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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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ism can be understood as (1) a political tradition (2) a political philosophy and (3) a general philosophical theory, encompassing a theory of value, a conception of the person and a moral theory as well as a political philosophy.
As a political tradition liberalism has varied in different countries. In England -- in many ways the birthplace of liberalism -- the liberal tradition in politics has centered on religious toleration, government by consent, personal and, especially, economic freedom. In France liberalism has been more closely associated with secularism and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liberals often combine a devotion to personal liberty with an antipathy to capitalism, while the liberalism of Australia tends to be much more sympathetic to capitalism but often less enthusiastic about civil liberties.
To understand this diversity in political traditions, we need to examine liberalism as a political theory and as a general philosophy. |}}
출처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plato.stanford.edu/entries/liberalism
Liberalism can be understood as (1) a political tradition (2) a political philosophy and (3) a general philosophical theory, encompassing a theory of value, a conception of the person and a moral theory as well as a political philosophy.
As a political tradition liberalism has varied in different countries. In England -- in many ways the birthplace of liberalism -- the liberal tradition in politics has centered on religious toleration, government by consent, personal and, especially, economic freedom. In France liberalism has been more closely associated with secularism and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liberals often combine a devotion to personal liberty with an antipathy to capitalism, while the liberalism of Australia tends to be much more sympathetic to capitalism but often less enthusiastic about civil liberties.
To understand this diversity in political traditions, we need to examine liberalism as a political theory and as a general philosophy. |}}
출처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plato.stanford.edu/entries/libe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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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litical philosophy that emphasizes individual freedom, arose in Europe in the period between the Reformation and the French Revolution. During the sixteenth,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the medieval feudal order gradually gave way as Protestantism, the nation-state, commerce, science, cities, and a middle class of traders and industrialists developed. The new liberal orderdrawing on Enlightenment thoughtbegan to place human beings rather than God at the center of things. Humans, with their rational minds, could comprehend all things and could improve themselves and society through systematic and rational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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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inkQuest Internet Challenge Library http://library.thinkquest.org/3376/Genktk5.htm?tqskip1=1&tqtime=0823
a political philosophy that emphasizes individual freedom, arose in Europe in the period between the Reformation and the French Revolution. During the sixteenth,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the medieval feudal order gradually gave way as Protestantism, the nation-state, commerce, science, cities, and a middle class of traders and industrialists developed. The new liberal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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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inkQuest Internet Challenge Library http://library.thinkquest.org/3376/Genktk5.htm?tqskip1=1&tqtime=0823
정치이론으로서의 Liberalism ¶
http://plato.stanford.edu/entries/liberalism 에 있던 글의 요약
- 자유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negative liberty and positive liberty)
- 사유재산과 시장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유재산이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자유시장경제에 의한 권력의 분산이 각 주체들의 자유를 국가의 침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F.A. Hayek은 '인쇄 수단이 국가에 의해 통제될 때 언론/출판의 자유는 없고, 공공장소가 국가에 의해 통제될 때 집회의 자유가 없으며, 교통수단이 국가에 의해 통제될 때 이동의 자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내부의 수정론자들은 자유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제기했다. 이런 논의가 생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자유시장경제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시장경제가 불안정하거나, 케인즈가 지적한 것처럼 실업에 의해 불안정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안정적인 자유 사회를 위한 기반이 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면서 국가에 대한 기대는 커지게 됐다. 이것은 일차세계대전 중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성공,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정부에 대한 신뢰 등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다른 모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됐던 사유 재산은 부당한 불평등 권력 관계를 초래하여 노동자들에게 '불평등한 자유(less-than-equal liberty)'만을 향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을 주장했지만, '개인의 경제적 자유의 정당화'와는 별개의 문제라 못박고 있다. 또한 '사유재산에 기반하지 않고도, 각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라고 말했다.
