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비껴가는 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 이전까지 한자가 지식층의 주요학문소통수단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지 싶습니다. 결국 특정학문이 (예전에 미술사 강의 들을때, 문화는 가득찬 곳/높은 곳에서 빈 곳/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예로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적이 있는데) 한 문화권에서 만개하여 전파될 때, 그 문화권의 언어도 동시에 확장전파 되는 것이니만큼, 우리 언어가 설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에 말씀처럼 주체적인 우리 학문을 갈고 닦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불만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고려바위..-_-사이트를 만들었을때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을 새로 규정(?)했습니다.
저는 권위도 없고 언어에 대한 감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했을까요?
표준화 된 안이 없기때문입니다.
아니면 있어도 너무 제 성에 안차던가요. 비교적 최근 개정판이 있긴 하지만 역시 예외가 너무 많은 룰이 아닌가 싶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전의 표기법은 진짜 하이코미디였죠...=.=
제가 고려바위..-_-사이트를 만들었을때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을 새로 규정(?)했습니다.
저는 권위도 없고 언어에 대한 감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했을까요?
표준화 된 안이 없기때문입니다.
아니면 있어도 너무 제 성에 안차던가요. 비교적 최근 개정판이 있긴 하지만 역시 예외가 너무 많은 룰이 아닌가 싶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전의 표기법은 진짜 하이코미디였죠...=.=
이런 인프라 부재가 이나라에서 저를 가장 흥분시키는 테마입니다.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분노를 가득 실은 글 하나를 적어볼 생각입니다...부르르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분노를 가득 실은 글 하나를 적어볼 생각입니다...부르르
그런데 공부할게 진짜 많아요. 당장 지금도 발음이 중요한가 표기가 중요한가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요. 거북이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언어 어감의 차이가 나는 부분은, 어쩔 수 없겠죠.
우리가 여름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느낌과, 일본인들이 여름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의 느낌이 다르듯.
실은, 잘 몰랐는데.. 이번에 잠시 다녀 왔는데 장난 아니더군요.. 일본의 여름.. -_-;
우리가 여름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느낌과, 일본인들이 여름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의 느낌이 다르듯.
실은, 잘 몰랐는데.. 이번에 잠시 다녀 왔는데 장난 아니더군요.. 일본의 여름.. -_-;
적어도 컴퓨터 분야에서는 번역이란게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질경우가 많더군요.
모 교수가 번역했다는 네트워크 책이 그 단적인 예가 될겁니다.
마땅히 쓸만한 용어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텐데요.
이건 한국어를 쓰면서 "우리말"의 다양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먼저 전문분야의 용어를 개선하기 전에 일반적인 언어생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씨엔
모 교수가 번역했다는 네트워크 책이 그 단적인 예가 될겁니다.
마땅히 쓸만한 용어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텐데요.
이건 한국어를 쓰면서 "우리말"의 다양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먼저 전문분야의 용어를 개선하기 전에 일반적인 언어생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씨엔
전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양 학문을 답습한 분야는 번역문제가 참으로 난감합니다. 다른 문제도 많겠지만 저는 한자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우리말의 다양성이란 말씀에 대한 얘깁니다만, 한자어의 기능성 때문에 우리말 자체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이미 죽어있습니다. 기껏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봤자 한자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셈틀을 들 수 있습니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촌스러운 표현입니다. 한자어가 아니라서 낯설기에 (이거 중요합니다) 시적인 표현이고, 순우리말이라서 촌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기에 촌스러운 표현입니다.
어이없습니다. 아무리 사대주의로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지만, 식민지로 40년을 살고, 반식민지로 50년 더 살았다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살아가는 민족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프랑스처럼 세계화는 개뿔이라며 영어를 무시하지는 못할 망정, 자기 나라 말은 돈 버는 데 도움이 안되니 알 것 없고 외국어 배우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또 어디 있더이까?
방향이 좀 빗나갔습니다만, 우리말 자체의 크기와 넓이가 너무 작아져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번역이라도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항변하는 제 글에서도 한자말을 빼면 껍질만 남는군요... --godai
단적인 예로 셈틀을 들 수 있습니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촌스러운 표현입니다. 한자어가 아니라서 낯설기에 (이거 중요합니다) 시적인 표현이고, 순우리말이라서 촌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기에 촌스러운 표현입니다.
어이없습니다. 아무리 사대주의로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지만, 식민지로 40년을 살고, 반식민지로 50년 더 살았다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살아가는 민족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프랑스처럼 세계화는 개뿔이라며 영어를 무시하지는 못할 망정, 자기 나라 말은 돈 버는 데 도움이 안되니 알 것 없고 외국어 배우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또 어디 있더이까?
방향이 좀 빗나갔습니다만, 우리말 자체의 크기와 넓이가 너무 작아져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번역이라도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항변하는 제 글에서도 한자말을 빼면 껍질만 남는군요... --godai
서투른 용어의 번역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글꼴(font)과 같은 좋은 사례도 있지만 보쌈(packet), 재분해(refactoring) 같은 번역은 매우 안좋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쓰임새도(Use case diagram), 활동도(Activity diagram), 협력도(Collaboration diagram) 등은 적절한 번역임에도 UML이 가지는 표준화라는 특성 때문에 번역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손실 없이 용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차렷, 열중쉬어도 당시에는 미군의 영향으로 attention, rest등으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차렷, 열중쉬어라는 단어로 바꾸려하니까 반발이 심했다네요. 적절한 표현도 아니고 어감이 유치하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현재 차려, 열중쉬어는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단어가 되어버렸지요. 그런 것을 보면 쓰임새도, 활동도, 협력도등의 단어도 좋지 않다고 단언할 수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언어의 어휘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약속이고 일정부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게 아닐까요.
혹시 번역된 후에 의미와 느낌이 녹아들어가는게 아닐까요? --장성환
언제까지 그렇게 놔두는 걸까요? 어차피 원어의 의미와 느낌은 죽어도 그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다 자기 나름의 착각으로 살아갑니다. 제대로된 번역을 해두면 다들 같은 뉘앙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믿음은... 순진하다고 생각합니다. --god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