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영문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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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를 다른 나라 말로 적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북경인가베이징인가에는 우리 고유명사의 외국어로 적는 문제에 대해 나오지만 반대로 외국어를 우리나라 말로 적는 것도 혼동이 있다. 예를 들어 Johann Sebastian Bach를 '바하'로 적기도 하지만 '바흐'로 표기하기도 한다. 표기의 문제는 북경인가베이징인가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이 페이지에서는 약간은 다른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양권 국가들은 '성+이름'의 순서로 쓰고 대부분의 서양권 국가들은 '이름+성'의 순으로 적는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서양식으로 표기하는데 '이름+성"의 순서로 적는다. 예)Goo-hyeon Yoon. 외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외국인의 이름을 우리가 쓸 때이다. 우리는 'RichardDawkins'를 '도킨스 리처드'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이름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왜 외국인의 이름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쉽게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이름을 자료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을 앞에 쓰는 것이 편하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도서관의 색인에는 '성+이름'으로 저자를 정리한다. '다윈, 에라스무스' 다음에 '다윈, 찰스'가 있는 것이 '찰스 다윈'-'찰스 벅클리'로 되어 있는 것보다 자료를 찾기에 용이하다.
개인적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표기하는 것은 합리성이나 실용성 면에서 모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외국의 사전들은 '성, 이름'의 순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자세하게 공부해보지는 못했지만 일관성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거북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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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생물학자인 테네시 주립대학의 전광우 교수는 이미 그러한 변형을 실험실에서 목격했다. ....전광우 교수의 실험은 박테리아가 어떻게 독성 병원균에서 필요한 세포 소기관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현미경으로 조사해 본 결과 아메바들은 약 15만 마리의 낯선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있었다. 몇몇 아메바만 빼고 모두 죽었다. .... 여러 달이 지난 뒤 또 생존한 아메바들이 모두 감염되었다. 그러나 이들 생존자들한테서는 죽은 아메바보다 훨씬 적은 수의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
감염된 아메바를 여러 세대에 걸쳐 배양한 후에 전광우 박사는 그들 일부로부터 핵을 끄집어냈다. 그는 이 핵들을 미세 수술로 핵을 제거한 건강한 박테리아에다 이식했다. 이식된 핵을 가진 아메바들은 강 박사가 감염 박테리아를 주입시켜 주지 않으면 3, 4째에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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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마굴리스의 생명이란무엇인가(지호) 188-189페이지의 일부이다. 생명과학 교양서에서 한국이름을 찾기는 아직 쉽지 않은데 반가운 이름이었다. 그런데 전광우 교수는 이 단락의 후미에서 갑자기 강 박사로 바뀌게 된다. 물론 함께 일한 과학자 가운데 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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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광 전Kwang Jeon은 아메바에 박테리아를 감염시켜서 살아남은 개체를 배양하였다. 5년이 지나자 아메바는 그 박테리아 없이는 자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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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카렌의 "전염병의문화사" 37페이지에서 우리는 같은 연구결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의 이름이 다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 사람의 이름은 광 전이다. 그는 중국인일수도, 대만인일수도 아니면 그저 우연히 비슷한 발음이 되는 어느 나라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명이란무엇인가의 위 구절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한국계이고 광 전이라는 성명은 전광우에서 성을 뒤로 돌리고 이름의 마지막을 생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린마굴리스는 전광우교수의 Kwang Woo Jeon 의 이름에서 상식적으로 동양인은 제일 앞 글자가 성이니 Kwang씨일 거라고 여겼나 보다. 번역자는 Kwang씨 성은 없으니 비슷한 으로 바꾸고 강박사라고 명명하고....
린마굴리스는 지금도 전광우 박사가 광씨 집안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 사례는 번역자의 자질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전염병의문화사"를 번역한 권복규씨("도둑맞은미래"를 번역하기도 했다)가 광 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오역이다. 참고문헌을 꼼꼼히 보고 이 연구가 한국계에 의해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전광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관성 없이 붙여지고 있는 영어식 이름이 낳을 수 있는 결과라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이 어떤 규칙을 통해 지어지는지 알도록 바랄 수는 없다. 성명의 일관성 있는 표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관련 칼럼: 너의 이름을 내가 부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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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체스, 아비켄나, 플리니, 갈렌”과 “알라지, 이븐시나, 플리니우스, 갈레노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슬람 의학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우리는 흔히 라체스, 아비켄나 운운한다. 또 고대 서양의학의 거인들을 플리니, 갈렌으로 부르고 있다. 언어의 일차적인 구실은 원활한 의사소통일 것이다. 따라서 라체스, 플리니라고 하여 뜻이 통하면 그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체스와 아비켄나는 원래 이름인 알라지와 이븐시나를 중세 유럽식, 곧, 라틴식으로 읽은 것이며, 플리니와 갈렌은 각각 플리니우스와 갈레노스를 현대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아니 갈렌(Galen)은 게일른이라고 해야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위에 든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엉뚱한 방식으로 쓰고 읽는 까닭은 자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까운 중국문화권 이외의 문물은, 거의 미국을 통해 (사실은 일본을 거쳐 온 게 많지만)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이탈리아의 멀쩡한 지명인 피렌체, 베네치아도 플로렌스, 베니스로 된다.

