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드가상후보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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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에드가상 (장편부문) 후보작들


2001년 에드가상 수상식이 5월초에 뉴욕시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된다. 최우수 장편상 후보작들을 읽고 한번 수상작을 맞추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는데 주문한 책이 도중 사라지고 회사 일은 갈수록 태산이고...

아직 우리들은 크리스티 여사와 퀸의 시절만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제법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최근 몇년간 에드가상 후보/수상작들이 제목도 낯선 것을 보면 요즘 미스테리계가 삼천포로 가고 있던가 아니면 내가 실제로는 옛시절(태어나기도 전이지만) 타령만 하고 있었던가 둘중의 하나다.

SF계의 에드가상이라고 할만한 휴고상의 올해 수상작은 해리 포터였다고 한다. 에드가상이 아직 존 그리샴의 베스트셀러 법정 스릴러에 주어진적이 없는 것을 보면 미국 미스테리 작가 협회 회원들이 아직 뭔가 옆길로 새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일뿐.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소설들은 예전에도 많았다. 우리도 김성종씨가 선정한 명작 해외 추리소설들은 줄기차게 외면해 온게 사실아닌가. 뭔가 계기를 하나
마련해서 좀처럼 다가서게 되지 않는 최근 경향의 미스테리에 관심을 좀 가져보고 싶다. 그 일환으로...



1. Money, Money, Money / 에드 맥베인



크리스마스로 연말연시의 흥겨운 분위기에 다들 들떠 있어도 87구역은 살인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시체의 다리 하나가 88구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담당 구역의 뚱보 형사 올리 위크가 나서서 카렐라와 마이어 형사의 일에 끼어들게 된다. 은퇴한 걸프전의 파일럿 카산드라 리들리, 국경을 넘어 온 2인조 멕시코 악당, 어설픈 도둑 윌버, 명망있는 출판사 워즈워드 앤 도즈의 세일즈맨 - 그중 몇이 죽음을 맞고 카렐라는 그 원인이 이들 사이를 오간 거액의 현금에 있음을 간파한다. 살해당한 아버지의 살인범을 석방시킨 변호사와 결혼하려는 동생,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재혼하려는 어머니 때문에 행복해야할 크리스마스가 카렐라에게는 고민과 일때문에 고달프기만 하다.

소설은 살인범의 정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손을 옮겨가는 돈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를 밝혀내면서 절정에 이른다. 사건 전체를 꿰뚫은 전말이 밝혀지는 클라이막스가 멋지게 읽힌다.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적절하게 맞물려서 현실감을 주고 있는데, 아마 사건의 내막은 아무도 짐작 못할 것이다 :) 진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88구역 형사 올리 덕으로 아주 밝다. 정신없이 개그를 해대는 피아니스트이자(곡 하나밖에 칠줄 모름) 최초의 현역 형사 소설가를 자칭하는 올리의 원맨쇼가 더 인상적이다. 몇번이고 웃음을 터뜨리케 한다. 그는 목숨을 잃을 뻔한 카렐라를 두번이나 구해 주어서, 범인 검거에는 별 기여를 못하지만 소설이 중간에 끝나버리는, 아니 87구역 시리즈 전체가 문을 내려버릴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소설의 말미에는 정말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사 올리의 원고의 일부가 올라 있다. 이 캐릭터가 전에도 등장한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87구역 시리즈는 사실 경관 혐오밖에 읽어본 것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카렐라라는 캐릭터는 정말 "쿨"하다.


2. Tell No One / 할란 코벤



사랑하는 아내가 연쇄살인범에게 폭행, 살해당하는 일보다 더 고통을 가져다 줄 일이 있을까?

그건 아마도 그 순간 손한번 써보지 못한채 살인범의 공격에 정신을 잃고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얹혀지는 경우일 것이다. 혹은 아내의 죽음이 살인범의 만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보태지거나, 어쩌면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 데이빗 벡은 아내가 죽은지 8년이 지난후 어느날 한통의 이메일을 받고,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조용히 기억속에 묻어 두었던 고통스런 과거의 파편처럼 쪼개진 사실들을 그 당시 함께 슬픔을 겪었던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이어맞추려고 하자, 고요하던 그의 주위에 갑자기 혼란의 소용돌이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오히려는 그는 아내의 살인범이라는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고 만다.

그것이 정말로 누명일까? 주인공인 데이빗은 아내와 단 둘밖에 모르는 그날밤의 끔찍한 기억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일인칭 나레이터의 곤경과 불확실한 내면을 점점 증폭시키면서 소설은 숨막히는 액션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몇번이고 아연하게 하는 놀라운 반전을 거듭하며 미스터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신없이 읽고 난 뒤 대체 이 소설을 쓴 할란 코벤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마이런 볼리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일곱편 가량 발표한 뉴저지 출신의 이 작가는 그 가운데 "Fade Away"로 98년
에드가 최우수 페이퍼백 장편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 페이퍼백이 발간된 "TELL NO ONE"은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실것을 적극 추천.

