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일반단어공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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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김창준의영어학습법에서 단어 공부에 관한 사항을 정리한 일반단어공부론이다.



1 왜 이제까지 해 온 단어 공부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들은 영어라는 놈을 중학교, 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 받아 오면서 '단어'라는 화두는 항상 우리에게 짐이 되어 왔고, 그러면서도 늘 영어라는 '학문'의 小 과목으로 자리 매김해 왔습 니다. 덕분에, 막상 영어란 막연한 대상을 공부해 보려고 했지만 어디로 먼저 눈길을 돌려야 할지 모를 때, 손쉽게 '할 거리'를 제 공해 주는 존재이기도 했지요.

연습장에 까맣게 영단어와 한글 뜻을 번갈아 가며 빼곡이 채워 넣은 것을 보고 내심 심리적 보상과 만족을 느끼기도 했고간 혹은 그런 것을 숙제로 내야하기도 했지요, 시중의 수능 대비용 필수 단어 모음집 등을 들고 다니며 재독 삼독 그 횟수에 뿌듯해 하기도 했지요. 사실 이런 전통적 방법이 우리의 누나와 오빠가 밟아온 '정석'이었지요.

흔히들 영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왕도는 몰 라도 正道는 있다고 봅니다. 그말은 즉, 正道와 邪道(혹은 誤道 -- 그릇된 길)를 가릴 기준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기준의 출발은 " 영어는 언어이다"라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명제에서 출발을 합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더 자세히 하도록 하고, 지금은 '단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한정해서 봅시다.

일단, 저는 우리가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해온 단어 공부법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문제가 있는가를 이야기 해야겠는데 제 논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것은 "단어가 제대로 외워지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효용론입니다. 저는 사실 "단어를 외운다"라는 말을 쓰기 싫어합니다만, 여러분이 제 언어를 아직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시기에 여러분의 언어로 말씀을 드리기 위해 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단어가 제대로 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단어가 제대로 외워진 경우"를 반례로 들어야겠군요. 단어가 제대로 외워졌다면 우선 그 단어가 실세계에서 지시하는 바를 직접 경험하는 경우 그 단어 자체가 떠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사과를 보면, 바로 apple이 떠올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둘째로, 그 단어를 해당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다고 느껴야 합니다. 셋째, 글이나 말(이제부터 양자를 합쳐 입력자료라고 부르겠습니다)로부터 해당 단어를 접했을 경우, 그 단어가 지시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연상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그 단어를 자신 사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 단어를 출력해 내는 것이(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 단순히 그 단어가 지시하는 바를 연상하는 것만으로 가능해야 합니다.

자, 이제는 단어가 제대로 외워지지 않은 경우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실세계 경험을 대할 때 한국어로 개념이 먼저 형성되고 그걸 해당 -- 기존에 암기해 둔 -- 영단어로 치환, 혹은 번역하는 작업이 개재됩니다. 다음, 그 단어를 남에게 설명하려면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셋째, 입력받은 단어를 한국어 단어와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 이해합니다. 넷째, 그 단어 자체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다섯째, 대상을 연상하면 그 것에 대응하는 한국어를 연상하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영단어로 치환합니다.

이런 경우를 저는 "단어가 제대로 외워지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표현으로 바꿔 말하자면, "단어가 제대로 工夫되지 않았다" 혹은 "단어가 제대로 몸化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2 그렇다면 단어 공부의 정도는 무엇인가?


여러분들이 싫어하시겠지만, 약간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공자 아저씨가 논어 <學而>편에서 "君子務本 本立而 道生"(군자무본본립이도생 --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이라고 하셨습니다. 근본에 대한 이야기 없이 행해지는 어떠한 논의도 성수대교 같은 부실 공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지적사기』Fashionable nonsense 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간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일적 학문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허술한 아카데미즘을 통렬히 비판한 책인데, 포모를 논하는 학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자연과학적 개념 중 하나가 "카오스"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네들이 카오스가 무엇 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논의 없이 카오스를 사고 파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어가 언어라는 것" 등의 근본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영어 공부법을 사고 파는 것과 매우 흡사한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근본이 바로 서게 되면 만갈래 천갈래 길이 보이고, 어느 길로 가야 서울로 갈지가 판단이 섭니다. 설령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수정이 가능합니다. 만약 아무런 판단 없이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면 의사나 무당에게 자기 몸을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며, 한 곳에서 낭패를 봤다고 해서 다음에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자, 잡변이 길어졌습니다. 우선, 단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 단어word가 무엇인가요? 단어가 존재하는가요?

