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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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86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 수상
1997년 제30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 수상

  • 작가 이야기

능청스러움의 미학과 그 맛깔난 재미
"어른들의 세계는 그냥 사는 거지요. 사는 것으로 해결이 되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었지요." 어느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성석제가 한 말인데, 바로 이 발언을 전제한다면 그의 소설에 접근하기가 쉬울 것이다. 답답하게 꽉 막힌 어른들의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고자 하는 데서부터 그의 소설 세계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 소설과 이야기의 구분을 무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성석제에게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 형식에 대한 의식이나 계몽적 요소는 작자 자신에게든 독자에게든 억압을 낳을 수 있으므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성석제의 소설이 제공하는 자유로움은 바로 여기에서 싹튼다. 그리고 현실을 비껴 가는 듯한 그 자유로움은 성석제의 능청스러운 시선을 바탕으로 하여 흡입력을 발휘한다. 아마 이 대목에서 성석제 소설의 능청스러움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석제 소설 특유의 재미는 바로 그 능청스러움을 의미하며, 그 재미로만 따진다면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춤꾼이든 술꾼이든 싸움꾼이든 일단 성석제의 시선을 통해 여과되면 그들의 존재는 의미를 발하며 오히려 그를 둘러싼 상황을 제압해 버린다. 바로 이 순간 어른들의 세계(근대적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대상은 빛나는 존재로 승격한다. 이제 그는 '편입을 거부한'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가치의 전도(顚倒)를 재미있게 형상화한다는 것이 성석제의 능청스러움이다.

또한, 성석제가 소재로 취합하는 대상 역시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내보이는 자유로운 인물들은 아주 다양한 부류에서 출몰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생명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이야기들은 도서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들은 이미 죽었거나 굳어진 것들이지요. 제 도서관은 떠들썩한 이 세상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겐 친구들이 많아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사귄 친구들이 많고, 또 그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이렇게 그물망처럼 짜여진 친구들이 제 이야기의 원천인 셈입니다." 이러한 대상의 선택 역시 한 점으로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확산하려고만 하는 성석제 소설 특유의 자유 지향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홍기돈/문학평론가)

  • 대표작

「조동관 약전 」 강
「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 강
「 순정 」 문학동네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문학동네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창작과비평사
;)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다. (물론 이야기 말고도 좋은 점이 많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그 이야기 중간중간 가슴에 확 꽃히는 감흥을 준다. 쉽게 읽히면서도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들을 태연자약하게 써내려간다. -- 엠피

성석제의 해학적 묘사는 진짜로 비아냥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역설적인 표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Ze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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