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동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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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물기에서 개는 제외된다. 개는 너무도 인간답다. 따라서 원숭이도 제외한다. 나는 인간과는 다른 개별적인 개체를 동물의 필요조건으로 규정한다!

1. 토끼


이걸 기른 이유는 고기와 털가죽을 공급받기 위해서였다...라고 하는 것은 유춘의 일상과 인생을 상징적으로 암시할 수 있으므로 극력 부정한다.

종류는 앙고라. 원산지는 유럽. 성별은 암컷. 생후 6개월.

미니토끼(라는 도시전설적인 개념이 실재한다면)가 아니다. 앙고라는 모피를 공급받기 위해서 기르는 종류다. 즉 일종의 산업 상품이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이 부리는 생떼는 그런 산업상 제품을 개인적인 애완동물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 이름은 白雪. 아니 백설기(떡의 일종)라는 주장도 있다.

이 녀석들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1년이면 완전히 자라서 번식이 가능하다. 1년에 두 번 교미해서 최고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다행한 것은 유춘의 집 근처에는 부연 눈을 뜨고 암토끼를 찾아 서성이는 늑대같은 수토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만약 있었다면 101 마리의 앙고라들 이라는 현실이 유춘의 인생 어느 한 모서리를 장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백설은 조신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 녀석을 가지고 가장 많이 한 것은 손바닥에도 올라가는(10개월까지는 올라갔던) 녀석을 어께에 얹고 의자나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는 것이었다.소심한 앙고라 주제에 녀석도 그런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소년과 토끼의 우정이다.

그렇지만 앙고라는...다시 부연하지만 산업용 토끼다. 몇 백년의 역사 속에서 성공한 제품이다. 따라서 빨리 자란다. 너무 너무.그 해 겨울이 되기 전에 백설은 6KG에 도달했고 그런 체중에서도 여전히 어깨 위에 올라앉는 것을 즐겼다. 이 상황을 뭐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소년과 토끼의 우정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지만 백설은 매우 매우 소년을 좋아했다.

유춘이 책상에 있을 때, 백설은 그의 책상 위를 뒹굴고(!) 있었다. 어깨 위에 올라앉는 것은 성장기 소년에게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만약 소년이 물이라도 마시려고 책상을 떠나게 되면 백설은 안타까운 얼굴로 소년(혹은 옛날 침대)의 뒷모습을 쫓다가, 비감한 얼굴을 하고 바닥을 내려다 본뒤, 한숨을 쉬고(정/말/절/망/적/인/한/숨) 팔짝 점프를 한다. 제딴에는 점프다.

소년 입장에서는 그것은 재난 내지는 사고다. 흰 털뭉치가 1m 높이에서 엄청난 속력으로 추락하는 광경! 그리고 열심히 소년에게 굴러온다. 떼굴떼굴떼굴...

지금 생각해보아도 왜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녀석 덕분에 토끼 종족 전반에 걸친 유춘의 태도는 여전히 온정적이고 긍정적이다.(지하철 토끼에서부터 플레이보이의 바니 걸즈까지)


발언
''토끼 입장에서는 두가지 모두 우정이 아니었을 듯... 가뜩이나 겁많은 자신을 자꾸 높은 어깨 위에다 올려놓는 소년도 우정이 아니고... 역시 겁이 많아서 반항 한 번 못해보고 그 어깨에 익숙해지려고 피나게 노력했건만, 익숙해지니 야멸차게 어깨위로 못 올라가게 하는 소년도 우정이 아니고... 한마디로 배신이지요, 배신. B) --
''

''흠, 토끼라는 생명체 세 녀석과 현재까지 3년동안 동거동락한 결과와 유춘님의 토끼이야기를 비교해본다면, 왠지 우정이라기 보다는 주종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주는 토끼입니다 음하하... 종은 말씀 안해도 아시겠죠? 날이 갈수록 느끼는 건 저 녀석들에게 나는 단지 밥주는 하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년 364일이 찬밥일지라도 1일 딱 하루 녀석들이 달려와 핥아주기라도 하면 입이 귀에 걸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 아무래도 이건 분명 주종관계일겁니다. 백설도 소년에게 구했던 것은 사랑보다는 밥이었을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혹은 물? -- FoxNova
''


2. 고양이


고양이. 혈통은 샴 고양이 족속.(어쩌면 그의 10대 조상들은 미얀마의 국경 지대에서 양귀비 봉오리를 핥으며 살았을는지도 모른다.)

