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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discloses two maintendencies in the course of events. One tendency is exemplified in the slow decay of physical nature. With stealthy inevitableness, there is degradation of energy. The sources of activity sink downward and downward. Their very matter wastes. The other tendency is exemplified by the yearly renewal of nature in the spring, and by the upward course of biological evolution. In these pages I consider Reason in its relation to these contrasted aspects of history. Reason is the self-discipline of the originative element in history. Apart from the operations of Reason, this element is anar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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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discloses two maintendencies in the course of events. One tendency is exemplified in the slow decay of physical nature. With stealthy inevitableness, there is degradation of energy. The sources of activity sink downward and downward. Their very matter wastes. The other tendency is exemplified by the yearly renewal of nature in the spring, and by the upward course of biological evolution. In these pages I consider Reason in its relation to these contrasted aspects of history. Reason is the self-discipline of the originative element in history. Apart from the operations of Reason, this element is anar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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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형식, 내용에서 모두 충격이었다. 영어책을 한문고전 번역처럼 원문을 쓰고, 번역을 쓰고, 다시 案을 달았다. 이 정도로 정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리고 진검승부를 할 마음을 갖춘 번역자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겠는가.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이성의 기능은 삶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서관에서 홀로 이 책을 읽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여러번 받았다. "그래 맞아, 맞아!"를 연발하고 손벽치고 이마를 때리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난해한 사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발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창준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이성의 기능이란 삶의 기술(the art of life)의 증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삶의 기술이란 "사는 것"(to live), "잘 사는 것"(to live well), 그리고 "더 잘 사는 것"(to live better) 이 세가지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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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모든 철학을 섭렵하면서 이성, 아니 인간의 존재성의 전체에 관하여 접한 가장 명료한 정의와 설명이 바로 이 짧은 한단의 언설이다. "산다" "잘 산다" "더 잘 산다" 이 세마디보다 더 간결하고 더 함축적이고 더 멋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화이트헤드란 사상가의 달관성, 그 언어의 難과 易가 중첩되어 있는 이러한 표현에서 우리는 대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통해 데카르트이래의 이성주의적 질곡이 일시에 다 녹아버리는 해방감을 맞이한다. 이성은 아프라이오라이한 본구관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생존상황, 그리고 행동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프라그머티즘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나 실존주의적 반이성주의의 모든 가설이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이성개념에 변증적으로 포섭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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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모든 철학을 섭렵하면서 이성, 아니 인간의 존재성의 전체에 관하여 접한 가장 명료한 정의와 설명이 바로 이 짧은 한단의 언설이다. "산다" "잘 산다" "더 잘 산다" 이 세마디보다 더 간결하고 더 함축적이고 더 멋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화이트헤드란 사상가의 달관성, 그 언어의 難과 易가 중첩되어 있는 이러한 표현에서 우리는 대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통해 데카르트이래의 이성주의적 질곡이 일시에 다 녹아버리는 해방감을 맞이한다. 이성은 아프라이오라이한 본구관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생존상황, 그리고 행동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프라그머티즘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나 실존주의적 반이성주의의 모든 가설이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이성개념에 변증적으로 포섭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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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에게 있어 "더 잘 산다"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로움의 증가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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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선택의 기로는 이미 내가 앞에서 언급한 삼중의 충동이라는 성격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산다, 잘 산다, 더 잘산다! 한 방법론의 탄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살려고 하는 안전한 방법의 발견이다. 그것은 전성시대에는 좋은 삶을 위한 긴박한 조건들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좋은 삶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피곤의 법칙이 용서없이 엄습한다. 삶의 어떠한 방법론이라도 그 범위내의 신선함을 다 고갈시키고, 또 피로가 물밀쳐올때까지 그 신선한 것들을 다 써먹어버리게 되면, 하나의 마지막 결단이 그 종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는 그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그냥 생존하는 수준으로 퇴행해버리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과거의 관습들을 자유롭게 떨쳐버리고, 더 잘사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김용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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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선택의 기로는 이미 내가 앞에서 언급한 삼중의 충동이라는 성격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산다, 잘 산다, 더 잘산다! 한 방법론의 탄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살려고 하는 안전한 방법의 발견이다. 그것은 전성시대에는 좋은 삶을 위한 긴박한 조건들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좋은 삶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피곤의 법칙이 용서없이 엄습한다. 삶의 어떠한 방법론이라도 그 범위내의 신선함을 다 고갈시키고, 또 피로가 물밀쳐올때까지 그 신선한 것들을 다 써먹어버리게 되면, 하나의 마지막 결단이 그 종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는 그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그냥 생존하는 수준으로 퇴행해버리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과거의 관습들을 자유롭게 떨쳐버리고, 더 잘사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김용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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