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12장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콜린윌슨타로카드통계분류트라우마홍차중독 도덕경12장

도덕경 12장 (Ver.Beta)

원문

{{|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전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故去彼取此.
|}}

번역

다섯가지로 색을 나누는 행위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가지로 음을 나누어서 분석하는 것은 귀를 멀게 하고
다섯가지로 맛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합니다.
들판에서 말을 달리고 동물을 잡아죽이는 행동은 인간의 마음의
광기를 발하게 합니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길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고로 이를 취하고 저를 버리는 것입니다.

해설

원래 보통의 경우에는 첫장을 이렇게 분석하더군요.

'다섯가지의 현란한 색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한다'
'다섯가지의 강한 맛은 인간의 입을 상하게 한다'

그리고 따라서, 담백한 색과 맛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지요. 보통의 도덕경의 해설이 거의 다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는 80장의 다음구절과 '정확히' 배치됩니다.

'美其服(옷을 아름답게 입고)'
'甘其食(음식을 달게 먹으세요)'

요새는 세상이 좋아서 홈페이지상에도 많은 도덕경 판본이 올라옵니다. 그중에 마왕퇴백서라는 게 있습니다. 마왕퇴백서는 도덕경의 장(章)구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1장부터 81장까지 쭉 연결해서 적어놨더군요. 따라서 도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일관된 논리를 가지는 하나의 글로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글의 중간에는 '색은 나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색은 좋다'라고 한다는 것은 모순이지요. 글의 권위를 급격히 떨어트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장으로 구별되는 현존 도덕경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입니다.

도덕경은 분별과 인위를 극단적으로 거부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감각의 범위에 있는 것을 굳이 인간의 이성으로 나누는 것은 감각의 본질적인 역할을 망가뜨린다'는 것으로 보는게 좋겠지요. 이에 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에 있는 이야기인데요. 북방의 왕이 혼돈이라는 왕인데, 하루는 그를 초대해서 9가지 구멍을 만들어주니 결국에는 그가 죽더라는 것입니다. (혼돈에 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있는데이것은 나중에 이야기 하죠^^ 도올선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이성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미지의 부분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굳이 분별하면 이전의 지성으로 풀수 없는 부분은 결국 지성으로 변화해버리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립니다. 장자에서는 혼돈이 죽었다까지만 나옵니다. 만일 불초노부(不肖老夫: 指稱Christel之 ^0^)가 그 부분을 적었다면 '혼돈이 죽고 명료(明瞭)가 태어났다'를 덛붙였을 것입니다. 하나를 덧붙여서 더 빛나게 하는 것을 한문으로 錦上添花(금상첨화)라고 하더군요. ^0^(육자배기를 읊으며) 烏呼라, 名文上 添一句허니 意味 再新하노라~~

선불교에서도 맛을 느끼면, 맛이 되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 좋다 나쁘다거나 선하다 악하다는 부분을 더하면 감각이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과를 먹을때 감각을 총 동원해서 맛이 되어야지. 좋니 나쁘니 조금시니 덜다니하고 분별내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더구나 미각도 상하는 것입니다.

또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건 사람들이 듣고듣고 또 들어서 이제는 식상해진 이야기가 아닐까합니다. 바로 아담이야기인데요. 아담이라면 왜 여고앞에서 태고적 모습으로 나타나서 학생들을 놀래키는 남자들도 아담이라고 하더군요. 또는 성환이라고도 합디다. 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을까....-_-;;;; 암튼, 이야기가 새는 것같으니 다시 돌려서, 이브와 아담이 있는데,원래 그둘은 천국에서 거했다고 하죠. 그런데 어느날 파이슨(Python)이 찾아와서 '헤이, 맨(Man)~ 여기 사과하나 먹어보게나'라고 했답니다. 이브가 유혹해서 사과를 먹고나니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부끄러워하자 하나님이 '너희, 배암의 사주를 받은 사단의 자식들아. 나가라'하고 지상으로 쫓아낸다는 이야기죠. 인정머리 없는 신같으니라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신미의 변'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어느날 마고성(마고성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습니다. 당연히 요즘 마고마고하고 떠드는 단*선원비판도 포함되겠죠.)에서 금지된 포도를 먹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포도를 먹고나니 인간의 마음속에 분별과 악이 생겨서 결국 마고성이 붕괴되었다는 야기입니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죠.

어디서? 누가? 뭘 먹었는데? 1차결과는? 2차결과는?
에덴동산 아담이브 -- 사과 -- 부끄러움을 암 - 낙원의 추방
마고성 마고성주민 -- 포도 -- 분별과 악이 생김 - 마고의 붕괴

여기서 바로 사과와 포도라는 요물이 나오는데요. 저도 '시고 단 과일'을 좋아해서 포도나 사과쥬스 같은 것을 아에 끼고 사는 편인데... 산에 올라가서 참회라도 해야하나 ㅠ_ㅠ. '예전에는 그것들을 먹는 것이 그렇게 나쁜짓인줄 몰랐어요.' 참회록이라도 쓰고싶군요. 헛소리 그만하고요. 제가 말한 부분에 좀 이상한 부분이 없으신지요? ^^ 바로이 부분이 이상한 부분이죠.