수컷. 현재 생존 중.

이름은 키에르케고르. 유춘이 애완동물에게 명명하는 수준은 10여년 후에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줄여서 키르 라고 부르자. 얼마나 멋진가?!

이 녀석은 상당히 대가 센 녀석이었다. 아는 분의 집에서 마치 하인 집으로 피신 온 대혁명 시대의 프랑스 귀족 처럼 오만하게 살다가 그 분이 잠시 여행을 가게 되자 유춘의 집으로 친행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유춘의 부모님은 밀고하셨지만, 모두 유춘이 나서서 이 정치적 망명자를 감쌌다.

사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그리고 녀석의 하는 행동부터가 그러한 반대를 일말의 호의로도 바꿔놓지 못했지만 논란의 한가운데 있을때, 갑자기 아파버리는 바람에 아무도 아픈 고양이를 내쫓자...라는 험한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고, 결국 키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세!)

외모는 35센티 정도? 다리가 길고 어두운 잿빛 눈에 거무스름한 회색의 털, 언듯 언듯 푸른 색으로 보였지만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파란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제일 통통했을 때에도 광대뼈가 튀어나오는 빈상이었다. 꼬리 처리에 상당히 신경 쓰는 녀석이다.

성격. 오만하다. 불러도 오지 않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밥 먹다가 귀찮게 굴면 그릇을 엎어버리고 가구 아래로 들어갔다.(이때 전혀 도망가거나 뛰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형 사기 그릇(밥그릇 엎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개발된 매우 무거운 것)을 사줘야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분이 나쁘면 앞발로 밥을 떠서 주위에 뿌려댔다.

밤에 잠이 없는 거야 이해해 줄 수 있지만 복도와 거실을 왔다갔다 하는 것은 정말로 무시무시 했다. 특히 한밤중에 어디선가 뭔가 끌리는 소리가 나면 이거야말로 공포다. (다음날 일어나보면 슬리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 모여있곤 했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전혀 울지도 않고 어둠 속 어딘가에서 빤히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기색이 있으면 군말 하지 않고 이불을 들어주었다. 안 그러면 밤새도록 푸른 눈을 흡뜨고 (밤에 고양이 눈은 번쩍거린다) 너만 따뜻하게 자냐? 라는 식으로 쳐다볼 터이니.

처음에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키르에게는 철학이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여러 고양이들이 있으니 한 마리쯤 철학적인 고양이가 있어도 좋을 것이다...라는 사고 방식이었다. 인간에게 부비대거나 늘 주눅든 고양이와 다른 무엇인가가 키르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거 후까시였다. 제 잘난 맛

그래도 유춘은 키르의 쓸모를 생각해두었으니...겨울밤에 컴퓨터할 때, 가디건의 배부분에 키르를 넣어두는 것이다. 이른바 고양이 난로다. 키르가 감기 걸린 경우, 효과는 극대화 된다. 뜨끈뜨끈하다. 난 인간이니까 그 때 키르의 기분이 어땠을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멋에 살고 멋에 죽는 건방진 키르에게 별로 자랑스런 자세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배나 턱을 긁어주는데 신경을 써주기만 하면 녀석은 그다지 군소리 없이 버르적거리며 내 심장 뛰는 소리나 컴퓨터 하드 돌아가는 소리를 듣곤 했다.

현재 키르는 유춘과 떨어져 살고 있다.성격은 상당히 개과천선 했으나, 몸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니...녀석도 늙었나보다. 불행하게도 자식은 없다.성격이 유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녀석의 날렵한 외모 이어줄 새끼 고양이가 있어도 좋았으련만.

그런데 키르에 대해서 숨길 수 없는 의문 한 가지.왜 유춘은 이렇게 건방지고, 귀엽지도 않은 늙은 수코양이에게 이렇게 끌렸을까? (궁금 궁금)

참고로 키르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매우 좋아했다. 일정한 목소리가 단조롭게 들리는 것이 그의 기분을 좋게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유춘이 강의 테이프라도 틀어놓고 있으면 책상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가 스피커와의 거리와 위치의 편의를 고려하여 자리를 잡고 열심히 청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특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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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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