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인터넷하니난위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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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인터넷 하니, 난 위키한다



1. 홍길동씨,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다


인터넷은 흔히 정보의 바다라는 상투적 술어로 미화되곤 한다. 하긴, 빠져죽기도 하는 곳이 바다이니, 적절한 비유일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심연으로 빠져 죽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니며 보물까지 건져낼 수 있는지 이 시대의 홍길동씨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홍길동씨는 춤에 대해 관심이 대단하다. 그이는 오늘도 인터넷 상의 무도(舞蹈) 관련 사이트를 순람하고 있다. 수 십 장의 웹 페이지들이 눈앞을 휙휙 지나가며 주마간산 식으로 서핑을 하던 중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이름하여, "라틴 댄스". 그이의 공부는 주로 힙합이나 테크노, 째즈 등의 일인무 위주였던지라 간혹 무도장에서 쌍쌍이 정겹게 살갗을 비비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연인들을 보면 가슴 언저리가 아파 오곤 했다. 그래 결심했어! 라틴 댄스를 배워서 나도 뜨거운 남자가 되리.

일단 그 사이트의 내용을 주루룩 읽어봤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최상의 교육은 대화라고. 질문할 것이 있는데 여기 저기 뒤집어 봐도 게시판 하나 없다. 그래, 그러면 동호회 게시판으로 가보지 뭐. 오호통재라. 왜 그곳에는 이다지도 남녀 정담만 넘칠 뿐이고 댄스 테크닉 하나가 귀하더란 말이냐. 게시판 앞뒤를 훑어봐도 본인 같은 초보자들의 질문만 일정 주기로 반복되고, 그렇다고 또 작심을 하고 줄줄이 읽어보려 해도 그 "느낌"을 얻기 위해서는 지리한 쓰레드를 수십개를 따라가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다니.

이 때 그이의 뒷통수를 휘갈기며 번쩍이는 것이 있었으니, 아하 위키위키가 있었군. 댄스 위키위키 사이트에 가서, 자신이 가진 질문의 핵심 키워드를 주소창에 쳐넣으니 수 십 명의 경험이 "한 문서"에 축적된 결정체가 바로 나온다. 부가 질문이 있어서 간단하게 자신의 질문 주제를 제목으로 하는 페이지를 하나 생성하고, 질문 내용을 적는다. 뭐, 꼭 질문 형식일 필요는 없다. "라틴 댄스는 스텝이 복잡해서 초보자가 따라하기 힘들다"라는 식의 초보 수준의 문장 한 두 줄이면 충분하다. 틀려도 누군가가 고쳐줄 것이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이 고쳐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다음날 아침 무렵에 다시 위키위키에 접속해서 자신이 만들어 둔 페이지를 열어본 순간, 그는 다시 환희에 빠진다. 그 사이에 소위 강호의 춤 고수 대여섯 명이 와서는, 자기의 초보 글을 전문가 글로 진화시켜놨던 것이다. "라틴 댄스는 스텝이 복잡해서 초보자가 따라하기 힘들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 요체는 리듬과 느낌의 내재화에 있는데...."


2. 씨앗 뿌리고 추수하기


예컨대, 위키위키의 인터넷 주소가, http://www.dance.org/wiki/였다고 치자(실존하지 않는 사이트이므로 오해 없을 것). 그러면, 그곳도 일종의 인터넷 사이트이니 "대문"격인 페이지가 존재할 것이다. 대부분 그 주소는 http://www.dance.org/wiki/FrontPage가 된다. 그 페이지에 가면 몇 몇 중요한 주제에 관한 링크들만 있을 뿐 썰렁하고 황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라틴 댄스"를 바로 주소에 이어 입력해 보자. http://www.dance.org/wiki/LatinDance. 그러면 눈 앞에는 라틴 댄스의 모든 것이 한 페이지에 요약되어 나타난다. 백과사전이라구? 그것과는 다르다. 수백, 수천명의 손길을 거쳐 살아남은, "적응한, 진화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위키위키는 기본적으로 관리자만이 아니라 -- 사실 명시적인 관리자가 없다. 사용자 모두가 관리자인 셈이다. -- 어느 누구라도, 심지어는 아이디가 없는 익명의 사람일지라도 "아무" 페이지나 수정, 삭제, 추가가 가능하다. 아니, 사람들이 그런 "흉악한" 짓을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 그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게 된다. 남의 글을 맘대로 고치는 행위가 없으면 위키위키는 존속할 수 없다.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토록 자신 글의 소유권 유지를 위해 바둥거리고 있건만. 자 화면을 보자. 한쪽 모서리에 EditText라는 링크가 있다. 클릭.

내가 보았던 그 화면의 내용이 모두 나오고, 마치 게시판에서 자기가 쓴 글을 수정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흠...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지(혹은 몇 명인지) 몰라도 철자법에 지지리도 약하군. 여기 저기 필요한 곳에 쉼표니 마침표를 찍어주고 받침 몇개 넣어준다. 뿌듯. 아, 나 오늘 공동체에 봉사했다...