'시고 단 과일'

포도와 사과가 동시에 시고 단 과일이라는 점이 이상한 점입니다. 시다는 것은 오행상으로 목을 의미합니다. 달다는 것은 토를 의미하죠. 토에서 목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스프링(Spring)이죠. 이 설화는 최초로 인간의 분별이 발현되었다는 원시시대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목에 불이 붙으니 큰일이로세~하는 음부경설화도 있지만 나중에 이야기하죠. 이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땅은 지신을 가르키고 지신은 여신을 가르치니 이때를 저는 여신의 시대라도 생각합니다. 마고(麻姑)가 바로 마짜는 할매에요.
또 하나, 분별이 생긴 형태도 시고 단 맛을 처음 봤다는 것이 아니라, 맛을 먹으면서 이것이 시고 단 맛이구나!라는 것을 지성으로 알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고 단 맛을 먹기 전에 떫고, 짜고 매운 맛만 먹고 살았다고 생각해보죠. 신이 사이코가 아닌 이상 그렇게 먹이지는 않았겠죠.;;;;;;

본 12장에서는 맛과 색과 음의 완전성을 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분별을 내어서 원래의 감성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아라는 것이지요. 괜히 입하고 코만들어준다고 하다가 혼돈이가 명료가 되어버린다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 장을 80장과 연관을 시켜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의 감성으로 완전한 상태에서 볼 때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인간의 미각이 극도로 섬세한 가운데서 맛있는 것을 먹어라~'

이거 뭐, 미식과 탐미의 극치네요. ^^ 쉽게 말해서 미의호식해라는 것입니다. 단, 인간의 관점에서 브랜드나 상표값이나 레어(드문) 가치등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죠. 인간이 귀히 여기는 것은 보통 그 가치와는 상관없이 수량이 극도로 드문 것을 의미합니다. (難得之貨令人行妨
). 아니, 동일한 가치를 두고도 전부 미의호식할 수 있는데 굳이 그것이 안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맛과 색과 문화적인 요소는 동일한 가치로도 충분히 좋은 재화를 만들 수 잇는 것이 특징입니다. 좋은 재화와 물건을 공급과 수요의 원칙따위에 휘둘리지말고 좋고 정성껏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왜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당연하고 쉬운 행동인데요. 채소나 식물(食物)은 가치를 따지는 것이 생산의 단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완결의 단계에서 분류를 통해서 결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채소와 식물(食物)들을 사랑하고 이뻐하는 고차원적인 농부(그레이스펄 인텔리전트 트랜샌던트 파머-_-)가 많아져야 인간의 식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식물(植物)도 인간입니다..아아니구.. 생명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고 감정이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죠. 이쁘게 키워서 감사한 마음으로 잡아먹자...;;;는 것입니다.암튼.....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나 희소성의 법칙과 같은 끔찍하고 저주해 마지 않는 변태적인 법칙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잡담: 고로, 저는 불교의 박의천식(薄衣賤食:옷을 거지처럼 입고 음식을 험하게 먹자)를 별로 안좋아하는 인간중에 하나입니다. 글고보니 얼마전에 df.co.kr갔는데...... 면티 진짜이쁘더군요. 스몰사이즈밖에 없어서 못샀습니다. 여자분들은 가보세요. 이승환씨가 옷하나는 이쁘게 만들었더군요. 도덕경에 왠 면티소리다냐.)

그리고

馳騁전獵令人心發狂

이부분은 이야기할 것도 없겠죠. 말을 달리고 동물을 때려잡다보면 인간의 마음이 동물의 수렵심으로 퇴화하는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안그래도 숭산스님이 동물심말씀을 많이 하시던데요.(그러고보니 동물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_-군-_-요.) 여자도 터프한 남자가 멋있다느니, 그런 소리를 잘 하는데..... 저도 고등학교때, 나름대로 터프해질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밥을 손으로 먹으면서 '으르렁' 거린다던가, 교복단추를 두개에서 세개까지 풀고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아주 가끔이지만-_-) 정말 적성에 안맞더군요. 괜히 터프니, 고독이니... 글쎄요. 귀엽긴 하지만 좋다는 생각은 안듭니다.-_-;

웃고 놀다보니 마지막구절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습니다. 저를 버리고 이를 취합입니다'

이부분도 상당히 오해가 많은 부분인데요. 배를 채우고, 눈을 위한 꾸밈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상당히 의문입니다. 그러면 이쁜 것을 입을 필요도 없고 오색이 눈을 상하기전에 눈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요.

눈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작용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분별을 많이 낼때는 놀랄정도로 눈을 자주 깜빡이게 됩니다. 선사들은 눈이 흐리멍텅해지는 때를 견성이 가까운 때라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분별적인 작용을 위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빌헬름 라이히가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마음이 불안하면, 배도 불안해진다는 것이 있습니다. 배가 편안하면반대로 마음도 안정되죠. 마지막구절은 온갗 분별과 구분을 둘째로 하고,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를 편안하게 채워준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면 좋을 듯합니다.

(끝)

(추신)
실컷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것같은데...;;; 나름대로 보면, 전부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싱긋) 그럼 다음에 또.

좋은 해석 감사합니다..하지만 저는 도덕경 전체를 저같은 인간을 위해 요약해야 쓰것슴다 너거뜰...태어난대루 살다 주거라~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