첫째,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자유시장경제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시장경제가 불안정하거나, 케인즈가 지적한 것처럼 실업에 의해 불안정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안정적인 자유 사회를 위한 기반이 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면서 국가에 대한 기대는 커지게 됐다. 이것은 일차세계대전 중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성공,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정부에 대한 신뢰 등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다른 모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됐던 사유 재산은 부당한 불평등 권력 관계를 초래하여 노동자들에게 '불평등한 자유(less-than-equal liberty)'만을 향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을 주장했지만, '개인의 경제적 자유의 정당화'와는 별개의 문제라 못박고 있다. 또한 '사유재산에 기반하지 않고도, 각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에 대한 개인적 생각 ¶
조원장이 잘 알지는 못하나,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放於利而行 多怨.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가볍게 스쳐 생각할 말씀은 아닌 듯하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익 혹은 재물을 취하는 방법 따위는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자 이야기를 계속하면, 케케묵은 이야기를 한다 할까 하여 하버드 교수를 지냈던 노직이란 사람의 말을 잠시 빌려 이익(혹은 재산)을 취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정의국가와 무정부주의를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서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조원장이 생각하기에는 좀 과격하다 싶은 최소국가론(minimal state)을 주장했다. 즉, 개인의 권리를 가장 우선시하여 국가는 그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범위에서 국가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범위를 넘어서는 국가는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경제적 자유를 중요시하여 사유재산에 대한 거의 무제한적인 권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노직이 제시한 소유 권리론의 정의의 원칙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최초 획득의 정의의 원칙 둘째, 소유 이전의 정의의 원칙 셋째, 교정의 원칙이 그것이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정당한 방법으로 사유재산을 획득/이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직이 말하는 정당한 획득은 로크의 생각과 비슷한데, 자연물에 적절한 노동을 가할 경우 그것은 노동을 가한 개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재산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재한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한국에 있어서는)을 띠고 있다. 어쨌든 노직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자유주의자도 그 재산의 획득 과정에서 정의롭지 못할 경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며 교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見利思義라는 말과 통한다고 조원장은 생각한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하이에크가 주장하는 자유주의(이것을 신자유주의라 불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가 실현될 수 있는 국가는 기껏해야 노직이 말하는 최소국가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보비오는 경제적 자유주의(liberism)와 정치적 자유주의(liberalism)를 구분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 쯤으로, 심지어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수단인 것만도 아니라는 정도로 간주한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보비오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할 국가를 염두에 두고, 노직의 최소국가론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민주주의와 상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은 분들은 보비오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참고하시길) 생각이 얕은 조원장은 보비오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며, 개인적으로 전자는 ‘義’에 가깝고 후자는 ‘利’에 가까운 것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liberalism과 libertarianism의 차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추상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답답하다. 김동춘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의 자유주의는 국가의 공식 지도 이념인 획일주의적 반공주의의 다른 말이었다. 즉, 현대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절대주의 억압과 봉건적 미망에 대한 투쟁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해방(liberation)의 이념이었다기 보다는 공산주의와 집산주의로부터의 ’국가‘의 ’해방‘이라는 이념, 국가 대 국가간의 대립 질서 속에서 적대국가에 대한 투쟁과 증오의 이념이었다. 반공 획일주의와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서 형용 모순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전 국가적인 곡해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서 어떤 사람들 머릿속을 흔들고 있다. 김동춘 교수의 말을 더 빌려 보면, 한국에서 자유주의자라 행세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시장경제를 옹호하지만 독점 자본의 지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자본과 권력이 유착하여 어떻게 다수의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현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타락한 형태의 자유주의 유형이라고’ 비난하며 ‘편의의 논리, 처세의 논리, 상황의 논리, 사대주의의 논리’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경제, 사회, 문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존립하는 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한 자유주의자가 극히 적었다는 것이 한국 자유주의의 비극’이라고 한탄한다. (위에서 기울여 쓴 부분은 조원장이 이해한 바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조원장의 생각은 간단하다. 함부로 공자처럼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획득한 재산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자(liberalist)’인 척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말이 너무 아깝다. 신자유주의자나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 말도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조원장
