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한국에는 입시미술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입시 미술이란 미술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대학에 가고자 할 때 실기를 준비하기 위해 배우는 과정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을 듯 하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 지 모르겠지만,뎡만이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입시미술이란 것을 준비하려는 사람은 무조건 모모 대학 혹은 모모 대학 풍이라 불리는 화풍을 몸에 박아 넣어야 했다. 석고상 데생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했으며 전공에 따라 수채화나 동양화나 '구성' 이라 불리는 그림이나 조각 등을 배워야 했다. 뎡만의 경우 선택하고 싶었던 학과에 들어가려면 '구성' 이라는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이것이 대체 어떤 그림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또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과연 이러한 그림법을 몸에 박아 넣는다고 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아래의 글을 미루어볼 때 뎡만님은 미술쪽 진로를 택하지 않으신 것 같네요. 모든 일에는 기초적인 기술이 중요할진대, 미술에서만은 그런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Sequoia는 동생이 미술을 할 뿐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은 여기서도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네요.
게다가 입시미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개성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오히려 배제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뎡만이 다니던 화실에 아주 개성적인 그림체를 가진 사람이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화실 선생님들에게 '네 그림은 솔직히 매우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미대를 가려면 그 그림체는 바꿔야 할 거다' 라는 얘기를 듣고 결국 유학을 떠났던 일이 있었다. 뎃생은 기초에 들어갈 듯 하네요. 하지만 '구성' 같은 건 기초에 속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기술적인 그림 형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기초를 익히는 건 중요하지만, 기초는 이것과 이것과 이것이다, 라고 딱 정해 두고, 형식을 특정하게 정형화 시킨 다음에 그 정형화된 형식만 오로지 연습하게끔 하는 데든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피아노 치는 거랑 비교를 해 볼게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뎡만이 피아노를 한참 쳤던 80년대-90년대 초반에는 딱 정해진 코스가 있었습니다. 바이엘-체르니-바하/쇼팽/모짜르트-베토벤/리스트/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기타 등등등. 물론 학원마다 약간씩 다른 코스를 채택하고, 체르니를 어디까지 가르치는지, 서양 작곡자들의 곡을 어떻게 배치하지는지 달랐지만 대충 저런 코스였습니다. 그런데 바하는 일단 논외로 해 두고요(재미없는 한편 사실 아주 중요하니까), 체르니가 기초 습득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대해선 좀 논란이 있는 걸로 압니다. 사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걸로도 알고 있고요. 그런데, 적어도 당시의 입시미술은, 피아노로 치면 마치 체르니 40에 나오는 곡을 어떠어떠하게 쳐야 한다고 딱 정해 두고, 그 정해둔 기준을 맞추도록 오로지 베끼는 연습, 연습만 시키는 것과 비슷한 식으로 교육했었던 게 아닐까요. 뎡만은 그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Sequoia의 동생이 미대생인데, 이번에 서울에 어딘가 학교에 합격했지요. 동생의 그림은 조금 화풍이 독특해서, 학교에 따라서 점수 편차가 크더군요. 서울의 모 여대에서는 대회에서도 우수상 주고 최종합격까지 했지만, 같은 그림에 수원의 모 대학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는. 대학교에 따라서 그 학교에 주류를 이루는 화풍이 다르고, 심지어는 입시미술학원들 사이에서도 화풍이 조금씩 다 다릅니다. 물론 유학을 떠날 수 있다면 가는 것도 좋겠지만, 국내에서도 학교에 따라서 독특한 화풍을 받아주는 학교가 있을 것 같더군요. 뭐 홍대 이대 등 몇개의 미대만을 놓고 '미대에 가려면'이라고 말한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또한 입시미술이란 것 때문에 학교에서의 미술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 역시 하게 된다. 줄리앙이나 소크라테스니를 무조건 그려야 하는 입시미술의 데생은 결국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미술수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별 다른 기초 교육 없이 대뜸 석고상을 그려내야 하는 등의 미술교육이 학교에서까지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학생들은 돈을 내고 미술학원에 내신용 그림 제출 숙제를 떠맡기기도 했다.Sequoia는 고등학교때 미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미술 시간에 진짜로 입시미술을 하는 학교가 있나요? 