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인홀트 메스너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 낭가 파르바트의 8,000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도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도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히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김훈 자전거여행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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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래킹 기록 중에서 ¶
11. 5. 포카라
...혼자 떠나기로 했다....
11. 6. 랜드룩
긴 산행이었다. 지리산의 남부능선을 타거나 종주한다면 이 정도는 힘들 것이다...이것저것 집어넣은 배낭이 예상외로 무거워 고생스럽다. 짐을 줄이려면 부지런히 먹어야겠다...혼자 걷는게 부담없어 좋다. 새삼 동행자 없이 온걸 기꺼워 한다.
11. 7. 시누와 2340
...까마득한 벼랑길을 몇 개나 오르락내리락 한 것인지...깊은 계곡 건너편에 집이 몇 채 보인다 싶으면 기어이 거기를 가야하는 것이었다...도대체 왜 이리 힘들어하며 가는건지 싶다...안나푸르나 마차푸차르가 무척 가까워졌다...
11. 8. 히말라야 2920
어젯밤에 고소증과 폐소공포증이 밀려와 잠을 거의 설쳤다. 침낭속에서 가위눌린듯 헤매다가 창문을 빼꼼이 열고 찬공기를 마구 들이키기를 반복했다...설산이 눈앞에 있고 계곡은 한없이 깊다. 가끔 폭포가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렸다...돌아가고 싶다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게 익숙한 잠자리, 익숙한 길거리, 입에 맞는 먹을거리, 그리고 사람들...심리 깊숙이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라질 수 있다라는 생각, 고산병이거나, 또는 자칫 발을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일테지. 그런 도처의 죽음들, 아니 한결 가까워진 죽음을 느낀다...
11. 9. 마차푸차르 베이스캠프 3700
...잠시 오르막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길 옆의 깎아지른 듯한 산을 한참 올랐다...길이 너무 험해 이상하다 하면서도 한동안 멈추질 못했다. 더이상 오를 수가 없을때서야 잘못들었구나 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인적의 부스러기조차 없는 적요...내려오는 길은 오를때보다 더 아찔했다. 바위는 벼랑에 간신히 붙어 있고 바싹 마른 풀뿌리들은 잡으면 으스러졌다. 혼자 있는 즐거움, 혼자이어서 느끼는 공포...길은 멀고 숨을 턱끝에 차고 다리 힘은 그냥 쑥쑥 빠졌다. 계곡은 왜 그리도 깊은 것인지, 그냥 올려다보면 저 끝 모퉁이가 코앞인데, 거기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맞은편 사람은 점만치 작다. 계곡이 크고 깊어 계속 착각을 한 것이다...양켠으로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흰산이 보이고 가끔 구름은 발 밑으로 스르륵 기어다녔다. 까마귀는 하늘 높이 점점이 날고, 안나푸르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시퍼렇고 거친 물줄기를 가끔씩 드러냈다...베이스캠프 막바지에는 이러다 죽지하면서 기다시피하면서 산장에 도달했다...아직 네 시가 안됐는데 큰 산 사이로 해가 지고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허옇다...밤은 길다...
11. 10.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4200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침낭 안에 코를 박고 누워 한없이 뒤척였다. 밖엔 산바람이 거칠게 불어 위윙대는 소리가 괴물이 울부짖는 듯했고 공기는 차거워 코끝은 자르는듯 했다...왜 산에 왔는지, 왜 이 지겹도록 긴 산길을 헥헥대며 걷는지 생각했다. 어느 결에 이제 충분하지 않나 하는 혼자 생각을 했다. 산 아래까지 가면 대략 7,8일.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되지 않나, 어딜 꼭 가야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산을 보는 것, 걷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돌아보자. 인도로 가서 스리랑카도 가고 안다만도 가고 파키스탄 이란 이렇게 돌아볼까, 너무 욕심내는 것인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인가...새벽에 일찌감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사람도 없는 황막하고 고적한 길. 길은 꽝꽝 얼어붙어 있고 눈은 간신히 통로만 열어둔채 쌓여있다. 하늘의 검푸른 빛이 눈을 찌른다. 공기는 희박하여 숨은 턱끝으로 차오르고 대기는 퍼렇게 얼어붙어 있다...그 길을 새벽에 혼자 걷게 된 것을 고독한 자부심으로 깊이 간직한다. 이걸 위해 그 며칠의 산길을 걸어왔나보다...이제 내려가야겠다...