3. The Judgment / D.W. 버파


"오랜 세월을 나는 최악의 인간들을 변호하며 살아왔지만, 내가 아는한 가장 사악한 사람은 한번도 범죄 혐의로 기소된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은 문장을 시작으로, 변호사 주인공 조셉 안토넬리를 비롯해 수많은 법조계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판사 캘빈 제프리가 한 부랑자의 칼에 찔려 살해당하면서 선과 악, 인간의 분노와 집념 등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법정 스릴러 "The Judgment"는 시작된다. 판사 제프리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에 법과 윤리를 도외시하며 파멸로 몰아간 젊은 변호사와, 주인공 또 그의 친밀한 사립 탐정과도 얽혀 있는 잊을수 없는 모멸적인 경험담들이 주인공의 기억을 빌려 나열되는 것을 보노 있노라면 제프리의 어이없는 죽음 -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부랑자의 칼부림에 의한 죽음은 그가 마땅히 치렀어야 할 죄값이라고 하기엔 그 순간적인 고통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범행을 순순히 자백한후 예기치 않게 자살해버린 혐의자로 인해 사건은 종결되고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른 판사가 똑같은 방법으로 생해당하고 마찬가지로 유력한 용의자로 한 부랑자가 범행시 사용된 칼과 함께 검거되자, 안토넬리는 누구도 깨닫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건의 배후를 캐내기 위해 판사 제프리와 얽힌 옛 사건들을 더듬어 간다. 그가 부랑자를 변호하러 나섬으로써 얻을 것은 진실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토넬리는 판사 둘의 죽음이 남은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전해주지 못한 채 잊혀져 가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나 보다. 소설에서 인용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법"처럼 한 인간이 저지른 죄악과 그 댓가로 치르게 되는 벌의 의미를 책을 다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짓고 살지 말아야지...

법정 스릴러는 어떻게 보면 변호사와 검사가 배심원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벌이는 한편의 쇼 - 말의 잔치다. 둘의 치열한 논리게임이 논쟁의 기술, 언변이나 법제도의 모순,한계로 인해 가려지는 승부로 끝나기보다는 만화경같은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인간의 노력과, 그를 통해 밝혀지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마무리지어질때 더 감동적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십여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소설가의 길로 돌아선 저자 D.W.버파는 아마도 그런 낭만주의자일것이다. 실제로 그가 섰던 법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지만(어쩌면 소설의 주인공 안토넬리처럼 판사에게 법정모독죄로 3일간 구류에 처해지는 수모를 겪었을지도...), 그는 소설을 통해 여러차례 지적하고 있는 법제의 한계가, 휴머니스트 - 인간의 마음을 지닌 경찰과 탐정, 변호사의 힘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거나 적어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4. Silent Joe / T. 제퍼슨 파커


주인공 조 트로나에게선 21세기에 이르러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필립 말로우의 체취가 풍긴다... "말없는 조"는 그의 양모가 부르는 조의 별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는 조 트로나. 자식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특히 그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뿌린 황산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 어린이의 집에서 지내던 자신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이십년 가까이 키워준 양부라면 그 결심의 강도는 누구보다 더 할 것이다.

오렌지 카운티의 지방 유지였던 양부 윌 트로나는 마을의 개발 계획과 기타 현안을 두고 다른 세력들과 마찰을 빚으며 적지 않은 친구와 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조는 그와 같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냉정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온갖 방법을 배우며 강철같이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왔다. 한 재벌의 집안에서 벌어진 유괴 인질극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서서 인질금과 인질의 교환역을 맡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는 조에게는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베푼 사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홀로 나서게 된 조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아버지를 바라 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눈물이 가슴에서부터 북받치고, 그와 함께 복수를 향한 차디찬 격정이 솟아 올랐다. 나는 모자를 낮게 눌러썼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와서 그가 겉으로 드러내 보인 유일한 그의 속마음이다. 2001년에 나온 미스테리에서 읽을수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 시대착오적인 감상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할지 피식 웃음을 머금어야 할지 영 판단이 안 선다. 초지일관 양부의 죽음의 배후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그와 함께 양부와 자신의 묻혀진 과거까지 묵묵히 밝혀내는 모습은, 아마도 작가 T.J.파커가 재현하고 싶었던 화려했던 40년대 하드보일드를 향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고 짐작한다.

5. Reflectin the Sky / S.J. 로잔


돈을 아껴서 하드커버 에디션을 사려고 헌책방에 주문했다가 배송도중 사라져 버린 책이다. 결국 못보고 아쉽게 2001년 에드가상 후보 감상을 여기서 줄여야겠다.


후보작들을 보면 미스테리 하위 장르들에 대한 고른 배분을 염두에 두고 선정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드 보일드, 법정 스릴러, 클래식 미스테리 등.. 이번까지 합치면 세번째 후보에 오른 T.J. 파커, 혹은 후보작들 가운데 압도적인 페이지 터너를 쓴 할란 코벤, 아니면 결국 들춰 보지 못한 복병(?) S.J. Rozan, 그것도 아니면 그랜드 마스터를 비롯한 모든 영예를 누린 에드 맥베인이 수상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애매한 예측밖에 못하겠다.

개인적으로는 할란 코벤의 "Tell No One"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가면 무척 반가울것 같다. 단편 미스테리의 긴장감과 반전의 묘미를 조금도 잃지 않은채 속도감있게 펼치는 플롯의 교묘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4월30일 그의 신작 Gone for Good이 출간된다. 기대가 크다. (2002/4/27)

결국 수상의 영예는 파커의 "말없는 조"에게 돌아갔다. -- Jin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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