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에서 크리스마스 특집 콩트 집필을 의뢰받고 뭘 쓸까 고민하던 소설가 오스터는 평소 자주 가던 담배가게 점원 오기 렌으로부터 “그게 문제야? 점심 사면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줄게”라는 제의를 받는다.
오스터는 렌이 12년 동안 뉴욕 모퉁이 한 길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꼭 같은 시간에 꼭 같은 앵글로, 거리 풍경 사진을 찍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년 전 렌은 담배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도망친 한 소년의 지갑을 줍는다. 쓸쓸한 크리스마스 날, 그 소년을 찾으러 간 아파트에는 오기 렌을 손자로 대하는 눈먼 할머니만 있었다. 그녀가 잠든 사이 렌은 소년이 훔쳤을 것이 분명한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온 뒤,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데….
1990년 뉴욕타임스 크리스마스 특집판 한 면에 실린 짤막한 이야기, 폴 오스터는 이 짧은 소설에 사람살이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 실재와 환상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스모크’ 처럼 연기 마냥 덧없이 허공으로 스러지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호해 보이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삶의 진실이 싸한 감동으로 와 닿는다. 진짜배기 이야기란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다.
영화 ‘조이 럭 클럽’ ‘차이니즈 박스’ 등으로 유명한 감독 웨인 왕은 이 소설을 읽고 오스터에게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4년 뒤 영화는 ‘스모크’란 제목으로 완성됐고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번역판에는 원작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및 제작과정, ‘스모크’의 속편 영화 ‘블루 인 더 페이스’의 대본이 실렸다. 두 영화 다 국내에서 개봉됐다.
폴 오스터는 미국문학의 사실주의적 전통과 유럽문학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결합시킨 최고의 본격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뉴욕 삼부작’ '거대한괴물’ 등 그의 많은 작품과 문학론집 ‘굶기의 예술’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