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뎡만은 십대였을 때, 미대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당시 몇 시간이나 집중해서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책 읽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 둘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가로운 동네 화실에서 그리는 그림과 입시미술학원에서 그리는 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미대에 가려면 반드시 입시미술 학원이라는 곳에 가서 그림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결국은 입시미술학원도 미대도 가지 못했다. 나중에 한 쉰 살쯤 되면 다시 그림을 그려 볼까 생각하고 있다. 만일 그곳에 갔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움직였을지 가끔 궁금해진다. 그리고 요즘 학교의 미술 수업이나 입시미술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기를 바란다.뎡만은 사실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에서 줄곧 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요. 정말 못 볼 거 많이 봤죠. ^^; 학교에서 입시미술을 시켜야겠다! 하고 시키는 건 특별히 아닙니다. 그냥 이상하게 모든 과목이 그렇게 '학원의 수준'을 요구했어요. 그냥 미술 시간엔 선생님이 줄리앙 석고 들고 와서 떡 놓고, 그려라! 하는 분위기였던 게죠. 선 긋기 연습 하나 제대로 안 시키고 말이죠. 하하하. 그럼 성적 좀 내고 싶은 애들은 미술학원에 맡기든 뭘 어떻게 하든 뎃생을 그려서 냈습니다. 뎡만의 주변 사람들 학교에서도 많이들 그랬다던데..자기 주변의 케이스들만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군요. 여하튼, 뎡만네 동네는 좀 이상했어요. 음악 실기 시험에서도 A를 맞으려면 대충 기준선을 지켜 줘야 했죠. 피아노라면 베토벤의 '비창'이나 쇼팽의 '즉흥 환상곡' 정도, 바이얼린이나 플룻이나 가야금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응용곡, 뭐 이런 식으로요. 리코더로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곡을 분다거나 하는 게 정상일텐데, 그게 오히려 희귀했었습니다. -_-;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다니고 그랬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학교에서 잘도 버틴 제 자신이 대단하군요.
자자. 현재 그놈의 입시미술이라는 것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휘랑의 이야기.
입시미술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미대입시에 대해서 간단하게라도 설명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2002년 현재 한국의 입시는 '실기'와 '수능' 그리고 '내신' 세 가지의 점수를 두고 평가합니다. (예외도 있지요. 한종대 같이 수능점수가 들어가지 않는 학교) 점수 반영 비율은 수능이 40에 실기가 보통 60 정도로 알고 있어요. (내신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균 1퍼센트에서 3퍼센트 사이. 실제 반영비율로 들어가면 영점 몇퍼센트 대라고 합니다. 적어도 홍대는 그렇습니다 제가 홍대를 준비하고 있는 관계로 홍대를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뭐, 다른 대학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서울내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림이 B+등급에 수능 2등급 이상이어야 도전할수 있지요. (그림 A권대에 수능 3등급도 가능합니다.) 점수 계산을 해 보면 등급을 B+에서 A-로 올리는 점수가 수능에서의 30점에 필적하니 당연히 미대입시의 실기가 가지는 비중은 절대로 무시할수 없지요.
Sequoia의 동생은 서울에서 꽤나 알려진 여대의 미대에 들어갔는데, 그림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해당 학교에서 치렀던 대회에서 '우수'를 받은 - 대상 1명에 우수 5명이라더군요 - 정도입니다.) 수시에서 합격한 뒤 수능 4등급으로 최종합격했습니다. 실기의 비중이 거의 대부분이군요. ^^;
(홍대의) 실기평가는 보통 교수 XX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선별과정은 먼저 그림 전체를 강당에 깔아 놓고, C권대의 그림들을 교수가 각자 다섯개씩 찾는 것죠. (이것을 딱지 붙인다고 합니다. 여기에 걸린 그림은 수능이 0.1퍼센트가 나와도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딱지가 붙지 않은 그림들을 수거해서 그 중에서 B권대와 A권대를 가리는 건데... 아마 이대 같습니다만.. 아마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 같네요. 첫째로 대회 입상자에게는 해당학교의 입학시 특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고,(모든 대회가 다 그런건 아닙니다.) 이대가... 제가 알기로는 홍대나 국민대 등보다는 실기쪽의 퍼센티지가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3등급에 이대는 무리라고 알고 있는데... 신기하군요. 그림을 정말 잘 그리셨나 봅니다. (A+받으면 커버 가능합니다. -휘랑
입시미술이라는 것이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죽이는 방식으로 연구되어 오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때문입니다.
자. 어떤 대학 시험에서 실기를 평가하는 사람이 모두 10명 가량 된다고 칩시다. 그림의 배경은 보라색 계열로 되어 있구요. 이것저것 정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때 교수아홉명이 '기초도 탄탄하고 잘 된 그림이로군. 거기에 보라색 배경이 아주 멋지군. 흠잡을데 없겠어.' 하고 지나갔는데, 두명의 교수가
보라색 배경이 기분 나쁜데? 입시의 기초가 안 된 학생이로군?' 딱지를 붙였습니다. 이 그림은? 당연히 C죠.
