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교양과목 외에, 1, 2 학년들을 대상으로 교양 필수 과목을 선정해 놓고 있다. 말 그대로라면, 교양으로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인 셈인데, 구체적으로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교양수업의 과목 선택과 그 내용, 요구수준, 학생들의 태도 등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교양 교육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역사
중세시대 논리학, 수사학, 기하학, 천문학 등의 "교양" 교육 이후, 근대 서구의 교양교육의 역사를 보자. 일찍이 미국에서는 60년대를 전후해서 대학에서의 Liberal Arts라고 하는 교양 교육에의 필요성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당대의 교육철학자들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교양 교육이 강화되었다. 유럽에서는 문화적 전통으로 미국보다는 비교적 일찍 교양교육의 중요성이 인식되어져 오고 있었다.
동북아에선 시서예악으로 대변되는 유학이 필수 교양과목이었으나 시민사회 성립 과정이 결여된 한국에선 교양교육이란 일종의 기득권자들의 체제 유지 수단 혹은 경제적 여유에 기반한 문화적 호사의 성격이 강했다. 이후 근대 한국에서는 일제식민지 시대의 교육시스템을 거쳐 별 비판없이 외국의 모델들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자성화 노력없이 외국의 것을 본따기에 급급했다.
김진송의 "서울에딴스홀을許하라"에서는 현대('modern'의 의미로 사용) 한국에서의 문화-교양주의의 근원을 일본에서 수입된 '문화주의 철학'에서 찾고 있습니다. '문화주의'는 19세기 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의 비판에 직면하여 새로이 등장한 신칸트학파의 철학으로 1910년대 일본에 들어와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에 유행했던 사조였다.. '문화'란 '자아의 자유로운 향상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화가 갖는 절대적인 가치인 진선미는 자아가 자아답게 된 '인격'의 발현 형식이라고 이해하여, '문화주의는 곧 인격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문화주의적 시각이 아직도 우리의 사고방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실의 벽면을 아직도 장식하고 있는 지성, 덕성, 정숙, 진선미, 지덕체 등등의 교훈.. 개인의 인격함양을 교육의 근본원리로 삼는다든가 예술을 개인의 정서적 함양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러한 문화-교양주의가 관념론적 개조론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국가적 모순이나 계급적 갈등까지 개인적인 품성이나 인격의 범주에서 그 해결점을 찾으려 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비교적 보편적 범주로 생각하고 있던 문화나 교양 따위의 개념들도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사고를 진행시키는데 긴요하다는 것이겠죠. 철학을 공부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과연 교양 개념은 관념론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새롭고 주체적인 교양 개념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만. --Khakii
목적교양수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왜 "교양필수"를 이수해야하고, 각 분류별로 몇 학점씩 "교양선택"을 이수해야 되는 것일까? 대학에서는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면 안되는가?
- 폭 넓고 종합적인 지식을 갖춘 인재의 양성
문제
학교 이름을 한자로 제대로 쓰질 못하고, 사칙연산이 서투르며, 자기의 고유한 사고를 글로 정교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과연 교양 교육을 받은 것인가?
딜레마
다양성과 통일성. 자유와 필수 간의 고민. 술의 역사와 종류, 술 마시는 법 등을 과연 대학인의 교양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시간에 기본적인 고전 한 권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양성은 희생될 수 있는가?
Ged의 경험담 ¶
- 저희 학교 교양필수였던 것들은 글과 생각, 컴퓨터의 이해, 일반화학, 대학물리등이었습니다. 각 과목에대해 소개를 한다면..
글과 생각 | 책을 읽는 법, 글을 쓰는 법에 대한 과목입니다. 아무리 독서량이 모자라는 세대라지만.. 조금은 무리 |
컴퓨터의 이해 | ... 컴퓨터 학과에서 컴퓨터에 대한 소개를 합니다. 그렇지만. 컴퓨터에대해 모르는 사람이 절반.. 상당히 필요했다고 생각 하는 과목입니다. (시작은 부팅부터였습니다.) |
일반 화학 | 예.. 화학입니다.. 머리아픈쪽이죠 --;;; |
대학 물리 | 역시 머리아픈.. 그런 과목입니다. |
그리고 이것은 전공필수였던 전공의 이해란 과목입니다.
전공의 이해 | 현재 들어온 학과에서 할수 있는 전공에 대해서 소개한다고 하는 과목입니다. 1년을 수업했습니다.. 사실 학과를 선택하여 학교를 온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1년에 걸쳐서 전공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는 과목입니다. |
현재 2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지만.. 대학 와서 배운거라곤 수학뿐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화학, 물리는 겨울방학과 동시에 기억에서 삭제.. 2학년에서는 코어란 이름으로(사실은 위장된 교양입니다) 전자기장과 전기회로를 하게 됩니다.. 물론 1학기 패스를 위해서 때우는 과목이 되버리죠.
현재 2학기를 수강중이지만 이것 역시 경제성공학과 기초 회로 실험이란 교양이 있습니다. 이것 두개 역시 학기가 지나면 잊혀지는 과목입니다.
대부분의 교양들은 한 학기 최대학점인 20학점중 5학점정도를 차지하게 됩니다. 왠지 이런걸 볼때 필수란 말을 붙여, 그리고 졸업에 제한요소를 두어(저희학교는 졸업이 안되더군요..) 꽤나 많은 준비시간을 소비하게 되는군요..
