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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
이 노래 모르는 사람 아마 없을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내용이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먼저 첫째연, 마치 파브로프의 조건반사의 개를 생각나게 한다. 종소리에 맞춰 침을 흘리는 개처럼, 종소리만 들으면 조건반사처럼 학교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왠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학교의 교육이란 것, 결국 순종적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정도를 넘어서서 조건반사의 수준에서 반응하는 인간상을 만들자는건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둘째연,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왜 선생은 꼭 학교에 먼저가서 얘들을 기다려야한단 말인가? 학생이 먼저 가서 기다리면 안되나?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어서 자율 출퇴근제니 뭐니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와있는데 선생이 안온단 말인가? 혹은 학생이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데 선생이 먼저 퇴근한단 말이가? 등의 말도 안되는 억압과 노동착취의 논리근거가 되고 있다. -- zetapai
그러고보면 이노래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대상과 한번 연결을 시켜보면 어떻까 싶은데 혹시 어떻게 누구의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아시는분 있습니까?
지나친 논리의 비약입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할 노래가 한 둘이 아닐겁니다. 조리퐁을 보며 여성의 음부를 상상하는 일부 여성단체의 과도한 상상력마저 생각나게 하는군요. -- 한혁희
학교생활이 가지는 여러가지 측면들 - 글자배우기, 산수, 공차기, 친구, 노래부르기, 그림그리기, 재미있는 놀이, 등등... - 그 많고 다양한 가운데서 시간의 이미지를 가지는 종소리와 권위의 상징인 선생님과의 관계를 꼭 집어서 끄집어내었지 않습니까? 너무 건조하고 즐거움이 메말라있는 노래가사란 생각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물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조리퐁은 지나치게 낯뜨거운 과도한 비유같습니다. 제 논리가 어떻게 여성단체의 그 이야기를 연상시켰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zetapai
과도한 비유인가요? 누구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사소한 것에서 무언가 거대한 의미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일종의 강박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도 한번 그런 식으로 의미를 붙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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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우리 서로 학교길에 만나면 만나면
웃는 얼굴하고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웃는 얼굴하고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하루 공부 마치고서 집으로 갈때도
헤어지기 전에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
헤어지기 전에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
학교길에 만나면 웃는 얼굴을 하고 인사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어떤 아이에게도 화내는 법, 슬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엔 언제나 선량하고 밝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낙천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의 행복한 엔딩만을 그린다. 화낼 때 화낼 줄 모르고 슬퍼할 때 슬퍼할 줄 모르고 그저 웃기만 하는 아이들이 정상일리 없다. 아침밥이 맛없어서 짜증날 수도 있다. 뽀뽀뽀를 못봐서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웃으며 인사하라니. 인사라는 사회적으로 굳게 약속된 권위를 이용, 어른에게 예의바르고 친구들끼리 문제일으키지 않는 학생만을 선별하고 키워내도록 해서 더 높은 권력구조에 순응하는 인간상을 만들자는건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 한혁희
한혁희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누구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사소한 것에서 무언가 거대한 의미를 이끌어내고자"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좀체로 수긍하기 힘들군요. 현재 상식적으로 통용되고있고 인정받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인가요? 오히려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있는 문제에 우리 의식의 맹점이 숨겨져 있는건 아닐까요? 이런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거 아닌가요? 사소하다는 판단, 그러므로 논의하지 말자는 판단, 이런거까지 님에게 맡겨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로든 안녕이란 글과 그에대한 의미부여는 매우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교과서에 실릴수 있지만 조지훈의 "지조론"은 결코 교과서에 실리지 않으며 "펜의 힘"이라는 제 초등학교 시절의 글(일차대전 당시 영국의 데일리메일지가 영국의 패전상황을 사실대로 보도하여 국민들의 사기를 꺽는다고 비판여론이 등등하였으나 그 사실보도가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케하여 결국 전쟁 승리에 도움이 되었다는 글)은 어느새 사라져 없어져버리는 바로 그 문제(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런 혐의를 지울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문제입니다. 님의 말씀처럼 행복한 엔딩만 그리고 순응하는 인간상을 만들자는거, 그거 사실아닌가요?
-- zetapai
-- zetapai
예. 인정합니다. 논의 자체가 금기시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확대해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학교종이 땡땡이라는 노래가 그런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김우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아이들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을 뿐더러,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가르치는 동요보다는 매스미디어나 그 밖의 다른 매체들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 같군요. 더 효과적인 수단을 놔두고 굳이 동요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 한혁희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하고 계시는데, 개별사례가 좀 빈약한가요? 더 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만... 그 노래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지배 이데올로그들의 내용검열 필터에 걸리지않아 살아남아 있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어느날 불현듯 그 노래 참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단 생각이 들어서 써보았습니다. 안녕은 학교종보다는 좋게 느껴집니다. -- zetapai
오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그런 면을 아예 반영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듯..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상으로 가는 것은 좀 오바, 정확하게 말하면 아나키즘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요? '교사의 권위' '시간 잘지키기'같은 것이 심하면 권위주의와 전체주의가 되지만 아예 필요없는 것은 아닐 것 같거든요. 뭐 그런 것들을 강요하는 것만 아니면 (여기선 권유체군요) 큰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Sequoia
전유성이 만든 카페 이름이기도 하죠. 지금도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