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알아야할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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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알아야 할 것들

이 글은 성과 패기라는 잡지에 '대학생이 알아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동철님이 약 2년간(94년 3·4월호-96년 1·2월호) 연재하였던 글입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생활 전반을 개괄하면서 대학 시절 읽어야 할 책들을 소개한 글입니다. 신입생이나 재학생들이 읽고 참고하시면, 대학 시절의 생활과 독서에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필자 이동철님은 고려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시고 현재 강의를 하고 계신 분으로, 옮긴 책으로 『유교사』, 『중국을 움직인 30권의 책』 등이 있으며, 최근 '한국 통일의 문화적 의의와 전략'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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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첫번째,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낼까?
1.1. 인간, 언제나 배우는 존재
1.2. 대학, 그 무한한 가능성
1.3.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1.4. 우선적으로 먼저
2. 두번째, 독서에 관하여
2.1. 어째서 독서가 필요한가?
2.2. 독서의 방식에 관하여
2.3. 어떻게 책을 찾고 구할까?
2.4. 독서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
3. 세번째, 신문과 잡지를 읽는 이유는?
3.1. 펠리칸이 바다로 간 까닭은
3.2. 잡지에 관한 몇 가지 잡담
3.3. 신문을 잘 읽는 법에 대하여
4. 네번째, 대중문화의 바다를 헤엄치기 위하여
4.1. 이념에서 문화로
4.2. 시네마 천국을 찾아서
4.3. 비디오는 '니' 친구?
4.4. 참을 수 없는 만화의 유혹
4.5. 문학의 위기 또는 변용: 대중 문학의 세계
4.6. 바로 보는 바보 상자: TV를 읽자!
4.7. Who'll stop the rock!
4.8. 건강을 위해 지나친 오락을 삼갑시다
5. 다섯번째, 교문을 나서는 후배들에게
5.1. 졸업, 또 하나의 시작을 위해
5.2. 직업으로 가는 길의 약도
5.3. 성공으로 가는 일곱 개의 드래곤볼
5.4. 시간을 잡아라
5.5. 사람은 '사람의 사이(人間)'이다
5.6. 나날이 새로워라
6. 여섯번째, 외국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6.1. 어째서 외국어인가?
6.2. 적과의 동침
6.3. 제1막, 외국어 학습의 일반론
6.4. 처방을 찾아라!
6.5. 영어 실력 향상의 비결
6.6. 꼬리에 꼬리를 물다, 단어
6.7. He read a book
6.8. 다다익선(多多益善), 사전에 대해
6.9. 치약과 쥐약, 그 치명적 실수
6.10.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6.11. '번역(飜譯)'은 '반역(反逆)'이다
6.12. 마지막으로
7. 일곱번째, 대학에서의 학습, 그리고 학문의 세계
7.1. 대학에서의 학습은 어떻게 다른가?
7.2. 간단한 충고와 잔소리 몇 마디
7.3. 보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 그 하나
7.4. 보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 그 둘
7.5. '필드상(賞)'을 아십니까?
7.6. 어느 사학자(史學者)의 회고
7.7. 젊은 교수들의 다양한 경험들
7.8. '학문(學問)'은 '문학(問學)'이다
7.9.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7.10. 우리 학문으로 가는 길
7.11. 현대 대학에서 학문이란
8. 여덟번째, 젊은 날의 우정, 사랑 그리고 결혼
8.1. 에이즈보다 무서운 병은?
8.2. 벗이 있어 멀리서 오니
8.3. 덩달이의 엉터리 그림 숙제
8.4. 두 유태인은 어떻게 성공했는가?―결혼의 어려움
8.5. HE IS BACK!
8.6. 성(性), 그것이 알고 싶다
9. 아홉번째, 세계화 조류 속에서의 대학 생활
9.1. 세계화, 그 복합적 성격
9.2. 세계의 역사, 그리고 지리
9.3. 예술을 찾아서
9.4. 타문화(他文化)의 이해를 위해
9.5. 정보와 시사로서의 세계화
9.6. 문명사적 과제로서의 세계화
10. 열번째, 다시 교양 교육으로!
10.1. 지난 여름, 무역 센터에서
10.2. 다시 한 번 대중 문화를 생각하며
10.3. 인문적 교양의 근원으로서 문학(文學)
10.4. 소금은 달다 : 고전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11. 열한번째, 대학생과 글쓰기
11.1. 튼튼한 기초는 성공의 지름길
11.2. 글쓰기의 기본 안내서들
11.3. '바칼로레아'를 아십니까?
11.4. 논문과 리포트를 쓰는 법
11.5. 작가와 전통을 생각한다
12. 열두번째, 우리들의 되돌아온 출발점, 대학
12.1. 우리들의 되돌아 온 출발점, 대학
12.2. 그토록 오래된 : 대학의 기원과 역사
12.3. 여전히 새로운 : 대학의 기능, 위기, 개혁
12.4. 겹겹이, 또 켜켜이 : 복잡성의 제도
12.5. 안에서 깊숙히 :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12.6. 결코 끝나지 않는 : 아쉬움을 달래며


1. 첫번째,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낼까?


동아시아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의 하나인 『논어(論語)』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君子)답지 아니한가?"

1.1. 인간, 언제나 배우는 존재

여기서 선생님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논어』는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정리한 책이다. 도대체 공자의 제자들은 어째서 이 말을 책 전체의 첫머리에 실어 놓은 것일까? 여기서 잠깐 국민학교 교실의 한 장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선생님이 '위선자(僞善者)'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여러 분 중에 위선자의 예를 들어 볼 사람은 없나요?" 그러자 우리의 용감한 똘이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위선자란 학교에 올 때 웃으면서 오는 학생입니다." 아마도 똘이 학생은 배움이란 즐겁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대학생 여러분들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배움이란 괴로운 것, 강요와 억압에 의해 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고.
앞서 인용한 『논어』의 첫 구절의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이 해석을 보다 전문적으로 논의하자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되기에 여기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논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통상 '학(學)'이라는 글자를 '배우다, 배움'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학문(學問)'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배우고 물음(學問)'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학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흔히 '학문의 전당'이라고 대학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학문'(즉, 서구의 사이언스Science를 번역한 말)과는 다르다. '배울 학(學)'의 의미는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본받는다, 모방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전통 문명에 있어서 배움이란 궁극적으로 '본받고 모방하는' 행위였다. 배움이란 이론을 학습하는 행위가 아니다. 배움이란 이상적인 인간 혹은 인격을 본받고 모방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이란 바로 인간을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생의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서구의 근대 과학 또는 근대 학문은 학문과 인생을 분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제도적으로 받는 교육은 적어도 국민학교 이후, 바로 이러한 서구의 근대적 학문을 근간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인생의 문제와 무관한, 적어도 무관하게 보이는, 객관적 지식의 체계를 수용하고 흡수하는 데 전력 투구하도록 요구 당한다. 똘이 학생의 대답은 어쩌면 이에 대한 항변일지도 모른다.

1.2. 대학, 그 무한한 가능성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다수는 대학생일 것이다. 갓 구어낸 빵처럼 따끈따끈하고 신선한 새내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취직 고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4학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에서 대학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실적인 대학의 모습이야 우리들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자신은 국민학교이래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한 번도 개근상이나 정근상을 타 보지 못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학교는 가기 싫은 곳이라는 느낌을 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들어가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창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대학이야말로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곳이며,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경우가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학과나 전공 같은 제도적 틀보다도 대학 생활 자체가 더욱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정말이지 어떤 전공이나 학과도 알고 보면 부드럽고 소중하다. 어쨌거나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학과나 전공의 틀만이 아니라 자신이 보내는 대학 생활 전체이다. 우리 나라처럼 고등학교까지는 상당히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교육을 받는 곳에서는 대학을 입학할 때의 모습이란 대부분 비슷하다. 설령 내신 성적이나 수능 고사 혹은 본고사의 성적에 우열의 차이는 있더라도, 남보다 월등 탁월한 수재나 천재가 아닌 이상, 서로 고만고만하며 기껏해야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4년의 생활, 남학생의 경우는 때에 따라 군대를 포함해 10년만에 졸업하는 일도 있겠지만, 이 짧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크게 좌우된다. 어떤 사람은 빌 게이츠(Bill Gates)처럼 학교를 중퇴하고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대학 생활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빌 게이츠가 되기보다는 대학 생활을 충실히 보내며 여러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학의 무한한 가능성이란 여러분이 축제 때 '파트녀(또는 파트남)'와 함께 먹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무한한 가능성은 엄청난 좌절과 무수한 방황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문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생들이 당황하게 되며 심지어 황당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런 당혹과 충격은 이전까지의 교육이 타율적이고 강제적이었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대학은 여러분이 성인이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생활을 스스로 일구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여기서 똘이의 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타율적이고 강제적이었던 이전의 교육과 자율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할 대학의 생활을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비극은 있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이 '비극'의 그럴듯한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이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근대적 '학문'의 전당이라고 일컬어지던 대학도 더이상 '학문의 전당'이나 '진리의 상아탑'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대학은 '전문 직업인 양성소'이다. 이전에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대학을 다녔고, 그들은 사회나 학술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능력이 있고 여건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학문에 전념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고 석·박사를 수료한 뒤에 자기 분야의 전문 연구자나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만 대학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학생은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또한 그 사회 진출의 경로도 자기 전공이나 학과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학 생활의 고민은 단지 새내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전공이나 학과를 소문이나 무지로 지원하거나 또는 단순히 성적의 수준에 맞추어 진학한 경우, 그 고민은 더욱 클 것이다. 이 결과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전공과 상이한 분야를 기웃거리기도 하며, 심지어 남학생의 경우 일찍 군대에 자원 입대하는 것이다.

1.3.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앞에서 나는 전통의 학문은 인생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으며, 또한 이상적인 인간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제도는 이런 문제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울러 본받을 만한 인격이나 인간을 주변에서 쉽사리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주위에 있지만 아직 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자신이 보다 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다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과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독서(讀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에서 많은 선배나 교수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고전(古典)을 읽어라! 명저(名著)를 읽어라! 여기서 고전과 명저를 읽는 일은 어떤 면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길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고전과 명저의 이해도 심화되는 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전과 명저를 읽을 수 있고,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과연 어떻게 하면 배양할 수 있겠는가 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가이다.
현재 나는 대학을 '30년대' 동안 다니고 있다. 결코 30년이 아니다. 78학번이기 때문에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30년대를 통해 대학을 다녔다는 말이다(박사 과정을 포함해서). 하지만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교육이 지나치게 근대적 학문관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라는 점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분야나 전공은 가르쳐 주지만, 공부하는 법이나 생활하는 법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고기를 낚아 주기만 할 뿐, 고기를 낚는 방법은 별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비록 대학 입학을 전후하여 이른바 '오리엔테이션'이 있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소략하다. 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을 소개받는 신입생 당사자도 흥분에 들떠 막상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지나치는 일이 흔하다. 물론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시행 착오 끝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선배나 친구, 혹은 조교들로부터 충고나 조언을 받아서 대다수 학생들은 커다란 문제없이 그럭저럭 대학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만약 대학 생활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안내를 받는다면, 그 생활은 더욱 즐겁고 보람차지 않을까? 항상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단지 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대학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한편으로 선배로서, 한편으로 선생으로서 대학 생활을 위한 안내와 충고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안내와 충고를 모든 개개인의 사정과 상황에 맞추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대학 생활에 관련된 책을 소개함으로써 이를 대신하려고 생각한다.

1.4. 우선적으로 먼저

앞서 나는 고전과 명저에 대해 말했다. 어떤 사람이 "고전이란 누구나 읽으라고 권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는 다소 풍자적인 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고전과 명저는 무엇보다 대학의 독서 생활에서 기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교양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전과 명저란 결국 독자에게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만 될 뿐이다. 이 연재에서는 그보다 오히려 대학 생활의 구체적 측면에 도움이 되는 책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책이 자신의 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고 유용한지 먼저 충분히 경험을 쌓는 것도 고전과 명저를 향한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내가 첫번째로 안내하고자 하는 책은 대학 생활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급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준비하였다. 먼저 졸업생과 재학생이 쓴 『대학 생활 소프트』(일빛, 1994)를 소개한다. ①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는 지혜, ② 동아리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는 비결, ③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지혜, ④ 시험, 그리고 그 이후, ⑤ 여가 시간에 대학 생활을 즐기는 비결 등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은 83개의 항목을 통해 대학 생활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취방을 고르는 법에서부터 유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대학 생활에 필요한 요령을 별도의 박스로 처리하고 있는 꼼꼼함이 눈에 띤다. 한편 졸업생들이 자신의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새내기들을 위해 대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정리한 『재미있는 대학 여행』(이목, 1994)도 있다. 마지막으로'대학,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찾을 것인가'라는 부제의 『새내기 일년 나기』(대동, 1994)가 있다. 이 책은 입학하는 3월부터 새내기 생활을 마치게 되는 다음해 2월까지 대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월별로 정리하였다. 물론 이들 말고도 이전에 나온 책들이 있으나, 현재의 대학 생활에 다소 맞지 않기에 생략한다. 학교나 학생회에서 발행한 대학 생활의 소개 책자와 함께 이들 책을 본다면,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다만 이 세 책은 각기 특색이 있으므로 서점에서 직접 서로 비교한 뒤 자신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것으로 선택하기 바란다).

이상은 대학 생활의 전반적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달리 말하면 청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가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ion)"고 했지만, 이 요구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바로 자신에 대한 성숙된 이해일 터인데, 이를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마지막으로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열 일곱에서 스물 다섯까지』(도솔, 1992)이다. '나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지금 알아두어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은, '남자편'과 '여자편'이 각각 별도로 나뉘어 있다. 자기가 직접 사보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이성 친구를 위해 사서 선물로 전해 주는 것도 또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자신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여러 질문의 방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발행된 것을 번안한 책이라 곳에 따라 우리 실정에 부적절한 사례도 있지만, 어쨌든 대학 시절을 보내면서 반드시 읽어 볼 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지성과 패기 1994년 3·4월호에서】


2. 두번째, 독서에 관하여


흔히 현대를 '정보 폭발의 시대'라고 한다. 오늘날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매몰되어 있다. 실상 현대에 있어서 인간 행위의 많은 부분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이해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종사하는 전문적인 연구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업 등 일반 사회에서도 정보를 흡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예컨대 책을 빨리 읽기 위한 속독술(速讀術)도 미국의 경우 주로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발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정보가 많을수록 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능력은 대학 시절의 독서를 통해서 배양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독서는 정보만이 아니라, 오락과 교양을 함께 제공한다.

2.1. 어째서 독서가 필요한가?

이렇게 대학 생활은 물론이요, 졸업 후의 사회 생활을 위해서도 올바른 독서법의 체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무슨 책을 읽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하나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중국의 책에는 137가지의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 내용이 모두 상이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다양한 독서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새삼 놀라게 한다. 따라서 이 글은 독서에 관한 몇 가지 측면을 언급하며 관련 책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알아보기 바란다. 지난 호에서 나는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배움'이란 궁극적으로 '본받고 모방하는 행위'라고 말하였다. 즉, 이상적인 인간 혹은 인격을 본받고 모방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생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였다.
아울러 본받을 만한 인간상을 주위에서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여러 분은'사숙(私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사모하며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이라고 국어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이 말의 출전은 『맹자(孟子)』이다. 맹자는 공자(孔子)보다 100여 년 뒤에 태어났다. 당연히 그는 공자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항상 마음속에 자신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간직하였던 것은 바로 공자의 삶이었다. 그는 이런 자신의 행위를 '사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대학 시절에 가급적이면 훌륭한 자서전이나 인물 평전을 읽기를 무엇보다 권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줄 뿐 아니라 때로는 본받아야 할 삶의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남들에 비해 뛰어난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엉터리 위인전과는 달리, 좋은 평전이나 훌륭한 자서전은 그들이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지녔음에도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리하여 우리는 인간의 여러 유형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반성할 수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여러 인물들에 대한 열전(列傳) 형식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런 책을 통해 뛰어난 인물들을 간략하게나마 접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류의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한겨레신문사 문화부에서 펴낸 『20세기 사람들 상, 하 : 레닌에서 비틀스까지 1백명으로 본 20세기』(한겨레신문사, 1995), 『발굴 한국현대사인물 1, 2, 3』(한겨레신문사, 1991)과 김우창·도정일 등이 엮은 『103인의 현대사상 : 20세기를 움직인 사상의 모험가들』(민음사, 1995) 등이 있다.

2.2. 독서의 방식에 관하여

독서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남독(濫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독서론에서는 남독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언급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어느 정도 남독이 필요하다.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상이한 분야와 다양한 종류의 책을 폭넓게 읽는 것은 인간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 준다.
일본의 어떤 유명한 석학(碩學)이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그처럼 박식한가? 그의 대답은 "something about everything, everything about something"이라는 것이다. 가령 중국과 관련된 어떤 분야를 전공한다고 할 때, 문학이건 철학이건 사학이건, 또는 정치, 경제와 같은 현재의 시 사 문제이건 중국과 관련된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 자신의 특정한 전공 분야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을 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자기의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방면에서 얻어지는 수가 많다. 이는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이 사물을 특정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눈이라고 한다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자기의 고정된 시각이 아닌 별도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런 것은 대화를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기회가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다. 더욱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대화하는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준다.
남독과 관련해 한 가지 충고한다면, 이를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저자(著者)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가급적 그 저자의 모든 것을 읽도록 권하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를 통해 세계와 인간과 사물을 이해한다면, 인간적인 성장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를 발견하고, 그의 전집을 읽고 그에 관련된 책들을 읽는 일은 대학 시절에 가능한 지적 즐거움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남독과 관련해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남독'을 한다 해서 '정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법통(一法通)이면 만법통(萬法通)"이라는 말도 있듯이, '다독(多讀)'과 '정독(精讀)'은 독서에 있어서 동시에 추구해야 할 두 마리 토끼라 할 수 있다. 전공의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다독술(多讀術)'이 필요하고, 전공 분야와 관련해서는 숙독(熟讀)을 통해 한 권의 책을 샅샅이 훑어 내는 정독술(精讀術)이 필요한 것이다.

2.3. 어떻게 책을 찾고 구할까?

우리 나라에서도 한 해에 수만 종의 책이 나온다. 하루에도 몇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일일이 모두 추적할 수는 없다. 외국의 경우에는 서평(書評)이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아직까지 이런 도서 정보의 유통이 제대로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를 보완하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신문의 서평과 신간 안내를 들 수 있다. 일간지에 나오는 서평과 신간 안내는 신문에 따라 게재되는 요일이 다르므로, 적어도 해당 신문의 게재 요일을 알아두는 것이 편하다. 다음으로, 기타 주간지와 월간지의 서평과 안내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종로나 교보, 영풍 등의 대형 서점에서 계절에 한 차례 신간 안내를 발행한다. 이 또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출판사에 따라서 자사의 도서를 소개하는 책자(출판사 도서목록)를 발행하기도 하므로 만일 관심이 있으면 이것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평과 신간 안내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출판저널』을 빼놓을 수 없다. 격주간으로 발행되는 『출판저널』은 독서 생활에 좋은 반려자가 될 것이다. 기타 월간으로 『책과 인생』, 근래 발간된 『뿌리와 날개』(현재는 휴간) 등을 들 수 있다.
대학생의 경우 교재류일 경우는 구내 서점이나 학교 근처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점(書店)은 반드시 책 구입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때로 서점은 '도서관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신간 서적의 경우 도서관은 서적을 구입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나라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장서량에 있어, 우리 나라 최대 대학 도서관인 서울대 도서관보다 더 많은 장서를 보유(40만종, 230만권)하고 있기도 하다. 일주일이나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형 서점에 나가는 것은 대학생으로서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해도 좋다. 대형 서점은 분야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가급적이면 자기가 필요한 분야를 살펴보고 난 뒤 여타의 관심 분야도 살펴보도록 한다. 약속 장소를 서점으로 정할 경우는 어떤 분야라고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관심이 있는 책을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간단히 도서관에 대해 언급한다면, 도서관은 각기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도서관의 특성을 아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절차나 규정, 그리고 도서 분류의 방식을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도서 분류 방식의 특징을 안다면 훨씬 필요한 책을 찾기 싶다. 이와 관련해 서점과 도서관에 관한 가이드로 조경환 편저 『서울북맵』(진선출판사, 1993)을 소개한다. 서점가 지도, 대형 서점 16곳, 전문 서점 160곳, 대형 도서관 3곳, 전문 도서관 200곳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노우훼어(know-where)'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때로는 여기 적혀 있는 전문 서점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된다. 자기의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에 관련된 전문 서점을 알아두고 자주 찾아가는 것 또한 대학 시절에 할 수 있는 훌륭한 지적 훈련이다.

