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를불살라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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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포르노

한겨레21,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 : 한겨례회원만이 볼 수 있고, 논의 전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노스모크로 옮겨온 페이지입니다.


스칸디나비아주민들에게 일종의 ‘개안’을 준 월프 감독의 다큐 <충격적 진실>



사진/ 한국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스웨덴 볼프 감독의 다큐멘터리 <충격전 진실>. 이를 본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


선(禪)불교에 ‘돈오’(頓悟)라는 개념이 있다. 오랫동안 경전을 읽고 참선을 실천하는 것은 득도(得道)의 준비지만, 어느 한순간에 갑작스러운 깨침, ‘돈오’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돈오’의 경험을 오도송(悟道頌·도를 깨치는 노래) 등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깨침’을 가진 사람은 행동거지가 본격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여태까지 해왔던 삶에 대한 다른 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한 ‘깨침’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 모양의 하루살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 된다. 예술이나 문학의 걸작들도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깨침’의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버젓이 유통돼온 ‘이미지 폭력’


최근에 많은 스칸디나비아 주민들이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일종의 ‘깨침’, 곧 개안(開眼)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Q채널을 통해서 알려지고 제4회 서울 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상영됐던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어느 소녀의 포르노 보고서>(원제목: <충격적 진실>(Shocking Truth), 스웨덴, 1999년)다. 이 작품은 가혹한 포르노에 대한 스웨덴의 월프(Alexa Wolf) 감독의 고발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포르노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필자나 포르노가 풍부한 성생활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믿고 그 생산과 소비를 기정사실로 보는 많은 노르웨이인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는 끔찍한 폭력과 인간의 비(非)인간성에 새삼 눈을 뜨게 됐다. 인권보호의 모범국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웃나라 스웨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간이 하나의 ‘이미지 상품’으로 버젓이 생산되고 널리 소비된다는 것이, ‘스칸디나비아 생활양식의 도덕적 건전성’을 믿는 우리로서는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비길 데 없는 충격이었다.


사진/ 스웨덴 볼프 감독.


…몇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천천히, 폭력적으로 윤간한다. 남성들의 육욕과 희열에 넘치는 얼굴, 고함지르는 겁에 질린 여성의 얼굴, 여성의 음부를 도구 등으로 공격하는 모습도 부각되어 보여진다. 그 남성들은 섹스 자체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무력함과 그들의 ‘권력’을 즐긴다. 그러나 울어야 할 여주인공이 끝에 가서 큰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결국 폭력의 즐거움과 “여성도 즐기니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거짓말을 남성들에게 주입시키는, ‘강간의 교재’쯤으로 보이는 이 포르노영화는, 월프 감독이 암시장에서 어렵게 산 것이 아니라 인권국가 스웨덴의 합법적인 한 대중 유선텔레비전 채널에서 찾아낸 하드 코어(강도 높은) 포르노 프로일 뿐이다.

수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저녁마다 보는 이 채널의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 왜 월프 감독 이전에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스칸디나비아가 살해를 방불케 하는 섬뜩한 이미지 폭력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관대할까?

이미지 폭력과 ‘실제’ 폭력은 서로 무관하고 돈을 받고 카메라 앞에서 강간을 연출하는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는 통념이, 바로 이 관대함의 근거이다. 그러나 월프 작품의 진정한 ‘충격’은, 텔레비전 포르노의 야만적인 폭력성을 보여준 데 있지 않았다.


연출한 것과 폭행은 무관하다?




사진/ 볼프의 영화를 본 뒤 유선 TV에서의 포르노 상영 금지 법안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스웨덴 문화부 장관(위). 인터넷 포르노를 논하는 <다그블라데트>의 기사(아래).