...혼자 떠나기로 했다....
11. 6. 랜드룩
긴 산행이었다. 지리산의 남부능선을 타거나 종주한다면 이 정도는 힘들 것이다...이것저것 집어넣은 배낭이 예상외로 무거워 고생스럽다. 짐을 줄이려면 부지런히 먹어야겠다...혼자 걷는게 부담없어 좋다. 새삼 동행자 없이 온걸 기꺼워 한다.
11. 7. 시누와 2340
...까마득한 벼랑길을 몇 개나 오르락내리락 한 것인지...깊은 계곡 건너편에 집이 몇 채 보인다 싶으면 기어이 거기를 가야하는 것이었다...도대체 왜 이리 힘들어하며 가는건지 싶다...안나푸르나 마차푸차르가 무척 가까워졌다...
11. 8. 히말라야 2920
어젯밤에 고소증과 폐소공포증이 밀려와 잠을 거의 설쳤다. 침낭속에서 가위눌린듯 헤매다가 창문을 빼꼼이 열고 찬공기를 마구 들이키기를 반복했다...설산이 눈앞에 있고 계곡은 한없이 깊다. 가끔 폭포가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렸다...돌아가고 싶다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게 익숙한 잠자리, 익숙한 길거리, 입에 맞는 먹을거리, 그리고 사람들...심리 깊숙이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라질 수 있다라는 생각, 고산병이거나, 또는 자칫 발을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일테지. 그런 도처의 죽음들, 아니 한결 가까워진 죽음을 느낀다...
11. 9. 마차푸차르 베이스캠프 3700
...잠시 오르막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길 옆의 깎아지른 듯한 산을 한참 올랐다...길이 너무 험해 이상하다 하면서도 한동안 멈추질 못했다. 더이상 오를 수가 없을때서야 잘못들었구나 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인적의 부스러기조차 없는 적요...내려오는 길은 오를때보다 더 아찔했다. 바위는 벼랑에 간신히 붙어 있고 바싹 마른 풀뿌리들은 잡으면 으스러졌다. 혼자 있는 즐거움, 혼자이어서 느끼는 공포...길은 멀고 숨을 턱끝에 차고 다리 힘은 그냥 쑥쑥 빠졌다. 계곡은 왜 그리도 깊은 것인지, 그냥 올려다보면 저 끝 모퉁이가 코앞인데, 거기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맞은편 사람은 점만치 작다. 계곡이 크고 깊어 계속 착각을 한 것이다...양켠으로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흰산이 보이고 가끔 구름은 발 밑으로 스르륵 기어다녔다. 까마귀는 하늘 높이 점점이 날고, 안나푸르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시퍼렇고 거친 물줄기를 가끔씩 드러냈다...베이스캠프 막바지에는 이러다 죽지하면서 기다시피하면서 산장에 도달했다...아직 네 시가 안됐는데 큰 산 사이로 해가 지고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허옇다...밤은 길다...
11. 10.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4200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침낭 안에 코를 박고 누워 한없이 뒤척였다. 밖엔 산바람이 거칠게 불어 위윙대는 소리가 괴물이 울부짖는 듯했고 공기는 차거워 코끝은 자르는듯 했다...왜 산에 왔는지, 왜 이 지겹도록 긴 산길을 헥헥대며 걷는지 생각했다. 어느 결에 이제 충분하지 않나 하는 혼자 생각을 했다. 산 아래까지 가면 대략 7,8일.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되지 않나, 어딜 꼭 가야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산을 보는 것, 걷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돌아보자. 인도로 가서 스리랑카도 가고 안다만도 가고 파키스탄 이란 이렇게 돌아볼까, 너무 욕심내는 것인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인가...새벽에 일찌감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사람도 없는 황막하고 고적한 길. 길은 꽝꽝 얼어붙어 있고 눈은 간신히 통로만 열어둔채 쌓여있다. 하늘의 검푸른 빛이 눈을 찌른다. 공기는 희박하여 숨은 턱끝으로 차오르고 대기는 퍼렇게 얼어붙어 있다...그 길을 새벽에 혼자 걷게 된 것을 고독한 자부심으로 깊이 간직한다. 이걸 위해 그 며칠의 산길을 걸어왔나보다...이제 내려가야겠다...
수 년 전 산행중의 기록이다. 그 길을 다시 걸을 날을 꿈꾸면서 옮겨둔다..-- Nom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