2.1 단어는 무엇인가


단어는 상징symbol입니다. 흔히들 단어를 기호sign라고 오해하는데, 양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호체계는 기본적으로 일대일 대응을 전제합니다. 수학에서 +는 여하한 경우에도 +만을 의미해야지 여기서는 +를 뜻하고 저기서는 -를 지시해서는 수학이 성립하지를 않습니다. 반면, 상징체계에서의 단어는, 이 경우에는 이 놈을 저 경우에는 저 것을, 이렇게 지칭하는 바가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문맥context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IBM, MS, Apple, 이런 일련의 단어들을 읊어 나갈 때의 Apple과, I want to eat an apple이라고 말할 때의 apple은 발음과 철자가 똑같더라도 그 지시하는 바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가 컴퓨터 회사를 지칭하는 반면, 후자는 사과를 지시하지요. 말의 순서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Spot the cover"와 "Cover the spot"이 그런 예가 되겠죠. 하여간, 사전에 한 단어 아래 적게는 한 두 개 많게는 수십 개의 항목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것만 봐도 단어와 대상이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뇌에서는 비록 같은 발음과 같은 철자를 가진 단어일지라도 다른 의미를 가지면 완전히 다른 단어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얼굴 좀 봐주세요"라고 말할 때와, "한번만 봐주세요"라고 말할 때, 또 "우리 애 좀 봐주세요" 라고 말할 때 각각의 "봐주세요"가 모두 다른 단어라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의 형식화된 -- 소리로 혹은 문자로 -- 단어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각각을 다른 단어로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뇌는 하나의 단어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나의 지시대상에 대해 하나의 정신상태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 세상에 apple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과 그 자체, 나아가서는 어떤 특정한 -- 내가 어제 먹은, 혹은 어제 티비에서 본 -- 사과들이 존재할 뿐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과"라는 일종의 집단 개념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우리 뇌의 정신상태를 지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어를 배운다는 것은 지시대상 -- 물건, 사람, 관념, 과정 등 -- 과 그 단어를 연결짓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연결은 우리의 뇌 속에서 뉴런들의 신호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평생을 사막에서 살아온 사람이 사전에서 apple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고 그 의미가 "rounded, usually red and green fruit"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과연 이 단어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뇌 속에서는 apple이라는 단어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둥글다는 개념, 빨갛다, 초록이다 라는 개념, 그리고 과일이라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망을 이룰 것입니다. 과연 그 사람이 apple을 자신이 이미 갖고있는 과일 개념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단어가 지시대상referents과 연관이 없다면 그 단어는 거의 가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지시대상과의 연관은 담화의 맥락context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올 바른 단어 공부라는 것은 단어의 컨텍스트를 떠나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컨텍스트를 떠난, 독립된 단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철자의 단어라고 해도 처한 컨텍스트에 따라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지시대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2 연역과 귀납


우리의 이해는 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뇌 속의 뉴런의 신호가 이루어내는 정신 상태라는 것도 결국 '몸'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몸의 경험이라는 것은 실세계의 생활 경험과 분리될 수가 없고 그것은 지극히 구체적, 개별적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화', '추상화'라는 것은 상당히 고등하고, 이차적인 지적 행위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문을 가리키며 "door"라고 아이에게 말해주면 그 아이는 그 문만 door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미닫이 문을 보고도 door라고 해주고, 자동문을 보고도 door라고 해주면 한참 후에야 일반화가 일어나는 것이 지요.

우리는 look이라는 보편자를 먼저 배우고 나서, look up이니 look for니 하는 개별자를 배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역적 방법이라고 하겠죠. 그러나,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연역이 그 출발점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합 니다. 경험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입니다. 그러한 개별적 경험의 축적 위에서야 비로소 일반화가 되고 심지어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oversimplication도 생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단어를 공부할 때 현재 나의 경험이라는 구체적 컨텍스트 속에서 이해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대상은 나에게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이해의 대상이 나에게 온전한 경험 한 덩어리로 이해되느냐 혹은 여러 경험들의 복합으로 이해되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요.