미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필요에 따라 라체스, 베니스로 부르라고 하자. 우리가 흔히 라오쓰를 노자(子), 이토 히로부미를 이등박문, 베이징을 북경, 쓰시마를 대마도로 부르고 있듯이. 하지만 왜 우리도 덩달아 갈렌이나 플로렌스라고 해야 하는가 나는 내 이름 ‘황상익’을 중국인이 중국식(후앙썅이)으로, 일본인이 일본식(고셔요쿠)으로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탈리아인이나 아랍인, 또는 미국인이 그런 식으로 부른다면

에스파냐를 스페인으로 부르는 것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과 차원이 같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거기에 개인과 민족의 자존심 문제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정 나와 내 민족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남과 이민족의 자존심도 결코 소홀히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처지에 설 수 있을 때 내 자존은 더욱 커질 것이며, 거기가 바로 진정한 ‘세계화’의 출발점일 터이다.

2. “1,763,146,534,284,592,362”. 이걸 쉽게 읽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일, 십, 백, 천 … 식으로 세어 나가다 혼란에 빠질 것이다. 또는 읽긴 읽더라도 왠지 자신이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있게 일(원), 천(사우전드), 백만(밀리언) 식으로 끊어 읽을 사람은 별로 없을 성싶다.

대신 “176,3146,5342,8459,2362”라고 적으면 어떨까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라면 누구나 ‘만, 억, 조, 경’ 해서 176경 3146조 5342억 8459만 2362라는 ‘정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큰 숫자를 대하는 경우란 별로 없다.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과장한 것이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숫자 읽기가 대단히 불편한 경험을 자주 한다.

그러한 불편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숫자의 쓰기와 읽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쓰기는 서양식 신문물이 들어오고 나서 얼마 뒤부터 세자리씩 끊어서 쓰기 시작했지만 읽기는 여전히 네자리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숫자와 자릿수 표기법은 인류의 발명 중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에 속한다. 로마숫자나 한자숫자와 그 표기법, 예컨대 ‘參拾五萬貳阡六百壹拾八’은 쓰기도 번거롭거니와 계산은 더더욱 불편하다. 덧뺄셈도 어렵지만 곱하기·나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식’ 숫자와 표기법을 받아들인 것은 우리 문화와 생활의 발전을 위해 크게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체계와 수 개념에는 맞지 않는 자릿수 표기법을 채택함으로써 새로운 불편이 생겨났다. 이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우리가 새 문물을 받아들이거나 창조할 때 어디까지 마음을 써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논의는 부질없는 것인지 모른다. 많은 한국인이 스스로 영문 이름을 ‘Kapsoo Kim’ 식으로 쓰며, 또 그것을 세계화라고 여기고 있으니.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출처: 한겨레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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