2.4. 독서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

자, 이제 독서에 관련된 책을 알아보도록 하자. 책과 독서에 관한 일반적 안내, 구체적인 독서법, 읽을 만한 책자의 안내서, 그리고 독서 체험기 등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안도섭의 『책과 어떻게 친구가 될까』(소나무, 1993)는 책과 독서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책과의 만남, 독서의 향기, 독서를 위한 기본 자세로 나누어진 제1부 '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책과 독서의 이모저모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장서와 서재의 구상, 어떻게 책과 친할까, 여러 가지 독서법으로 이루어진 제2부는 지적 생활을 위한 독서의 측면을 다양하게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 책에 관한 명언(名言)과 한국과 서양의 명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독서의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책으로 먼저, 모티머 J. 애들러와 찰즈 밴 도랜이 지은 『독서의 기술』(민병덕 옮김, 범우사, 1993 2판)을 추천한다.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는 양서(良書), 다시 말해 명저를 지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읽기 위한 규칙과 태도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들은 독서의 수준을 '이 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초급 독서', 시간 안에 내용을 파악하는 '점검 독서', 책의 내용에 관련된 것을 계통적으로 읽는 '분석 독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몇 권의 책을 읽는 '신토피칼 독서'로 나누면서 그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한다. 제1부 '독서의 의의'에서는 독서 기술과 적극성, 독서의 수준에 대한 논의를 한 후 '초급 독서'와 '점검 독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제2부는 제3수준의 독서인 '분석 독서'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는 책을 분류하는 법, 책의 구성을 파악하며,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에 대해 먼저 말한다. 그리고 나서 책을 올바로 비평하고, 저자의 주장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법, 기타 참고 도서를 활용하는 법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소설, 희곡, 시 등의 문학을 읽는 법을 말한다. 제4부 '독서의 최종 목표'에서는 '신토피칼 독서'의 방법과 원리를 말한 뒤, 독서가 정신의 성장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논하고 있다. 이론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독서의 절차와 기술을 계통적으로 가르치는 과학적 독서법이 서술된 것이, 이 책의 강점이자 특성이라 하겠다. 따라서 적어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최영호 옮김, 청하, 1988)는 『독서의 기술』을 공저한 모티머 J. 애들러의 단독 저술이다. 원서의 제명은 전자와 같이 'How to Read a Book'이다. 전자와 달리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각종 명저를 소개하고, 그 저자들의 기본 의도를 찾고 오늘의 여러 저서에 어떻게 맥이 닿아 있는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제1부 '책읽기의 적극성', 제2부 '책읽기의 규칙', 제3부 '독자의 나머지 생애를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으로 고전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작가인 가토 슈이치의 책을 편역한 『독서야, 너 정말 재미있구나』(명지사, 1993)는 1부 '책은 어디서 읽는 게 좋을까'와 2부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 기술'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독서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음을 역설한다. 2부는 ① 천천히 읽는 정독술(精讀術), ② 속독술(速讀術), ③ 책을 읽지 않는 독서술, ④ 원서 해독술, ⑤ 신문과 잡지를 읽는 법, ⑥ 어려운 책을 쉽게 읽는 비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책들에 비해 자유로운 서술로 독서법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것이 특징이다.

다음으로는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양서를 안내하는 책자를 소개한다. 먼저 한양 대학교의 '교양 필독 도서 선정 위원회'가 엮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 꼭 읽어야 할 양서 100권』(한양 대학교 출판원, 1994)이 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글과 교양 필독 도서 100권에 대한 해제, 그리고 270권의 추천 도서 목록, 나의 독서 일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독 도서는 고전적 가치가 있는 명저 중에서 일반 교양에 알맞은 것을 필자나 역자도 고려한 세심한 기준과 원칙 하에 100권을 선정하고 있다. 추천 도서에는 앞에서 제외한 문학 작품, 그리고 보다 전문적 가치가 높은 고전적 명저나 양서, 또는 전공 과목과 연계된 참고 도서도 수록하고 있다. 양자는 모두 분야를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종교·윤리·도덕 등의 '바르게 사는 길', ② 철학·사상 등의 '삶의 빛과 지혜', ③ 문학·예술 등의 '아름다움의 세계를 찾아서', ④ 역사·전기 등의 '선현의 발자취', ⑤ 사회 과학과 관련된 '더불어 사는 길', ⑥ 자연과학을 이해하는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등불'.
다음으로 '한겨레신문이 권하는 좋은 책 일백 권'이라는 부제를 지닌 『책이야기』(한겨레신문사, 1993)가 있다. 이 책은 60년대 이후 출판되어 한국 지성사와 출판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책들을 1주일에 한 번씩 선정해서 연재한「책이야기」의 100회 분을 모은 것이다. 따라서 단 순한 서평이 아니라 지난 3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책과 시대에 대한 기록이자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고려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문학편'과 '논저편'의 2권으로 구성된 『교양 명저 60선』도 대학생을 위한 좋은 안내서이다.
독서 체험기로는 고은 등이 엮은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민음사, 1994)가 있다. 1부 '이 한 권의 책'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독서 경험을 세세히 담은 글들을 통해서 옛 고전에서 현대의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책 세계가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개인에게 책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할 수 있고, 다양한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많은 시사를 받을 수 있다. 2부 '책과 문화'에서는 '책읽기란 무엇이며, 그 의미는 어떻게 완결되는가' 그리고 '책 속의 길찾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문제를 일반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1부의 구체적 경험과 2부의 원론적 접근을 통해 독서의 다양한 측면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특색이자 장점이라 하겠다. 또다른 독서 체험기로 '한국의 대표 지성 51인의 책과 인생'이라는 부제로 한겨레신문사가 펴낸 『내 인생의 책들』(한겨레신문사, 1995)이 있는데, 이 책은 독서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를 명사들의 고백을 통해 깨닫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독서와 책, 출판 등을 테마로 근래 출간된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김지원 등 『출판저널』 출신 기자들이 엮은 『책속에 숨어있는 99가지 책이야기』(한길사, 1996)는 책과 독서가(또는 애서가), 장서와 도서관, 그리고 책읽기에 관한 재미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출신인 고종석이 펴낸 『책읽기·책일기』(문학동네, 1997)는 우리 문단의 비평가, 한국의 출판사, 그리고 책과 출판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담아 낸 책이다. '출판 저널리스트가 쓴 책동네 이야기'라는 부제의 『책을 만나러 가는 길』(열화당, 1996)은 1부 '화제작의 뒤안길', 2부 '책동네 이야기', 3부 '책밖의 경작자들', 4부 '저작권의 세계', 5부 '책과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향신문과 국민일보에서 출판 전문기자로 재직한 저자 손수호의 경험과 안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끝으로, 강준만 교수의 대중문화 비평집인 『고독한 대중』(개마고원, 1996)에 실려 있는 '베스트셀러의 사회학'이라는 부분을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지성과 패기 1994년 5·6월호에서】


3. 세번째, 신문과 잡지를 읽는 이유는?


지난 호에서 나는 정보의 폭발이라는 현대의 특성에 대처하려면 독서 능력의 배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책보다 신문과 잡지 등의 대중 매체를 통하여 정보의 대부분을 얻고 있다. 신문과 잡지는 성격상 책과는 다른 방법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신문과 잡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론은 보다 전문적인 책자의 소개로 대체하기로 하고 먼저, 신문과 잡지를 왜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정보화 시대의 대비이다. 정보를 가장 저렴하게, 그리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인쇄물이 바로 신문이다. 또한 잡지는 대응 속도가 신문보다는 늦어도 책에 비하면 월등히 빠른 매체이다. 정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신문과 잡지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이 국제화 시대를 위한 준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요한 추세인 국제화는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 관심 내지 호기심이 중요하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서 이에 대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외국(어)의 신문과 잡지를 읽는 일이다. 정기 구독은 못해도 중대한 사건이나 사태가 일어났을 때 외국(어) 신문과 잡지가 어떻게 언급하는가를 살펴보고자 노력한다. 많은 경우 이 외국어는 주로 영어이겠지만, 여타 외국어를 전공하거나 아는 경우라면 해당 외국어나 그 나라의 신문과 잡지를 자주 접하도록 한다. 사실 어느 특정 지역의 전문가란 기본적으로 그 지역의 신문과 잡지의 꼼꼼한 독자이다.
마지막으로 졸업 이후를 대비한다는 점이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전문 학술지를 읽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전문 학술지를 미리 읽어보는 일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좋은 준비가 될 것이다. 한편 사회로 진출할 경우는 자기가 관심을 지닌 분야의 업계지, 또는 해당 업체의 사보 등을 보는 것이 좋다. 정기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들 업계지나 사보를 본다면 그 분야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 구체적 실상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취직 시험이나 고시(考試) 등에 대한 아주 좋은 대책이기도 하다. 취직 시험을 대비해 시사 상식 문제집을 읽는 후배를 흔히 보는데, 문제집에 수록된 '시사 상식(時事 常識)'은 사실상 '구사 상식(舊事 常識)'인 경우가 많다. 문제집만으로는 결코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평소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이에 대비하도록 한다. 또한 고시의 경우에도 시사 상식은 매우 중요하다. 고시는 기본적으로 법학자나 정치학자 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도 시사적 감각을 소유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다.

3.1. 펠리칸이 바다로 간 까닭은

배용균 감독이 '동쪽으로 간 달마' 때문에 유명해졌다면, '바다로 간 펠리칸'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겠지만 바로 존 그리샴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The Firm)』­「야망의 함정」이라는 제명의 영화로도 소개되었던 이 소설로 그리샴은 무명의 보잘 것 없는 변호사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 다음 작품이 『펠리칸 브리프』이다. 다시 내놓은 것이 변호사의 세계를 잘 묘사하고 있는 『의뢰인』.
내가 여기서 그리샴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변신한 과정의 한 계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커서는 작가를 지망했지만, 그의 처녀작은 출판사 수십 군데에서 퇴짜를 맞았고, 겨우 자비 출판을 했으나 그것도 몇 백 부나 팔렸을까?(대부분 아는 사람들이 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잡지에서 '서스펜스 소설을 쓰는 법'이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영화를 보듯이 장면 장면이 후딱 후딱 바뀌면서 대사가 많고 지루한 사설은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는 소설. 그래 이거야! 이 말이 정답이네! 그래서 그는 바로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를 썼다. 이후 순풍에 돛단 듯 승승장구 베스트셀러 작가의 길을 달리고 있다.
사실이지 신문이나 잡지에서 우연히 본 기사 하나가 한 개인의 인생 행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그리샴에게만 일어난 보기 드문 현상만은 결코 아니다. 십여 년 전에 컴퓨터에 관한 기사를 보았기 때문에 남보다 일찍 컴퓨터 산업에 투신했다는 기업인이 있다. 또한 하늘을 나는 기구에 관한 잡지 기사를 보고서 열 기구를 이용해 동독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일가족도 있다. 나는 지난 호에서 독서가 사람과의 만남이기도 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잡지 특히 자신이 평소에 접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특수한 잡지를 보는 일은 새로운 분야와 이질적 개성의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이발소나 미장원, 은행 등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평소에 접하지 않는 잡지를 본다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때로는 (학교)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실이나 대형 서점의 잡지 코너에서 다양한 분야의 잡지를 섭렵한다면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3.2. 잡지에 관한 몇 가지 잡담

잡지는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다한 내용물을 편집해 제본한 간행물'이다. 신문과 비교하면 간행 간격이 다르고, 시사성이 적으며, 제본이 되어 있고, 장기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사회가 전문화되고 다양화되면 그만큼 잡지의 수도 증가하고 내용도 다양해진다. 그런데 잡지는 시의성이 크기 때문에 시기가 지나면 그만이다. 버리기 아까운 내용도 많겠지만, 매달 몇 종의 잡지를 읽기란 힘들 뿐 아니라 학생의 경우 경제적으로도 무리이다. 따라서 월간지는 매달 말 경 신문에 실리는 잡지의 목차 광고를 통해 관심 있는 분야만 도서관을 이용해 골라 읽는다. 또한 기획, 특집, 연재 등으로 묶여 있는 종합 기사는 가급적 읽는다. 특히 시사 잡지의 경우 시사 전망이나 인물 인터뷰는 매우 중요하다. 목차 광고를 따로 스크랩하여 학기나 또는 연도별로 다시 보면 각 기간의 주요 시사 쟁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자기 전공이나 관심 분야의 전문 잡지라면 목차를 복사해 파일을 하도록 한다. 특히 1년간의 총목차나 과월호의 목차를 기재하는 잡지는 이를 파일로 만들어 두도록 한다.
만일 잡지를 샀으면, 우선 30분이나 1시간 등 가급적 짧은 시간에 한 권을 전부 읽는다. 심지어 잡지 속에서 곧바로 읽어야 하는 부분은 5분 안에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우선 잡지의 기사를, 곧바로 읽어야 할 기사, 나중에 읽어도 되는 기사,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기사 등 3단계로 분류한다. 당장 읽어야 하는 기사만 먼저 읽고, 나중에 읽어도 되는 기사는 뜯어내어 스테이플로 찍어 둔다. 불필요한 기사는 버린다. 이러면 방 안에 잡지를 쌓아 두는 일 따위는 애시당초 사라질 것이다. 한 잡지에서 꼭 필요한 기사란 대개 1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읽고 싶은 기사의 여부로만 구분해도 정리가 쉬워질 것이다.
잡지는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보는 경우가 드물다.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메모하거나 페이지를 뜯어라. 그리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보관한 후 가치가 있는 자료만 골라서 스크랩한다. 잡지는 필요 없는 자료만 쌓는 일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한 시간 보관 기간을 거친 뒤 스크랩하는 것이 좋다. 계절이나 시기에 민감한 특집 기사, 역사, 건강, 문화 등의 기사는 일년 주기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잡지의 스크랩과 관련해 특히 주의할 것은 복사(copy)이다. 흔히 잡지의 기사나 논문을 복사해 놓고 이를 다 읽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복사는 어디까지나 복사다. 복사를 한 뒤 바로 읽고서 내용을 정리하도록 한다. 복사만 해 놓고 읽지도 못한 채 분실하는 일도 흔하니까.

잡지와 관련해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안내한다. 여의도 여의도 백화점 3층에 있는 '매거진 월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입잡지 전문서점이다. 약 200평 규모의 매장에 4천여종의 수입잡지를 취급하고 있는 곳이다. '성암 잡지도서관'은 일제 시대에 발간된 희귀한 잡지로부터 현재 국내외에서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이르기까지 6만여종의 잡지를 소장하고 있는, 말 그대로 '잡지의 도서관'이다. 서울 명륜동에 있는 이 도서관의 이용 시간은 평일은 9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 토요일은 13시까지이며, 공휴일은 휴관한다. 한국잡지협회에서 운영하는 잡지회관은 매월 잡지 뉴스를 발행하고 있고, 잡지 편집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2층 전시장에 납본된 잡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3.3. 신문을 잘 읽는 법에 대하여

먼저 신문을 잘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신문소프트』(두박, 1993)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제1부 신문을 열 배로 활용하는 기술, 제2부 큰 정보, 제3부 작은 정보, 제4부 신문을 내 정보로 만드는 법, 제5부 300원의 정보 전쟁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정보력을 얻은 신문 독서법'과 '전문 정보 수집 포인트'를 말한다. 제2부에는 ' 파워 게임과 향후 정국 읽는 법', '사회 동향 10분 점검법', '경제 동향 쉽게 잡는 법'등이 있다. 제3부에는 주식 정보, 부동산 정보, 과학기술 정보 등 '전문 정보를 비전문가가 읽는 법'과 상담 안내, 이벤트, 문화, 날씨, 스포츠 등의 '생활 정보를 얻는 법'을 다룬다. 제4부는 '스크랩의 감칠맛', '스크랩의 기본과 기교', '스크랩의 무기', '실전 스크랩'을 통해 신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제5부는 '뉴스와 신문', 신문을 선별하는 '신문 선구안'을 말한다.
목차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신문 읽는 법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지난 호에 언급한 애들러와 밴 도랜의 『독서의 기술』과 함께 『신문소프트』 또한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흔히 학생들은 경제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경제와 관련된 학과의 학생조차 현실의 구체적 경제 현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적다. 경제학의 이론과 지식이 있더라도 현실 경제를 모른다면 살아 있는 경제학이 못된다. 살아 있는 경제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경제 기사를 읽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이 습관은 시사 상식만이 아니라 면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문의 경제 기사는 다른 면에 비해 어렵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먼저 '시사경제연구회'편의 『경제 기사를 읽는 법』(거름 출판사, 1992)이다. 이 책은 서장에서 경제 기사를 읽을 필요성과 그 주요 내용,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말한다. 그리고 모두 92항목으로 된 6개의 장에서 각기 다음의 기사를 읽는 방법과 그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다루고 있다. 1장 국내 경제의 종합적 움직임에 관련된 기사, 2장 세계 경제의 국제적 움직임을 다루는 기사, 3장 화폐나 금리에 관련된 금융 정세의 기사, 4장 국가 경제 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재정 정책의 기사, 5장 경제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증권 시장과 물가 시세에 관한 기사, 6장 기업 경영과 관련된 기사 등이다.
또한 '경제 기사 직독 직해를 위한 책'이란 부제의, 곽해선 지음 『경제 기사 소프트』(사계절 출판사, 1993)도 있다. 전 10장의 이 책은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1장 경제 기사를 왜 읽는가, 2장 경제 기사 독해 테크닉, 3장 경제의 짜임새, 4장 경기 관련 기사를 읽자, 5장 물가 관련 기사를 읽자, 6장 금융 관련 기사를 읽자, 7장 증권 관련 기사를 읽자, 8장 환율 관련 기사를 읽자, 9장 상품 시세를 읽자, 10장 재정 관련 기사를 읽자.
이상의 두 책을 비교해 본인에게 적합한 것을 골라서 참고한다면 딱딱한 경제 관련 기사를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 읽기와 관련해 최근 출간된 『신문 읽기의 혁명』(개마고원, 1997)을 더 소개한다. 오랜 편집기자 생활을 거친 저자(손석춘)가 신문의 편집 과정과 그 과정 속에 교묘하게 내재되어 있는 편집 의도 등을 예리하게 갈파해 내면서 '비판적 신문 읽기'를 위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활자화된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신문에 실리는 '사실(事實)'과 그 행간에 녹아 있는 '진실(眞實)'을 구별해 내는 안목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마지막으로 알아두도록 권하고 싶은 것이 국회 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 기사 색인』이다. 이 색인은 국회 도서관에서 국내의 각종 정기 및 축차 간행물, 그리고 학술 잡지 등의 기사에서 정책 자료 및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 논문들을 분야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다. 현재 격월간으로 나오는데, 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이나 정기 간행물실에 비치되어 있다. 우리 나라는 아직 전문적인 색인이 발달되지 못하여 분야별 색인이 부실한 편인데 이 『정기 간행물 기사 색인』은 학부 시절에 자주 접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성과 패기 1994년 7·8월호에서】


