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있다와좋다의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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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다”와 “맛이 좋다”는 비슷한 말이다. 곧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럼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맛이 있다/없다” 또는 “맛있다/없다”에서 맛이란 “혀로 느낀 쾌감”을 뜻하고, “맛이 좋다/나쁘다”고 말할 때 맛이란 “혀로 느낀 감각”을 뜻한다. 서술의 편의상 첫 번째 뜻의 맛을 맛a, 두 번째 뜻을 맛b로 표기하자.

맛a = 혀로 느낀 쾌감
맛b = 혀로 느낀 감각

국어사전들을 들춰보면 맛을 주로 맛b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연세한국어사전에서 맛이란 “혀로 느낄 수 있는 시거나, 달거나, 짜거나, 쓰거나, 매운 여러 가지 감각”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것은 “맛이 좋다/나쁘다”라고 말할 때 해당하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어떤 음식이 “맛(이) 없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혀에 아무런 자극도 감각도 없음, 곧 無味함을 뜻하는 게 아니라, 혀에 불쾌한 자극을 줌, 곧 맛이 나쁨 또는 나쁜 맛이 있음을 뜻한다.

맛a이 없다 ≠ 맛b이 없다 = 無味
맛a이 없다 = 나쁜 맛b이 있다

맛의 이런 두 가지 뜻은 다른 나라 말들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예컨대 영어로 “It tastes bitter.”는 “이건 맛b이 쓰다”, 형용사 tasteful은 “맛b 볼 줄 아는, 감식력 있는”을 뜻하는 데 반해, tasty는 “맛a있는”, tasteless는 “맛a없는, 멋없는”이라 하겠다. 독일어에서도 “음식이 맛b이 좋다”를 뜻하는 "Das Essen schmeckt gut."과 “음식이 맛a이 있다”를 뜻하는 "Das Essen schmeckt."이 둘 다 쓰인다. 형용사 schmackhaft, geschmackig, mundig는 다 “맛a있는”의 뜻이고, wohlschmeckend는 “맛b좋은”, 명사 Geschmack은 “맛b, 곧 미각(味覺)”의 뜻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달다, 맛있다”를 뜻하는 한자 甘이다. 이것은 상형문자로 입 속에 어떤 물건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글자가 만들어졌던 아주 오랜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았거나 입맛이 덜 까다로워 웬만한 먹을거리가 입 속에 있으면 대부분 달게, 맛있게 먹었던 모양이다. 甘의 경험세계는 “먹으면 맛있다”, “if I eat something, then it tastes"에 가깝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런 “먹으면 맛있다” 식의 순진한 세계에서 더 이상 살지 않는다. 모든 음식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맛있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음식의 종류나 요리방법에 따라, 또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에 따라, 또 같은 사람이라도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처럼)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를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일단 無味하지 않고 맛b이 있어야 비로소 그게 좋은 맛인지 나쁜 맛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볼 때 "맛b이 나쁘다"와 "아무 맛b도 없다", 곧 (예컨대 맹물처럼) "無味하다"란 체험을 형태상 구분하지 못하는 표현인 "맛이 있다/없다"는 "맛이 좋다/나쁘다"보다 개념상 덜 분화한, 원시적인 말이라 하겠다.
“맛이 좋다/나쁘다”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맛이 있다/없다”의 세계에 사는 사람보다 더 분화한, 섬세한 미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더 이상 “먹으면 맛있다”의 통짜세계에 사는 게 아니라, 먹은 게 맛있으려면 온갖 부수조건 또는 변수가 충족되어야만 하는 복잡한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런 분화된 세계에서 우리의 삶은 덜 운명적이고 덜 결정되어 있다. 또 그런 조건 또는 변수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선택을 하며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그런 자유의 대가는 우리의 삶의 목표가 또는 행복이 점점 더 비개연적인(improbable) 것으로 된다는 데 있다. “맛이 있다/없다”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맛있게 먹을 유일한 조건은 먹을거리를 찾는 데 있으므로 그 확률이 50%라면, “맛이 좋다/나쁘다”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맛있게 먹을 확률은 (다른 조건들을 무시해도)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고 또 그것이 맛이 좋아야 하므로 25%밖에 안 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음악에 섬세한 귀를 가진 이일수록 그를 만족시킬 음향설비의 수는 줄어들고, 거꾸로 그를 교란할 방법의 수는 더 커진다.

見素抱朴. 바탕을 드러내고 질박함을 껴안으라는 노자의 말은 이런 분화와 자유의 역설에 직면해, 먹으면 맛있는 甘의 세계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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