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믿기지 않거나 보기 드문 사건을 보았을 때 하는 말
영화에서의 가상과 현실에 대한 한가지 생각 ¶
가상적인 것의 힘
예술을 "현실의 모방으로서의 가상/허구"라고 볼 때, "청출어람청어람", 즉 "가상/허구는 현실을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라는 예술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일찍이 예술적 허구의 힘을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이러한 예술적 가상/허구의 범람으로 인해 우리는 그것에 무감각해지거나 그것에 질린 듯이 보이기도 한다(마치 드라마대신 토크쇼, 재난영화보다는 911, 범죄영화보다는 경찰청사람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처럼).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실제로는 "가상과 같은 현실"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이미 '가상'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르노를 생각해보면 된다. 포르노가 발명되기 전 "타인의 성행위"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적었을까를 생각해보라. 포르노는 분명 "실제의 성행위"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예술장르지만, 이제 사람들은 포르노에서 보고 배운 대로 "실제의 성행위"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가상/허구는 현실에서 나오지만 이내 현실은 가상을 모방한다. 이제 둘은 서로 뒤섞이기 시작해 때로 구분이 불가능해질 정도가 된다.
가상의 정서적 인플레이션 효과
가상/허구와 현실 사이의 이러한 뒤섞임은 일종의 "정서적 인플레이션" 효과를 가져와 우리는 충격적 영상에 더이상 놀라지 않고, 충격적인 (실제) 사건에도 놀라지 않게 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이미 본 것을 또 보는" 데자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 때 현실적 사건들은 "영화처럼" 안전한 거리-스크린과의 거리-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혼동과 뒤섞임' 때문에 가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외상적 경험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뉴욕 911 테러 사건이 그러했지만, 실제의 살인사건을 혹은 교통사고를 눈 앞에서 목도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얘기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외상적 사건을 TV 매체는 집중적으로 반복해줌으로써 그 충격을 완화시켜주었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때처럼 아프가니스탄에 쏟아지던 폭격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 보듯" 볼 수 있었다. 안전한 거리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