4. 네번째, 대중문화의 바다를 헤엄치기 위하여


4.1. 이념에서 문화로

1980년대가 '이념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에는 '문화'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1990년대의 문화는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복합체로서 통상 '대중 문화'라고 불린다. 현대인의 일상 생활에 대중 매체와 이를 통한 대중 문화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 연세대 앞에 있는 서점 '오늘의 책'(332-8334)에 우연히 들렸더니 '대중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기획 도서전을 개최하고 있었다. 그 안내문에는 대중 문화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책들이 주제별로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의 중점은 어디까지나 대중 문화의 이해와 활용에 있으므로 대중 문화의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그 안내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먼저 『문화 생활 소프트』(좋은세상, 1994)를 소개한다. 전문 필자들이 10가지 분야에 걸쳐 여가를 활용하며 문화 생활을 누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① 책이 만드는 또 하나의 세상, ② 쉽고 재미있는 미술 찾기, ③ 선택에서 감상까지(비디오), ④ 사진의 이해, ⑤ 스포츠를 두 배로 재미있게 즐기는 법, ⑥ 비판적인 신문 읽기, ⑦ 생활 속의 연극 그리고 창조적인 관객, ⑧ 영화 속의 세계, ⑨ 음악, 어떻게 들을까, ⑩ 가자! 저 넓은 PC의 세계로 등이다. 단순한 개괄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이고 유익한 내용들이다.
대중 문화란 대중 매체(Mass Media)를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대중 매체의 이해는 대중 문화의 수용에서 중요하다. 『대중 매체의 이해와 활용』(한나래, 1993)은 대중 매체를 매체별로 분류해 특성과 고유한 기능을 설명하면서 효과적 활용 방법, 비판적 독해의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1부 「현대 사회와 대중 매체」는 서론이다. 각론인 2부 「대중 매체의 이해와 활용」에서는 신문, 잡지, 출판, 보도 사진, 만화, TV, 라디오, 노래, 영화, 비디오, 광고, 뉴미디어를 다루고 있다. 결론인 3부는 수용자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각 장마다 좀더 참고가 될 만한 논저를 소개하는 친철함이 눈에 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소비 대중문화로 해석하면서 우리 사회 여러 문화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강준만의 『고독한 대중』(개마고원, 1996)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4.2. 시네마 천국을 찾아서

영화에 관련된 책자에 대해서는 독서 정보지 『뿌리와 날개』 1994년 5월호에 「스크린 뒤보기, 영화 제대로 읽기」라는 제목으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가 쓴 글이 있다. 보다 자세한 것은 그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먼저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한울, 1991)을 소개한다. 영화의 기본 용어, 영화사에서 작가와 장르, 제3세계 영화에서 홍콩 영화까지 다양한 주제와 다채로운 내용이 날카로운 해설로 채워져 있다. 『영화 이야기 주머니』(녹두출판, 1994)는 문화 생활로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영화를 보는 방식과 상식에 대한 필요한 내용을 재미있게 쓰고 있다.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이 자유 분방하다면, 『영화 이야기 주머니』는 체계적이라 하겠다.
보다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영화의 기본 교과서로 다음의 책들이 있다. 먼저 『영화의 이해』(현암사, 1987), 『영화 예술』(이론과 실천, 1993), 『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제3문학사, 1991)는 『영화 이야기 주머니』의 저자가 책을 쓰면서 참조했다는 기본 텍스트이다. 『영화 어떻게 읽을 것인가』(혜서원, 1993)와 『영화학, 어떻게 할 것인가』(열린책들, 1993)라는 좀더 상급(?)의 개설서도 있다. 영화에서 차지하는 감독의 비중을 감안한다면 10명의 감독이 지닌 작품 세계를 소개함으로써 영화를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영화, 이렇게 보면 두 배로 재미있다』(들녘, 1993)도 매우 유용하다. 또한 이효인이 펴낸 『한국의 영화 감독 13인』(열린책들, 1994)은 인터뷰, 감독론, 감독 연보, 작품 연보를 통해 우리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상은 통상적인 영화 읽기에 관한 책이다. 이에 비해 『마이너리티의 헐리웃』(한울, 1993)은 '영화로 읽는 미국 사회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할리우드의 영화로 미국을 보고, 미국의 이민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를 이해하도록 해 준다. 그에 비해 『김성곤 교수의 영화 에세이』(열음사, 1994)는 미국 문명의 정신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영화가 한 사회를 이해하는 텍스트로서도 활용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정치학과 이데올로기'라는 부제의 『카메라 폴리티카 상, 하』(시각과 언어, 1996)는 미국 내 정치적 상황 변화가 영화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영화 예술이 하나의 이데올로기 전파 장치로써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드러낸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영화로 읽는 여성의 삶』(서울YMCA, 1993)은 여성의 현실과 관련된 8개의 주제를 이와 관련된 영화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관심 있는 지역이나 문제를 영화를 통해 깊이 이해하는 것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는 대학생으로서 가능한 영화 감상법이라 하겠다.
흔히 접하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으로서 이른바 '시네마 테크'가 있다. 이에 대해서 『라벨르』 1994년 8월호의 안내문(은행에서 발견!)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런 '시네마 테크'와 외국 문화원에서 하는 영화 상영의 스케줄을 보고 싶다면, 매달 발행되는 영화·연극·문화 생활 정보지 『서울 스코프』(743-7784)가 있다. 영화 전문 서점으로는 동숭 아트 센터 지하 1층의 '키노(KINO)'(745-1838)가 있는데, 관련 서적과 포스터, 엽서, 테이프 등을 취급한다.

4.3. 비디오는 '니' 친구?

비디오 관련 서적으로는 먼저 『영화저널』 편집부가 엮은 『비디오는 내 친구』(서해문집, 1993)가 눈에 띈다. 주제별 비디오 모음을 근간으로 하여 비디오 프로 선택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기획·출판된 이 책은 간혹 중복도 있지만, 그리 큰 흠은 아닐 것이다. 영화와 명감독에 대한 간단하고도 유용한 소개가 군데군데 있다.
『비디오 여행』(문예마당, 1994)은 건강한 직장 생활과 문화 생활을 위한 비디오 안내서이다. 비디오에 대한 기본 지식(1-2장), 지역별 영화 현황과 대표작(3-6장)을 소개한 뒤 비디오로 보는 역사, 현대인의 삶, 가족 영화, 여성 영화 등의 내용별 소개(7-10장)에 이어 부록으로 감독, 남자배우, 여자배우별 비디오 출시 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비디오로 만나는 좋은 영화』(제3문학사, 1992)는 애정 영화, 사춘기 영화, 영화의 영화, 새로운 영화, 고전 영화들로 나누어 영화를 소개하는데, 서문에서 언급하듯이 동양권 영화가 누락되고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작품들도 많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드롬』(삼호미디어, 1994)은 70여 편의 비디오에 대한 '검시 보고서'인데, 영화의 계보학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부록의 베스트 영화 리스트가 눈에 띈다. 비디오와 관련해 알아둘 만한 것은 YMCA의 좋은 비디오숍 체인인 '으뜸과 버금'이다. 『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에는 최근까지의 각 체인점의 주소와 전화 번호가 정리되어 있어 매우 유용하다. 또하나 지난해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영화에 관련된 서적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이들을 참고하는 것도 영화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4.4. 참을 수 없는 만화의 유혹

신문을 볼 때면 나는 항상 시사 만화부터 본다. 그뿐만 아니라 연재 만화의 수준으로 매체의 질을 판단하기도 한다. 예컨대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일요신문』은 연재 만화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 내사랑』(지인, 1994)은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 화백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만화사를 조망한 뒤, 장르별로 각 분야 만화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한다. 만화 가게 주인의 아들이었던 저자의 만화 예찬이라고도 하겠다. 『만화 보기와 만화 읽기』(한나래, 1994)는 한국 만화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1부의 개괄적인 논의에 이어 2부에서는 주요 작품의 구체적 분석을 통해 박봉성, 강철수와 이현세, 고행석, 허영만을 다룬다. 3부는 1980년대의 일반적 흐름과 1990년대의 추세 및 과제를 논한다. 『한국 만화산업연구』(글논 그림밭, 1995)는 열악한 우리 만화 산업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는데, 일본 만화의 하청업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 만화계의 실상을 살펴보고, 우리 만화 발전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만화가 55인』(프레스빌, 1996)은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만화계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한국의 만화가들과 그들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미진사, 1991)는 세계 각국의 만화 현황, 만화의 여러 분야, 만화의 상식과 우리 만화계의 문제점 등 다양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만화가 진지한 주제나 소재도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체라는 점은 『만화 세미나 일본 경제 1, 2』(소학사)나 이원복 씨가 그리는 일련의 작품을 통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특히 『현대 문명 진단』(조선일보사, 1994)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현대 문명의 이해를 위해 훌륭한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채지충의 고전 만화도 동양 고전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이해를 과시한다. 동아출판사의 『만화로 보는 현대 과학의 세계』와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한 오월의 만화 시리즈, 그리고 최근 출간되기 시작한 『이두 아이콘 총서』 등도 빠뜨릴 수 없다. 『중국 100년사(상, 하)』(지영사, 1992)는 중국 특유의 만화 형식인 연환화로 그린 것이다. 최근에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다룬 만화로서 퓰리처 상을 받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 1994)도 번역되었다. 또 만화는 영화화되거나 오락화되기도 한다. 홍콩 영화의 경우 기억나는 것으로 『공작왕』, 『시티헌터』, 『루안살성』, 최근의 『스트리트 파이터』 등이 있다. 헐리우드 영화에도 『슈퍼맨』, 『배트맨』, 『딕 트레이시』, 『아담스 패밀리』, 최근의 『트루 라이즈』, 『플린스톤』 등이 있다.
만약 만화 영화를 좋아한다면 디즈니의 『환타지아』는 반드시 보기 바란다. 획기적인 작품이다. 만화 영화가 어린이용만이 아니라는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충분히 알 것이다. TV용 만화 『미래 소년 코난』을 통해 친숙한 그는 『이웃의 토토로』, 『하늘의 성 라퓨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 등 다채로운 작품이 있다. 만화 영화와 관련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 Japan+Animatio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본 만화 영화의 태두격이라 할 수 있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세계를 담은 『아톰의 철학』(손상익 옮김, 개마고원, 1996)도 번역되어 있다.
끝으로 만화 애호가라면 알아둘 만한 '만화 도서관'(02-374-6073)도 있다.

4.5. 문학의 위기 또는 변용: 대중 문학의 세계

오늘날은 바야흐로 '추리물'의 시대로 순수 문학에도 추리 기법이 가미되고 있다(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등). 추리 소설에는 존 그리샴(법정 추리), 로빈 쿡(의학 추리), 마이클 크라이튼(과학 추리), 톰 클랜시(첨단 무기가 주인공이 되는 테크노 스릴러)처럼 세분화된 전문 영역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전문 정보를 얻는 가외의 소득도 있다.
『이상우의 추리 소설 탐험』(한길사, 1991)은 "추리 소설이라는 광대한 숲으로 인도하는 조그마한 오솔길"이다. 1부의 「총론」에서는 추리 소설의 특징과 역사와 종류를, 2부 「구조와 작법」에서는 추리 소설의 규칙, 구조, 기법, 게임의 규칙 등을 다룬다. 아울러 셜록 홈즈를 비롯한 탐정들의 신상 명세서, 추리 게임의 규칙 등을 언급하는 '추리 소설 소백과'라고 할 만한 책이다. 『추리 소설 쓰는 법』(보성사, 1987)은 미국의 대표적 작가들이 그들 자신이 겪은 문학 수업의 체험과 추리 소설의 여러 측면을 관례를 들면서 자상히 서술한다.
런던 베이커 거리 221-B에는 관광 명소인 셜록 홈즈의 하숙방이 있다. '셜록 홈즈 실존론자'를 '셜로키'라고 하는데, 홈즈 연구 전문 서적이 십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도 두 종이 있다. 먼저 『셜록 홈즈의 추리학』(새길, 1994)이 있다. 사건 현장에서 펼쳐지는 홈즈의 활약상에서 하나의 단서를 통한 가설과 추론, 논리 플러스 상상력이라는 홈즈의 추리 비법의 단서를 찾고 있다.
이와 달리 『셜록 홈즈 정보 테크닉』(고려원미디어, 1994)은 사람을 정확히 판단하고 포용하기 위한 정보 활용에 중점을 두는 처세술을 셜록 홈즈에게서 배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에 대해 언급할 것은 최근의 중복 출판이다. 저작권 가입 이전의 책이 제명을 달리하여 출판되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그야말로 '일신 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새로워짐)하고 있다. 추리 소설에 비하면 과학 소설은 아직은 미개척이나 다름없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관심이 늘어났다고 할 것이다. 'SF를 읽는 즐거움'이란 부제의 『멋진 신세계』(현대정보문화사, 1992)는 과학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소개와 함께 과학 소설이 걸어온 길, 작가와 작품,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과학 기술의 발전상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부록으로 역대 휴고상·네뷸러상 수상작 목록이 있다.
『SF의 이해』(평민사, 1993)는 먼저 SF의 역사, 여타 매체와 SF의 관계를 말한 뒤, SF에 영향을 끼친 과학 분야의 역사적 발전을 개관하고서 SF의 형식과 주제, 열 편의 대표적 소설에 대한 간략한 해석을 다루고 있다. 『멋진 신세계』가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라면 이 책은 진지한 연구서다. SF하면 아이작 아시모프를 빼 놓을 수 없는데 아시모프에 관심이 있다면, 『아이작 아시모프 자서전』(이미경 옮김, 작가정신)을 참고하기 바란다.

『무림백과』(서지원, 1993)는 「무협 소설의 어제와 오늘」부터 「무림고수의 비애와 '반무협 소설'」에 이르는 45장에서 무공과 초식, 무기, 문파 등의 배경 지식과 김용과 양우생의 문학 세계 등 무협 소설의 이모저모를 고금에 걸쳐 종횡무진 언급한다.

『연애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여성사, 1993)는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명작 소설'이라는 부제처럼 당대 사회의 여성 문제에 대해 작가가 어떤 문제 의식을 안고 어느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여성 문제의 해결을 어떤 식으로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일곱 편의 명작 소설을 분석하고 있다.

4.6. 바로 보는 바보 상자: TV를 읽자!

텔레비전이 지니는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연구나 비평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먼저 『TV : 가까이 보기·멀리서 읽기』(현실문화연구, 1993)는 텔레비전의 이데올로기에서 프로그램 비평, 뮤직 비디오까지 비평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비해 『TV를 바로 봐야 세상을 바로 보죠』(내일을 여는 책)는 중·고교생을 위한 '신나는 특별 활동'의 TV 모니터반을 위한 지침서이지만, 요령 있고 알기 쉬운 서술로 도움이 된다.

4.7. Who'll stop the rock!

록앤롤의 탄생에서 멀티 미디어 시대의 록까지 다루면서 그 성장과 죽음을 적어 내려가는 『록, 젊음의 반란』(새길, 1993)은 '록의 정치학'이라고도 할 만하다. 국내에서 입수 가능한 음반을 정리한 부록은 매우 유용하다.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대륙, 1994)는 인물로 본 록과 팝의 역사이다. 1부 「'저항'의 가수, 그 가치와 유산」은 밥 딜런에서 퍼블릭 에니미에이르는 저항의 흐름을 연대별로 정리한다. 2부 「'순응'의 가수, 그 신화와 허실」은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NKOB(남궁옥분의 약자가 아님)에 이르는 흐름을 정리한다. 3부는 「팝 뮤직에 대한 몇 가지 성찰」이다. 『뮤직 비디오 이야기』(우리문학사, 1993)는 "대학 4년간 무위도식하고도 졸업은 제때 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뼈 빠지게 팝 뮤직을 공부하는" 저자가 뮤직 비디오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4.8. 건강을 위해 지나친 오락을 삼갑시다

게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롤 플레잉 게임(이하 RPG)이다. 이에 대한 책으로 『RPG 환상 사전』(제우미디어, 1993)이 있다. 1부 「이해를 돕기 위한 기초 지식」은 보드판 RPG, RPG의 배경이 되는 중세 이야기와 고대의 신화, 캐릭터, 규칙, 마법, 무기 등의 관련 지식을 전해 준다. 2부 「몬스터 매뉴얼」은 몬스터에 대해 그 유래를 중심으로 해설한다. 3부에서는 RPG의 원조인 보드 게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아르비옹' 게임을 수록하였다.
『환상 사전』에서도 언급하듯이 RPG 게임은 어떤 면에서 톨킨의 『반지 전쟁』(예문, 1993)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다행히 이 『반지 전쟁』은 번역이 되어 있다. 서구의 환상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톨킨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초의 보드판 RPG인 『드래곤 랜스』(열린길, 1994)도 번역되었다.
덧붙여 하나 소개하고 싶은 책이 『그림으로 본 세계 문화 상징 사전』(까치, 1994)이다. 이 책은 1,500여 개의 표제어를 다루고 도판도 450여 개나 되는 훌륭한 사전인데, 그 자체로 훌륭한 읽을 거리라 하겠다. 더불어 아서 코트렐의 『세계 신화사전』(까치, 1995)도 참조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지나친 오락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지성과 패기 1994년 9·10월호에서】


5. 다섯번째, 교문을 나서는 후배들에게


5.1. 졸업, 또 하나의 시작을 위해

학교에서 2학기 강의를 하다 보면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분위기가 자연 어수선하게 마련이다. 멋모르고 대학문을 들어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교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5공 시절 생긴 '졸업 정원제'도 현재는 '졸업 정문제'로 바뀐 듯하다. 교문으로 들어왔건, 뒷문이나 옆문으로 들어왔건(이제 이런 사례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이변이 없는 한, 8학기 분의 등록금을 내면 자동적으로 졸업하여 정문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학에 들어오고자 '고삼병(高三病)'에 걸리거나 심지어 재수, 삼수의 길을 걸었던 학생이 많았듯이, 졸업을 앞두고 '대사병(大四病)'에 걸려서 방황하는 사람도 적지만은 않다는 현실이 이 즈음의 분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어쨌거나 졸업은 '끝냄'이라기보다 인생의 본격적인 새로운 '시작'이다.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평소에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대학 시절 내내 취업 준비로 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미리부터 자신의 장래에 대해 모색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대학 생활이 엄청난 좌절과 무수한 방황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무한한 가능성의 기간임을 이 연재의 첫 글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이 좌절과 방황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준비 기간이기도 하다. 취업이든, 진학이나 유학 혹은 '취집'(취직+시집)이 되었든 교문을 나서기까지 자신에 대한 성숙된 이해를 갖추기 바란다. 이를 위해 이미 소개했던 『열일곱에서 스물다섯까지』(도솔, 1992)를 다시 상기해 주기 바란다. 자신의 장래를 계획할 때 자신의 적성, 희망, 능력, 조건과 환경 등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5.2. 직업으로 가는 길의 약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장래 진로의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갖는 일이다. 각종 직업의 세계라거나 취업에 관한 안내서를 일찍부터 읽는다면 자신의 장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자신이 남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다면 그만큼 서둘러서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한다.
그런 책들을 몇 가지 살펴본다. 먼저 일반적인 취업 안내서로 박동준의 『취업 이렇게 준비한다』(성림, 1992)는 「취업, 무엇이 문제인가」, 「목표 없이 전략 없다」, 「목표 기업의 심층 연구」, 「구비 서류의 준비」, 「주변의 힘을 내것으로」, 「필기 시험」, 「면접 시험」, 「마무리와 반성」 등으로 되어 있다. 취업 전략의 가이드 북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 전문가 이경훈의 취업 준비 노트』(일터와 사람, 1993)는 「취업 전략 마인드 5가지」, 「취업 준비 전 꼭 점검해야 할 상식」, 「악조건을 이겨내는 발상 전환법」, 「당신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 「취직 시험 공부와 서류 준비」, 「취업 관련 기관/서적 정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취업 전략의 마인드를 이렇게 말한다. ① 취업 준비 역시 좋은 계획에서 좋은 결실이 나온다. ②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평생 직업을 찾아라. ③ 목표로 하는 업종/직종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라. ④ 자신의 핸디캡을 메울 방법이 어디엔가 있다. ⑤ 특히 수직적 인간 관계에 힘쓰자.
매일경제신문사가 발행한 『'94 대학생을 위한 취업 소프트』(매경비즈니스센터, 1994)는 취업 정보만이 아니라 대학 생활 일반에 관한 안내도 수록했다. 1장의 「대학 생활」은 바람직한 대학 생활, 학과별 진로 방향, 부전공과 복수 전공, 직업 선택, 정보화 사회 엘리트의 조건 등을 소개한다. 2장 「재학 중의 진로 결정 사항들」에서는 진학, 유학, 어학 연수, 입대, 편입학에 대해 안내한다. 3장 「취업 준비」는 직업 전문가 이경훈 코너, 적성 검사, 인턴 사원제, 여대생과 지방대생의 취업, '94 채용 전망 및 대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4장 「업종별 가이드」는 새 유망 업종과 직종의 선택, 공무원에서 중소 기업에 이르는 20개 업종별 장단점·선배 경험담을 수록한다. 5장 「자격증」은 그 필요성, 현황과 전망, 자격 시험 등을 안내한다.

