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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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양심적병역거부


1980년대생 전라남도의 장흥출신으로 목포해양대에 적을 두었었다.현재는 휴학한 상태이고 복학은 하지 않을꺼라고 한다.
아래는 본인이 직접 그를 만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대불련활동을 하고 있으며
귀농을 준비중이라한다.

병역거부자 김도형씨를 만나고 나서 정리한 글 입니다.


이제 김도형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서울에 왔음을 알려야했다.
김도형씨, 나에게도 유명하며 아마 대한민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이름이 알려진 사람일꺼라고 생각한다. 그는 KBS의 백인토론에 나와 본인의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목포해양대 정보통신학과, 대불련의 간부생활을 하다 병역거부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평화라는 필요에 의해 군대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그에 관한 글이 올라가 있다. 그에 대해 처음 안 것은 목포대학교 불교학생회 홈페이지에서 누군가의 알림으로 였고 처음엔 그가 목포대학교 학생인줄 알고있었고 나중엔 그게 아니었더라도 나와 근접한 지역에서 나가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그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았었다.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주 거론하곤 했다. 나는 그를 변방에서 지켜보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울역 앞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각이라는 곳에서 내리게 된다. 조계사 옆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때 시간이 아마 저녁 10시 정도 됐을꺼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처음 건넨 말은 반갑습니다. 였고 'tv에서 본 거랑 다르네요, 살이 많이 쪄서 그런가'로 시작되었다.
나와 김도형분의 그날 저녁의 이야기 혹은 대담은 그렇게 시간으로 따지자면 새벽3시까지 그러니까 다섯시간정도 진행되었다. 대략 그때의 상황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의 숙소에서 밥을 얻어먹은 시간 녹차를 먹은 시간 소주를 먹은 시간이다. 내가 NGO에 관심이 있어선 지 NGO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왠간한 시민단체나 운동단체, 연합, 협의회, 위원회, 각종연대, 사이트들을 서핑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여가의 시간을 각종 사이트를 다니는데 쓰기 때문이다. 그가 약간 음침한 지하실을 통해 올라간 곳은 '불교환경연대' 였고 그곳도 이전에 알고 있던 곳의 하나였다.
불교환경연대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컴퓨터 여러대와 서류들이 보였다. 그렇듯 이것은 어느 정도의 멋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김도형분과 나의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서로의 화두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예컨대 그는 중앙에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변방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변방에서 인터넷으로만 TV로만 지켜보다가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를 그가 경험하고 싶은 것만 경험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나에게 병역거부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뜻에 동의 하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군대도 갈꺼라고, 주위 사람한테 장난 삼아 이야기 하지만 군대를 갔다온 다음에 군대반대운동을 할꺼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나에게 언제부터 대불련 활동을 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만큼 대불련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한번 하는 대불련 법회만 참여했다고 할까, 그렇지만 지방의 대불련은 그냥 '있는 것'에 불과했다. 지금의 내가 주변을 겉돌고만 있고 한번씩 건드려보는 수준에서 모든 것이 그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찌하든 군대가 없는 세상이 올까 하는 것은 무지하게 민감한 문제고 지금 여기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지금 군대가 없는 국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국방이 어쩌면 필요 없는 매우 미미한 나라이며 문제를 다른 나라에게 위임한 상태일 뿐이다.
'백인토론에도 예비역이 나와서 병역거부 지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군대갔다오고 나면 주장하는것도 더 효과도 있을테고 군대반대운동을 하면 군대내의 많은 문제들이 좀더 나아질꺼 같아서요 요즘에 문제 많이 뉴스나잖아요 성희롱 비리 폭행'
"군대내 민주화 문제는 다른 문제구요"
"어떻게 하면 군대가 없어질까요?"
'나같은 평범한 잡민들이 연대하면 군대가 없어지죠'
"사람들이 이라크전쟁을 석유와 미국의 패권만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왜 전쟁을 하는지 사람자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자본주의 라는게 전쟁을 통해 발전하지요,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발전했고,'
'지금 말이죠 저를 움직이는 두 축은 마르크시즘과 불교입니다.'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그건 '연기'죠 무아 무상 그런 거 다 빼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같이 연해서 일어난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았거든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있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 이렇게 앉아있는지 아는 것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이렇게 빵이 하나 있는데 제가 빵 한쪽을 먹으면 다른 사람은 빵을 반쪽밖에 못 먹는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사람이 사는 게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자기도"
