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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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많은 미국 대학생이 무한등비급수의 합을 구하는 공식을 알고 있지 못했다. 자연히 한국이라면 그 합을 알고 있기에 그 다음 단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미국학생에게는 이 합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줘야만 했다. 자연히 더 많이 시간이 들고, 설명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미국학생의 기초적인 소양은 형편없었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 대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흔히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대학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고 많이 들어왔지만 실제 미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는 학생은 예외적이었고, 대부분 시험 때나 되야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물론 숙제를 많이 내주고 많은 강의 조교를 이용하여 숙제를 점검하므로 숙제만 제대로 하기만 해도 그런 대로 수업을 쫓아갈 수 있었다. 공부를 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잘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미국 대학생의 실력은 기대 이하였는데, 그런 심정으로 어느 날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 날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학생들 스스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으며,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가 평가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예상대로 내용이 없는 발표가 계속되었다.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주제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발표가 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대로 높이 사줄만한 점은 내용은 별로 없지만 발표는 그런 대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고교시절에 그러한 발표를 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부족한 지식으로나마 자신의 시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조리 있게 발표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주제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바보들의 토론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발표 내용도 주제와 많이 떨어졌고 거기에 대한 토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저렇듯 자신 있게 주장하는 모습이 이제는 무모하게까지 느껴졌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기에 필자는 건성 듣는 척하고 앉아 있는 격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필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토론이 문제의 핵심에 상당히 접근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갑작스런 변화에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신경을 써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아까는 전혀 내용 없는 주장을 하던 학생도 이제는 그런 대로 그럴듯한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었다. 중간 중간에 다른 학생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의견을 많이 수정한 것으로 보였다. 어느 사이 주제와 관계없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주장은 걸러지고, 모두 다 공유하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필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바보들의 토론에서 어떻게 이런 그럴듯한 주장이 도출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중간에 주제와 부합하는 주장이 간혹 있긴 했었다. 그런데 그런 주장도 다른 엉뚱한 주장에 묻혀서 전반적으로 주제에서 멀어지는 인상이었는데, 토론을 거치면서 그렇게 묻혀버린 주장이 다시 거론되고, 다른 엉뚱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놀라움 속에 처음보다는 훨씬 발전된 토론으로 그 시간을 마칠 수 있었다.

바보들의 토론을 통해 바보가 현자가 되어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가르쳐준 진정 잊지 못할 대사건이었다.

......

... 다른 사람과 토론하여서 모든 사람이 하나라도 더 많이 배워 토론장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언어구사능력을 우리는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From 홍종학,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 pp. 134-136, 미래와사람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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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있는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는 경제학과 교수가 쓴 "공부방법론" 책입니다 -- 저자는 자신이 소개하는 공부법을 경기신공(경기고에서 대대로 전해지던 비전) 혹은 달꼬리공부법이라고 부릅니다. 조카를 가르치는 대학생, 중고등학교의 선생님, 부모님,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모 교육학자가 "우리나라의 백명의 교육학자들이 못한 일을 한 명의 경제학자가 해냈다"고 평했던가 그랬습니다. --김창준


와우~! :) 꾸는자

글을 읽으면서 감전된듯 찌르르 했습니다. -- 라이온

노스모크 장점을 말해주는 듯 하군요. 더군다나 노스모크는 바보들의 집단이 아니니..... 윤구현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여럿이 생각하는게 항상 나은 법이죠..다 그런건 아닌거 같습니다만....nonfiction

바보인 나이지만, 위의 글을 보고 잠시간 위안을 했지만, 바보란 공통분모가 있더라도, 그들이 가진 무엇을 내가 갖지 못했기에, 위안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 bullsajo

바보들이 모여있기만 한다고 생각이 걸러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꺼이 건전하게 생각을 교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지닌 이들은 이미 바보가 아닙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이러한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세가 없으면, 아무런 정보 교환도 일어나지 않고, 되려, 감정적인 토론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지수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서 특히 부족한 것이 바로 이 토론에 대한 교육이 아닐까요? 이러한 토론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뚜렷한 자기의 주관이 있어야 하며 그 주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자기의 주관이 틀렸을 경우에는 그 주관을 꺽을 수도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등학교시절을 생각해보면 나서는 즉시 따가 되었으니까요. 제가 노스모크를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노스모크는 토론을 할 줄 아는 바보들의 진정한 바보들의토론장 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해봅니다. --Kwon

책이 절판되었군요.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이런 경우 좋은 책이 사장되었다고 말하는거죠. --i디어펍 (see also 절판된좋은책)

상대방과 토론할때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리기위해 서로 애를 쓴다면 거의 모든 토론은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바보라기 보다는, 서로가 토론하려 하는 것에 대해서 조차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무신

진짜 바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지식이, 그가 바보 아님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진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만큼, 오늘, 마음부터 열어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많이 배워 토론장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언어구사능력"을 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Next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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