공자 이야기를 계속하면, 케케묵은 이야기를 한다 할까 하여 하버드 교수를 지냈던 노직이란 사람의 말을 잠시 빌려 이익(혹은 재산)을 취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정의국가와 무정부주의를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서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조원장이 생각하기에는 좀 과격하다 싶은 최소국가론(minimal state)을 주장했다. 즉, 개인의 권리를 가장 우선시하여 국가는 그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범위에서 국가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범위를 넘어서는 국가는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경제적 자유를 중요시하여 사유재산에 대한 거의 무제한적인 권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노직이 제시한 소유 권리론의 정의의 원칙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최초 획득의 정의의 원칙 둘째, 소유 이전의 정의의 원칙 셋째, 교정의 원칙이 그것이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정당한 방법으로 사유재산을 획득/이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직이 말하는 정당한 획득은 로크의 생각과 비슷한데, 자연물에 적절한 노동을 가할 경우 그것은 노동을 가한 개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재산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재한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한국에 있어서는)을 띠고 있다. 어쨌든 노직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자유주의자도 그 재산의 획득 과정에서 정의롭지 못할 경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며 교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見利思義라는 말과 통한다고 조원장은 생각한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하이에크가 주장하는 자유주의(이것을 신자유주의라 불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가 실현될 수 있는 국가는 기껏해야 노직이 말하는 최소국가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보비오는 경제적 자유주의(liberism)와 정치적 자유주의(liberalism)를 구분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 쯤으로, 심지어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수단인 것만도 아니라는 정도로 간주한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보비오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할 국가를 염두에 두고, 노직의 최소국가론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민주주의와 상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은 분들은 보비오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참고하시길) 생각이 얕은 조원장은 보비오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며, 개인적으로 전자는 ‘義’에 가깝고 후자는 ‘利’에 가까운 것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liberalism과 libertarianism의 차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추상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답답하다. 김동춘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의 자유주의는 국가의 공식 지도 이념인 획일주의적 반공주의의 다른 말이었다. 즉, 현대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절대주의 억압과 봉건적 미망에 대한 투쟁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해방(liberation)의 이념이었다기 보다는 공산주의와 집산주의로부터의 ’국가‘의 ’해방‘이라는 이념, 국가 대 국가간의 대립 질서 속에서 적대국가에 대한 투쟁과 증오의 이념이었다. 반공 획일주의와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서 형용 모순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전 국가적인 곡해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서 어떤 사람들 머릿속을 흔들고 있다. 김동춘 교수의 말을 더 빌려 보면, 한국에서 자유주의자라 행세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시장경제를 옹호하지만 독점 자본의 지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자본과 권력이 유착하여 어떻게 다수의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현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타락한 형태의 자유주의 유형이라고’ 비난하며 ‘편의의 논리, 처세의 논리, 상황의 논리, 사대주의의 논리’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경제, 사회, 문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존립하는 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한 자유주의자가 극히 적었다는 것이 한국 자유주의의 비극’이라고 한탄한다. (위에서 기울여 쓴 부분은 조원장이 이해한 바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조원장의 생각은 간단하다. 함부로 공자처럼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획득한 재산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자(liberalist)’인 척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말이 너무 아깝다. 신자유주의자나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 말도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조원장
DeleteMe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해 논할 때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 JohnStuartMill의 자유론이죠. 짧고 재밌으며, 상당히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JohnStuartMill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 면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미개국 등의 경우 자유가 유보될 수 있다 등의 주장을 했는데.. 사실 그런 것을 규정하는 권력이 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온건하면서도 명확하게 자유에 대한 권리와 한계를 설명한 명저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논쟁들 -일부 자칭 온건한 자유주의자(?)와 몇몇분들 사이의 ^^;;-에게 의견조율의 단초를 제공해줄수도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이미 자유론의 텍스트를 직간접으로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유시민의 세상읽기 중 ¶
사이비 자유주의를 경계한다
8.15 경축사를 기점으로 정부가 재벌개혁 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상장 특혜시비와 편법상속 의혹 때문에 시민단체의 강력한 비판을 받는 가운데 국세청은 상속과 관련한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정주영 회장의 아들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때문에 검찰에 소환될 것같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대우 계열사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이 끝나면 김우중 회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공연히 밝힌다. 계좌추적권까지 동원해 부당내부거래를 뒤진 공정거래위원회는 LG와 SK를 포함한 5대재벌에 각각 수백억 원씩 과징금을 물릴 방침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비시장적 수단에 의한 재벌해체 시도’라고 비난하자 정부는 재벌해체 의도가 없다고 발을 뺐다. DJ의 ‘색깔론 콤플렉스’를 이해는 하지만 이건 사실 우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定議)에 따르면 재벌은 “복수의 시장에서 독과점 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외형상 독립적인 기업을 총수와 그 가족이 배타적으로 소유 통제하는 기업집단”이다. 편법상속과 내부거래 근절, 부채비율 감축, 책임경영과 무능총수 퇴진, 소액주주권강화,재벌의 금융기관 지배 억제 등 개혁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한다면 기존의 재벌체제가 그대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혁이니 해체니 용어를 가지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제는 수단의 적법성과 실질적인 결과다. 현재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법률이 부여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재벌체제가 많이 바뀌면 개혁이요, 옛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까지 달라지면 해체가 될 것이다. 이런 점은 재벌체제를 옹호하는 지식인들도 다 안다.
