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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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리원 + 아리투 + 아리쓰리 = 3 X 약병아리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 세 마리를 사와서 키우겠다고 마구마구 졸라 허락을 받아냈다. 몇 시간 동안 졸라 허락이 떨어지자 당장 슈퍼로 달려가 라면상자를 한 개 집어들고 놀이터로 가 모래를 퍼담고 집에 와서는 부러진 빗자루를 홰 대신 상자 가운데쯤 가로로 꽂아 주었다. 병아리 세 마리를 상자에 몰아넣고 상자 위쪽에 양파 담는 빨간 망을 씌웠다. 30분 병아리집 완성. 짠짜라짠~ s(^-^)z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펄펄 뛰고 날았지만 한 마리는 비슬비슬거렸다. 할머니께서 병아리가 감기에 걸린 모양이라며 내 감기약을 조금 물에 타 억지로 먹이셨다. 그렇지만 별 차도 없이 며칠 뒤 죽어버렸다. 아파트 뒤 빈터에 묻어주고 나뭇가지로 만든 엉터리 십자가를 세워 줬다. 사람이 먹는 약은 병아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혹시 모른다. 억지로 약을 먹느라 죽었을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못할 짓을 했다. (-_-);

그 때쯤 나는 초코파이보다 누네띠네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병아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병아리들을 사올 때 같이 사온 사료는 금방 거의 다 떨어졌다. 어머니를 졸라 배추나 상추 따위의 푸성귀를 잘게 썰어 주었더니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마침 조금 남은 사료를 줬더니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며칠 뒤 병아리들이 배고프다고 상자 안쪽에서 벽을 두드리고 뛰어오르고 난리를 치길래 바쁜 김에 푸성귀를 썰 시간이 없어 찬밥을 주걱으로 퍼서 대충 털어넣어 주었더니 또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다음날 푸성귀를 썰어 주었더니 이번에는 푸성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두 식구(?) 분량의 밥을 더 하셔야 했다. 그래봐야 얼마 되지 않... 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병아리 두 마리가 장정 한 사람 먹을 밥을 먹더라. 어머니께서는 언짢아하셨고 나는 싹싹 빌었다. (-_-);

그래서... 머리에 벼슬이 돋을 때까지 쌀밥과 잡곡밥을 먹고 큰 두 마리 병아리들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이름(아리원, 아리투, 아리쓰리... 아리쓰리는 금방 죽은 병아리고 아리원과 아리투는 끝까지 살아남은 병아리들이다)이 아닌 "약병아리"로 불리고 있었다. 개도 "보신탕"이라고는 안 부르는데(부르나...?;) 병아리를 "약병아리"라고 부르다니 너무해...;
어쨌든 사람도 먹기 힘든 쌀밥을 먹고 큰 병아리들이니 아버지나 할머니의 눈독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여동생마저도 병아리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할머니와 여동생의 "저것들이 실하게 컸는데 말이야..." "난 삼계탕 싫어. 양념통닭 해먹자." 하는 식의 대화가 나올 때마다 "안 먹을 거라니까~!"하고 외쳤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족들이 병아리들을 잡아먹는다면 ①학교에 가지 않을 것이고(최고의 용기였다) ②김치를 먹지 않을 것이며(난 김치가 정말 싫었다) ③오락실에 갈 것이고(교사이신 어머니의 교육에 따르면 오락실은 가지 말아야 할 장소 1순위였다) ④병아리를 또 사올 것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나는 승리했다. 가족들이 굴복(?)한 것이 저 네 가지가 무서워서였는지 우스워서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_-);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오자 병아리 두 마리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질겁했다. 병아리들은 홰에 올라가 퍼드득 뛰어올라 양파 담는 망을 찢어 버리고 거실로 뛰어나온 것이었다. (-_-);

쌀밥을 먹고 근육을 키운 슈퍼 병아리 두 마리는 양파망을 찢고, 양파망 대신 올려놓은 마분지를 들어올려 밀치고, 마분지 대신 올려놓은 하드보드지를 역시 들어올려 밀치고, 하드보드지 대신 올려놓은 철망에 머리를 부딪히고서야 잠잠해졌다. (-_-);;;

그렇게 귀여워하며 키웠던 병아리 두 마리를... 어머니께서 이사하는 날 경비 아저씨께 냉큼 줘 버리셨다. (iㅁi)

-- irenchel


오호홋. 너무 재미있어서 news://han.rec.humor 에 옮겼습니다. 허락없이 퍼가서 죄송합니다. --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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