이상이 직업 및 취업에 관한 일반적 안내서라면 좀더 세분된 안내서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도서출판 길벗에서 내는 '직업의 세계' 시리즈 이다. 먼저 1, 2 두 권으로 된 『유망 직업 120가지』(길벗, 1992)는 120가지 직업의 내용, 자격증, 교육 기관 및 기간, 보수, 사회 변화에 따른 직업의 미래와 전망, 해당 직업의 자질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유망 자격증 120가지 ① 인문·경제·경영·의료편, ② 기술·기능편』은 유망한 120가지 자격증을 소개한다. 그 내용은 업무 내용과 적성 및 자격증 취득 방법, 취득 경쟁률과 취득 후의 진로, 각종 어려움과 그 해결 방법, 예상 변수 및 관련 기관의 전화 번호 등이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성 전문 직업 50』도 이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한편 월트 디즈니사의 지사장인 저자 최영일이 외국 기업의 입사에 대한 가이드로 내놓은 『외국 기업을 노려라!』(앞선책, 1994)도 있다. 30인의 취업 경험담을 취재하여 정리한 『나의 취업 이야기』(길벗, 1991)도 도움이 될 것이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조사와 검토, 목표의 결정에 필요한 노력을 소개하는 이 책은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다수에서 소수를 탈락시키던 예전과 달리, 다수에서 소수를 선택하는 절차로 변한 면접은 그 중요성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입사를 위한 진정한 평가 기준이 면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100퍼센트 합격을 받을 수 있는 면접 요령을 소개하는 『성공으로 가는 개성 면접』(둥지, 1994)이 있다. 이 책은 면접의 기준과 준비, 테크닉을 알려 주는 「완전 면접 준비」와 면접의 실례, 업종별 질문과 업체별 경향, 공무원 면접과 여성 면접, 영어 면접을 소개하는 「면접의 실례」로 구성되어 있다.

5.3. 성공으로 가는 일곱 개의 드래곤볼

필자는 이 연재의 첫 글에서 『논어』의 첫 구절을 인용하면서 '학(學)'이란 '본받는다, 모방한다'는 뜻임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학습(學習)의 '습(習)'이란 무엇일까? 『논어』에 대한 뛰어난 주석서 『논어집주』의 저자인 주희(朱熹)에 의하면 '습(習)'이란 어린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다. 사실 학습에서 '학'보다 '습'이 더욱 중요하다. 습관으로서 몸에 익힌다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성공의 지름길은 올바른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호에서 박재호 등이 번역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 1994)의 내용을 주로 소개하면서, 이와 관련된 책자를 안내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전 4부로 되어 있다. 먼저 제1부 「패러다임과 원칙들」은 성격 윤리와 성품 윤리를 구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먼저 성공에 관한 수많은 문헌을 살핀 뒤, 이를 두 유형으로 나눈다. 하나는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의식, 기법과 대응책 등의 피상적 해결책만을 다루는 '성격(개성, personality) 윤리'이다. 이는 개인 및 대중을 상대하는 기법과 적극적 사고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접근법에는 기만적인 면조차 있다. 이에 대비되는 '성품(인성, character) 윤리'는 성공에는 기본 원칙이 있으며, 이를 배우고 자신의 성품에 통합하면 성공과 행복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이어 저자는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라"고 말한 뒤, '7가지 습관에 대한 개관'을 언급한다. 그것은 개인의 승리를 위한 습관과 대인 관계의 승리를 위한 습관, 자기 쇄신의 습관으로 각각 나뉜다.
2부 「개인의 승리」에서는 '습관 1 : 주도적이 되라', '습관 2 :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습관 3 :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해라'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습관 1 : 주도적이 되라'는 개인 비전의 원칙이다. 유전적, 심리적, 환경적 결정론이라는 결정론적 패러다임과 달리 인간은 '주도성(proactivity)'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주체적으로 행동하여 어떤 일을 완수할 책임을 인식한다는 뜻에서 우리는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습관 2 :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는 개인 리더십의 원칙이다. 모든 것은 마음 속의 창조와 실제의 재창조를 겪는다. 리더십은 전자이며, 관리란 후자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첫째, 창조자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기 사명, 즉 자신의 인생 철학 내지 신조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의 삶을 원칙 중심으로 운영하며 종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

5.4. 시간을 잡아라

'습관 3 :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해라'는 개인 관리의 원칙이다. 여기서 저자는 먼저 제4세대의 시간 관리를 말한다. 이는 시간을 관리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관리하는 것으로서 그 근본 초점을 시간 관리 매트릭스에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상대에게 위임하는 것도 이 개인 관리를 위해 중요하다. 이 '습관 3'과 관련해 시간 관리에 대한 책들을 아울러 소개한다. 유성은의 『시간 관리와 자아 실현』(생활지혜사, 1992)은 시간의 가치와 사용 방법을 말해 준다. 저자는 먼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뒤 이들을 나열하여 중요도를 분석한 뒤 우선 순위를 결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주간, 월간, 분기, 연간의 목표에 대한 계획표를 작성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대학 시절에 읽어 둘 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자투리 시간 100% 활용법』(김미현, 둥지)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익힘으로써 시간을 관리하는 요령을 갖게 하고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통해 보다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 익히기」라는 총론에 이어 직장인, 학생, 주부, 정년 퇴직자의 시간 활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최근 시간 관리에 대해 스티븐 코비가 메릴 부부와 함께 펴낸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김영사, 1997) 또한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5.5. 사람은 '사람의 사이(人間)'이다

3부 「대인 관계의 승리」는 상호 의존의 패러다임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습관 4, 5, 6이 포함된다. 그는 먼저 인간 관계의 성립과 회복에는 장기적 투자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은 다음과 같다. ①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 ② 사소한 일에 대한 관심, ③ 약속의 이행, ④ 기대의 명확화, ⑤ 언행 일치, ⑥ 진지한 사과이다.
'습관 4 : 상호 이익을 추구하라'는 대인 관계 리더십의 원칙이다. 인간 관계는 승패와 피아를 적용해서 살피면 6가지 상호 작용의 패러다임이 가능하다. 그중 제3의 대안을 찾는'승/승'(나도 이기고 상대도 이기는)의 사고와 차선으로서 '승/승'혹은 무거래 사고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한 토대가 첫째, 언행 일치·성숙도·풍요의 심리가 포함되는 성품, 둘째, 신뢰의 인간 관계, 셋째, 합의이다. 그리고 이를 제도와 조직이 보장해야만 한다. '습관 5 :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는 공감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이다. 판단하기에 앞서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먼저 상대를 이해한 뒤, 그에게 자기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습관 6 : 시너지(synergy)를 활용하라'는 생산적 협조의 원칙이다. 『논어』에서도 이상적 인격자인 군자(君子)는 조화를 이루지만 동일하지는 않다고 했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이유라고도 할 것이다.

3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경훈의 『인맥 만들기』(일터와 사람, 1991)는 사회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인맥의 조직과 활용에 대한 문제를 좀더 체계화된 형태로 정리하였다. 인맥의 힘, 인맥의 출발, 인맥의 성공과 실패, 인맥의 '장비', 각종 인맥, 각종 실전 인맥 활용법 등을 소개하는 이 책은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이종주 편의 『사람을 읽으면 세상이 즐겁다』(실록출판사, 1993)는 '마음의 지도', '심리 유도와 동조', '설득과 협상', '심리의 손자병법', '리더십과 통솔', '보디 랭귀지와 보디 존'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들을 덧붙여 읽는다면 3부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5.6. 나날이 새로워라

4부 「자기 쇄신」은 '습관 7 : 심신을 단련하라'를 다룬다. 이 '습관 7'은 균형적인 자기 쇄신의 원리이다. 이 쇄신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신체적, 영적, 정신적, 사회적/감정적 차원이다. '신체적 차원'은 몸을 효과적으로 돌보는 활동, 즉 영양 섭취, 충분한 휴식, 긴장 이완과 규칙적 운동을 포함한다. '영적 차원'은 가치 체계의 핵심이고 중심으로 가치의 명료화와 몰입, 학습과 명상이 포함된다. '정신적 차원'에는 독서, 상상, 계획 수립, 저술 등이 포함된다. 이 세 차원이 개인의 승리와 관련된 반면, '사회적/감정적 차원'은 대인 관계에 초점을 둔다. 여기에는 봉사, 공감, 시너지, 내적 안정이 포함한다. 이 쇄신은 개인이나 조직을 불문하고 네 가지 모두가 반드시 균형적으로 쇄신되고 재충전되어야 한다. 저자는 최후로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다시 강조하면서 끝내고 있다.

4부와 관련해 필자는 먼저, 자신이 일생 동안 지침으로 삼을 '고전(古典)'을 발견하라고 권하고 싶다. 둘째로, 평생토록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을 찾고서 이를 습관으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7가지 습관을 몸에 익히며 자기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면, 이는 교문을 나서기 위한 최선의 준비가 될 것이다.

사회 진출 준비와 관련해 사족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흔히 사회 진출을 준비하면서 대학 시절 갖추어야 할 것들로 '3C'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Car, Computer, Conversation의 3가지를 의미하는데, 자동차 운전과 컴퓨터, 외국어 회화 능력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지성과 패기 1994년 11·12월호에서】


6. 여섯번째, 외국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6.1. 어째서 외국어인가?

대학 생활에서 먼저 습관화할 것은 바로 '독서'와 '외국어의 습득'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외국어 학습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어째서 외국어인가? 그 필요성을 직업에 직접 이익을 주는 실용의 면과 자신의 취미에 활용하는 교양의 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실용의 면에는 취직, 유학, 진학이나 고시 등 각종 시험의 대비가 있다. 또한 어학 교사, 번역, 통역 등 외국어와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거나 전공 및 직업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일이 있다. 교양의 면으로는 같은 취미의 외국인과 직·간접으로 교제한다거나 외국의 자연 또는 문물을 이해하는 일을 들 수 있다. 타문화의 수용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양을 쌓는 한 가지 방법이며, 이는 자기의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6.2. 적과의 동침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영어를 적어도 6년간은 배운 경험이 있다. 몇 년간의 제2 외국어도. 하지만 대학에 들어온 뒤 많은 경우 「교양 영어」등의 기본 학점을 이수한 뒤, 영어나 제2 외국어에서 멀어진다. 이런 현상은 동기나 목적 의식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외국어의 습득에서는 확실한 동기나 목적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학습 단계에서 빨리 활용 단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영어와 관련해 대학생의 단계를 살펴보면, '망각 단계'(지긋지긋한 시험 지옥에서 벗어났다!), '학습 단계'(여전히 영어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 '활용 단계'(수준을 불문하고 자신의 취미나 전공에 영어를 활용한다)로 나눌 수 있다. 활용 단계에서는 외국어와의 관계가 더 이상 적과의 동침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학 저학년 시절부터 TOEFL이나 TOEIC에 매달리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영자 신문을 본다든지 전공 서적이나 취미에 관련된 책자를 읽는 등, 하루 빨리 자신의 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6.3. 제1막, 외국어 학습의 일반론

먼저 외국어 학습의 일반적 측면을 말해 보자. 외국어를 익히는 데에는 무엇보다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학에는 천재가 없고 꾸준한 노력과 올바른 방법만이 있기에, 시간이 특히 중요하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외어야 할 두 가지에 어휘와 문법이 있는데, 어휘가 문법에 선행한다. 끝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도구로 좋은 교과서, 좋은 교사, 좋은 사전이 있다. 교과서는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한 권을 일단 끝냈다는 자신감과 충실감이 필요하므로, 초보의 교과서(학습서)는 얇은 것이 좋다. 출현 단어에 번역이 있고, 그 빈도 수가 고려되어야 한다. 중요한 항목의 문법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예외 사항과 기본 사항의 구별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진도는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학습의 기본 법칙은 항상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어 학습은 교사의 영향이 특히 절대적이다. 좋은 교사란 첫째, 해당 외국어를 잘 알고 있다. 둘째, 가르치는 방법이 훌륭하다. 셋째, 어학 교육에 대한 열의와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한편, 사전(辭典)은 초보보다 중급 이상의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별도로 논한다. 언어의 기능은 읽기, 쓰기, 듣기와 말하기로 나눌 수 있다. 처음부터 이를 골고루 익혀야 한다. 아울러 이를 서로 연결시켜 익히도록 노력한다. 원서를 읽다가 좋은 표현이나 용례를 만나면, 이를 암기하여 말하거나 쓰는 데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6.4. 처방을 찾아라!

영어의 중요성과 증상의 보편성을 감안해, 먼저 박광희 지음 『영어병 10가지』(현암사, 1994)를 소개한다. 이 책은 문법, 어휘, 회화, 청취, 작문, 독해 등 각 분야에서 우리 영어 학습의 문제점을 면밀히 진단한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교재 선택 및 활용법 소개, 그리고 실질적인 사례나 예문을 통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학습 방법 및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유럽에서 공부한 저자의 경험담이 매우 재미있고 유용하다. 영어의 10가지 병과 그 증세는 다음과 같다. ① 습관성 영어 강박증­왜 해도 해도 영어가 안 늘까? ② 문법 바이러스­우선 문법부터 확실히 다져 두자, ③ 만성 어휘 결핍증­어휘가 모자라요, ④ 영영(英英) 사전 기피증­어느 사전이 제일 좋아요? ⑤ 작문 콤플렉스­작문이 힘들어요! ⑥ 회화 노이로제­회화가 안 돼요, ⑦ 청취 발작증­아무리 들어도 잘 안 들려요, ⑧ 독해 환각증­직독 직해 규칙같은 거 어디 없을까? ⑨ 시사 영어 공포증­『TIME』은 내 수준에 너무 어려워요, ⑩ 어학 연수 과대 망상증­미국에 가면 영어야 좀 늘겠지. 이 글의 독자 대부분은 적어도 한두 가지 병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해 온 영어 학습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이 증세와 처방은 다른 외국어 학습에도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

6.5. 영어 실력 향상의 비결

다음으로 추천하고자 하는 것은 시사영어사의 「대학 생활 전서­7」로 나온 『대학생과 외국어』(여석기 외, 1981)이다. 이 책은 1부 영어 학습 방법론, 2부 제2 외국어의 필요성과 마스터 방법, 3부 제3 외국어의 개척, 4부 원서 강독과 시사 영어 학습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어와 관련해 대학 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면을 가장 포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없으며, 80·90년대의 정보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적절한 개정판이 나오기를 바란다. 1부에 실린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8가지 비결」은 대학생에게 매우 유용한데,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 첫째, 역시 단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읽기에서는 '정독'과 '다독'을 겸해야 한다. 셋째, 회화 시에는 에러를 겁내지 말라. 넷째, 미문(美文) 또는 문학적 영문을 쓰려고 하지 말라. 다섯째, 읽기에서는 문장과 문장의 논리적 관계부터 파악하라. 여섯째, 영어적 사고법을 길러라. 일곱째, 얼마만큼은 미쳐야 한다. 여덟째, 화석화(化石化)를 막아라.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특별한 비결은 아니라구? 대답: 비결은 항상 평범하다. '비범(非凡)'은 항상 '평범(平凡)' 속에 있기 마련이다.

6.6. 꼬리에 꼬리를 물다, 단어

언어를 인간에 비유하면 뼈와 신경은 문법이고, 피와 살은 어휘이다. 피와 살이 없는 사람이란 해골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휘의 습득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습득이 재미없고, 수가 많아서 학습이 끝나지 않을 듯이 보이며, 어떤 어휘를 선택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럽어의 경우 라틴어의 어원을 알면 매우 유용하다. 외국어 학습의 일반적 충고는 먼저 기본 단어 1,000 단어를 잘 외우라는 것이다. 이런 단어는 좋은 교과서나 자습서에는 반드시 들어 있다. 기초 어휘를 익힌 다음, 빈도 수가 높은 단어를 더욱 늘려 가도록 한다. 단어는 그 성질상 넓은 분야의 빈도 수 높은 단어 ㉮, 넓은 분야의 빈도 수 낮은 단어 ㉯, 좁은 분야의 빈도 수 높은 단어 ㉰, 좁은 분야의 낮은 단어 ㉱로 나눌 수 있다. 이 경우 ㉮는 외어야 할 것이고, ㉱는 사전에서 찾으면 된다. ㉰의 단어는 분야에 따라 매우 다른데, 이를 원서로 된 전공 분야의 개론서나 교재를 통해 집중적으로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어 단어와 관련해, 오리선생 한호림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디자인하우스, 1993)는 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 특유의 위트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처럼 도해 사전류를 적극 활용하고, 어원(語源)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원 만능론은 곤란하다. 단어는 어디까지나 그 문맥에서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6.7. He read a book

우리 나라의 외국어 교육은 여건과 환경 때문에 문법 중심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문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문법 교육에 있다. 외국어 학습에서 문법은 지도와 같은데, 중요한 것은 문법 용어를 많이 아는 게 아니라 기초적 지식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단락의 표제를 어떻게 읽었는가? 이 경우 'read'는 '과거'이다. 현재라면 다음과 같이 된다. 'He reads a book'. 이렇게 외국어 학습에서 필요한 것은 수단으로서의 실용적 문법이지, 학술적이고 전문적 문법이 아니다. 기초 지식과 기본 사항을 철저히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문법의 전반적 분야에 걸쳐 기초 사항을 정확히 익힌다. 전문적이고 자세한 문법서는 필요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문법서는 해당 외국어를 접한 경험이 많이 축적된 후, 의문 사항이 생길 때마다 사전이나 매뉴얼처럼 사용한다. 그래야 문법 지식이 자기 것으로 활용된다.

6.8. 다다익선(多多益善), 사전에 대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사전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전은 '사전(事典)'과 '사전(辭典)'으로 나눌 수 있다. '사전(事典)'은 개념이나 대상, 현상, 사건, 인물 등을 설명한다. 반면 '사전(辭典)'은 흔히 말의 의미, 어휘의 특징, 문법적 성질, 어원 등을 설명한다. 유의할 것은 무조건 많은 어휘가 능사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보 단계에는 필수적 어휘를 선택하여 잘 설명하는 사전, 즉 학습 사전이 필요하다. 사전의 선택은 선생님이나 선배의 충고를 들으면 좋을 것이다.
『영어병 10가지』나 『대학생과 외국어』에는 영어 사전에 관한 안내가 있다. 중국어의 경우, 『중문학 어떻게 공부할까』(실천문학사, 1994)에 수록된 「사전·전집 등 공구서」의 부분이 유용하다. 학습 사전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는, 장소와 금전이 문제이긴 하나 각종 사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사전이란 도구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란 어느 면에서 사전을 비롯한 각종 참고 도서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사전에 관한 또 다른 충고는 영영 사전처럼 해당 외국어로 된 사전을 가급적 빨리 사용하며, 사전의 범례나 부록을 꼼꼼하게 읽어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사전은 그 나라의 국력(적어도 그 문화의 실력과 축적)을 반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앞으로 자기 전공에 관련해 좋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6.9. 치약과 쥐약, 그 치명적 실수

이 이야기는 실화다. 하루는 한 일본인이 약국에 가서 '치약'을 사고자 했다(치약도 약이다). 이 친구 발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약 주세요!" 그래서 약사가 준 것은 '치약'이 아니라 '쥐약'이 되었다. 한데 그 약사가 최불암이었다나! 외국어를 정확하게 배우기 위한 중요한 전제는 올바른 발음(發音)이다. 위의 예처럼 문법의 오류보다는 발음의 실수가 오해를 쉽사리 불러일으킨다. 일단 학습 초기가 지나면 발음은 교정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발음에서 중요한 것은 모국어와 외국어가 서로 차이나는 부분을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다. 초기에 이를 집중적으로 익힌다. 제1 외국어의 발음이 좋은 경우, 대부분 제2, 3 외국어의 발음도 좋다. 영어의 액센트나 인토네이션처럼 해당 외국어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올바르게 반영하도록 노력한다. 음성학의 기본 지식이 있으면 매우 유용하다. 발음은 올바르고 정확하면 충분하다.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완벽하고자 노력할 필요는 없다.

