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함께한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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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0385484518][ISBN-8985509993]

원제 : Tuesdays with Morrie

요즘 공대생으로써, 상대생으로써 필요한 지식의 습득에 질리고 있었다. 뭔가 삶의 모습,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생각의 깊이를 더해줄, 삶의 지혜를 전해줄 나의 부족함을 덮어줄 인생의 스승을 현실에서 혹은 책에서 찾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모리” 교수를 만났던 “미치”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과연 나 혼자였을까?

죽음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문득 든 죽음에 대한 생각의 고리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 되어지면서,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있다. 죽음이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하지만 죽음은 그럴 수 없다. 죽음을 경험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므로.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직시 할 수 없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알 수 없고 결정할 권리도 없기에 세상에 나이가 들고 몸이 늙어가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이 과정을 세월이 갈수록 더욱 부자연스럽게 느낀다.

모리 교수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죽음을 선고 받았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제 죽을지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의 죽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리 교수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보다 남은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지인들과 같이 준비한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 할 수 없고, 아무도 말해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 하는 것 이었다.

대학 시절의 은사였으나 졸업 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스승을 TV를 통해 만나본 미치는 그의 스승이 죽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특별했던 그와의 수업과 대화를 회상하며 자신의 현재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 미치는 매주 화요일마다 모리교수와의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살면서 읽어버린 “삶의 의미”를 모리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모리 교수와 미치는 이렇게 매주 화요일 마다 “사랑” “죽음” “용서” “가족” 등,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확고히 해야만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모리. 조용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하며 남긴 모리의 말을 곱씹어 보며, 내가 지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자네를 사랑하고, 자네가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라”.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라”. 가장 기억에 남는 모리교수의 말이다.

한참을 이 책에 빠져있다가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모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 이 죽음을 맞이 하고 있다면 과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난 매우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죽어가는 그 동안의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사회적인 고통을 겪지는 않을는지. 이 죽어가는 노교수를 취재할 방송국도 없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한국사회를 잘못 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이라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대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말이다. 모리가 향유한 문화적 풍요로움, 육체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료시스템, 사회보장제도,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모리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외부적인 요인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바라 볼 수 있을 만큼.

비슷하게 만약 모리가 한 가정을 책임진 40대의 가장이라면, 남겨지는 자들의 고통을 뒤로 하고 어찌 보면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을까? 희망 없는 자신을 위해 모든걸 희생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모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책처럼 삶의 가치를 논하는 책들은 생각을 나누는 방법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으로 이미 많이 나와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도 이러한 류의 책에 속한다고 본다. 단지 죽어가는 스승과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삶의 의미를 잊은 제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참다운 삶의 모습을 말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 마다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의 모습에 적용시키려 할까? 책의 내용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다루는 다음에야 동의는 하겠지만 그렇게 금방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읽은 후의 얼마 동안 일면 당연하지만 새롭게 재확인한 삶의 어떤 것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생각하겠지만 얼마나 지속성이 있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라. 나의 경우엔 읽는 그 순간에 느끼고 생각 했던 것이 전부였었다

결국,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뼈저리게 느끼는 것만이 그 사람만의 삶이지 남의 삶이 내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고 느껴보지도 않은 삶의 모습에 대해 다른 사람의 말만 덜컥 믿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의 모습이 있고 나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고 삶의 마지막에선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 동안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만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성급하게 “모리”와 “미치”의 삶을 일반화 시켜서 자신의 삶에 끼워 넣으며 튀어나온 자신의 삶을 잘라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대를 달리는 사람에게는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경험은 그가 살면서 누리 게 될 여러 배움 기회들을 제한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배움의 기회이다 라고 한다면 반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의 몇몇 부분에 있어서 나의 경험과 공명할 수 없었다. 단지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져 왔고, “미치”가 부러웠다. 그러나 “모리”가 나의 스승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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