몇가지 문제점이 보이네요. 일반화학에서 뭐를 배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십중팔구는 교양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배우셨을 것 같고, 대학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의 교양수업이라는 것은, 수강생들에게 그 분야에 대한 총체적인 안목을 주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치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교수님들은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한 두개 가르쳤다고 교양으로써의 화학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공의 이해란 과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에서의 학점제가 좀 더 flexible 하다면, 이런 것은 처음 3주동안만 가르치는 1학점짜리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Pion
Ged님은 저희학교 같군요. 과도기적 학부제의 단점인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이미 전공을 하고싶은 분야가 확실했기 때문에, 필수과목들이 많은 1, 2학년은 정말 악몽이었습니다. 원하는 전공과는 별로 상관없는 전기회로실험, 전자회로실험, 전자기학등을 들어야한다는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더군요. 최소한의 규제는 있어야 겠지만, 이런 경우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던것 같습니다. 학생을 믿을순 없는건지... --Dennis전공의 이해란 과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에서의 학점제가 좀 더 flexible 하다면, 이런 것은 처음 3주동안만 가르치는 1학점짜리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Pion
수리논리학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두 번 째 수업부터인가 이 수업이 정말 교양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교수는 우리들의 머리 속에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집어넣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은 대부분이 수업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우리에게는 거의 아무 의미가 없어보이는 것들이다. 논리학 중에서도 관념의 덩어리인 수리논리학이니 그럴만하다고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학생들이 이 수업에서 얻은 지식을 자신이 이미 가진 것과 이리 저리 링크걸고, 또 스스로 의미를 구축하도록 유도하며, 메타적 인지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대학 교양 교육 아닌가. 그런데 왜 문제 푸는 테크닉만 배우고 있는가. 그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니 너무 잘 안 채 -- 학점을 위해.
또 다른 문제는 수업의 "범위" 문제이다. 교양 교육이라면 우선은 지식의 전달보다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고, 넓고 다양한 것을 개론적으로 접하되, 그 중 몇가지에 대해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교양이 아니다. 직관주의 논리의 의미에 대해 논구하고 직관주의 논리가 탄생한 맥락과 배경, 그 문제의식을 차분히 훑기보다 헤이팅대수니 LJ체계니, Kripke 모델이니 하는 것들로 "문제를 위한 문제" 풀이에 전념한다. 마치 매 시간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 대비 수업같다. 게다가, 교양으로 수리논리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카테고리나 토포스, 양상논리, 직관주의논리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적 성과"를 가르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장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가르친다는 것이 그 수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닐진대. 특히 교양이라면.
뭔가를 머리 속에 집어넣도록 강요받기 이전에, 그런 개념이 등장한 배경과 필요성, 그 개념을 만든 이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다. 이것은 너무 이상적인 바람일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교수님을 원망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다. 비인기 과목임에도, 하나라도 더 학생들에게 전달을 하려고 하시는 그 열성과 성실함을 나는 존경한다. --김창준
교양 수업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창조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는것도 유용할듯 싶다. 잡종은 어린시절 (물론 지금도 어리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외의 것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해갈 수록,타 분야의 책을 읽고 내가 관심있는것들을 바라보면 훨씬 다른 눈으로 내 전공 분야가 보이는 걸 느낀다. -잡종
See also 슈바니츠의교양
교양은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양이 풍부하다'는 곧 '상식이 풍부하다'가 되겠죠. 전문분야를 논하기 전에 그 학문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습득하는 것은 '상식'을 습득하는 것이 되겠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술의 역사와 종류'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설마 실습없이 책을 외우는 수업은 아니겠죠? -- aimnnd
대학교 1학년때 "동양사개론"을 교양선택으로 들었었다. 원래 나는 역사(세계사든 국사든)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었으니까. 그런데 고등학교때 배운 세계사중의 중국사수업이랑 똑같았다...ㅠ.ㅠ 그래도 대학교수가 강의하니 뭔가, 이러저러한 사건들의 역사적인 의미를 파헤쳐본다거나, 이런 저런 관점들을 토론해본다거나, 하는 걸 기대했었는데....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사학과 애들의 전공선택과목이었다. 그때문에 그게 고등학교식 암기 수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교수님은 젊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수업이 그런식이라 김이 빠져버려서 혼자 동양사 개론책이나 읽기 일쑤였다(다른책이 없으니까). 시험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고....(글씨도 상당한 악필). 레포트 쓰는데도 고생했다. 교양선택이라고 느슨하게 생각하던 나와는 달리 그게 전공인 애들은 일찍부터 참고서적을 도서관에서 빌려가 자기들끼리 돌려보았다.나 빼고는 다 같은 과 학생이었으니까. 나중에 당황한 나는 그 참고서적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리고 나선 절대로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교양선택을 정하지 않았다. 대학교 오면 배우고 싶은거 배우니까 좋다고 하던 생각이 산산히 부서지던 순간이다....전공은 무지하게 싫어하던거였다. 화학, 고등학교때 화학때문에 목메달고 싶은 내가 유기화학 무기화학 생화학 정량따위를 배우고 있으니. 어쨌든 그때문에 대학와서 공부를 안하는 악습이 몸에 배이고 말았다. 젠장.... 4년동안 공부하는게 고통이었다. 흐미...난 여기서 공부한는데 미친여러분들이 부러워 죽을지경이다. 이제와서야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을 혼자 파헤쳐보며 "공부하는 재미"를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