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대한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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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하고 골치아픈 통계학의 설명 속에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진한 인간애를 끼워 넣을 수 있었을까. GalileoGalilei찰스다윈을 타고 전해져 온 Popular writing의 맥은 굴드에게서 그 절정을 이룸에 틀림 없다.

이 용감한 좌파 휴머니스트 과학자가 바라보는 사회는 무엇인가?

굴드의 영웅 다윈의 말처럼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제도에서 비롯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며 또 나의 영웅 굴드의 말처럼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유독 지능이라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의 탈을 쓴 정치적 범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비참함과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다윈과 굴드와 김우재의 사회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저 명언은 (비록 굴드가 책속에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아마 굴드는 독자들이 이를 알아차리길 원했을 것이다)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인류의 역사가 보여준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법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죄는 매우 크다는 것이고, 둘째, 과학이 시도한 많은 차별적 선언들이 과학적 객관성이 아니라 당시의 과학자가 속한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사회와 과학자의 죄는 중대하다는 것이다.

과학도 때로는 선험적 전제를 가진 개인들이 자신의 이론적 틀에 증거를 끼워맞추는 식으로 진행된다. 과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평등주의자로 알려진 다윈조차 "흑인 동정주의자"였을 뿐이다(링컨조차 흑인의 열등성에 의심을 품지 않았는데 다윈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그러므로 "알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알고나서 사랑하는 것은 거의 항상 늦다. 과학자는 "알며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며 알아야" 한다.

사랑은 알고 나서 이루어져야 하는 고차원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굴드는 그 사랑의 실체를 깨달은 과학자였다.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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