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을 이제서야 읽으면서, 그 시대의 스님의 따뜻한 마음씨와 놀라운 식견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들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너무나 구구절절이 날카로운 충고들로 가득차 있다. 김용옥의 많은 부분이 법정스님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어쩌면 이 세상을 옳게 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일지도...) 김용옥을 알게 되면서 느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김용옥의 글에서 그 논리정연함과 박학다식함에 매료되었었다면, 법정스님의 이 책에서는 김용옥의 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더 풍부한 감성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비슷한 얘기를 하면서도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법정스님과 같은 지성인들 덕택에 그나마 오늘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한국의 지성인이란 이런 분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용옥을 좋아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법정스님이라면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사람을 보는 시각이 어쩌면 지적인 면 보다는 감성적인, 지식이 정말로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용옥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과 같이 지행합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많이 못미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김용옥도 존경한다. 다만 정말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이 될 뿐이다. 이런 분들의 얘기에, 소박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이런 얘기를 더욱 많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할 뿐이다. naya의 감상이었습니다~
김용옥을 좋아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법정스님이라면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사람을 보는 시각이 어쩌면 지적인 면 보다는 감성적인, 지식이 정말로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용옥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과 같이 지행합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많이 못미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김용옥도 존경한다. 다만 정말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이 될 뿐이다. 이런 분들의 얘기에, 소박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이런 얘기를 더욱 많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할 뿐이다. naya의 감상이었습니다~
다음은 무소유에서 흙에 대한 생각이 김용옥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을 이루고 있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는 종교적인 신화는 여러 가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도 우리들 신체의 구성 요소로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을 들고 있는데, 쇠붙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흙으로 만들었다는 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물을 길러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인생의 생태다. 그리고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시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러기때문에 흙을 가까이 하면 자연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이있으면 우리들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 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감촉해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약동하는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이있으면 우리들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 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감촉해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약동하는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잘 살겠다는 구실 하에 산업화와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문명은 자꾸만 흙을 멀리하려는 데 모순이 있다. 생명의 원천인 대지를 멀리하면서, 곡식을 만들어 내는 어진 농사꾼을 짓밟으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요즘의 식량난은 심상치 않은 일 같다. 그것이 세계적인 현상이고, 그 전망은 결코 밝을 수 없다고들 한다. 그 까닭을 늘어나는 인구에다만 돌려 버릴 성질의 것은 아니다.
흙을 더럽히고 멀리한 과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인간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소식은 아닐까.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눈먼 인류에게 흙을 저버린 우리들에게 흙의 은혜를 거듭 인식케할 계기가 된다면.|}}
김용옥의 현대 한국건축이 negative affordance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 그 주장이 비롯된 그 시각은 바로 이런 분들이 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분들이 바로 이 시대의 흙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naya생각..
이차저차한 독후감을 써야할 일 때문에 읽게 되어 감흥은 적었지만 지혜가 담긴 것은 분명하다. 단지 설정을 달리하여 반복하는 것은 그 내용이 삶의 지혜일지라도 활자화되고 난 이후 효과를 생각한다면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헌터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