를 포함해 7만4천여명, 지난해 매출은 104억유로, 우리 돈으로 15조5천억원에 이른다. 스페인에서 7위 규모다.
몬드라곤 그룹의 강점은 이익과 손실의 공유에서 나타난다. 147개 조합의 이익과 손실 상당 부분은 모두 한데 모아서 공유되고 적립되거나 배분된다. 돈 잘버는 조합이 못버는 조합을 지원하고 때로는 적자를 메워주는 일도 있다. 그룹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 조합에 소속돼 있든 임금은 크게 다르지 않고 고용 불안의 위험도 전혀 없다.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몬드라곤 그룹은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흔히 효율성이 늘어날수록 고용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건 몬드라곤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다른 주식회사들은 노동자들을 자르고 손쉽게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늘리지만 몬드라곤 그룹에서는 조합원을 자르면 다른 조합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거나 급여의 90%에 이르는 실업수당을 줘야 한다. 한 조합에서 잘려도 그는 여전히 조합원이다. 결국 몬드라곤 그룹은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건 꽤나 중요한 차이다. 다른 주식회사들은 사람을 자르고 그 잉여이익을 주주들이 나눠갖지만 몬드라곤 그룹에서는 그 잉여이익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 다른 주식회사들은 이익을 내기 위해 사람을 자르지만 몬드라곤 그룹에서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익을 낸다. 수단과 목적의 차이다. 역시 이들 조합과 그룹의 주인이 조합원 즉 노동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몬드라곤 그룹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는 성장으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조합들 사이의 연대라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세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특정 기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것, 공동체의 영역을 확대할 것, 그리고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경제제도의 건설에 도전할 것.
몬드라곤 그룹과 비교하면 대우종합기계가 넘어야 할 고개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연대는커녕 아무도 관심도 갖지 않는 정말 외로운 싸움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기업 인수와 한발 더 나아가 종업원 지주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의미있는 시도다. 대우종합기계 노동자들은 좀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당신들은 지금 역사를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