'저도 제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죠'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이기적이라는 건 좀 잘못된 거 같네요 이기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기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 입장에서 보면 지금 활동하시는 게 되게 어떻게 보면 멋있으신 데 어떻게 서울에 올라와서 활동하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첨에 옷두벌 갖고 올라왔죠 첨에는 대불련간부라 먹는 거랑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재밌게 있었어요 대불련 활동 2년정도 하다가 이번에 병역거부 되고 얼마 전까지 새만금 삼보일배 참여하고 싶다고 해 가지고 삼보일배 하고 "
'고향이 어디시죠'
"장흥이요"
'장흥이 광주 아래 있는곳이죠
"광주 아래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구요"
'부모님은 뭐하세요'
"어머님은 공무원이시고 아버님 회사"
'공부 잘하는 애들 특징이 먼지 아세요 부모님이 공무원 아니면 선생님입니다.
좋은환경에서 크셨군요'
'사람도 많이 만나시겠네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옛날에는 하는 일없이 바빴는데 요즘에는 하는 일이 많아도 안 바쁘고 맘이 편해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나름대로 인생의 방향이'
"감옥에 갔다 오겠죠 한 2년 출가도 생각했었는데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대안학교 선생님인데 같이 삼보일배 하던 사람인데 그래서 힘들어질 거 같아요 앞으로 귀농생각하고 있습니다. 수행과 노동이 결합된 공동체 생활을"
'부럽네요 그런데 그 말 들으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공산당선언에 보면은 그런 생각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세계전체를 어떻게 바꿀려는게 아니라 자기 이념 맞는 사람들끼리 몇 명 모여서 같이 살아보자고 하는 그런데 그런 거 다 실패했거든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으실거예요"
'글쎄요 저도 그것 때매 고민이 많은데 요즘 제가 고민하는 게 머냐면 군대문제예요 군대를 가기 싫어서 그런 거보다는 나름대로 군대생활 잘 할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데 제 성격이 또 그런 게 아닌 거 같드란 생각도 들드라구요 요번에 섬에 보름동안 있으면서 그걸 더 많이 느꼈죠 그리고 제가 좀 가난해서 부사관그런걸로 해서 군대에 좀 오래있을 생각인데 제대하고 나면 스무 여섯 일곱 정도 되있는데 제가 학교를 옮길 생각이거든요 솔직히 지금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그렇게 늦은 나이에 들어가면 적응이 될까하는 다른 같이 할 수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거 하시겠다면서 나이는 왜"
'근데 제가 되게 현실적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따지다보니까'
"대학교 학생운동 죽었습니다. 그쪽에 머 할 것도 없고 그 쪽은 그리고 옮기려는 대학교도 보수세력의 집결지인데 앞으로 무슨 대안이 되겠습니까"
'근데 그게 홍세화씨도 말했지만 자기를 만든 건 프랑스생활과 서울대출생이라는 자본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앞으로 전공은"
'저는 전형적인 인문계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문과였고 머 굳이 학과를 선택하자면 철학과도 괜찮고 사학과도 그렇고 정치경제학도 그렇고 머 과가 중요합니까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거니까 제가 제 자신이 피해의식이 많아요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돈도 없고 내 세울게 없는데 그 학교에 가면 어느정도 피해의식이 없어질거같으니까, 개인적인 욕심이죠 옛날에는 그 학교에 가아한다는 신념이 없었지만 지금은 생겼으니까요'
"근데 그 피해의식이,,,"
'저는 지금 그래요 지금형은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고 저는 지금 변방에서 지켜보고 있죠 밖에서 요기저기 지켜만 보고 있고 여기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 저기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근데 형은 여기서 싸움의 각축장에 가운데 있죠 폭풍의 눈이라고 하죠 어떻게 보면 형은 지금 행복한 겁니다. 지방에 있다가 여기오니까 그게 더 느껴지네요 대한민국 이란게 저한테는 관조의 대상이죠'
'마르크스주의가 되게 경제를 중요시하는 사상이거든요, 여기 있는 컴퓨터들 인권운동 환경운동 돈 없으면 할 수 있을까요 회비, 보시 없으면 가능할까요?'

어쩌면 그것은 매우 소중한 기억이었다. 적어도 나중에 누구를 만나보았다 식의 이야기 와중에 꺼낼 수 있는 화두이기도 하였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면 김도형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더욱 깊은 정도의 경험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며 회의(懷疑)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지방3류대 학생이고 내 세울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재미 중의 하나는 알고있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데에도 있다. 인간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로부터 미래를 꾸려나가는 모습이 있는거 같다. 언론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김지하씨가 그랬다. 나의 필요성과 상관없이 '오적'이라는 충격적인 글을 발표하고 난후 몇십년이 지나도록 그의 생활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정보를 받는다. 이렇듯 내가 내 주변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는 어떤 특정한 집단의 필요성과 신념에 의해 전파된다.
일면 아무런 느낌없는 일상이 이데올로기로 꽉 채워진 공간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이데올로기는 죽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있는 것 자기의 신념으로부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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