6.10.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어느 면에서 대학생의 외국어 학습은 읽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이 읽기는 '다독(多讀)'과 '정독(精讀)'을 겸해야 한다. 정규 수업 시간이나 교재 또는 전공 분야의 원서는 '정독'을 한다. 반면, 소설처럼 취미에 관련된 책을 '다독'하도록 한다. 지나치게 문학적이거나 난해한 작품보다는 추리 소설과 같은 고급한 대중 소설이 좋다.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관심과 흥미가 있는 것에서 딱딱한 것으로,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독서를 진전시킨다. 문법적 구조를 모르면, 단어의 뜻은 알아도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반면 문장들은 이해하면서도 그들로 구성된 단락을 모르는 것은, 문장 사이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가 논리적으로 이상하다면, 오해일 확률이 크다. 또 하나 읽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글의 성격이다. 읽는 글이 사건, 논리, 감정에서 무엇을 중시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는 것도 좋은 데, 이와 관련해 『이 책 한 권이면 영어 신문(英語 新聞)을 쉽게 읽을 수 있다!』(시사영어사, 1994)를 추천한다. 영자 신문의 기초 지식과 분야별 읽는 법이 잘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6.11. '번역(飜譯)'은 '반역(反逆)'이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단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나 풍습, 문물의 차이, 그리고 개인이나 민족의 사고 방식, 감정의 체계 등이 그 언어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속담에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조차 있다. 우리 나라의 어학 교육은 번역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데, 번역의 이론이나 실제에 관해 더욱 활발히 연구되었으면 한다. 번역에 관련된 책으로, 『번역 프리랜서의 길』(한얼, 1994), 『번역학 개론』(인간사랑, 1993), 『번역이란 무엇인가』(태학사, 1991) 등을 들 수 있다. 『번역 프리랜서의 길』은 프리랜서 번역가인 저자의 실무 경험을, 『번역학 개론』은 번역의 이론과 역사를, 『번역이란 무엇인가』는 박완서의 작품을 영역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최기천 저 『중국어 번역법』(학고방, 1990)처럼 실질적으로 유용한 책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번역의 이론적 측면을 논한 나이다와 타버의 「번역의 이론과 실제」도 빠뜨릴 수 없다. 『도올 논문집』(통나무, 1991)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번역 자체도 대단히 훌륭하다. 대학생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최근 번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번역에 관련된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가 펴낸 『번역의 테크닉』(현암사, 1996)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더불어 '이론편'과 '실제편' 두 권으로 출간된 경남대 김정우 교수의 『영어를 우리말처럼 우리말을 영어처럼』(창문사, 1996)과 영자 신문 교정기자 출신으로 베스트셀러에 나타난 오역(誤譯)을 조목조목 지적한 박정국의 『오역 천하』(어울림, 1996)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참고로 번역에 관련된 정기 간행물을 몇 가지 소개한다. 근래에 들어 새롭게 간행되기 시작한 것으로는 연세대 번역문학연구소에서 펴내는 무크 『문학과 번역』(나남출판)과 영미문학연구회에서 펴내는 반년간지 『영미문학연구 안과 밖』(창작과비평사)이 있고, 전부터 나온 간행물로는 『번역의 세계』, 『번역나라』, 『번역가』 등이 있다.

6.12. 마지막으로

대학에서의 외국어는 영어(제1 외국어), 제2 또는 3 외국어, 그리고 고전어로 나눌 수 있다. 이 글에서 고전어, 예컨대 한문(漢文)에 관한 언급을 별로 못한 점이 유감스럽다. 언젠가 별도의 기회를 갖기로 하고, 고전어의 학습도 일반적인 외국어 학습과 기본적으로 동일함을 지적한다. 한문에 관심이 있다면, 심경호 옮김 『한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회문화사, 1992)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단순히 외국어 학습만이 아니라, 그 문화의 수용이란 점에서 외국 문화원의 적극적 이용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를 위한 안내가『뿌리와 날개』 1995년 1월호에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외국어 학습과 그 문화의 수용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제아무리 외국어를 잘 하더라도 이를 우리 말로 적절히 옮기지 못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정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은 모국어에도 뛰어나다"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국어 사전을 적극 활용하는 자세를 갖추기 바란다.
【지성과 패기 1995년 1·2월호에서】


7. 일곱번째, 대학에서의 학습, 그리고 학문의 세계


7.1. 대학에서의 학습은 어떻게 다른가?

어느 덧 겨울도 다 지나가고 새 봄이 찾아왔다. 이제 캠퍼스는 97학번의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친다. 많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여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내고자 다짐할 것이다. 대학 생활은 여러 영역과 분야가 있지만 역시 무엇보다 공부가 중요하다. 게다가 대학의 공부는 다음의 면에서 이전의 공부와 다르다. 첫째, 대학 공부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학습이다. 둘째, 전공과목 위주의 전문 교육이다. 셋째, 스스로 찾아보는 노력을 요구한다. 넷째, 눈 앞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진리 탐구를 지향하는 끝없는 지적 추구의 과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번 호에서는 대학에서의 학습과 학문이라는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신입생을 위한 대학 생활의 전반적인 안내서인 『대학 생활 소프트』(일빛, 1994), 『재미있는 대학 여행』(이목, 1994), 『새내기 일년나기』(대동, 1994), 『열일곱에서 스물다섯까지』(도솔, 1992) 등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첫 회에 소개했으니,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7.2. 간단한 충고와 잔소리 몇 마디

구체적인 학습법의 안내는 뒤에 소개하는 책자에 맡기기로 하고, 몇 가지 충고를 간단히 하고자 한다. 먼저, 전공에 관계없이 학습이나 학문의 기본기를 숙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본기란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법이나 외국어라거나 컴퓨터, 혹은 이공계의 경우 수학이나 통계학 등을 말한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일도, 일 이년으로 숙달되는 일도 아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 학년 때부터 유의한다면 졸업하면서 상당한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기초 학문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각종 학문이나 지식은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자기 전공의 기반이 되는 여러 가지 기초 학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전공의 기본 개념을 정확히 습득하라. 대학에서 배우는 분야와 과목은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 개론(또는 원론)과 통사(또는 학사)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특히 기본 개념이나 용어를 정확히 익히도록 노력한다. 예컨대 역사에서도 사건이나 인명, 지명, 연대 등보다는 역사를 보는 사관이나 시대를 규정하는 용어, 개념, 범주 등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넷째, 자신의 미래와 결부하여 강의를 선택하라. 전공을 바꾸어 대학원을 진학할 예정이라면, 학부 시절부터 미리 필요한 과목을 수강하도록 한다. 또한 중국법에 관한 권위자가 될 예정이라면 매학기 본인의 수준에 맞는 중국어를 수강하거나 청강하도록 한다.
끝으로, 몇 가지 잔소리를 덧붙인다. 첫째, 학점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지만 학점 관리에는 주의하기 바란다. '쌍권총(F)'을 차는 것은 서부 영화와 달리, 대학 생활에서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한때의 치기 어린 나쁜 학점이 장학금은 물론, 졸업 이후의 진학, 유학, 취직, 심지어는 혼사길에도 악령(?)처럼 방해할지 모른다. 둘째, 설사 시시한 강의로 여겨지더라도 결코 이를 무시하지 말라. 셋째, 부득이 결강할 경우라면 미리 사정을 말하고 상의하라. 넷째, 자기 전공에 불만이 있더라도 일차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전공과 다시 만날지 모른다. 한편 전공에 충실한다는 것은 과 활동에 충실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섯째, 각 과목이나 담당 교수의 성격 및 특징을 잘 파악하라. 과목이나 교수에 따라 평가 방식이나 기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7.3. 보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 그 하나

흔히 교육이란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보다 효율적이고 능동적이며 생산적인 학습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공부의 특성을 빨리 파악하여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조직화하고 이해하는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 『대학에서의 공부, 어떻게 다른가?』(서울대, 1994)는 바로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대학 공부의 노하우(know-how) 안내'라는 부제가 그 성격을 잘 말해 준다. '대학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학습하도록 도와주자는 의도 하에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W. 포크(W. Pauk)의 『How to Study in College』를 주로 참고하고, 이와 관련된 심리학 서적들과 2차에 걸친 예비용 프로그램의 경험과 자료에서 우리 상황에 적합하도록 수정한 것이다. 그 내용은 강의를 듣고(2장), 노트 필기를 하고(3장), 교재를 읽고(4장), 내용을 숙달하고(5장), 시험을 보는(8장) 방법을 통하여, 대학 공부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기억력(6장), 집중력(7장), 스트레스 대처(9장), 시간 관리(10장)에 대한 안내를 통하여 전반적인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고 있다. 「심리학의 원리를 이용하자」는 부가적인 읽을 거리도 매우 도움이 된다.

7.4. 보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 그 둘

김종석 외 편역 『대학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성원사, 1994)는 전 6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감스럽게 번역의 저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대학에서의 공부, 어떻게 다른가?』와 같은 책인 듯하다. 다만 전자와 달리 『대학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를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각 장의 첫 페이지에서 그 장의 내용을 먼저 아이디어 메뉴의 형태로 제시한다. 각 장의 끝에 있는 요약 부분도 매우 쓸모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첫 페이지를 잘 살펴본 뒤, 그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다. 끝의 요약 부분을 주의 깊게 읽고 난 뒤 자신의 이해 정보를 점검하는 복습을 한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반복해 읽고, 경우에 따라 필기도 하면 자기 것으로 소화될 것이다. 내용과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목적」은 '학문적 성공을 위한 준비'와 '정서적 신체적 요구에 대한 이해','시간 관리' 등에 대해 충고한다. 2부 「기억」은 '학습 집중법'과 '망각과 기억'을 다룬다. 3부 「노트」에서는 '수강법과 태도','노트 필기법', '교과서 학습법', '교과서 활용법', '심상법'등을, 4부 「검사와 시험」에서는'시험 준비', '진위형, 선다형 및 배합형 문제 풀기', '완성형 및 단답형 문제 풀기', '논문형 시험 답안 작성법' 등이, 5부 「독해력」은 '속독법', '독해력 향상의 10가지 방법'을, 6부 「특수 기능」은 '연구와 보고서 작성법', '컴퓨터 학습법' 등에 대해 소개한다. 끝으로, 지난 회에서 소개했던『대학 생활 전서』(시사영어사, 1981)에 수록된 『대학생과 학문』, 『대학 강의와 노우트』 등도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점을 첨언한다.

7.5. '필드상(賞)'을 아십니까?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뜻의 영어 속담이 있다. 때로 적절히 노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공부하기 싫을 때 읽는 책을 지니라는 점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나름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자서전이나 평전 등이 도움이 된다. 자신을 반성하게도 만들며, 학습 방법의 힌트도 얻고 학문의 길에 대한 안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의 책을 몇 가지 소개한다. 흔히 학술에서 최고 권위의 상이라면 '노벨상'(Nobel prize)을 꼽는다. 그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가 없다. '필드상'(Fields prize)은 바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만한 상이다. 아니 그보다 더욱 받기 어렵다. 첫째, 4년에 한 번 시상되며, 둘째는 40세 이전의 학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제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내더라도 40세가 넘으면 '말짱 꽝'이라는 말씀이다. 사족으로 수학의 경우 뛰어난 업적은 모두 20, 30대에 만들어진다는 사실. 이 글의 독자 중에서 노벨상과 필드상의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일본인으로서 필드상을 수상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김영사, 1993)은 수학자로서 자신의 삶과 연구 활동에서의 여러 면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하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 말한다. 학문에는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배움의 길」, 「창조의 여행」, 「도전하는 정신」, 「자기 발견」의 네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학문과 인생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저자가 어떻게 커다란 연구 업적을 남겼는지 잘 보여주는 이 책은 수학의 전문 연구자를 지망하는 학생은 물론 여타 전공의 평범한 학생에게도 감동을 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첫째, 현대 학문의 기초를 이루는 수학, 특히 현대 수학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둘째, 현재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일본인의 삶과 사고 방식을 살필 수 있다. 셋째,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교수로 있는 저자의 경험담에서 미국의 대학 생활 및 지적 풍토에 대해 들을 수 있다.

7.6. 어느 사학자(史學者)의 회고

마스다 시로의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백산서당, 1994)는 단순한 대학 생활의 안내서가 아니다. 서양 경제사의 권위로서 저자가 세계사적인 전환을 의식하면서 기존의 학문,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발전 단계설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저자 자신의 연구 경험과 쉬운 일상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어렵고 추상적인 책이 아니다. 권위 있는 원로 교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나 할까? 특히 저자의 대학 시절에 대한 회고는 대학에서의 학습과 학문에 대한 적절한 충고가 될 것이다.

7.7. 젊은 교수들의 다양한 경험들

『젊음으로 도전한 학문의 길』(서울대학교, 1994)은 '서울대 신임 교수들의 체험기'라는 부제가 그 내용을 잘 전한다. 이 책의 의도는 대학 공부의 전 과정, 즉 학사, 석사, 유학 및 박사 등의 긴 학문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읽을거리의 제공이다. 실제적으로 우리 나라 대학의 학제와 교과 과정이 전문적 연구자의 양성 위주로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다. 아홉 명 필자의 전공과 박사 학위를 취득한 대학은 다음과 같다. 심리학(호주, 퀸스랜드 대학), 건축학(일본, 도쿄 대학), 식물학(미국, 텍사스 대학), 경영학(미국, 스탠포드 대학), 지리학(미국, 버클리 대학), 미학(독일, 빌레펠트 대학), 해양학(미국,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 다양한 전공 그리고 지역과 대학의 학풍을 엿볼 수 있는 구성이다. 특히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꿈꾸는 경우라면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7.8. '학문(學問)'은 '문학(問學)'이다

나는 첫회의 글에서 '배움(學)'이란 '본받음(效)'라고 말하였다. 이 '학(學)'은 '본받음'이란 뜻 이외에 다시 '깨달음(覺)'이란 뜻을 지닌다. 인간 세상에서 물음(問) 없는 깨달음(覺)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학문(學問)', 즉 배우고 물음이란 '문학(問學)', 즉 묻고 배움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 물음의 성격이나 범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다소 어렵겠지만 대학 생활 동안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대학과 현대에서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7.9.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먼저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1991)을 강력히 권한다. 저자에 의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방식이자 지배 방식"이다. 이 책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인식, 표현의 본질을 규정함과 동시에, 그것이 기본적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직결된 것임을 밝혀, 앎과 힘 ―지성과 권력의 관계를 식민지적 상황에서 인식시키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자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문학평론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문학 비평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서구의 외교 정책이나 언론 조작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 비평도 발표하고 있다. 푸코의 언설(디스쿠르〔discours〕) 개념을 원용하여 문화적인 헤게모니를 해명하면서 타자(타문화文化, 이문명文明)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길을 모색하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명저라 하겠다. 올해는 이른바 광복 50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와 저변에 남아 있는 식민지적 유산과 관련해 『오리엔탈리즘』은 매우 도발적이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뿐만 아니라, 다시 일본 제국주의에 모방된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으로서 '조선 문명'이라는 우리의 이중적 왜곡을 이 책에서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해방 이후 가장 통렬한 문장의 하나라고 여기는 박홍규 교수의 역자 후기 「옮기면서」를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동양 문명에 대한 역자의 이해가 지닌 한계가 있기는 하나, 한국의 지적 풍토와 대학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해 역자의 공격은 통쾌무쌍할 정도이다. 같은 맥락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또다른 저작인 『문화와 제국주의』(창, 1995)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7.10. 우리 학문으로 가는 길

조동일의 『우리 학문의 길』(지식산업사, 1993)은 우리 학계에서 근래에 이루어진 또 하나의 성취라고 본다. 저자는 우리 학계가 현재 학문의 의존에서 자립으로, 수입에서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어, 당장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세계 학문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현재와 장래에 관한 심각한 고민을 통해서 해결하는 '우리 학문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시급한 과제를 앞에 두고 있기에, 저자는 자연히 신중함이나 치밀성보다는 시급한 과제의 제시에 더욱 중점를 둔다. 저자는 논리로 이루어진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로서 학문은 그 결과로서 실천의 지침인 이론을 마련하며,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학문의 길을 「우리 학문의 고민」, 「위상」, 「각성」, 「과제」, 「성과」라는 주제로 모색하고 있다. '우리 학문의 길'이 '우리 자신을 위한 민족 학문의 길'에서 '우리가 이룩하는 세계 학문의 길'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 과업을 상호 해결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7.11. 현대 대학에서 학문이란

마지막으로 소광희 외 지음 『현대의 학문 체계 :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민음사, 1994)를 소개한다. 그 내용은 ① 동서양의 학문 이념, ② 학문의 성립 근거, ③ 학문의 역사적 변천, ④ 새 학문의 탄생과 그 사회적 배경, ⑤ 현대의 학문, 특히 공학과 인문학 등을 고려하면서 학문 세계의 내적인 질서를 아홉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그리하여 먼저 동서양의 학문 이념을 살펴보고, 역사의 천이(遷移)에 따라 전래의 학문이 어떻게 경신되며 새 시대 새 사회의 등장과 함께 새 학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조감하며, 서구의 학문이 우리에게는 어떻게 수용되었고, 현재 우리가 당면한 학문론적인 고민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대학 생활을 통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의 하나라고 하겠다. 최소한 자기 전공과 관심에 관계된 글만이라도 먼저 읽기 바란다.

끝으로, 강의실 만이 아니라 도서관과도 친숙해지라는 충고를 한다. 아울러 공부도 잘 하고 놀기도 잘 하는 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논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쉬는 동안의 여유를 통해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성과 패기 1995년 3·4월호에서】


8. 여덟번째, 젊은 날의 우정, 사랑 그리고 결혼


8.1. 에이즈보다 무서운 병은?

에이즈(AIDS), 즉 후천성 면역 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은 우리 시대의 흑사병이다. 허나 이 글의 독자들에게는 AIQDS, 즉 후천성 아이큐(I.Q.) 결핍증이 더욱 무서울 것이다. 사회로 나가면 훨씬 무서운 AMDS, 즉 후천성 머니(Money) 결핍증이 기다린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병은 후천성 애정(Love) 결핍증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적 전제 조건이 바로 성숙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은 청년기인데, 이 때 사랑을 배우고 익히며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을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사랑, 우정과 결혼에 관련된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우선 소개조차 필요없는 우리 시대의 고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1982)의 일독을 권한다. 사랑이 고갈된 우리 시대의 내면적 원인을 탐구하면서, 프롬은 정신 분석학적 입장에서 사랑의 본질을 분석하고 사랑에 대한 기술을 제시한다. 『사랑의 기술』이 현대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이라면, 임상 심리학 전공의 김중술이 쓴 『사랑의 의미』(서울대학교, 1992)는 보다 실제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는 사랑의 의의, 과정과 종류, 청년기와 사랑, 결혼 등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고, 아울러 자긍심을 높이고 수줍음을 극복하며 실연의 아픔을 이기며 호감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신(新) 사랑의 의미』(서울대학교, 1994)는 문고판인 『사랑의 의미』의 내용을 더욱 보완하고 확장한 책이다. 의사 소통과 감정 표현의 기본이 되는 대화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심리학적 방법을 기초로 한 연습과 훈련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8.2. 벗이 있어 멀리서 오니

『논어』의 첫 머리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충고한 공자(孔子)는 곧바로 "벗이 있어 멀리서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벗(朋)에 대해 주자(朱子)는 '같은 부류(同類)'라고 주를 달고 있다. 친구 따라 강남을 가는 법이다. 따라서 취미나 관심에 의해 폭넓게 인간 관계를 맺고 친밀한 친구를 만드는 일은 대학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영국에서는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Oxbridge) 조정부 출신을 매우 선호한다고 한다. 동아리 활동으로 수재형의 엘리트에게 결여되기 쉬운 협동 정신, 우애 등을 함양했기 때문이다. 대학 이전의 좁은 생활권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지역과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친구를 사귄다면 자신의 폭과 깊이, 너비를 확장하고 선입관을 수정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알베로니는 그의 『우정론』(새터, 1993)에서 우정이란 무엇인가, 우정은 어떠한 관계인가, 우정과 애정은 어떻게 다른가, 우정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등 우정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 쓰고 있다. 정열에 토대를 두고 소유욕과 질투가 따라다니는 연애와 달리, '만남의 세공품'이자 '에로스의 윤리적 표현'인 우정은 신뢰와 존경을 토대로 하며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분석하여 인간 관계에 관한 저작을 쓰고 있는 저자의 연애론 『여자는 졸고 있는 남자를 증오한다』(새터, 1992)도 번역되어 있다.

