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리 발로,"아이디어-정보는 재산 아니다" 2000/12/12(화) 동아일보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으로 유명한 디지털 평론가 존 페리 발로(53)가 13일 서울에 온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프라자호텔 22층 덕수홀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제2회 유네스코 정보사회 성찰포럼’ 기조강연자로 초청돼 처음 방한하는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와 소유권의 소멸:현실적인 경제적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할 예정이다.
◇정치-자본으로부터 독립 주장
정치와 자본이라는 현실세계의 권력으로부터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을 주장하는 그는 ‘사이버스페이스 정치가’로 불린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인권보호를 위해 설립된 ‘전자개척자재단’ 부회장 겸 하버드 로스쿨의 버크먼센터 특별연구원인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정보사회 관련 비평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1996년 발표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은 현재 2만여 개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타인에 배포돼도 손상 안돼
그는 강연의 발표문을 미리 보내지 않는다. 그의 손을 떠나 소통되는 정보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실시간 공연만이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eff.org/∼barlow)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아이디어 자체는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다.”
그는 정보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에게 배포된다 해도 전혀 손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작권과 특허권의 전 역사를 통해 생각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표현된 ‘물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예컨대 책의 값은 책의 내용이 아닌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전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돼 책, 플로피 디스크, CD―ROM 등의 물질적 포장재가 사라지면 정보를 물질화하는 과정도 사라지고 재산권을 주장할 ‘물건’도 없어진다.
◇디지털재산 보상문제는 못밝혀
아무런 대가도 받을 수 없다면 과연 누가 지속적으로 그런 아이디어와 정보를 만들어 내겠는가?
그는 말한다. “정보는 활동이고 생명의 형식이며 관계이다.”
정보는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이 생생한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이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노래를 무상으로 배포하면 그 노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노래를 실제로 듣고 싶어서 공연 입장권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 소프트웨어의 최신 버전과 최상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정식 사용자로 등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아직 디지털화된 재산의 가치가 어떤 식으로 보상될 수 있는지 명확히 밝히지는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물질의 소유권을 보호하던 낡은 법률을 가지고 ‘정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