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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을 가르치라
어리석음을 가르치라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얼마 전에 서울대가 올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초학력측정시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수능시험의 수학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들 가운데 전체의 5.4% 정도가 100점 만점에 30점 이하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대는 이 시험 결과를 공개하면서 친절하게도 논평까지 덧붙였는데, 그에 따르면 수능이 쉽게 출제됨으로써 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오늘날 서울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었다는 지적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지적 수준이 예전에 비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라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수능시험이 쉬워져서 대학신입생들의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식의 추리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학문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인슈타인이 학창시절에 지진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이 아이로부터는 어떠한 지적 업적도 기대할 수 없음. 결국 그는 몇몇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학교를 나와야만 했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나중에 검정고시를 보고서야 대학에 갈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지진아가 어떻게 세상을 뒤바꾼 천재적인 이론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 자신은 이 질문에 대해 자기가 다른 학생에 비해 아둔했던 것이 도리어 그를 천재적인 물리학자가 되게 했노라고 대답했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한 번쯤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또는 시간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 앞에 부딪히게 된다. 평균적인 아이들의 경우에는 초등학생 때 이런 물음을 묻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물음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사장되고 만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학문적인 탐구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적 바탕이 없으므로, 메아리 없는 물음에 지쳐 끝내는 물음을 포기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남들보다 지진아였으므로 한참 나중에야 시간과 공간의 신비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물었다가 망각해버린 물음을 그는 분명한 자의식과 어느 정도의 과학에 대한 소양을 닦은 후에 처음으로 묻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망각되지 않고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 속에서 물어지고 또 물어져 마침내 상대성 이론으로 열매를 맺었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묻는 것이다. 존재의 신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놀라움 속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내게 다가올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학문이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학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암기하고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물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참된 의미에서 생각의 힘인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의 학문적 자질이 떨어지는 까닭은 계산이나 암기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도 암기하고 있는 것이 많아 질문하지 않고, 너무도 계산에 빨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학생들, 특히 이른바 일류대생들의 고질병이다. 수능을 어렵게 내는 것은 길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아인슈타인 같은 어리석음을 가르치라. 겸손히 묻고,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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