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비윤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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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 폭력에 대한 응수로서 폭력을 취하는 것이 비윤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가? --비누

그놈 : 폭력의 유무로 윤리성을 판단할 수 있는가?

김우재 : 폭력의 정도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라면 당연히 폭력으로 응수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경우는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비누 :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사회적 합의와 폭력을 금기시해 온 종교적 가르침들에 근거해 본다면 폭력이 윤리적이지 않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폭력이 윤리('법 < 도덕 < 윤리'라는 도식을 따라)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

아말감 :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디에 있는가?

Felix : 법적으로는 자기방어적 폭력이 경우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생명의 위협,강간,절도등...) 그 정도나 윤리성의 척도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차이가 있을터인데, 그런것을 볼때, 폭력에 대한 응수로 폭력을 취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남는것은 아닐까?

그놈 :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인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가 사회적으로 합의(강제?)된 것이 아닌가? 경찰. 군대등의 집단적 폭력은 용인되고 있다. 따라서 폭력은 사회적이지 않을까? 사회의 복잡성 속에 있는 모든 폭력을 비윤리적이고 말할 수 있는가?

비누 : 자, 그렇다면 '윤리적인 폭력'은 어떤가? 이것은 가능한가?

꾸는자 : 윤리적인 폭력? 폭력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윤리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 한 인간의 잘못을 잡아주기 위해 체벌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개 : 어떠한 대의명분하에서든 폭력은 효과적일 수는 있어도 윤리적일 수는 없지 않나(적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합의가 아닌 폭력을 통한 계획의 실행은 그것이 심지어 고도의 선을 의도한 것일 때조차도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본질에 있어서는 폭력적이지 아니한가? 좀 더 신속하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면, 삶과 인간을 진리와 효율성의 원리 밑에 복속시키는 경우와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그것을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나? 더불어, 부당하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폭력으로의 응수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려면 적어도 폭력이 그 당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그 정도가 가해진 폭력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며 자신이나 제 3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 즉 내용과 형식 양자의 면에 있어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맺음글 : 개인적인 전제에 의거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 어서 정리하는 게 좋을 듯하군요. 짧은 말로서 풀어내기가 어려웠지만 어쨌든 폭력과 윤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던 것이 처음 의도였습니다. 물론 "윤리"와 "폭력"이 어떤 식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워낙에 광범위한 단어들이다 보니 생각을 정리한다기 보다는 그저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정도로 그쳐야겠지만요.

제가 처음 '폭력'이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2차 대전 중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9 시간짜리 다큐, "쇼아"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증언의 내용이야 그 동안 아우슈비츠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 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영화로 인한 충격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라는 심심찮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이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 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느끼고 놀랐던 것이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지요. 거기서 느꼈던 "폭력"이란 것이 나치의 잔악무도한 학살에 관련된 그 폭력만은 아니라는 점은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명과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묵묵히 '눈을 깔고' 밭을 갈았다는 폴란드 농부의 증언과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들이 그려 보여주던 제노사이드가 얼마나 불쾌하리만치 "안" 잔혹한 그것이었던가 하는 것, 정육점의 고기 덩어리를 말하던 '우리' 예술가들(베이컨 같은)의 '잔혹성'이 실은 얼마나 잔혹함과 멀리 떨어져 저만치서 안전하게 노래하는 가상이었던가 하는 것. 그것이 도리어 '공포'로 다가오기까지 했지요.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는 대개의 폭력이란 물리적인 상해나 손상보다 더 교묘한 형태로 이뤄지는 것들이라 생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리적 상해에만 제한되는 폭력과 이런 폭력에 대한 지탄이라는, 이 듬성한 윤리적 잣대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온갖 종류의 만연한 폭력들 속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우리가 윤리와 결부시켜 그것이 폭력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놈님의 지적처럼 폭력성의 유무만으로 윤리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즉각적인 심상은 항상 윤리적 함의(비윤리적이라는)와 결부되어서 나타나고 그런 연합은 반성의 겨를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듯 보일 정도지요. (역시 그놈님 지적대로)용인될 수 있는, 유일하게 적극적인 폭력형태는 국가와 같이 합법화, 정당화된 권력에 의한 것일 뿐이며 하위집단이나 개인간의 폭력에 대한 중재자로서 (정도의 차이를 두고)폭력이 용인(개입)되곤 합니다. 폭력이 오고가는 한가운데에서 이를 제압하고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폭력이라는 것이 합법적 폭력기구(군대/경찰/감옥), '정당한 폭력'의 존립 이유는 아닐까요? 그렇다면 폭력에 대한 응수, 응징으로서 취하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폭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폭력의 힘을 증명해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사실 폭력에 대한 어떠한 반대도 폭력이 근절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보이지는 않는다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지요.

폭력에 대한 응수는 반사적인, 자기방어적인 목적 이외에는 지양되어야 할 부적 방편으로 받아들여질 뿐이기 때문에, 즉 적극적인 생활의 한 방책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합의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폭력'이란 일단 어불성설이 되고 말 듯합니다. 윤리가 법이나 제도와 같이 '내용들'로 존재하면서 어떤 지침을 제공하는 강제나 참고조항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하나의 삶의 태도(지향)라고 한다면 더더욱 말이지요. 그러나 모든 폭력이 그러한 것은 아니며 분명 건강한 메카니즘으로서 작동하는 긍정적 폭력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부족간 물리적 대립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공격성이 긍정적 함의를 띠고 폭력이 일상적으로 조장되는 사회를 그려볼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부족인지 기억은 잘 안납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 그 자체일 수는 없으며 어떠한 윤리적 적용을 거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같습니다. 다만 지금/여기의 우리가 취하고 있는 윤리가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고 폭력을 지양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매겨지는 가치가 지금과 같다고 여길 뿐이 아닐까 싶어지구요.

일시적으로는 폭력 앞에 윤리적 태도가 무력함을 보이는 듯 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비정당성 등의 범윤리적 잣대로 인해 상황은 역전이 된다는 사실로부터 두 가지의 의미를 끌어 낼수 있을 듯합니다. 폭력은 윤리와 같은 삶의 전반에 대한 태도와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하위의 (일시적, 부분적)전략으로서, 채택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차라리 폭력은 비윤리적이 아니라 비효과적이기 때문에 거부되고 있다. 라고 말이지요.

윤리의 어원인 그리스어 'ethos'와 라틴어의 'mores'가 원래는 단지 '습속'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폭력의 위상은 더 분명해지리라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윤리 체계가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는 '주는 대로 받는다'는 황금률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치 평가와 관련된 우리의 태도와 입장은 윤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다만 예외가 있다면 기독교 사상("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주어라")과 간디의 '비폭력주의' 정도가 될 텐데, 이들이 폭력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다른 윤리체계에서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윤리가 대칭성을 띠고 있는 한 윤리로서 폭력의 문제를 해소할 길은 없어 보인다는 결론 아닌 결론에서부터 다시 질문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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