연출 과정에서 ‘직업적인’ 윤간과 폭력을 당하는 포르노 여성 배우들과 많은 인터뷰를 가졌던 월프가, 그 포르노 출연자들의 ‘자유 결정권 행사’의 신화를 깨뜨린 것은, 월프 영화의 진정한 공로이다. 그들이 월프에게 이야기했던 그들의 과거와 포르노 배우가 된 사유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포르노 여성 배우들은, 어렸을 때 부모나 친척, 친구들로부터 ‘진짜’ 강간을 당한 것이 결국 포르노 배우가 된 진정한 계기라고 주장했다. 가장 믿었던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도 이를 폭로하여 사법처리를 할 용기가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극심한 자폐증에 빠지고 자신을 ‘버린 몸’으로, 그리고 남성의 성적인 폭력을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신경질환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교육과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결과적으로 포르노 산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유 결정권’이 아닌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남성들의 성폭력이 그들에게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돈을 받고 연출하는 것은 여성에게도 직업적인 만족감과 재정적인 독립을 가져다준다”는 그동안의 스칸디나비아의 통념을 완전히 깨뜨린 것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월프가 인터뷰한, 20여년 동안 3천∼4천번씩 강간을 연출한 ‘중견’ 포르노 여성 배우들에게, 그 일은 ‘만족’이 아닌 피로와 체념, 자기멸시를 가져다주었고, 자신이 ‘동물 노릇’을 했으며,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결코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몇번씩 포르노 산업으로부터의 탈출을 고심해봤지만, 교육이나 직장 경험이 모자라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남성사회가 요구한 ‘직업적 강간거리’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통념과는 정반대로 몇천회에 걸쳐 ‘합법 강간’을 당하는 것이 그들을 결코 부자나 중산층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값이 초기 단계에는 중산층 소득과 맞먹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외모 쇠퇴’로 분류돼 하류층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일류 포르노스타의 대열에 끼는 것은 극소수이고, 평생 가난과 불안정, 각종 정신·성적질환과 무엇보다도 극심한 자괴지심과 한번도 가족의 따뜻함을 누려보지 못하는 것이 그들 대부분의 운명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르노 산업 자본가들의 소득은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급 노동자인 포르노 여성 배우들의 불행은 자본가들의 치부와 남성 소비자들의 ‘눈요기’, 성적 욕망의 생산과 부추기의 이면이다.

“연출한 것과 실제 폭행은 무관하다”고? 사회통념 중에 이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월프의 영화는, 포르노를 본 뒤 스크린에서 본 대로 똑같이 한 여성을 윤간한 스웨덴의 10대들에 대한 장면도 포함한다. 사실 포르노를 접하는 남성들의 대다수가 결국, 폭력적이며 남성을 위주로 한 성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70년대 말의 연구 결과이다.

물론 경찰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성폭력은 물론 여성의 성매매 행위가 범죄로 돼 있는 스웨덴에서는, 포르노 소비자들이 영화 속의 장면들을 실생활에서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성매매가 국가기반 산업쯤으로 돼 있는 타이까지 안 가도, 매춘이 합법화된 네덜란드에 가서 포르노영화식 욕망을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네덜란드 매춘녀의 상당수가 인신매매로 팔려온 아시아나 동구 출신의 현대판 노예라는 사실을 그들은 인식할까? ‘인권의 천국’인 스웨덴의 포르노영화는, 제3세계 여성에 대한 가장 심한 인권유린인 인신매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관심 속에서 제3세계에 대한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월프의 명작은, 노르웨이 주민들뿐만 아니라 스웨덴·노르웨이 위정자들에게도 하드 코어 포르노의 해악·반(反)인권성에 대한 돈오(頓悟)를 가져다주었다. 그 영화가 스웨덴·노르웨이 국회의사당에서 상영된 뒤, 두 나라의 포르노 생산·소비에 대한 새로운 통제의 메커니즘이 마련되기 시작했고 포르노 여성 출연자의 전업(轉業)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그러나 문제는, 포르노가 합법화돼 있는 덴마크·스웨덴은 물론, 성기 이미지의 생산·소비가 법으로 엄격히 통제돼 있는 노르웨이에서마저도 포르노의 소비는 이미 남성의 성장 과정의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는 것이다.


제3세계에 대한 ‘범죄’를 부추긴다


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십대들은 ‘강간을 원하는’(?) 여성에 대한 ‘즐거운 폭력’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이성 교제의 묘리(妙理)를 배운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며 중요한 생활 영역, 성생활에서 평등과 사랑이 아닌 폭력을 먼저 배운 그들이 동양여성이나 제3세계 여성을 대할 때 과연 민주적일까? 월프에 의한 폭로와 분석의 영향으로 하드 코어 포르노에 대한 통제가 엄격해졌다는 것이, 인터넷과 열려 있는 국경의 시대에 문제의 해결이 될 수는 없다. 여성에 대한 가혹한 폭력과 차별이 담겨져 있는 상업적 이미지가 자본주의적 억압의 일면을 대표한다는 의식이 대중적으로 확대되어야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는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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