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한창 식곤증에 빠져 있던 나에게 사부가 속삭였다. "이제 죽여야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예?"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느낌...역시 머리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아~~토끼....오늘요...?" 지난 주 할머님의 상을 치르고 난 뒤라 죽음이란 나에게 아직도 익숙치 않은, 생각할 것이 많은 단어였다. "시간 됐잖아.." "예...."
결국 밤 9시를 기해 두마리의 토끼 "승기1호"와 "승기2호" -참고로 우리 교수님 함자가 '장'자 '승'자 '기'자 시다. 이런 막돼먹은...- 는 희생당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이런저런 실험으로 눈코뜰 새 없던 나에게도 9시는 다가왔다. "가자!!" "예" "휴지랑 알콜이랑 챙겨라 쓰레기통하구 "이써(Ether)-참고로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손수건에 묻혀서 사람 기절시키는 그약-" 하구 주사기는 내가 챙긴다" "예......후웁!!" 혼자가기는 무서웠다. 그래서 억울한 게 짬밥이라고, 3살어린 내 동기의 귀를 끌었다. "같이 가 임마! 이게 다 경험이야.알지? 익스피리언스...나중에 내 사부 졸업하면 우리가 해야 될거 아냐" "어~~형~~" "뭐가 어~~형~~이냐. 죽을래?" "예..." 참으로 복종심을 한가득 마음에 담은 놈이다.
클린 룸....동물들만을 위한 공간..왠만한 사람사는 곳보다(참고로 기숙사 내방) 깨끗한 그곳은 금방 도살의 현장으로 변했다. "묶어" 사부가 말했다 "예" 내가 대답했다. 어느새 토끼는 사지가 묵힌채로 벌러덩 누웠고, 나와 후배는 앞다리와 뒷다리를 잡은 채 눈을 감고 서 있었다. "토끼 눈 가려라. 무서워 하잖아" "넵!!" 나의 대답과 동시에 사부의 손에는 무시무시한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찌른다 꽉 잡아라" "예" 찔렀다...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주사기속으로는 토끼의 피가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많이 나오는군..이정도면 장사해도 되겠어.." '오 주여 저게 인간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참고로 우리는 토끼피를 뽑아서 항체라고 불리우는 물질을 분리사용한다. 그 항체라는 게 사려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이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면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토끼!" "예.." '저건 인간이 아냐..' 승기 1호는 얌전히 쓰레기통속에 쳐박힌 채로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고, 이제 승기 2호가 묵일 차례였다. 2호는 얌전한 암놈이었다. "어 이자식 보게..지 죽인다는 데 안 무서운가?" "간이 부었나 본데요?" "야, 흥분시켜봐" "예..예?" "알아서 해" 도대체 어떻게 흥분을 시키라는 건가? 순간 또 다시 나의 비상한 머리가 돌아간다. 난 그녀석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끼익" '으윽..주여~~ ' "심장이 안 뛰자나" '음..어떻게 한다? 애무를...? 안된다...그건 너무 잔인하다...' 난 눈을 지그시 감고, 녀석을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 "끼이익~~ 끼~~ 익" '오 주여.." 그제서야 놈의 심장은 힘차게 고동질을 시작햇고.. "퍽!"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주사바늘이 꽃이려는 찰나.. "니가해!" '그래 고봉-후배의 이름이다- 아 니가해라..^^' "우재 니가해라" '고봉이가 아니였군..' "예..." 내손에 들려진 주사기..그리고 잠시 후 난 눈부신 용기를 발휘해 찔렀다... "푸~~욱" "야 임마 심장을 찔러야지..." 그 후에도 난 4번을 더 찔렀고, 번번히 실패였다. "이리내봐" 결국 사부가 찌른 정확한 일침에 다시 토끼의 신음소리가..
두마리 토끼를 죽이는 것은 나와 고봉이의 몫..우리는 야외 주차장에서 쓰레기통속에 이서를 가득 부었다. 순간, 용감한 승기1호가 뛰어 나왔다. 그 피를 뽑히고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잡아!!!" 주차장 옆은 산이다. 녀석이 도망치면 승기1호는 산토끼가 되어버린다. 고봉이는 용감했다. 순식간에 승기1호의 귀는 고봉이의 두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그리고 죽음....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난 저 토끼들보다 나은 놈일까? 내가 저들을 죽일 가치가 있는 놈일까?
목안엔 토끼털이 가득하다...
2000년 어느날인가 김우재의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목안엔 토끼털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