2.3 동일 언어로 이해하라


예를 들어, good의 의미를 "선한"이라고 외운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운 단어 하나 하나가 암세포가 되어 점점 자라나고 나중에는 암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good이라는 것은 우리 나라 말의 "선한"이라는 뜻과 도무지 같아 질 수가 없습니다. "I love you"라는 말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로 소위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바꿔 놓았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의미의 변형이 일 어난 것입니다. I love you가 "저는 그대를..."이 될수도, "나는 너를..."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말의 어순에 있습니다. I love you라는 언어를 쓰는 사람의 정신상태와 I you love라는 언어를 쓰는 사람의 정신상태는 같을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단어"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만, 한가지 언어를 온전히 다른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 입니다.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의미 변형이 일어나는 겁니다.

"a good farmer"라고 하면 "일 잘하는 농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물론 good/evil의 대조를 이루면, "선한"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요. good의 수만가지의 지시대상 중 하나와 "선한"이라는 형용사의 수만가지의 지시대상 중 하나가 매우 흡사할 수는 있습니다만 문제는 접근 방법의 문제입니다. 똑같은 0이라는 숫자에 접근하면서도 0보다 작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고 0보다 크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지요.

사실 근본적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영단어와 국어 단어의 일대일 대응 훈련이 된 사람들은 입력자료에서 해당 영단어를 접하는 순간 "한국어"가 떠오른다 이겁니다. 영어 공부를 하는데 한국어가 자꾸 떠오른다는 이야기는 그것 자체가 공부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장기적 안목으로 보아서 해당언어는 그 언어의 체계 내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3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 방법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할 일은 필요한 입력자료들을 구하는 일입니다. 적당한 입력자료는 첫째, "제대로 된 영어일 것", 둘째, "나의 수 준에 맞을 것", 셋째,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내용일 것"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추면 됩니다.

제대로 된 영어라는 것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콩글리쉬 글들은 제외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가능하면 어느 정도 인정받은 소스의 글을 구해서 읽으세요. 나의 수준에 맞는 다는 이야기는, 나의 언어 수준을 I라고 했을 때, 딱 I+1만큼만 되는 입력자료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 어려운 것을 말합니다. 책으로 치자면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수가 5개를 넘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다음,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 글이 설사 한글로 되어 있는 글일 지라도 자신이 읽고 싶어할 그런 글을 택하라는 이야기지요. (꼭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준비물이 필요한데, 조그만 수첩 정도면 되겠습니다. 너무 작아도 문제가 있고, 너무 커도 들고 다니기가 불편할 것입니다. 12x15센티 정도의 것을 구하세요.

자, 이제는 그런 글을 읽어 나갑니다. 읽다가 모르는 단어 혹은 표현이 나올 경우 간단하게 밑줄을 긋거나 살짝 표시를 하고 그냥 넘어 갑니다. 자신이 정해둔 분량 한 챕터, 기사 하나 등등을 읽었다고 생각되면,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아까 표시해 두었던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습니다. 꼭 문장이어야 합니다. 절대 단어만 옮겨 적지 마세요. 문장이 너무 길다면 그 단어가 포함된 절clause만 적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옮겨 적은 내용만으로 그 부분의 맥락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페이지에 문장 네 개 정도씩 옮겨 쓰시고, 뒷면에는 아무 것도 적지 않고 넘어갑니다.

열 단어고 스무 단어고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되겠지요? 이제 각각의 단어 혹은 숙어 등에 형광펜이나 색연필로 표시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영영사전을 뒤져서, 해당 문맥에서 꼭 맞는 의미만을 골라 그 뒷면에 의미를 옮겨 적습니다. 가능하면 동일 단어의 다른 의미들에 눈길을 주지 마세요.

Foster의 <A New Way to Better English>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Alternative definitions will blur the sharpness of the first and most important impression of the new term.