어라. 그런데 재미있는 글이 중간에 보인다. 라틴 댄스의 스텝과 신경생리학의 연관 관계에 대한 진중한 글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 오늘 이 공동체에 확실히 공헌해 보자. 아까 대문, FrontPage에 가서 새로운 링크 DanceAndNeurophysiology 를 만든다. 그럼 이 사이트에 오는 사람은 첫 방에 이 링크를 보게 되겠지. 그러고는, 링크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해당 제목의 페이지가 생성된다. 그럼 우리의 길동씨는 아까 LatinDance 페이지에서 그 부분의 글을 가져다가 새로 만든 페이지에 옮긴다(윈도우학 전문 용어로 복사/붙이기라고도 한다). 그리고는 원문 말미에 자신의 의견을 한두줄 간단히 적는다. "남녀가 함께 허리를 흔들 때 힙이 같이 돌아가는 것이 신경생리학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하지만 운동학적인 측면에서는 몇가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아, 오늘 홍길동씨 무리하는 날이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간만에 http://www.dance.org/wiki를 다시 찾았다. 오오오... 대문을 보니 자신이 뿌린 씨앗이 무성한 열대림이 되어있지 않은가. DanceAndPhilosophy, DanceAndPhysics, DanceAndEngineering, 기타 등등. 이제 그는 모종의 책임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곳 저곳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새 페이지들을 둘러보며 여기 저기 코멘트도 해주고 은근슬쩍 "더 정확하고 예리하며 명쾌한 말로" 고쳐놓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름하여 老子的인 위키관리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렇게 길동씨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댄스 황태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3. 위키위키의 단순함


이 이야기는 분명 픽션이지만,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아직 춤을 주제로한 위키위키 사이트는 (필자가 아는 한) 없지만, 기술, 철학, 과학, 컴퓨터, 문화비평 등의 분야에서 위키위키의 활약은 눈부시다. 위키위키는 하와이어로 "빨리"라는 말이다. 위키위키를 1994년에 처음 만든 프로그래머 워드 커닝엄은 모든 웹페이지를 어느 누구나 손쉽게 빨리 고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박한 꿈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이 경험을 통해 얻은 귀중한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위키위키를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고칠 수 있고, 링크의 연결이 직관적이고 간단하며, 동일 공간에서 텍스트가 진화할 수 있다는 점들이 위키위키만의 고유한 장점이었다. 이 시스템은 점차 컴퓨터 전문가라는 협소한 울타리를 넘어서 신문사 기자들, 회사 직원들, 동호회 회원들, 결국은 개인의 정보관리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위키위키는 단순하다. 문자 위주의 인터페이스이고, 현란한 플래시 동영상도 없다. 하지만 단순하기에 더 빠르고 편리할 수 있다. 기능은 적지만 유연한 도구가 높은 자동성에 복잡한 기계를 압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게임만 봐도 그렇다. 바둑를 생각해 보라. 기본적인 규칙은 바둑이 훨씬 단순해 보인다. 대신 그 사용에 있어 무한한 변화가 나올 수 있다. 위키위키는 이런 바둑을 꼭 빼닮았다. 단순해 보이지만 플레이어로 하여금 무한한 변화를 끄집어 낼 수 있게 한다. 장기는 처음 접근하기 쉽지만 바둑에 비해 그 묘용이 부족하다.

필자는 조만간 위키위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격조있는 감수성을 갖춘 이 시대 시민성의 필요조건으로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러기를 희망한다. 익명 게시판에서 피튀기는 설전이 있었고 누가 충격을 먹어서 글을 모두 지우고 자살을 시도했다니, 모 기관에서 의식없는 사용자들의 잘못된 게시판 사용으로 사이트를 폐쇄했다니 어쩌니 하는 슬픈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오늘도 난 텍스트 키우러 간다. 위키위키로.


p.s.
위키위키 사이트(고유명사가 아니고 일반명사로서의 위키위키)를 찾아가보고 싶은 분들은 웹서치를 통해, "wikiwiki"나 "위키위키"를 검색하시라. 이 때 주의할 점은,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관리자급의 권한이 주어지는 공간이기에 왜곡된 영웅심리로 모든 페이지를 지워버린다든가 하는 만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부디 세계 곳곳의 위키 사이트를 탐방하고 실험해 보려는 분들께서는 나의 행동이 수백 수천명의 집적적 지적 결정체에 곧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화엄적 사상을 갖고 책임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연습을 해 볼 요량이라면 대부분의 위키 사이트가 갖춰놓은 "모래상자" (아이들이 맘대로 모래성을 만들고 부숴버리고 할 수 있는 연습공간에 대한 메타포임) 즉, WikiSandBox라는 페이지를 이용하시길 바란다.

<김창준, 과학동아 2001년 7월호 위키위키기사의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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