8.3. 덩달이의 엉터리 그림 숙제

덩달이의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그림 숙제를 내주셨다. 새까맣게 칠한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묻자 덩달이 왈 "달 없는 그믐밤에 날아가는 까마귀"라나. '안다는 것'은 '무엇과 무엇이 다름을 아는 것'이다. 다름이란 둘에서 시작한다. '둘(二)'이란 '다름(異)'일 수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생물학적이건 제도적이고 관습적이든―현실적으로 서로 다르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에는 이 차이에 대한 망각도 포함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 1993)는 사랑에 빠진 화성인과 금성인이 지구에 살면서 기억 상실 때문에 서로의 차이점을 망각한다는 비유로 남녀 사이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의사 소통과 정서적 욕구, 행동 방식 등에서 나타나는 남녀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한다면, 충돌에 따른 불화와 갈등은 보다 줄어들 것이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최진실의 진술은 진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학에 대해 관심과 이해를 지니도록 권한다. 『남성을 위한 여성학』(한국여성개발원, 1994)은 새로운 질서의 미래 사회를 지향하면서 남성 문제와 여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남녀의 바람직한 상을 제시한다. 많은 여성학 책에서 이를 선택한 이유는 전투적이거나 이론적이 아니며 간략하지만 기본적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성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있다면 여울슬 엮음 『새내기를 위한 여성 관련 도서 목록』(여성사, 1994)이 매우 유용하다. 1장에서 여성 문제의 전반적인 개론서를, 2장에서 일·사랑 등 일상의 여성 문제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책들을, 3장에서 여성 문제를 역사·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4장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관련 잡지의 목차가 실린 부록이 있다.

세상의 또다른 절반인 남성에 대한 연구는 여성학에 비해 부진하다. 우선 「여성을 위한 모임」이 지은 『일곱가지 남성 콤플렉스』(현암사, 1994)를 소개한다. 이 책은 사내 대장부 콤플렉스 등을 중심으로 여성의 눈에 비추어진 우리 나라 남성의 현실을 고발하고 아울러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XY, 남성의 본질에 대하여』(민맥, 1993)는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정신 분석학 등의 다양한 관점으로 '남성다움(男性性)'을 재조명하고, 최근의 소설들 속에 나타난 남성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페미니즘의 한계와 역기능에 대한 한 반론으로 유순하의 『한 몽상가의 여자론(女子論)』(문예출판사, 1994)이 있음을 소개해 둔다.

8.4. 두 유태인은 어떻게 성공했는가?―결혼의 어려움

미국에 이민 온 두 명의 빈털털이 유태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돈을 넣으면 신부가 나오는 자동 판매기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되었다. 두 번째 사람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아내를 넣으면 돈이 나오는 자동 판매기를 발명했던 것이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의 문제이기에 보다 능동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경제적,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준비도 포함된다. 잘못하면 '베터 하프(better half)'가 아니라 '비터 하프(bitter half)'의 만남이 되는 수도 있다.

먼저 서울대 김계현 교수의 사랑과 결혼학 특강을 소개한다. 1집 『거꾸로 배우는 사랑과 결혼』(김영사, 1995)은 여덟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사랑이란」, 「질투」, 「싸움」, 「잘하는 사랑」, 「육체 접촉」, 「결혼이란」, 「배우자 선택」, 「직장이냐, 내조냐」 등. 불행한 사랑, 괴로운 만남은 바로 사랑이 뭔지 모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가지고 하는 사랑은 훨씬 안전하고 행복하다. 2집 『너의 사랑, 나의 결혼』(김영사, 1995)은 원하는 상대를 잡는 전략, 결혼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준비가 필요한 부모 노릇 등 사랑과 결혼을 위한 조언이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108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사랑의 의미』와 김계현 교수의 특강 1, 2집을 함께 읽는다면 사랑학 강의에 훌륭한 학점을 받을 것이다.
여성신문사의 편집 부장인 김효선이 쓴 『우리 시대의 결혼 이야기』(여성신문사, 1994)는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처한 삶의 다양한 조건을 읽어내고 있다. 결혼의 필연성과 당위성은 알지만 그 실상에 무지한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혼수 준비보다 시급한 것은 진정한 결혼 준비이다. 이 시대 젊은 여성들, 그리고 그 파트너인 남자와 부모님들의 삶에 대한 잘 쓰여진 보고서인 이 책은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에게도 유용하리라 믿는다. 오숙희와 정진희의 『부부』(웅진출판, 1994)는 결혼 이후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부부 사이, 부부와 아이, 부부와 가족 관계 등을 중심으로 들려주는 선배의 충고이다. '결혼 생활의 지침서'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족 공동체, 새로운 가족 문화를 지향한다. 참고로 결혼에 대한 신화와 통념, 그에 대한 획일적 찬양에 문제를 제기하는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현실문화연구, 1993)도 소개한다.
동인 모임 「또 하나의 문화」에서 펴낸 『새롭게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또 하나의 문화, 1996), 『새롭게 쓰는 결혼 이야기 2(밖에서)』(또 하나의 문화, 1996) 또한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과 결혼 이외에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우리 시대 '결혼'이라는 화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8.5. HE IS BACK!

그가 돌아왔다. "I'm back."이라는 짤막한 성명과 함께, 그가 온다는 소문만으로 미국의 GNP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무려 2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마이클 조던. 조던이 돌아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아이들 때문이다. 은퇴했을 때에 너무 어렸던 아이들이 샤킬 오닐, 매직 존슨을 최고로 여기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기를 바란 조던이 다시 복귀한 것이다.

이른바 '천사 산업'이 번성할 정도로 육아(育兒)에 쏟아 붓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은 엄청나다. 대다수가 잘못된 방향이라고 느끼면서도 조기 교육, 영재 교육 등과 같은 많은 신화(!)에 매달린다. 「공동 육아 연구회」가 펴낸 『함께 크는 우리 아이』(또 하나의 문화, 1994)는 육아에서 공공성과 공동체 의식을 모색하고자 한다. 육아에 대한 전문적인 충고나 체험기는 많지만―이 또한 천사 산업의 일 분야이자 모델이 없는 시대의 한 특징인데―육아의 이념과 철학까지도 검토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육아에 대한 부분은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기 싶지만, 언젠간 이 글을 읽는 많은 학생들이 육아의 문제에 봉착하리라 생각되기에, 이에 관한 책들을 두 권 소개한다. '천사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아이들이 읽을 책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는데, 먼저, 존 로 타우젠드의 저작을 번역한 『어린이 책의 역사 1, 2』(시공사, 1997)를 소개한다. 아동 도서의 역사적 발달 과정과 그 의미를 심도있게 다룬 이 책은 서구 아동물의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저술된 것이지만, 서구 아동물이 빈번하게 출간되는 우리 출판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문학과지성사, 1997)는 저자 최윤정씨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아동 도서 선택의 안목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우리 아동 출판의 상황에 근거해 쓰여진 책인 만큼, 공감하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밖에 '입시문화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부제의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또 하나의 문화, 1997)는 입시 지옥으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아울러 우리의 왜곡된 입시 문화와 교육의 파행상을 고발하는 이석범의 『윈터스쿨 상, 하』(살림, 1996) 또한 일독의 가치가 있다.

끝으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한 권의 책, 『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1995, 샘터)를 소개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인 샘터가 엮은 이 책은 남녀 노소 누구에게나 엄마란 소중하고 그리운 것임을 잘 보여준다.

8.6. 성(性), 그것이 알고 싶다

실상 인간에게서 성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우리는 이를 사회학, 정치학, 또는 철학적으로 다양하게 접근하고 조명할 수 있으며, 대학이란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갖추도록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특히 성에 대해 '문화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1995년 4월 5일자 『출판저널』(통권 167호)에 소개되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아울러 이 『지성과 패기』에 연재되고 있는 윤가현 교수의「청년의 성」도 매우 유용한 글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돌려보는 일기장』(여성사, 1993)은 젊은 연인과 부부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성에 관한 인식과 경험들을 독특한 구성으로 다룬 책이다. 성에 관련된 여러 문제를 일기 형식의 콩트로 보여주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일기의 주인공은 남녀 한 쌍이지만 다양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여준다. 「개인편」과 「사회편」으로 분리된 『18센티 여행』(희성, 1992)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성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신감을 갖도록 성에 관한 지식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도덕적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은 점, 재미있는 비유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성에 대한 정보가 과잉 공급되고 있으나 체계적이고 올바른 교육의 기회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청소년 대상의 책자이지만 이규미의 『성, 바로 아는 내가 좋다』(희성, 1994)도 권할 만하다.
독일 성교육 교과서로 근래 우리나라에 번역출간된 귄터 아멘트의 『섹스북』(박영률출판사, 1995)도 권하고 싶은 책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작이지만, 성과 윤리, 성풍속에 관해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는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Ⅰ, Ⅱ, Ⅲ, Ⅳ』(까치) 또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안적 문화를 창조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동인들의 모임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 7호 『새로 쓰는 사랑 이야기』(또 하나의 문화, 1991)와 8호 『새로 쓰는 성 이야기』(또하나의 문화, 1991)도 우리 시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의임을 말해둔다.
【지성과 패기 1995년 5·6월호에서】


9. 아홉번째, 세계화 조류 속에서의 대학 생활


9.1. 세계화, 그 복합적 성격

본래 동기와 의도가 어쨌든 '세계화'는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이다. 이 글은 대학생으로서 세계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할 것인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 보기 위한 것이다. 먼저, 어느 기업에서 실시한 개인의 세계화 지수에 관한 세 분야로 된 설문 조사를 참조하여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논의를 구체화해 보자. 첫째, '인격-교양의 면'에 대한 질문이다. 주위 사람에게 성실한가? 환경과 자원을 아끼고자 노력하는가? 전공 분야에서 외국 대학생 이상의 실력이 있는가? 공공 장소에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가? 사회를 위한 봉사에 높은 가치를 두는가? 영어와 기타 외국어 실력은 어떤가? 생태학이나 환경론 등에 관심이 있는가? 둘째, '지능-상식의 항목'이다. 외국인을 만나서 그 나라 문학이나 예술을 깊이 논의할 수 있는가? 그 나라의 각종 풍속이나 관습은 잘 알며 국제적인 에티켓에 익숙한가? 전공 분야의 외국 저널을 잘 알고 이용하는가? 외국 서점, 문화원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자주 이용하는가? 인터넷에 얼마나 익숙한가? 전공 분야의 원서를 적극적으로 읽는가? 현대 과학에 관한 책을 읽는가? 한국이나 세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책은 얼마나 읽는가? 신문의 국제 관계 기사를 꼼꼼히 읽는가? 시사 주간지는 읽는가? 셋째, '세계 문화의 이해'라는 측면이다.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가? 각종 전시회, 박물관, 미술관에는 자주 가는가? 한국의 문화나 전통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해외 여행이나 연수의 경험은 있는가? 문화 인류학이나 각국의 역사, 지리에 관한 책을 읽는가? TV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자주 보는가? 인종이나 성별 또는 여타의 기준으로 타인을 부당하게 대하는가?

이처럼 세계화는 매우 복합적 성격의 화두이지만, 그 기본 정신은 결국 '더불어 살기'이다. "벗이 있어 멀리서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결론적으로 세계화란 일류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잘 사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악덕 제국주의자의 상징이었던 다국적 기업조차 이제는 기업 윤리에 신경 쓴다고 한국판 『뉴스위크』 184호(1995년 6월 28일자)는 전한다.

9.2. 세계의 역사, 그리고 지리

일찍이 헤겔이 보편사를 논했지만, 현실적으로 보편적 세계사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이 점은 예컨대 한일간의 교과서 파동이나 망언 소동처럼 민족, 국가, 인종 사이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서 '전 세계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라는 원제의 『새로운 세계사』(범우사, 1994)는 매우 시사적이다. 저자 마르크 페로는 서구 중심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권력에 의해 왜곡·전도된 세계사를 바로 잡고, 예리한 역사적 통찰력으로 올바른 역사 해석의 길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들루슈가 편한 『새 유럽의 역사』(까치, 1995)는 유럽 공동의 역사 교과서로서 각기 다른 국적의 역사가들이 집단적으로 저술한 것이다. '최초의 진정한 유럽사 개론서'라고 할 만한 이 책은 참신한 내용, 객관적 시각은 물론, 현대 '유럽인'의 역사관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흔히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동의 보편적 역사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업적들은 『출판저널』 168호(1995년 4월 20일자)의 「세기말에 캐묻는 인류 문명의 근원」을 참조하기 바란다. 또하나 서구 문명사와 관련해, 최근 완간된 번즈의 『서양 문명의 역사 Ⅰ, Ⅱ, Ⅲ, Ⅳ』(소나무)를 참고한다면, 서구 문명사 이해에 있어 훌륭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용 과학이며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지리는 딱딱하고 지루한 암기 과목으로 오해된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세계 지리』(고려원미디어, 1994)는 그런 지리를 넓은 역사적 안목과 방대한 자료에 의해 재미있게 해설한다. 도대체 누가 『먼 나라 이웃 나라』(고려원 미디어)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저자 이원복은 이 책에서 유학 생활의 체험과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과 만화의 재미가 행복하게 결합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의 훌륭한 전형이다. 세계화의 지리학을 논하면서 여행을 빠뜨릴 수는 없다. 「날자 세계로, 품자 미래를」이라는 『뿌리와 날개』1995년 6월호의 특집 기사를 참조하라. 여행의 일반 안내서 『배낭 여행학 개론(槪論)』(학생여행문화센터, 1994)과 『해외 여행―출국에서 귀국까지』(둥지, 1994)가 누락되어 먼저 소개한다. 개별 지역에 대한 구체적 안내서는 서점에서 직접 비교·조사하기 바란다. 제3차 개정 증보판 『한국 사람 일본 가기』(현대정보문화사, 1995, 35-37쪽)와『우리는 지금 배낭 여행을 이렇게 준비한다』(민서출판사, 1994, 54-58쪽)는 각종 안내서를 간단히 평가하고 있다. 단 『우리는 지금 배낭 여행을 이렇게 준비한다』는 절판(?)인 듯. 마찬가지로 절판되었지만, 배낭 여행의 시초가 된 박경우의 『배낭족』(창인사, 1981)은 필독의 책이라고도 하겠다.

끝으로, 여행과 관련하여 하나 더 덧붙일 것은, 배낭 여행을 통해 외국의 문화를 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여행과 방랑의 차이는 돌아올 곳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말도 있다. 외국 여행을 하더라도 '돌아올 곳'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담아 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2』(창작과비평사)는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의 하나이다.

9.3. 예술을 찾아서

여행의 사전 준비에서는 무엇보다 테마의 선정이 중요하다. 자연, 예술 감상, 사람들의 생활상 등 테마를 잡고 가장 적합한 장소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 문화의 정수인 예술의 감상은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아닐 수 없다. 미술관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피는 일도 미술 작품의 감상 못지 않게 즐겁고 보람 있다. 데이비드 핀의 『미술관 관람의 길잡이』(시공사, 1993)는 대단히 의미 있는 문화 읽기의 길잡이로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볼 것인지 등의 폭넓은 내용을 다루며 미술을 감상하는 안목을 구체적으로 계발시켜 준다. 같은 저자의 『조각 감상의 길잡이』도 번역되어 있다. 『미술관 관람의 길잡이』가 일종의 개설서라면, 『MUSEUM GUIDE』(엘 까미노, 1995)는 미술관별 명화 가이드이다.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 오르세, 루브르, 프라도, 우피치, 바티칸 미술관 등 유럽의 6대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관의 내력」, 「소사」, 「효과적 감상법」, 「배치」 등을 다루며, 그림 감상법과 미술사도 정리되어 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학고재, 1995)는 미술 평론가 이주헌이 유럽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명 미술관을 두루 둘러보며 써 내려간 유럽 미술관 순례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테마별로 특화된 여행 정보지가 많이 나타나기 바란다. 한편, 유럽 예술을 주제로 한 기행문 『이미지와 디자인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파리-프라하-마드리드를 축으로 '미술'과 '디자인'을 통해 유럽을 조망한다. 저자 정진국은 정치·사회적 틀을 넘어서 이미지 문화를 통해 역사를 생각하며, 동시에 원작의 배경에 대한 이해와 후세의 영향을 훌륭한 사진과 뛰어난 해설로 전해 주고 있다.
한편, 근래 우리 나라에서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건축 분야에서 눈에 띄는 두권의 책이 출간되었기에 이를 소개한다. 건축가 김석철의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해냄, 1997)과 『세계 건축 기행』(창작과비평사, 1997)이 그것인데,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저자의 전문가적 안목을 통해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인 유명 건축물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준다.

9.4. 타문화(他文化)의 이해를 위해

원래 (문화) 인류학은 제국주의 침략의 수단으로 발전되었으나, 현재는 타(異)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상대주의를 제창하는 반 제국주의적 담론으로 전환되었다. 세계화에서 타문화, 인종, 종족 등에 대한 관용과 이해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세계화의 소프트웨어는 문화 인류학이라 단언할 수 있다. 먼저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의 저작을 소개한다. 그는 문화 유물론의 입장에서 먹는다는 문제를 통해 각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1982),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1992), 『작은 인간』(민음사, 1995), 『식인과 제왕』(한길사, 1995),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어』(황금가지, 1996) 등이 번역되었다. 그의 입장과 한계는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에 있는 역자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마빈 해리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문화 유물론』(민음사, 1996)을 참고하면 된다. 이밖에 문화 인류학 서적으로 추천할 만한 것으로는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정리해 출간한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까치)와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문화의 패턴』(까치) 등이 있다. 이 책들을 통해 진정한 세계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경수의 『베트남 일기』(통나무, 1993)는 특정한 지역과 문화를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세계의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월남의 위상과 비중에 비해 빈약한 우리의 월남 인식을 고려할 때 중요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월간지 『지오』(Geo)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 현상의 이해와 관련해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으로서 훌륭한 잡지이며, KBS 제1방송의 「내셔날 지오그래픽」(일요일 오전 9시)이나 EBS의 각종 다큐멘터리는 유익하면서도 즐거운 프로그램이다. 한편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사이드가 쓴 『문화와 제국주의』(창, 1995)가 번역되었음은 매우 기쁜 일이다. 서구 제국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를 부정하며 동서 공동의 경험과 문화적 이해를 통해 공존을 주장하는 이 책에 대해서는『시사저널』296호(1995년 6월 29일자)의 서평을 참조하기 바란다.

9.5. 정보와 시사로서의 세계화

일본의 경제 평론가 오마에 켄이치는 21세기 일본 지도자의 자격으로 '영어'와 '인터넷'을 들고 있다. 세계화에서 외국어 습득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관해서는 이 연재의 여섯째 칼럼 「외국어에 대해서」(『지성과 패기』 1995년 1, 2월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최정화의 『외국어를 알면 세계가 좁다』(조선일보사, 1995)는 유학 생활, 통역의 세계, 외국어 학습법, 해외 풍물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인터넷에 관해 구체적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출판저널』170호(1995년 5월 20일자)에 관련 서적이 소개되어 있으며, 월간 『인터넷』도 창간되었음(1995년 6월)을 말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 최병권의『세계 시민 입문』(박영률출판사, 1994)은 저녁 만찬의 형식을 빌어 세계 각국의 변화와 움직임을 소개하는 동시에 세계화의 걸림돌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의 다채로운 언론인 경력에 의한 생생한 논의, 그리고 핵심 개념 102개를 요약 정리한 계산서(단 쪽수가 본문과 일치하지 않는 듯)가 눈에 띈다. 『영어병 10가지』의 저자 박광희의 『시사 트렌드』(현암사, 1994)와 함께 읽는다면, 현재의 여러 쟁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할 뿐 아니라 시사 상식의 시험 대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번째 칼럼「신문과 잡지를 읽는 이유는?」(『지성과 패기』 1994년 7, 8월호)도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시사 주간지의 활용을 강조한다. 특히 한글판『뉴스위크』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뉴스위크』가 다소 미국 편향적이라면, 1995년 5월호로 복간된 한국판 『유네스코 꾸리에』는 유럽의 시각과 관점을 잘 전해 준다. 『유네스코 꾸리에』의 대담을 엮은 『21세기를 여는 상상력의 창조자들』(여성신문사, 1995)은 거장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정보와 시사를 중시하는 이유의 하나는 미래의 예측인데, 이를 위해 각종 미래학 서적을 자주 읽으라고 권한다. 김영수 엮음의 1995년 전면 개정판 『직장인이 꼭 읽어야 할 101권의 책』(창해, 1994)은 「21세기의 전망」, 「세계 경제의 흐름」, 「한국 경제」 등 다섯 분야로 101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현실적인 취업 문제와 관련해 직업 평론가 김농주의『외국인 회사 취업 소프트』(계백, 1994)가 새로 나왔다.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 기구에 관한 외무부 발간의『국제 기구 직원 모집 정보』도 있으니, 그 자세한 내용은 『시사저널』 291호(1995년 5월 25일자)를 참조하라.

