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연제협과 MBC 사이의 갈등 덕분에 ¶
지난 7월 13일 오전 11시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에서 "대중음악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대개련)"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 주최로 기자 회견이 열렸다. 주제는 대중음악개혁백서 발간 및 향후 계획 그리고 최근 연제협(한국연예제작자협회) 소속 가수들과 MBC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갈등에 대한 시민 단체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넓지 않은 카페에 모인 이들은 발제자와 취재진 그리고 시민단체 관련자등 참석자를 모두 합쳐 삼십명 남짓, 비록 방송국 취재진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MBC 의 로고가 찍힌 카메라와 다른 6미리 카메라만이 좁은 공간을 오갈 뿐이었다. 타 지상파 방송국 관련자는 이번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방송국에서 가요순위폐지 운동에 대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그나마 연제협과 MBC 사이의 갈등 덕분에 이번 기자 회견이 약간의 힘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개련 운영위원장과 문화연대사무차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동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연제협과 MBC 간의 갈등에 대한 입장표명이라는 변수가 있었기 때문에, 방송국 카메라가 이런 자리에 등장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그리고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동일선상 ¶
이날 대개련에서는 가요순위프로그램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순위 프로그램의 폐지, 음악 전문 PD 들의 선임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한국 방송 문화중 연예방송시스템의 파행과 정체성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가요순위프로그램의 문제와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동일선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연제협의 집단 행위도 결코 옳은 것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위원회"에 중재와 심의 요청을 할 수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바로 약속이나 한 듯 단체 행동에 돌입한 것은 시청자들의 의구심을 자아낼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방송사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폐지, 대중가요를 위한 새로운 제작 방식의 확립을 , 연제협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투명한 관계 체제를 확립해줄 것을 요청했다.
희석되는 사건의 본질 ¶
MBC 가 지난달 17일 시사매거진 2580에서 "스타와 연예산업"을 방영한 뒤 곧바로 연제협이 반발하며 출연거부의사를 밝힘으로써 시작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일부 신문사의 경우 갈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행하고 있다. "MBC-연예제작협 전면전(세계일보)", "연제협ㆍMBC 2580후속제작 싸고 2라운드(한국일보)","MBC-연예계 싸움확전(국민일보)" 등의 기사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 시사매거진 2580에서 보도했던 내용의 진상여부보다는 연제협과 MBC 간의 주도권 싸움을 위한 투쟁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처럼 묘사해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다. 이러한 보도 경향에 대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 이하 민언련 ) 방송모니터위원회에서는 "스포츠조선을 비롯한 일부 언론의 정략적 보도태도로 이번 사건이 방송사와 기획사간의 힘 겨루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고 지적하고, 이러한 보도 경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사태를 갈등 중심으로 보는 시각은 네티즌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MBC 와 연제협 중 어느 쪽을 옹호하는가?" 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거나 , MBC 옹호자를 위한 게시판, 연제협 옹호자를 위한 게시판을 따로 개설해놓고 이를 위한 게시물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 즉 연예인들의 인권과 처우문제에 대한 논의 및 진상 규명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의문은 식어가고 있다.
아직은 그들만의 리그 ¶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흐름에는 연제협과 MBC의 대응 방식에도 책임이 있다. 연제협에서는 이번 사건 이후 MBC PD 의 비리설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문제를 확대시켰으며, MBC는 14일 방영된 미디어 비평에서 이러한 대응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 대항하는 이익단체의 억압으로 규정지었다.
특히 15일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에서는 이번 사건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이번 기자 회견을 10 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방송했다. 그 내용은 이동연씨가 연예인의 실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 장면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이번 기자회견에서 마치 문화연대와 대개련이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을 지지한 듯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었다. 정작 기자 회견에서 대개련이 적극적으로 거론한 가요순위프로그램으로 인한 문제와 이번 사태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 그리고 대안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정확한 연예인의 처우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에 대해 차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방송국 측에서도 정작 이번 사건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하에서 양자간의 정치적인 수위의 싸움은 시청자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어느 한 쪽이 사과 혹은 양보를 하거나 합의를 한다고 해도, 시청자가 접하게 되는 프로그램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갈등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일어난 하나의 헤프닝으로 마감하게 될 것이다.
공개 토론회 열자 ¶
" 언론 관련 학자, 실무자, 일선 PD, 연제협 관계자, 연예인 모든 주체가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공개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 문화연대 매체문화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용진 교수 ( 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직중 ) 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7월말경 이러한 공개토론회를 거쳐 각자의 명백한 입장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를 갖자고 제안하며 자발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만일 이러한 공개 토론회가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다면 적어도 최근에 일어난 문제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끌어내 공론화시키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제협과 MBC 사이의 갈등은 시작은 그들 내부에서 기인한 것이었지만, 그 해결은 공론화된 형태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 과정에서 방송이라는 다양한 현상속에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인 해결 방안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연제협과 MBC 의 갈등 덕분에 기자 회견이 힘을 얻었다는 이동연 대개련 운영위원장의 말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기원해 보도록 한다.
By Nestor (roadkeeper@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