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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일반 한국가옥의 부엌에는 세개의 이 걸렸다. 커다란 "가마솥", 중간솥, 그리고 "옹솥"이라고 불리우던 작은 솥. 부엌이 딸리지 않는 사랑채나, 건너채에는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잔치할때 곰국을 끓인다거나, 빨래를 삶을때, 쇠죽을 쑬때, 혹은 물을 끓일때 사용하였다.

쇠죽솥으로 이용되던 가마솥

쇠죽솥은 말 그대로 소의 죽을 쑤는 솥입니다. 시골집에서는 보통 외양간을 처마 밑에 붙여 지어놓고 소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를 먹일 때 생풀도 먹이지만, 보통 쇠죽을 끓여서 먹입니다. 큰 가마솥을 쇠죽솥으로 쓰게 되지요. 가마솥에서 밥하기가 참 어렵죠. :) 냄비에다가 밥을 짓는 건 그럭저럭 하지만, 가마솥은... --Aragorn

아 글을 쓸때 '가마솥'이라고 쓸까 '쇠죽솥'이라고 쓸까 잠시 망설였었는데,..역시 날카로우시군요. :) 그것이 '가마솥'이 더 정확한 표현이지요.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그걸 언제나 '쇠죽솥'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니까 우린 쇠죽솥에다가 쇠죽을 쑤기도하고, 때로는 거기에 물을 잔뜩 담아 펄펄끓여서 목욕하는데 쓰기도 했으며, 두부를 만들때도 사용하였고, 여러모로 두루두루 썼던거지요. 어참! 신세대 미청년이 쇠죽솥과 가마솥에 대한 얘기도 하시네! 있쟎아요..어느때는요, 심심할땐, 그 쇠죽솥에서 을 골라 먹기도 했어요. 쇠죽쑬때 콩을 넣어줄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소가 먹을 그 죽에서 푹익은 콩을 골라 먹은거지요...사실..사람이나 소나 별 차이가 없었으니깐. :) --Jimmy

본가가 경주에서 조금 들어간 시골 과수원이기도 했고, 유년기를 삼랑진 시골 촌구석에서 보내기도 했지요. 삐걱거리는 펌프나 두레박으로 물 푸고,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 피우는 문화에 익숙합니다. 어릴 땐 왜 그렇게 눈 큰 소가 무서웠던지. 소가 투레질 한번 하면 겁이 나서 휭 내빼곤 했습니다. 과수원집은 늘상 일손이 부족해서 두부를 직접 만들 여력은 없었습니다. 메주 띄워서 장 담근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외에는 별로 없네요. 시골에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만 하게 되고, 부엌에선 일꾼들 참 내어 놓기도 바쁘죠. 시골에 대한 아른한 향수는 남아 있는데, 사실 막상 시골에서 밥 벌어 먹고 살려면 참으로 인생이 고달퍼집니다. 결국 시골 과수원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관계로 오래 전에 노는 땅이 되어버렸지요.

제가 쇠죽솥과 가마솥을 구분한 이유는 시골집에 가마솥은 7~8개가 있었지만, 쇠죽솥은 외양간에 있는 가마솥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가마솥도 큰 솥, 작은 솥이 있어서 큰 솥은 어린애가 들어가서 목욕할 수도 있고, 작은 솥은 요즘의 큰 압력솥 정도 크기이죠.
제가 아는 반백년 조금 넘는 가족사만 해도 참으로 파란만장하네요. 여기서 고만해야겠습니다. --Aragorn

과수원집 총각이시군요. 그놈님댁도 사과과수원을 하신다던데. 이따금 생각날때마다 그 푸릇한 옛이야기 조금씩 들려주세요. 아 그 오래된 벌건 녹물이 묻어나던 펌프 (우리는 그걸 뽐뿌라고 불렀지요), 그리고 달을 퍼올리던 두레박.. 어느때는 사람이 "책"처럼 여겨집니다. Aragorn이라는 책속에 이런 아름다운, 풀냄새, 흙냄새가 나고 파란하늘 그림이 그려진 옛 이야기가 씌어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었지요.


see also 추억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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