9.6. 문명사적 과제로서의 세계화

이제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구의 파멸을 막기 위해 우리가 지구라는 운명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조나단 포리트가 편한 『지구를 구하자』(청림출판, 1992)는 지구 환경에 초래된 심각한 영향을 풍부한 사진, 도표, 칼럼으로 밝혀준다. 지구 환경의 악화가 특히 제3세계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 온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월드 워치 연구소」의 『지구 환경 보고서』는 환경 문제를 세계적인 시점에서 포괄적·체계적으로 다루며, 도시교통 문제, 군사 활동에 의한 환경 파괴의 문제 등 신경 쓰기 어려운 문제도 논하고 있다. 환경 전문 출판사 따님이 1990년도판 이래 연차 보고서를 출판하고 있다. 『뿌리와 날개』(1995년 5월호)의 「지구가 멸망한다?」는 새로운 세기를 앞둔 지구의 미래를 예언, 종교, 환경, 문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책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에드가 모랭의 『지구는 우리의 조국』(문예출판사, 1993)을 권하고자 한다. 그는 다방면에 걸쳐 현대 문명의 실체를 이해한 뒤, 그 위기를 진단하고 비판한다.'지구적'위기 속에서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적'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지닌 의의를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범양사와 김영사에서 그의 3부작이 각각 번역되었다. '진보의 역사 뒤에 숨겨진 파괴의 역사'라는 부제의 『녹색세계사 Ⅰ, Ⅱ』(심지, 1995) 또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류가 자랑하는 문명 발달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환경 파괴의 역사였다"는 저자, 클라이브 폰팅의 시각은, 하나뿐인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한 번쯤 깊이 음미해 봐야 할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자연 과학에 관해서는 『출판저널』 171호(1995년 6월 5일자)의 특집 「과학의 시대, 과학출판」이 매우 유용하며, 『지성과 패기』에 소개되는 책, 특히 과학책들은 반드시 읽어 두라고 권한다.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현암사, 1991)과 『지구를 구하는 1,001가지 방법』(수문출판사, 1991)은 '하나뿐인 우주선 지구호'를 위해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구를 구하는 일을 바로 내가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것이다. 1회용 컵의 사용을 자제하고 분리 수거에 힘쓰는 일이 곧 진정한 세계화의 첫 걸음이다. 환경에 관련된 간행물로는 『녹색평론』(발행인 김종철)과 환경운동연합에서 펴내는 『환경운동』 등이 있다.
끝으로 세계화에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한국 문화의 이해에 대해서는 『지성과 패기』지난 호(1995년 5, 6월호)의 특집을 참조하기 바란다.
【지성과 패기 1995년 7·8월호에서】


10. 열번째, 다시 교양 교육으로!


10.1. 지난 여름, 무역 센터에서

이번 방학 중에 한국 무역 센터(KOEX)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SICAF 95)」을 관람하였다. 만화와 만화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 호에서 나는 "각종 전시회, 박물관, 미술관에는 자주 가는가?"라고 질문하였다. 각종 전시회의 참관은 첫째로, 돈만으로는 불가능한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학 생활의 장점인 풍부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바란다. 둘째로, 각종 전시회나 전람회의 참관은 경험과 견문을 통해 교양과 양식을 길러 준다.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의 추태도 결국 교양과 양식이 부족한 탓이며, 진정한 세계화에는 세계 시민의 교양과 양식이 필요하다. 셋째,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재의 트렌드에서 볼 때, 이는 매우 현실적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는 군사력, 경제력, 토지와 인구 등이 국력의 척도로서 중요했지만, 여러분들이 활동할 21세기에는 기술, 정보, 문화 등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만화 산업에서 세계 3위의 외형적 규모에도 불구하고 만화 영화의 단순 하청 작업만을 담당한다. 자본의 부족과 사회적 몰이해의 탓도 있겠지만, 캐릭터(주인공)의 부재나 아이디어의 빈곤이 더 큰 원인이 되므로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문제가 된다. 월트 디즈니와 데츠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처럼,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만화가는 학자나 경제인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결국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구체적 개인의 문화적 수준이 결정적인데, 여기서 새삼스레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

10.2. 다시 한 번 대중 문화를 생각하며

나는 이미 「대중 문화의 바다를 헤엄치기 위하여」(『지성과 패기』1994년 9, 10월호)에서 대중 문화의 이해와 수용에 관한 안내를 하였다. 몇 가지를 보완한다. 만화에 관한 만화 『만화의 이해』(아름드리, 1995)는 만화의 역사만이 아니라, 만화라는 예술 형식과 그 가능성, 제작법 등을 살피고 있다. 그리하여 만화의 정의, 기본 요소, 만화 언어의 수용, 작업 방식, 창작 일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만화를 가치 있는 매체로 파악하면서 이를 설득력 있고 철저하게 해부하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각 혁명의 주요한 측면을 조망한다. 만화는 물론 매체와 예술 일반에 대한 이해에도 일조를 할 것이다. 문화 산업으로서 만화(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고조된 관심 때문에 『시사저널』(289호, 1995년 5월 11일자), 『출판저널』(172호, 1995년 6월 20일자), 『뉴스메이커』(137호, 1995년 8월 17일자) 등에서 만화 특집을 다루었는데, 『출판저널』의 특집이 교양 만화를 소개하여 유용하다. 단행본의 형태이지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서출판 대원, 1995)를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도 기쁜 일이다. 다음으로'대중 영화와 비디오의 메시지 이해를 돕는 가이드 북'인 알랜 맥도날드의 『영화, 보는 즐거움, 읽는 기쁨』(선한이웃, 1995)은 쉬운 필치로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 언어를 이론적 방법으로 관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래의 성공작인 25편의 영화를 전쟁 영화, 우주 영화, 공포 영화, 애정 영화 등의 범주에 의해 선택하고 나란히 비교하면서,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주장하고 설득한다. 저자의 기독교적 근본 입장이 약점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이하 TV로 약칭)에 대한 책을 하나 소개한다. 오카무라 레이메이의 『TV가 바뀐다 사람이 바뀐다』(지영사, 1994). '텔레비전의 내일'이라는 원제가 말해 주듯 TV의 영향력이나 멀티미디어로서의 TV 등을 다룬, 한 마디로 'TV의 문화학'이다. 폭넓은 시간과 공간에서 TV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여담이지만, 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시청하며, 몇 년 전 상영되었던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이래 근래는 『X-파일』을 특히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X-파일』이 매스컴이나 이른바 대중문화 비평가에 의해 그리 언급되지 않는 점이 매우 의아한데, 『산해경』이나 『퇴마록』과 비교하면서 시청하면 어떨까? TV도 얼마든지 훌륭한 내용을 전할 수 있다는 사례로서 우선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登頂)의 발자취』(범양사, 1985)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학원사, 1981), 『식물의 사생활』(까치)을 지적한다. 훌륭한 내용과 새로운 전망이 뛰어난 시각 자료에 의해 제시되는 이 책들의 필독을 강권(?)한다. 반면에, 책이면서 다큐멘터리의 구실을 하는 것도 있다. 바로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21세기를 앞두고 인류의 문화 유산을 총망라한다는 취지에서 펴내는 '디스커버리 총서'를 번역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시공사, 1995)가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현대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인류 문명의 역사와 가치를 영상 시대에 맞게 그림, 사진 등을 이용해 압축된 정보와 함께 싣고 있다.『디스커버리 총서』가 인류 문명의 길잡이라면, 대원사의『빛깔 있는 책들』은 주로 한국의 (전통) 문화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빛깔있는 책들』과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문연, 1990)은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최근 출간된 주강현의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1, 2』(한겨레신문사) 또한 일독할 가치가 있다.
끝으로, 문화 생활에 관해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주간지 『씨티라이프』 이외에도 『씨네 21』과 『Seoul Eye』를 소개한다. 전자는 영화와 비디오를 중심으로 만화, 게임 등 영상 문화 전반을 다루며, 후자는 각종 행사를 중심으로 대중 문화를 폭넓게 다루는데 특히 분야별 서적 안내가 유용하다.

10.3. 인문적 교양의 근원으로서 문학(文學)

멀티미디어 시대라 해도 그 근간에는 언어와 활자가 자리한다. 예컨대 『만화의 이해』는 만화에 대한 자기 반성이지만, 이 반성은 상당 부분 언어와 활자에 의존한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반성으로서 『플레이어』가 거둔 실패나, 또는 몇 년 전 조운학에 의해 행해진 만화의 자기 반성과 검토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영상 매체의 경우 자기 반성적 기능이 약하다. 인류 문명의 진화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겠으나, 언어와 활자가 지닌 자기 반성적 기능은 아직 거의 유일하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언어를 주된 영역으로 하는 문학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앞서 고급 교양물의 독서를 잠시 언급하겠다.
내가 말하는 교양물이란 구체적 예를 든다면, 여행기(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2』)나 탐험기(다윈의 『비이글호 항해기』), 일기, 서간문,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곤충기』, 『동물기』는 물론 로렌츠의 『솔로몬왕의 반지』나『개가 인간으로 보인다』, 『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 등), 사진집이나 회고록, 자서전, 평전, 그리고 무엇보다 흔히 수필이라 언급되는 산문의 세계이다. 아쉽게도 이는 우리 출판계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인데, 결국 빈약한 필자(역자)층과 얇팍한 독자층이 야합한 결과이다. 이 문제는 접어두고 문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소개한다.
먼저,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 1995)를 권하고 싶다.『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오랜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 문학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물 창조', '사건 배열' 등의 실전 작법보다는 창작 행위로서의 소설 쓰기에서 작가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생명에의 외경,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각과 맑은 감성, 그리고 진정한 창조를 위한 고독과 인내를 강조한다.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가 오랜 창작 경험을 지닌 대가의 육성을 전한다면,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89)는 자상한 교육자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첫째, 문학이 삶에서 구할 수 있는 '낙(樂)'의 하나이기에 문학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 둘째, 친근한 우리 문학에서 사례를 구하여 문학이 비근하고 예사로우면서도 신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이 모국어 내지 제1언어에 대한 민감성에서 유래하며 '이해'와 '연구'는 밀접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입장은 많은 시사를 준다. 시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하면서 동시에 친절한 답변인, 같은 저자의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시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시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향수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특히 시를 읽는 경험과 삶에 대한 경험, 그리고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잡다한 풍문과 미신에 사로잡혀 시를 읽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직접 시를 정독하여 괜찮은 시를 스스로 가려 내는 주체적 독자가 되라고 충고한다. 마지막으로, 도정일의 문학·문화·시대에 대한 에세이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민음사, 1994)를 필독서로 권한다. 「시대의 시」, 「기억을 위하여」, 「혼돈 시대의 소설」, 「왜 문학인가」의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명석하고도 예리한 분석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볼 수 있다. 이론은 성행하지만 작품의 올바른 이해에는 무용한 오늘날 문학 연구의 현상에서 이 책은 예외적으로 인문학적 교양의 성취를 과시한다.

10.4. 소금은 달다 : 고전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소금에는 음식의 쓴 맛을 없애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설탕에 소금이 들어가면 더 달다는 것은 예로부터의 지혜였다. 고전(古典)이란 인류 문명의 유산이며 인간의 예지에 의한 산물이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이란 어쩌면 그 즐거움을 배가하는 소 금과 같은 것이 아닐까? 따라서 동서고금을 통해 대학 교육의 중심에 고전의 연구가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에서는 고전 연구의 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른바 경학(經學)의 부재이다. 하지만 해방 50주년이 되는 금년에 고전 연구의 각 유형을 보여 주는 책이 나왔음은 매 우 기쁜 일이다. 그것이 바로 『박홍규 전집』(민음사, 1995), 『김충열 교수의 노장 철학 강의』(예문서원, 1995), 『도올 선생 중용 강의』(통나무, 1995)이다. 『박홍규 전집』은 생전의 논문을 주로 모은 『희랍 철학 논고』(전집 1)와 『형이상학 강의 1』(전집 2)이 먼저 나왔다. 플라톤과 베르그송을 중심으로 방대한 학문과 사상 체계를 형성한 사상가이자 고전학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형이상학 강의 1』에 수록된 「고별 강연」과 「그 검토」가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김우창 전집』(민음사)과 『박홍규 전집』이야말로 서구의 인문학을 수용한 이래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한편, 『김충열 교수의 노장 철학 강의』는 노자(老子)라는 사람과 『노자』, 장자(莊子)라는 사람과 『장자』에서 시작하여 반 문화의 기치를 높이 든 노자의 도(道), 덕(德), 무위(無爲) 등 중심 사상과 그 이상, 아울러 비판 철학자로서의 장자의 핵심 철학과 예술적 세계관까지 차분하게 들려 준다. 소극적, 부정적으로 파악되어 온 노장 철학을 중국 철학에 대한 오랜 세월의 성취에 의해 적극적,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노장 철학의 훌륭한 강의이자 『노자』와 『장자』라는 고전의 독법에 관한 뛰어난 안내서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도올 선생 중용 강의(상권)』는 중용이 우리의 구체적 삶의 자세에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서구 근세의 계몽주의를 극복하는 인류 문명의 일대 패러다임 변환을 가능케 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다양한 주제를 재미있는 예와 함께 전달하는데, 저자의 고전 해석은 폭넓은 지식만큼이나 해박하고 다양한 관심 분야만큼이나 화려하며, 또한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저술 양식이나 배경, 동기는 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이들을 통해 고전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엿볼 수 있고 배우게 될 것이다.
【지성과 패기 1995년 9·10월호에서】


11. 열한번째, 대학생과 글쓰기


11.1. 튼튼한 기초는 성공의 지름길

시험 답안, 리포트, 졸업 논문 등 실상 글쓰기는 대학 생활의 필수 과정이지만, 글쓰기 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도 우리 나라 대학 교육의 실정이며 문제점이다. "하늘 아래 쫓기어 나오지 않는 문장이라곤 없다"는 중국인들의 말처럼, 나 자신도 항상 글쓰기에 곤혹을 느낀다. 먼저 글쓰기 의 기초를 생각해 보자. 튼튼한 기초야말로 모든 일에서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글을 쓰기 위한 첫번째 기초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라고 하겠다. 『한글 바로쓰기』(종로서적, 1989)는 맞춤법, 표준어,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문장 부호를 다루고 있다. 「글쓰기 서당」 총서의 첫째 권인 이 책은 1989년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라 『한글 바로 띄어쓰기』를 전면 개편한 책이다. 상용하기 간편하게 만들어서 작지만 실용적이다. 참고 삼아 「글쓰기 서당」 총서의 구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논문과 리포트 쓰기』, 『시의 사전』, 『문장 바로쓰기』, 『시쓰기 입문』, 『문장 365일』, 『외래어 표기법(I) : 일반 용어』, 『외래어 표기법(II) : 인명·지명』, 『해설 고사성어 이해』, 『우리말 속담 사전』, 『서양의 고사 명언』, 『문장 용어 사전』 등등. 외국어의 학습만큼이나 모국어의 활용에서도 사전은 중요한데, 『출판저널』 178호(1995년 10월 5일자)의 「우리말 특수 사전들」은 상소리, 속담, 유래 사전 등 다양한 구성과 특수한 형태의 사전 10여 종을 소개한다.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듯하여 몇 가지 사전을 소개한다. 한글학회에서 엮은 『국어학 사전』(한글학회, 1995), 『한국 땅이름 큰사전』(한글학회, 1991), 정태륭이 엮은 『우리말 상소리 사전』(프리미엄북스, 1994), 이훈종이 엮은 『민족 생활어 사전』(한길사, 1992), 박영수가 엮은 『만물 유래 사전』(프레스빌, 1995), 이승훈이 엮은 『문학상징사전』(고려원, 1995), 김도환이 엮은 『한국 속담 활용사전』(한울아카데미, 1993), 정종진이 엮은 『한국의 속담 용례사전』(태학사, 1993), 박용수가 엮은 『우리말 갈래 사전』(한길사, 1989),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어문각, 1993), 송재선이 엮은 『상말 속담 사전』(동문선, 1993) 등. 이밖에도 최근 출간된 박용수의 『겨레말 용례사전』(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바른말글 사전』(한겨레신문사, 1997) 등도 유용한 사전이다. 이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말을 보다 아름답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데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같은 호의 특별 논단도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는 데 유용하다. 나는 결코 순수 우리말 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지성과 패기』에도 연재되고 있고 최근 기존에 발표된 원고들을 모아 출간된 『고종석의 유럽 통신』(문학동네, 1995)의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글을 쓰는데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무엇보다 소중하며, 이 점에서 이오덕의 노력과 공로를 잊을 수 없다. 『우리글 바로쓰기 1, 2, 3』(한길사)과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 1992)를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11.2. 글쓰기의 기본 안내서들

'아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는 김해식의 『글쓰기 소프트』(새길, 1993)는 글쓰기에 포위된 대학생을 위한 적절한 안내서이다. 글쓰기의 기초에서 실제 과정까지 그 맥을 짚어 주는 이 책은 대학 생활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기초」, 「연습」, 「어떻게 쓸 것인가?」, 「실제」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과 '효율적 이용의 안내'가 매우 유용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승훈의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아카데미, 1992)는 글짓기의 이론과 실제에 초점을 둔 일반인을 위한 안내서이다. 글의 정의에서 명제의 중요성, 글의 구조, 문장의 조건, 낱말의 조건, 문체, 글의 유형과 모형에 이르기까지 글과 글짓기의 일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소주제의 확장, 서두의 시작, 본론의 구성, 결말에 대한 여러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다소 분량이 많지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사닥다리, 1995)에서 저자 서정수는 글짓기가 감성의 발로가 아닌, 이성적 사고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시적 상상력보다 논리적 전개와 체계적 구성 능력을 배우라는 이 책은 특히 단락과 소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편, 다음 두 책은 일반적 작문은 물론 영어 작문에 관심이 있을 경우에도 유용할 것이다. 스콜즈와 클라우스의 공저 『Elements of Writing』을 옮긴 『글쓰기의 길라잡이』(세종출판사, 1995)는 「글쓰기의 요소」, 「문맥」,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소한의 필수적인 이론과 흥미 있는 연습 문제로 구성된 간결한 책이다. 이을환 외 지음의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최신 작문 이론』(경문사, 1985)은 신입생을 위한 미국 대학의 작문 교재인 하트웰의 『Open to Language : A New College Rhetoric』을 편역한 것이다. 자유 작문 및 창안 원리로 산문과 작문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보여 주는데, 예문에 대해 원문을 가급적 살린 『글쓰기의 길라잡이』와 달리 취사 선택하여 보충하고 의역한 점이 다르다. 그 공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태준의 『문장강화』(창작과 비평사, 1988)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강론한다. 신문학 20년이 도달한 성과를 풍부한 예문을 인용하며 집결해 놓은 이 책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문장 공부의 고전이라 하겠다. 증보판 『좋은 글, 잘된 문장은 이렇게 쓴다』(문학사상사, 1993)는 50인의 필자가 밝히는 문장의 수업 과정과 글쓰기 비결을 담고 있다. 문장 수업에 도움이 된 책과 스승,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들려주는 이 책은 살아 있는 문장 작법일 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흥미도 불러일으킨다. 인생과 문학의 체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문학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일독의 가치를 지닌다.

11.3. '바칼로레아'를 아십니까?

