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의추도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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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가 대표했던 민주주의, 다원주의, 평등의 사상은 당대에 결코 환영받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포퍼가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에서 열렬히 비판하고 있는 플라톤의 경우에, 그는 페리클레스와 정치적/사상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런 플라톤도, 듣고 나서 며칠은 정신 없이 민주주의에 감탄해했다는 명연설이, 이 추도연설이다. 결국 플라톤 식 사고가 승리하고 말지만...
펠레폰네소스 전쟁 가운데,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핵심을 읊고 있는 역사에 몇 안되는 명연설. BC 5세기.


투키디데스(Thucydides),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 (Funeral Orations of Pericles)



우리의 정치체제는 우리 이웃들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다른 어떤 것을 흉내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他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제도는 민주정(democracy)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소수가 아니라 전체 인민의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私的)인 분쟁을 해결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합니다. 공직(公職)을 임명하는 일에서 누군가를 타인보다 우대할 때, 중요한 것은 특정계층에 속했는가 라는 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실제적인 능력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국가에 봉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한, 그가 가난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정치생활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우리들 사이의 일상생활도 역시 자유롭고 개방적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에게 무언가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커녕, 무언가 언짢은 눈총조차 던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질적으로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생활의 영역에서는 자유롭고 너그러운(tolerant)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의 문제에서는 법을 준수합니다. 왜냐하면 준법이야 말로 우리들의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직에 임명한 사람에 대하여 복종하며 법자체에, 특히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과, 깨뜨리면 명백한 수치로 여겨지는 불문법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이 끝나면 우리의 정신을 위해서 모든 종류의 오락(recreation)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합이나 경연대회(시, 연극, 음악 그리고 운동경기) 그리고 연중 규칙적으로 열리는 제례(祭禮)행사가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집에서 우리는 나날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우리의 근심을 쫓아내는 아름다운 것과 좋은 취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都市의 위대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도처에서 좋은 것들이 모두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外方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우리의 산물처럼 즐기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리고 군사적인 안전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적들과 엄청난 태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몇 개의 본보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는 세계에 열려있으며, 사람들이 적에게 군사적으로 이익이 될지도 모르는 비밀을 관찰하거나 탐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일정한 인구를 국외로 추방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실로 비밀병기와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용기와 충성심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교육제도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용기를 기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대단히 고된 훈련에 순종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제약과 무관하게 살아왔으나, 그들이 부딪친 바와 똑같은 종류의 위험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꺼이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우리 나라를 침범했을 때, 혼자 오지 않고 그들의 연합세력을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外地를 공격할 때는 우리의 일을 혼자서 해결합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싸울지언정, 자신들의 고향과 집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적을 패배시키는데 실패하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의 적수들 중 그 누구도 여태껏 우리의 모든 힘과 부딪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주의를 해군과 육상에서의 여러 가지 임무수행으로 나누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적들이 우리 군사력의 일부를 맞아 싸워 패배시켰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의 軍 전체를 격퇴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패배했다면, 그들은 우리의 군사력 전체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닥쳐온 위험을 대처하는 방식, 즉 고된 훈련대신에 느긋한 마음으로, 국가가 유도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용기로 자발적으로 다가온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미래에나 있을 고난을 대처하느라 훈련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난관이 실제로 닥쳐온다면, 항상 엄격한 훈련을 받고있던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우리도 용감하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은 우리의 도시가 찬양 받을 만한 중요한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사치와 방종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신적인 것을 사랑한다고 해서 유약(柔弱)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富를 무엇인가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지 자랑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난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그 것을 받아들인다고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아무런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각 개인은 그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국가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事業으로 매우 분주한 이들조차도 일반적인 정치사정에 고도로 정통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 자신의 사업을 염려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도대체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아테네인들은 몸소 정책에 대한 결정을 내리거나 그 결정을 적절한 토론에 부칩니다. 왜냐하면 말과 실천이 서로 불일치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그 귀결이 적절히 논의되기 전에 급히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우리가 다른 종족들과 구분이 되는 또 하나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미리 그 것을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無知로 인하여 용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을 하기 위해서 멈추었을 때는 겁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가장 용감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인생에서 감미로운 것이 무엇이며, 쓰라린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닥쳐오는 것에 감연히 맞서는 사람입니다.

또 일반적인 好意의 문제에서 우리들과 다른 종족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호의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써 친구가 됩니다. 이 것은 우리의 우정을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선의를 보임으로써 그들에게서 항상 감사를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에게 무언가 은혜를 입은 사람의 느낌에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바와 같은 열의가 어딘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의 친절에 보답할 때, 그것은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주는 것으로 보다는 오히려 빚을 갚는 정도의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때,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이해득실을 계산하고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호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자발성의 의거하는 바이지 나중의 무엇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종합해서 말하자면, 나는 감히 선언합니다. 즉 내가 보기에 우리의 도시는 그리스의 하나의 敎師와 같은 존재라고. 나는 또 선언합니다. 우리의 시민들은 각자가 인생의 모든 다양한 측면에서 그 자신이 정당한 지배자이며 그 자신의 인격체에 대한 주인임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것도 아주 유례를 볼 수 없이 우아하고 다재다능하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지금의 행사를 장식하기 위한 공허한 허풍이 아니라 진실로 확인 가능한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우리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힘과,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바로 그 자질로서 우리가 획득한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돌아보시면 되겠습니다.

아테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들 중 유일하게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해 왔던 바를 훨씬 능가하는 그 위대성을 시험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아테네의 경우에서, 아테네의 경우에서만이 오직 유일하게, 어떤 침략자도 패배해도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떤 예속민도 그 책임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에 지배받는 것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긴 우리 제국의 표상(表象)과 기념물들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우리에게 놀랄 것입니다. 마치 오늘의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놀라와 하듯이...




''... 그리고 여러 시대들이 수세기 마다 몇번씩 아테네를 경외하게 되었지요. 정말 우리는 아직도 그에게, 그들에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BC5 세기. 전쟁과 전란의 한 복판에서. 포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 지성의 빛이 처음 크게 개화한 '위대한 시대'가 아니었는지. ...
위의 글은 경북대학교에서 역사학 입문 자료로 올라와 있던 것인데, 누가 번역한 어떤 본인지는 모르겠군요. '역사' 본들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nayas ''


그리스의 민주정치 역사상 현대의 민주주의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페리클레스의 30년 뿐이라고도 하죠. 당시의 민주정치의 개념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권리의 개념에서 접근했다기 보다는 소수의 사람보다는 다수의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더 뛰어나다던가 민주주의의 경우 국민들의 충성심이 높아진다는 점 등 국가 경영에 있어서의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민주주의가 과두제나 참주제 보다 더 발전된 정치형태였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페리클레스가 다스렸던 30년 동안은 상당히 발전한 민주정치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 남용운

see also린사회와그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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