다른 정의들은 새로운 단어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상의 날카로움을 흐려놓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그 수첩의 "예문"이 적힌 면을 봅니다. 우선 빠르게, 힐끗 형광표시가 된 부분만 봅니다. 그러고, 그 표현이 어떤 이야기,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가를 떠올립니다. 가능 하면 그 예문 전체를 외우는 것도 좋습니다. 그 다음 해당 예문을 읽습니다. 입에 익도록 외우는 것도 좋습니다. 문장을 읽으면서 그 단어의 뜻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단어의 뜻에 대해 영어로 질 문을 하고 영어로 대답을 해봅니다. 이렇게 해당 페이지의 문장들에 대해 한번씩 답을 해 본 후에 뒷면으로 넘겨서 사전의 정의와 비교를 합니다. 이 때 명심할 것은, 문장을 보면서 자기가 읽었던 글을 연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이쯤에서는 무슨무슨 이야기를 했지"하는게 떠올라야 한다 이겁니다. 즉, 옮겨둔 예문들을 주욱 읽어나가면 자신이 읽었던 글의 전체 그림이 순서대로 떠올라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추리소설을 읽다가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는 장면에서 blink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 의미를 잘 몰라서 해당 문장을 옮겨 적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수첩에서 해당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읽었던 추리소설의 취조 대목이 떠올라야 한다 이겁니다. 그때의 총체적 느낌 같은 것 말이지요.

설명은 '글'에 대해 한정적으로 했습니다만, 이 방법을 자신의 입력자료 전반에 확장을 하시면 됩니다. 말과 글 모두에 적용을 하세요. 그리고, 가능한한 단어를 해당 컨텍스트에서 독립시키지 마세요.

4 세가지 영역 (Frontier Zone System)


어떤 종류의 단어 공부이건 간에 자신이 완전히 아는 단어와 완전히 모르는 단어는 일단 제껴놓고 공부를 하세요. 만약 필수 단어 5000이니 뭐니 하는 책을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이시라면(비록 권하지는 않지만) 앞서의 양자를 제외한 단어만 우선적으로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한 언어의 단어는 총 세가지 영역으로 구분 가능 합니다. 자신이 아는 단어들로 구성되는 "아는 영역"known zone과 모르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모르는 영역"unknown zone,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접경 영역"frontier zone이 그것입니다.

"접경 영역"의 단어들은 자신이 한 두번 본 것은 같은데, 그 의미가 가물가물 하거나, 글에서 여러번 본 단어인데 아직 사전을 찾아보지 않았거나, 하여간 어찌되었든 '조금 익숙한' 단어를 말 합니다. 자신이 듣거나 읽어서는 알지만,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 단어도 해당하겠죠.

이런 단어들은 큰 노력없이 쉽게 '섭취'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쉽게 "아는 영역"내로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모르는 영역"내의 단어들은 나와의 연결고리가 적으므로 바로 "아는 영역"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면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단어집을 예로 든다면, 처음부터 단어집을 읽어나가면서 아예 모르는 단어와 완전히 아는 단어들은 가위표시를 하고 그냥 넘어 가고, "어중간한 단어"들만 보고 넘어갑니다. 그렇게 하면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단어집을 한번 후딱 보겠지요. 이제 두 번째 볼때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는 영역"의 단어들과 "모르는 영역"의 단어들을 제하고 보는데, 이미 일독을 했으므로, 아까의 "접경 영역"의 단어 몇 개가 "아는 영역"으로 넘어와 있을 겁니다. 그런 단어들은 사정없이 가위를 줍니다. 또한, 아까의 "모르는 영역"의 단어들 중 몇 개는 "접경 영역"으로 넘어와 있을 겁니다. 그 단어들을 공부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자신의 "접경 영역"에 해당하는 단어들만 공부하다보면 자신의 "아는 영역"은 계속 넓어질 수 있다 이거지요.

이 "세가지 영역"의 방법을 제가 설명한 "컨텍스트적 단어 공부법"에 적용하셔도 좋습니다.

자, 이제 숙제를 내드리겠습니다. 수첩 하나를 구하시고, 자신에게 적당한 수준의 입력자료를 구하셔서 이 방법을 적용해 보세요. 딱 일주일만 해보세요. 자신이 영어를 대하는 자세가 바뀔 것입니다.

--김창준

전체적으로 요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글이로군요. --쿼리

시도해봐야겠군요... -- Magicboy 2008-08-06 06: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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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8-12-10 17: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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