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일 명칭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다른 형체의 물(物)에 대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각각 (멋대로의 명칭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잡다하게 서로 다른 만상에 대해서는 명(名)과 실(實)이 혼란되고 엉키어서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별이 흐려지고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분별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되면 마음은 반드시 깨닫지 못하는 병폐가 있게 되고, 일(事)은 반드시 곤궁하고 실패하는 화(禍)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자(知者)는 그 때문에 일을 구별하고 명사를 제정해서 그것으로 실지의 대상물을 가리키어, 위로는 그것으로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별을 분명히 하고 아래로는 그것으로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별한다.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별이 명백해지고,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분별되기만 한다면, 마음은 깨닫지 못하는 병폐가 없게 되고 일에 있어서는 곤궁하고 실패하는 화가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명사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중략)
명칭에는 본시부터 정해진 의미는 없다. 약정을 통해서 명칭된 것일 뿐이나 약정이 안정되어 습속으로 이루어지면 그것을 합당한 의미라 하고, 약정을 어기면 합당한 의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명칭에는 본래부터 정해진 진실성은 없다. 약정을 통해서 명명된 것일 뿐이나 약정이 안정되어 습속으로 이루어지면 그것을 진실한 명칭이라 한다. 그러나 명칭에는 본시 일정한 좋은 점이 있다. 알기 쉽고 어그러짐이 없는 것을 좋은 명칭이라 하고 한다.
물(物)에는 형상은 같으면서 그 존재하는 장소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고, 형상은 다르면서 그 존재하는 장소를 같이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혼동하기 쉬운 것이긴 하지만) 분별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형상은 같으면서도 장소를 달리하는 경우는 그것을 하나의 명칭으로 합칠 수는 있으나 (실제의 대상물은 둘이므로) 두 개의 실체라고 한다. 형상은 변했으나 실제의 대상물은 하나이면서 이름을 달리하는 경우는 이것을 화(化, 즉 변화현상의 의미)라 한다. 변화는 있으나 실제의 구별은 없는 것을 (실제의 대상물은 하나이므로) 하나의 실체라고 한다. 이것이 사물에 대하여 실제의 대상을 고려하여 수량을 정하기 위한 근거이다. 이것이 명사를 제정하는 원칙이다.(<순자(荀子)>정명(正名)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