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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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83710780]

인류가 발생한 후부터 인간과 병원성미생물의 상호 적응을 보여주는 책.

기생생물과 숙주 사이의 적응은 유행성, 풍토성, 공생이라 불리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처녀인구집단 virgin population(어떤 세균에 감염된 적이 없어서 면역력이 없는 집단)에 들어온 세균은 종종 모든 연령에 걸쳐 급성 질환을 일으킨다. 생존자는 대개 재감염에 의해 더 나은 방어능력을 갖추기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추가 방어 기전이 발달한다. 그 질병은 마침내 한 지역에 국한된, 흔하지만 강도가 약한 감염병이나 일상적인 어린이 질환이 된다. 기생생물과 숙주가 더 잘 적응한다면 공생관계가 된다. 여기서 세균과 숙주는 상호관용 관계를 이루거나 상호 이득이 되는 관계가 된다.

감염병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분노가 아니다. 새로운 생명들이 만났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감염병의 급격한 유행은 그 병원체와 인간이 최근에 만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염병이 유행할 경우 피해는 항상 인간이 보지만 다행히 세균과 인간이 만났을 때 급성질환이 일어나는 것은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사람의 주변에는 항상 지구의 인구보다 많은 바이러스, 진균, 박테리아, 원충 등의 기생생물들이 있다. 이들이 질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낮은 확률을 극복해야 한다.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이들이 처음 만났거나 환경, 세균 또는 인간 스스로의 행동변화에 기인한다.

좋은 환경이 전염병을 막아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위생적인 환경은 수인성전염병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모든 미생물로부터 인간을 격리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급격한 생태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면 오히려 새로운 질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환경, 세균, 인간 행동의 변화는 특정방향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라임병은 1975년부터 미국에서 부각된 병이다. 사슴진드기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이 병은 류머티즘 관절염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며 관절, 심장, 신경계 등에 손상을 주어 기억상실, 수막염, 안면마비 등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심장의 손상은 심박동 조절기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이 병은 자연을 훼손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을 복원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인디언들과 개척자들은 미 북동부의 숲을 없애고 농장을 만들었다. 1800년대 초 거의 없어졌던 숲이 농업의 이전으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1900년에는 사슴의 수가 회복되었고 - 포식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늘었다 -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사슴진드기에 기생하던 Borrelia burgdorferi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숙주를 만난 것이다.
1986년 메사추세츠에서는 '돌아온 비버'들의 배설물 때문에 7,000명의 편모충증 환자가 발생했다.

에이즈가 인류를 멸종시킬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에이즈가 인류와 몇 안되는 영장류를 멸종시키면 자신들도 생존할 수 없다. 숙주를 죽이는 것은 기생생물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그들은 두 가지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숙주가 죽기 전에 빨리 다른 숙주로 옮겨가든가 아니면 오랫동안 숙주와 함께 있으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전염이 잘되는 질병은 증상과 예후가 나쁘지만 전염이 잘 안되는 질병은 반대다 -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인간에게 기대지 못하고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 에이즈는 인간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유행성”단계에 머물러 있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공존의 단계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없어질 수도 있을까.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 인간이 박멸한 전염병은 두창(천연두)밖에 없으며 역사적으로 STD(sexually transmitted disease) 가운데 사라진 병은 없다.

현대는 전염병미생물의 공격에 과거보다 크게 노출되어 있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높은 나무위에만 살던 미생물이 나뭇꾼에게 병을 일으켰다고 하자. 이것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나흘이면 충분하다(실재 1986년 친척의 장례식때문에 나이지리아에 갔던 시카고의 한 레지던트는 여행에서 돌아오고 2주 후 라사열로 사망했다). 현대의 치료법들은 피부를 뚫고 무언가를 몸 안에 넣는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것이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지난 수십만년동안 반복해서 겪어온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DeleteMe 인디언과 관련된 부분은 내일....

김우재가 본 책들 중 가장 충실한 책의 하나. 전염병에 관한 의학사는 이 한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간은왜병에걸리는가와 함께 읽는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가져다 줄, 고전으로 남을 책의 하나.

저자는 담담히 전염병의 역사를 따라갈 뿐 가치판단을 하거나, 쉽게 주관을 구겨넣지 않으면서도 할말을 다하고 있다. 전염병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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