'바칼로레아'란 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이다. 그 자신 대단히 뛰어난 번역가이자 훌륭한 문장가인 김화영의 『논술의 일곱 가지 열쇠』(창, 1994)는 실제의 논술 작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지침을 제공할 목적으로 바칼로레아의 논술 과목 참고서를 편역한 것이다. 편역자는 논술이 타고난 재능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력과 훈련으로 그 능력이 개선되고 발전된다는 입장에서 대학생 수준 이상의 독자를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특히 7가지 설계 형태를 언급하는 「논술의 본론」과 각종 사례 분석이 눈에 띈다. 이 좋은 책이 그다지 소개되지 않음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에 비해 『모범 답안 1, 2』(예하, 1995)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우수한 모범 답안을 철학 교수의 논평과 함께 주제별로 모아 놓은 일종의 '수험 준비서'이다. 제기되는 문제를 이론적 전거와 비판적 통찰을 통해 명쾌하게 논술하는 소양을 길러 주는 것이 목적인 이 책은 철학의 각종 개념과 주제를 쉽고 명쾌하게 서술하는 「인간과 철학」 시리즈의 하나이다. 논술문의 기초가 논리적 사고임을 감안하여 일단 다음의 두 책을 소개한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기술』(서광사, 1994)은 논리학의 기본 규칙을 쉽게 설명하면서 이를 구체적 상황에 응용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논리적 사고의 기술은 자기 생각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거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의견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이 책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독자에게 다양한 분야의 이해를 돕기 위해 1,000단어에서 5,000단어까지의 다섯 사다리로 구성되는 「The Ladder Series Books」 즉 「사닥다리 시리즈」의 하나이다. 영어 학습에 유용한 시리즈임을 알려 둔다. 한편,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책과 사람들, 1993)는 개념을 밝히는 특별한 방법으로서 '사고의 기술'인 '개념 분석법'에 대해 다룬다.

11.4. 논문과 리포트를 쓰는 법

대부분의 대학은 논문 형식에 대한 자체의 규정이 있으며, 논문 작성법의 안내 책자도 출판하고 있다. 먼저 자기 대학의 규정과 책자를 정독하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작성법 강의』(열린책들, 1993)를 추천한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의 저자이며 세계적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열악한 환경(우리 대학들도 그만큼 열악하므로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에서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이탈리아 대학생을 위한 지침서로 쓴 것이 이 『논문 작성법 강의』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과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는 최초 단계로서의 졸업 논문이 지니는 여러 의미를 예시하며, 졸업 논문의 작성이 개인적 삶에 지니는 의미도 강조한다. 대학에서 논문 작성 요령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서는 필수 불가결한 책이다.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이 책은 한 마디로 대학 생활의 필독서인데, 「이론과 실천」사에서 출판된 『논문 작성법 강의』는 독어본의 번역임을 덧붙인다. 한편 『논문 리포트 작성의 열쇠』(청송, 1991)와 『논문의 레토릭』(청송, 1993)은 일본의 서양 사학자인 사와다 아끼오의 저서이다. 대학생과 연구자의 논문 작성과 연구에 대한 안내일 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설명, 의논, 설득의 기초 훈련을 의도하고 있다. 논문 쓰는 법은 문장론이 아니라, 구조적 논문을 구성하는 전략론이며 레토릭의 운영이라고 생각하는 저자가 이론적 실용서의 입장에서 이 책들을 쓰고 있다. 번역이 다소 생경하지만 일독을 권한다. 김리나가 옮긴 실반 바넷의 『미술품의 분석과 서술의 기초』(시공사, 1995)는, 하나의 미술품을 보고 분석하여 논문이나 비평문을 쓰는 데 참고해야 할 여러 관점과 문제점을 평이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치고 있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문화와 예술의 비중을 생각하면 이 책의 가치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힉스의 『과학 기술 논문 작성법』(동방도서, 1985)은 과학 기술 기사, 보고서, 학술 논문, 카탈로그, 취급 설명서, 광고, 훈련서, 기술서 등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의 저술을 집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나 기술자를 지망하는 이공계의 학생들에게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각종 제품에 대한 요령부득의 설명서나 매뉴얼을 볼 때마다 이공계나 자연계의 국어 교육이 참으로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11.5. 작가와 전통을 생각한다

자주 강조했듯이, 학습이란 모방에서 비롯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훌륭한 논문을 몇 편 골라서 그렇게 쓰고자 연습하라."고 중국의 유명한 현대 철학자는 충고하고 있다. 전통 시대에 문장을 배우는 방법이란 고전(古典)과 대가(大家)의 모방이었다. 그 모방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모방하고 사숙할 수 있는 작가(학자)를 찾는 일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대학 시절의 과제이다. 여기서 최근에 내가 만난 한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커다란 눈이 이상과 몽상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작은 다른 눈은 현실을 냉철히 지켜보는 듯한 표정이다. 어딘지 무기(巫氣) 또는 영기(靈氣)를 느끼게 하는 얼굴. 서구의 중세였다면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지나 않았을까? 한편으로 위압감을 주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모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지성과 감성, 이성과 관능의 절묘한 배합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 1, 2, 3, 4, 5』(한길사), 『남자들에게』(한길사, 1995), 『바다의 도시 이야기 : 베네치아 공화국 천년사 상, 하』(한길사, 1996),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 1996) 등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작가'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만큼이나 진정한 작가를 '월리'보다 찾기 어려운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가다. 언젠가 신촌에 있는 서점 「오늘의 책」에서 한국 현대의 산문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일말의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우리 문학에는 전통과 고전의 소양을 근거로 당대의 현실과 치열히 대결하는 작가와 작품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노신의 산문을 선호하고, 에코의 에세이를 애호하며,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그러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노신의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창, 1991)를 읽는다면 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중국 고대 산문의 각종 문체의 역사적 원류, 변천, 분류 기준, 기능, 표현 수법과 특색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한문 문체론』(이화, 1995)을 소개한다. 서사(敍事), 전기(傳己) 등 15가지 문체를 언급하는 이 책에서 고도로 발전된 동아시아 전통 산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글쓰기에 관련해 한가지 주목할 것은, 최근 우리 학계에서 일고 있는 '글쓰기의 혁신'이다.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시도는 최근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책을 세 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조혜정 교수의 『탈식민지 사회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1, 2, 3』(또 하나의 문화)이 있다.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론과 우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우리 사회의 식민성'이라고 갈파한 저자의 문제 의식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학술연구에서 글쓰기의 혁신은 가능한가』(한울, 1996)는 강단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고 적실성있는 학문 연구와 우리식 글쓰기의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김영민 교수가 최근에 펴낸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1996)도 글쓰기 혁신에 관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겨 주는 책이다.
【지성과 패기 1995년 11·12월호에서】


12. 열두번째, 우리들의 되돌아온 출발점, 대학


12.1. 우리들의 되돌아 온 출발점, 대학

오늘날 우리 사회 그리고 대학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결코 '세계화'나 TOEIC만이 아니다. 폭넓은 독서와 아울러 고전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얻어지는 인문학적 교양과 미래로 향한 비전! 바로 이러한 것들을 자기의 구체적 삶 속에서 배양하며 실천하는 일이 그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 연재가 그러한 과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후배 여러분의 인생과 미래를 축복하고 싶다.

12.2. 그토록 오래된 : 대학의 기원과 역사

논자에 따라 500년 이상 지속된 인류의 몇 가지 제도로서 대학, 국가, 교회를 들고 있다. 피상적인 통념과 달리, 대학은 그토록 유구한 연륜을 자랑한다. 따라서 그 기원과 역사를 먼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책자를 소개한다.
첫째, 해스킨즈의 오랜 중세사 연구의 결실인 간결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명저 『대학의 기원』(삼성 미술 문화 재단, 1978)이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삼성 문화 문고」의 하나(114번)인데, 같은 문고에 영국, 프랑스, 독일과 미국의 대학을 포괄하는 『학문의 전당』(185번, 1984), 그리고 『미국의 대학 혁명』(186번, 1984)이 있어서 근대의 고등 교육을 다룬다. 한편 「탐구 신서」에 있는 '서양 사학 총서' 중 『중세 대학의 기원』(탐구당, 126번, 1988)은 중세 대학의 독자적 성격을 강조하는 고전적 업적이다. 참고 문헌의 부족 등 해방 직후의 열악한 연구 여건 속에서 착수하여 1950년에 출간된, 약전 김성식 선생의 『대학사』도 결코 망각할 수 없다. 한국 서양 사학의 선구자인 선생의 학식과 관심을 잘 보여 주는 이 명저는 다행히 「김성식 전집」 1권 『대학사·독일 학생 운동사』(제삼기획, 1987)에 수록되었다. 선학의 업적을 전집으로 정리하고 아울러 후배와 제자가 끊임없이 이를 활용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학풍과 학파는 형성되지 않는다. 사족이지만, 이런 점에서 『담원 정인보 전집』, 『백낙준 전집』, 『한결 김윤경 전집』, 『홍이섭 전집』 등을 발간한 연세대학교 출판부의 활동은 매우 의미가 있다. 끝으로, 일종의 일본 근대 사회 사상사 혹은 학생 운동사의 실록이라고 할 만 한, 사회파 추리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우의 『소설 동경 제국 대학』(까치, 1987)을 소개한다. 국립 서울 대학교의 모델인 동경 제국 대학과 그 교수들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미완성의 소설이며 절판되었지만 관심 있는 이의 일독을 권한다.

12.3. 여전히 새로운 : 대학의 기능, 위기, 개혁

비록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대학이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위기와 개혁을 겪고 있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따라서 이제 현재의 대학을 중심으로 그 기능, 위기 그리고 개혁의 노력을 살펴보기로 하자. 캘리포니아 대학 총장 클라크 커의 『대학의 기능』(교학 연구사, 1985)은 '유니버시티'에서 '멀티버시티'라는 역사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학을 검토한다. 그리고 『대학의 위기』(성원사, 1990)는 대학 재정의 궁핍, 교육 과정의 혼란, 대학 행정의 관료화, 대학 이념의 변화 등에서 유래하는 대학의 위기를 논리적·실증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미 『셰익스피어의 정치 철학』(집문당, 1982)으로 소개된 바 있는 앨런 블룸은 『미국 정신의 종말』(범양사, 1989)에서 미국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의 맹점과 지성의 몰락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고전 교육을 강조한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황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위치를 깨닫게 했던 철학과 문학의 위대한 전통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이른바 '민주주의'가 니힐리즘과 상대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생기는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지적인 위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저자의 입장에 대한 찬반을 불문하고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교양 교육이냐 전문 교육이냐의 문제가 20세기 초 이래 미국 대학의 중요한 쟁점이 되어 왔다. 미국의 교양 교육은 컬럼비아, 시카고, 하버드의 세 모델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가 바로 다니엘 벨의 『교양 교육의 개혁 :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경험』(민음사, 1994)이다. 근래 대학가에서 논의되는 학부제 등의 쟁점에 관한 중요한 시사와 제안이 될 것이다. '독일 대학이 미국 대학에 준 영향'을 다룬 『대학과 학문』(연세대학교, 1979)은 19세기의 미국 대학사를 서술한다. 학부 중심의 교수 기능을 강조하는 영국적 전통의 미국 대학이 대학원 중심의 연구 기능을 위주로 하는 독일 대학의 이념을 받아들이며, 아울러 사회 봉사라는 미국의 특유한 전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새로운 대학의 이념과 유형을 창조해야 할 우리의 대학 현실에 대단히 시사적이라 하겠다. 반면 『국제화 시대의 대학 개혁』(문조사, 1985)은 흔히 대학 개혁의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일본의 츠쿠바(築波) 대학을 준비, 창설, 성장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후쿠다(福田信之) 총장의 저서를 추려서 번역한 것이다.

12.4. 겹겹이, 또 켜켜이 : 복잡성의 제도

대학, 그토록 오래되었고 여전히 새로운 이 제도는 따라서 단순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복잡성을 띤 제도이다. 대학이 부딪히는 문제의 여러 측면을 생각해 보자. 먼저 에드워드 실즈의 『대학의 이념과 학문의 윤리』(나남, 1992)는 대학의 장래에 관한 국제 협의회 연구 모임의 보고서로서 대학 공동체에 성찰과 토론을 불러 일으키고자 쓴 글이다. 학문의 자유만이 아닌, 윤리와 의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교수님의 갈등 : 대학의 윤리성에 대하여』(예지각, 1987)는 교수의 채용과 평가, 연구와 강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부딪히는 대학 교육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막스 베버의 원숙한 사상이 농축된 유명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학문』(문예출판사, 1994)이 베버 연구자이자 전문 번역가인 이상률에 의해 새로 번역되어, 직업과 학문, 정치 등의 문제를 깊이 검토하게 만들어 준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도 수록되어 있다. 서양 문명의 발달 과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며 대학의 역사와 본질에도 밀접한 연관을 지닌 휴머니즘의 전통에 관한 앨런 블록의 『서양의 휴머니즘 전통』(범양사, 1989)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역작이다. 현대 사회의 긴박한 문제점들에 대해 역사적 유래와 교훈을 밝혀 주는 양서라 하겠다. 이토록 훌륭한 명저가 절판에 가까운 상태로 망각되고 방치되었음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반드시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으라고 당부한다.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침과 배움이란 교육이란 수레의 두 바퀴이다. 흔히 소홀하기 쉬운 대학의 교육 기능과 우리 대학의 현실을 살펴 볼 때, 「강의 평가제」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박한준의 『훌륭한 강의는 연출의 예술이다』(상경사, 1995)는 대학원생과 대학 교수를 위한 대학 강의 기법으로, 강의 능력을 향상하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한다. 「강의 평가제」가 실시되고 있는 요즘, 대학 당국은 물론이요, 교육자 자신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허스트 박사의 의학 교육론』(사계절, 1994)은 45년 간 소크라테스식 교육을 실천해 온 저자가 (의학) 교육에 관한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설파하고 있다. 교육과 대학은 시설도 설비도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벤치 하나만이라도 충분하다. 이 책의 사례가 (순환기) 내과의 특수 분야이지만, 그 원칙은 교육 일반에 적용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 기술 시대의 대학에 요구되는 연구 기관으로서의 역할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 문제를 대학의 이념과 미래상에 연결시켜 논술하는 애슈비의 『과학 기술의 혁명과 대학』(연세대학교, 1971)은 간결한 명저이다.

12.5. 안에서 깊숙히 :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대학 신문의 현직 기자이거나 졸업한 기자 출신들이 쓴 『우리들의 대학』(거름, 1989)은 대학 사회에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토대로 대학인의 삶, 의식, 고민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불완전한 논리나 경솔한 단정, 그리고 이미 여러 면에서 시대가 바뀐 대학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환상과 현 실의 틈바구니에서 겪은 선배들의 고통과 좌절은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정현의 『한국의 대학교수시장』(내일을 여는 책, 1996)은 교수와 대학의 질 저하, 그리고 대학 경쟁력 상실의 근본 원인을 그릇된 교수 임용 풍토에서 찾고 있다. 교수 공정 임용을 위한 모임의 간사로 활동 중인 저자가 제시하는 풍부한 사례와 대안은 한 번쯤 음미해 봐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대학과 교수 사회 이대로는 안 된다』(한샘, 1994)는 광운대 교수인 저자(조광섭)가 '개혁의 무풍 지대'인 대학 사회, 특히 교수 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 체제와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글이다. 투박하고 거친 표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한편 『이런 교수는 대학을 떠나라!』(한송, 1995)는 일본의 대학 교수, 사쿠라이 쿠니모토가 쓴 '대학의 죄와 벌'이다. 일본 가나가와 대학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공부하지 않는 대학 교수를 향해 "대학 교수와 거지는 사흘만 하면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편한 직업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걸할 필요조차 없으니 교수는 거지보다 더 편한 직업이다"라는 자조섞인 평을 한다. 교수 채용을 둘러싼 금품 수수, 대학 내 이권 개입, 부정 입학, 제자나 조교에 대한 성희롱, 교재를 둘러싼 출판사와의 뒷거래, 학내 파벌 조성 등 일본 교수 사회에 내재한 치부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광복군으로, 세계적인 「아세아 연구소」의 소장으로 한국 현대사를 헤쳐 나온 우리 시대의 거인 김준엽의 『장정 3 : 나의 대학 총장 시절』(나남, 1990)은 보기 드문 귀중한 증언이다. 80년대 초반의 고대 총장 시절을 솔직히 드러내는 이 회고록에서, '역사의 신'을 믿는 저자는 고려대만이 아닌 당시 대학 사회의 여러 면을 총장이라는 입장에서 전해 주고 있다. 『장정』의 나머지 부분도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학맥과 학풍』(문예출판사, 1995)은 우리의 주요 현대 학문들에 대해 그 발달 과정을 스케치한 책이다. 서양 철학의 전공자이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인 저자 이한우는 이 책에서 동양 철학, 서양 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 6개 분야를 통해 한국 학계의 실상을 가늠해 보고 있다. 제자들의 논문을 도용하거나 외국 논문을 자기 것인 양 교묘하게 표절하는 등 교수들의 학문적 비리와 치부가 낱낱이 공개되어 있는 이 책은 아카데믹 저널리즘이 부재한 한국 풍토에 매우 보기 드문 역작으로서, 전공을 불문하고 일독을 권유한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어용 시비를 빠뜨릴 수 없다. 『한겨레 21』 제92호(96년 1월 18일자)는 「교수님, 발가벗은 교수님」에서 "학자의 양심을 팔아먹은 5·6공의 이데올로그"를 추적하고 해부한다. 군사 정권의 창출 작업에 참여, 그 통치 이념을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을 쏟아 부었던 일부 교수들이 저지른 곡학아세(曲學阿世)의 행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브로이엘의 『지성의 몰락』(한길사, 1980)은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나치의 제3제국까지 정치 권력에 의해 와해되는 독일 대학이 겪었던 상황과 역사, 폭력화한 권력과 그에 기생하여 어용화된 지성을 다큐멘터리로 해부한다.
'서울대 패권주의'가 결국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망치고 있다는 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 1996)는 우리 사회의 '간판 제일주의'와 '학연 만능주의'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 댄 문제작이다. 저자가 고발하는 이 나라 학벌과 학연주의의 참상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밖에 전 국회의원 김원웅이 펴낸 『교육백서 Ⅰ, Ⅱ, Ⅲ』(사회정책연구소)과 심선옥의 『대학이여 우리는 희망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삼신각, 1996) 또한 관심을 가져볼 만한 저작들이다. 전자는 국회 교육위에서 활동하였던 저자가 한국 대학의 열악한 현주소를 고찰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펴낸 책이며, 후자는 교수도 아니고, 교직원도 아니며, 학생은 더구나 아닌,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40%, 교양 수업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대학 강사들의 애환과 항변을 담아낸 저작이다.

12.6. 결코 끝나지 않는 : 아쉬움을 달래며

대학이란 결국 '커다란(大) 배움(學)의 터'가 아닐 수 없다. 첫째 현대 학문의 성격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먼저 『학의 방법론 입문 1 : 분석적 방법을 중심으로』(교보문고, 1992), 『입문 2 : 비분석적 방법을 중심으로』(교보문고, 1994)이다. 전자는 언어 이론, 연역과 귀납을, 후자는 현상학, 해석학과 역사적 방법 그리고 변증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장 피아제의 『현대 학문 체계와 그 엇물림』(연세대학교, 1980)은 발생적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구조, 기능, 의미의 체계로 현대의 학문 체계를 분석한다. 『기호와 문학 : 문학의 기본 개념과 구조』(민음사, 1994)는 기호와 의미를 통해 문화와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연구 활동의 주체인 연구소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아인슈타인의 방』(하서, 1993)과 『카오스에서 인공 생명으로 : 복잡성의 과학』(범양사, 1995)을 소개한다. 전자는 「프린스턴 과학 학술 연구소」를 다루고, 후자는 「산타페 연구소」의 이야기이다. 하나(프린스턴)가 학술계의 거장과 천재를 위한 양로원이라면, 다른 하나(산타페)는 제도와 권위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개인들의 고아원이다. 유감스럽게 우리 나라의 대학에는 좋은 의미의 양로원도 참된 의미의 고아원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대학 출판부 종합 도서 목록 1996』(한국대학출판부협회, 1995)은 69개 회원 대학에서 발간된 출판물의 종합 도서 목록이다. 색인이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대단히 유용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또한 문고본 출판의 활성화를 기대하면서 대학론과 관련된 몇 권의 문고본 책을 소개한다. 「중앙신서」 11번으로 나온 퍼킨즈의 『대학의 미래』(중앙일보사, 1978), 「을유문고」 76번인 클라아크 커어의 『대학의 사명』(을유문화사, 1971), 「서문문고」 103번인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서문당, 1973) 등. 단 「중앙신서」는 절판이며, 『대학의 이념』은 경희대 출판부의 「경희신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지성과 패기 1996년 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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