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ISBN-1586481509]

재미있는 일이다. 무의식이란. 듀나의 "태평양 횡단 특급"에 실린 단편 "무궁동"을 산뜻하고 신선한 느낌으로 읽은 것이 겨우 한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그 이후에 일어나거나 읽고 본 것들로 인해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에바 호프먼의 최근 소설 비밀(The Secret)에 며칠간 몰입한 후 책을 덮은 찰나, 나는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모티프를 지닌 이야기를 이미 본적이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기시감에 불과한 것인가? 오래전에 본 "제6의날"과 같은 영화에 대한, 이미 잊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실은 그렇지 않고 다른 기억들 몇겹 아래 덮혀 있었을 뿐이었던 감상이 새삼스레 여러층을 뚫고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던중 잠자리에 들기전 다시 손에 든 듀나의 책에서 답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읽을거리로 호프먼의 책을 고르게 된 것도 우연이나 순간의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책날개의 짧은 소개글을 훑는 내 한가로운 두뇌의 전면 깊은 아래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던 무의식, "무궁동"과의 유사성을 짚어낸 무의식의 조종이 아니었을까 한다.

소설의 주인공 아이리스의 정체는 소설의 초반에 드러나므로 작가도 그 사실을 반전이나 극적 전개의 실마리로 쓰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아이리스가 자신이 더없이 사랑하고, 일반적인 모녀 이상으로 밀착감을 느껴온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실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오리지널(클론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 감상에 써도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호프먼은 책의 삼분의 이 이상의 분량을,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방황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호프먼의 첫 소설은 르 귄 풍의 사변소설이라고 할만하다.

여러 과학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 가운데 가장 가까운 장래에, 오랫동안 상상의 공간에 머무르다 비로소 현실의 몸을 얻을 것이 바로 이 생물학의 진보가 가져다 줄 클론과 오리지널의 공존 아닐까. 아마도 인간의 클로닝은 법적, 윤리적 문제로 인해 합법적인 장치로 자리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딘가에서 행해질 클로닝을 막을수는 없을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된 장기매매가 관련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질때 은밀히 이루어지듯 실질적인 기술이 무르익을 무렵 행해질 인간의 클로닝을 막을 원천적인 방법은 없어보인다. 호프먼은 그와 같은 사회가 도래했을때 클론들이 겪을 혼란을 매우 동정적인 어조로 그린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할아버지와 할머니 - 실제로는 자신의 아버지/어머니이기도 한 사람들을 찾아내서는, 당황하며 멈칫거리는 그들이 애정의 작은 끈이라도 내밀어주길 바라면서 간절히 매달리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아이리스가 예민한 시기를 벗어나 좀더 성숙한 뒤 모든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때까지 감추며 기다리고 싶어했던 엘리자베스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고 딸의 방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결국 모녀관계를 접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클로닝의 희생양은 오리지널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좀더 나이가 많고 활동의 배경이 미국의 성인 사회였다면 다루어졌을 사건과 주제가 좀더 (SF 영화들처럼) 심각해졌겠지만, 사춘기를 겪는 편모 밑의 소녀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아마도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을 낳은 사람들이 아님을 우연히 깨달은 입양아가 거쳐가는 혼돈과 고뇌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호프먼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태인 가운데 하나다. 첫 소설을 쓰기전 호프먼이 쓴 책들은 대부분 그 어렵던 20세기 중반을 거쳐온 자기 민족에 대한 논픽션 또는 회고록이다.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소설이 유전공학이 미래의 가정에 가져올 파문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묘사라는 사실이, 혹시나 유태인으로서 겪었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미약하게나마 어딘가 이어져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Jindor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