열명의 교수중 두명의 교수 눈밖에 나면 재수해야 하는 것이 채점장의 현실입니다. (더군다나 한번 딱지가 붙은 그림에는 지속적으로 딱지가 붙어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눈에 띄니까. 혹은, 다른 교수 따라다니는 교수 덕분에) 바꿔 말하면. 열명의 교수중 단 한명에게도 밉보이지 않을. 즉, 특이하게 잘 그린 그림보다는 백명의 사람들 눈에서 흠 잡히지 않을 그림이 입시에는 유리한 거죠.덕분에 입시정보라고 하는 것이 참 재밌습니다. 홍대 무슨 교수가 보라색 배경 싫어한다더라. 석고에 노란색 많이 들어가는거 싫어한다더라. 뭐 이런게 입시 금언처럼 여겨지고 있죠. 그래서 저희는 절대로 배경을 붉은색 계열로 처리하지도 않고 보라색을 넣지도 않는답니다. 왜? 교수가 싫어한다니까. 너무 튀게 학생수준 이상으로 잘 그려도 곤란합니다. 왜? 교수한테 건방지다는 소리 들을 수가 있으니까. 우리는 실력을 놓고 경쟁하지 않습니다. 누가 교수 취향에 어긋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느냐를 가지고 승부한다는게 맞겠죠. (뭐, 그것도 실력이지만요)
물론. 그렇게까지 썩어있지는 않습니다만. (왜냐 하면. 죽어도 '기초'에서 한발자국도 어긋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댓생도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나 댓생은 수십년간 미대에서 시험을 쳐 왔고 때문에 그만큼 연구가 끝난 상태라서 더하죠. 몇몇 다른 스타일은 존재합니다만 결국 정답은 있습니다.
흔히들 학원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예술을 하는것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림에는 끝이 없지만 입시미술에는 정확한 끝이 있어서 입시미술의 한계를 넘어가면 대학에서 떨어진다. 정확하게 그 끝에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술은. 대학가서 해라.'
그런 거죠. 뭐.
사실 입시미술만 그런가요? 우리나라 대학 입시가 다 그렇죠.
결국에는 우리나라 대학입시가 거의 다 서울대/연고대 위주로 되어있듯 입시미술에서도 홍대를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네요. 학벌주의로 귀결되는걸까요? -_-; --Sequoia
입시미술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각 학생의 성적별로 갈수 있는 학교가 정해져 있고. 각 학교마다 실기과목이 틀리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을 보고 2학년 말쯤에 자기가 갈 대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죠. 보통 모의고사 2등급이거나 회화과 지망하는 학생들이 홍대실기를 준비하고. 그 외의 학생들은 댓생이 8 디자인(발상과 표현)이 2 정도로 나뉘어집니다. 보통 다른 대학들은 거의 다 댓생을 실기로 보거든요. 뭐, 입시에 수능점수가 중요해진것도 그렇게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만... 아무튼. 다들 홍대 하나만을 바라보고 하는 입시는 아닙니다.^^; 포기가 빠른 입시죠... 미대입시는.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은... 백명중에 세명 빼고는 떨어진다..고 하는게 정설입니다. -휘랑
PS. 요새는 고등학교에서 댓생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교육부에서 정해놓은 진도가 있고, 그 진도에 맞춰서 실기를 따라가는 형식이죠. 보통은 노는 시간처럼 넘어간다고 합니다(보통의 체육시간처럼요. 수능 공부하기 바쁜데 미술까지 공부할 시간 있겠습니까?) 필기도 거의 오픈북 수준이구요.입시미술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각 학생의 성적별로 갈수 있는 학교가 정해져 있고. 각 학교마다 실기과목이 틀리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을 보고 2학년 말쯤에 자기가 갈 대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죠. 보통 모의고사 2등급이거나 회화과 지망하는 학생들이 홍대실기를 준비하고. 그 외의 학생들은 댓생이 8 디자인(발상과 표현)이 2 정도로 나뉘어집니다. 보통 다른 대학들은 거의 다 댓생을 실기로 보거든요. 뭐, 입시에 수능점수가 중요해진것도 그렇게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만... 아무튼. 다들 홍대 하나만을 바라보고 하는 입시는 아닙니다.^^; 포기가 빠른 입시죠... 미대입시는.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은... 백명중에 세명 빼고는 떨어진다..고 하는게 정설입니다. -휘랑
작곡과 입시를 위한 작곡법도 따로 있습니다. 설령 기성 작곡가가 되고부터는 동요만 짓겠노라 하더라도 입시 때만큼은 자신이 곡을 쓰면서 부릴 수 있는 모든 기교를 십분 발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