법률적 하자(瑕疵)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주의 기본원리’라는 무척 ‘심오하고 철학적인’ 쟁점을 내세워 정부를 공격한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들의 무기는 ‘재산권론’이다. 예컨대 작가이며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4백만 주 출연과 관련해 우리 언론이 ‘경제적 자유의 핵심인 재산권 보호에 관심이 없다’고 질타한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삼성차 부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는 이회장의 사재 출연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사재출연 강요는 자본주의 원칙을 저버린 집단적 약탈행위’라는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의 과격한 선언 앞에서 대한민국은 졸지에 떼강도가 설치는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정치권의 바람잡이들은 이런 말씀들을 재빠르게 끌어다 색깔론 공세에 날개를 단다.
이런 분들에게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J.S. 밀이 ‘경제학원리’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근대 유럽의 사회체제는 근로소득이나 정당한 분배의 산물이 아니라 정복과 폭력의 산물인 재산분배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재산권법이 사유재산을 정당화하는 원리에 부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재벌총수 일가의 사유재산은 과연 근로소득이나 정당한 분배의 산물인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들의 재산은 절대적 신성불가침인가? 정부와 시민단체가 정말로 재벌총수의 사유재산을 빼앗았다면 그 실력있는 고문변호사들은 다 놀고 있단 말인가?
진짜 자유주의자는 모든 종류의 권력 집중에 반대한다. 재벌이라는 민간 경제권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재벌을 옹호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자유주의자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만은 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데 일부 언론이 ‘비시장적 수단에 의한 재벌해체 시도’라고 비난하자 정부는 재벌해체 의도가 없다고 발을 뺐다. DJ의 ‘색깔론 콤플렉스’를 이해는 하지만 이건 사실 우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定議)에 따르면 재벌은 “복수의 시장에서 독과점 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외형상 독립적인 기업을 총수와 그 가족이 배타적으로 소유 통제하는 기업집단”이다. 편법상속과 내부거래 근절, 부채비율 감축, 책임경영과 무능총수 퇴진, 소액주주권강화,재벌의 금융기관 지배 억제 등 개혁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한다면 기존의 재벌체제가 그대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혁이니 해체니 용어를 가지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제는 수단의 적법성과 실질적인 결과다. 현재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법률이 부여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재벌체제가 많이 바뀌면 개혁이요, 옛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까지 달라지면 해체가 될 것이다. 이런 점은 재벌체제를 옹호하는 지식인들도 다 안다.
법률적 하자(瑕疵)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주의 기본원리’라는 무척 ‘심오하고 철학적인’ 쟁점을 내세워 정부를 공격한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들의 무기는 ‘재산권론’이다. 예컨대 작가이며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4백만 주 출연과 관련해 우리 언론이 ‘경제적 자유의 핵심인 재산권 보호에 관심이 없다’고 질타한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삼성차 부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는 이회장의 사재 출연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사재출연 강요는 자본주의 원칙을 저버린 집단적 약탈행위’라는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의 과격한 선언 앞에서 대한민국은 졸지에 떼강도가 설치는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정치권의 바람잡이들은 이런 말씀들을 재빠르게 끌어다 색깔론 공세에 날개를 단다.
이런 분들에게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J.S. 밀이 ‘경제학원리’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근대 유럽의 사회체제는 근로소득이나 정당한 분배의 산물이 아니라 정복과 폭력의 산물인 재산분배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재산권법이 사유재산을 정당화하는 원리에 부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재벌총수 일가의 사유재산은 과연 근로소득이나 정당한 분배의 산물인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들의 재산은 절대적 신성불가침인가? 정부와 시민단체가 정말로 재벌총수의 사유재산을 빼앗았다면 그 실력있는 고문변호사들은 다 놀고 있단 말인가?
진짜 자유주의자는 모든 종류의 권력 집중에 반대한다. 재벌이라는 민간 경제권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재벌을 옹호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자유주의자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만은 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