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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이라는 英단어는 이치에 맞지 않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Zen을 공용어로 쓰는 것은 Zen이 동양의 선을 대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일본선종(정확히 말하면 임제종)이 동양선을 대표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선(禪)이라고할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4가지의 의미로 해석한다.

첫째는 봉선(封禪)이다. 원래 禪이란 중국의 천자나 그에 상당하는 인물이 하늘에 스스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했다. 영산이나 선산에서 천자가 홀로 제사를 지내는 제례에서 유래되었다. (禪은 제사를 의미하는 보일 示와 한사람을 의미하는 홑 單이 결합된 문자이다) 禪의 원시의미이다.

둘째는 순수한 의미의 부다가 수행하던 시대의 위빠사나禪을 의미한다. 이 위빠사나를 중국고승이 번역하면서 수행을 禪의 의미에 까지 확장시켜서 칭한 것이다. 즉 僧은 스스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사람이다. 중국 불교에서 삼보설중에 하나가 승인데 이러한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 것같다.

셋째는 달마대사의 화두선(話頭禪)을 의미한다. 묵조선이나 염불선은 흔히 선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선이라고 한다면 화두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종의 시두는 달마대사이며 태고보우를 직계로 현제 혜암종정에 이르는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도 화두선을 禪으로 공인하고 있다.

넷째는 일본의 임제선(Zen)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선을 칭하면 위의 4가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번이나 2번의 경우에는 의미의 특수성때문에 잘 쓰이지 않는다. 1번의 의미로 말할 때는 봉선이라고 칭하고 2번의 의미로 말할때는 위빠사나라고 칭해야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4번의 경우에는 일본선(japanese zen)이라고 칭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선이란 중국의 달마대사로 시원되었으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화두선(seon)이기 때문이지 일본의 특수한 형태의 젠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도교중심의 기복신앙이 득세하고 있으며 일본의 불교는 신교와 결합한 혼합종교의 형태이다. 일본의 불교은 한국불교의 일개宗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대사 이래로 선의 전통과 법맥이 가장 잘 살아있는 곳은 한국임을 알아야 하며 선의 종주국도 마찬가지로 한국임을 알아야한다.)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에서 보는 동양일 뿐이다. 소림무술에 뛰어난 동양승려와 맨손으로 바위를 깨는 가라데가는 서양인이 보는 환상이지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젠은 서양이 보는 오리엔탈리즘이지 禪자체는 아닌 것이다. 마찬자기로 우리도 禪을 zen이라고 칭해야하는 아무런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국은 선의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선사상에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서구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말년에 선만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한 오쇼 라즈니쉬의 경우에도 한국불교의 예를 든 적은 별로 없다. 원효대사나 진묵대사등의 사상은 결코 조주나 마조에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다. 한마디만 더 하자. 송강호가 넘버쓰리에서 먹고 싶은 거 참는 것도 훈련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사상PR도 학문이다(단 립싱크는 음악장르가 아니다). 도올의 학문의 경박함을 탓하기 전에 기성학문계는 그들 자신의 안일함과 무능력함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 대학원동안 배운 몇년의 한자실력으로 평생 한문박사로 대접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기존에 있던 이야기는 누구나 다 한다는 것이다. 학자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학(學)의 길(道)은 각(覺)의 길이지 암기의 길이 아니다. 학은 각을 통해서 새로워 지며 동양사상사 2000년이 항상 그래왔음을 우리는 주지해야한다. 학(學)자를 자세히 살피면 자(子)가 손에 효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그에 반해서 각(覺)은 효를 눈으로 보고 있는(見) 모습이다. 공자(子)의 논어와 현재 그 논어를 보는 독자(見)사이의 거리를 깨달을 수 있는 자는 아름답다. 이미 배운 학문이라고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MCSE도 기년마다 미그레이션을 해줘야 하듯이 한문학자들도 끝없는 학문적인 연마가 필요할 것같다. 온고이지신은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몇년만 젊었어도 주역을 다 떼는건데...라고 말한 공자의 말은 우리를 각성시키기에 충분한 말이라 생각한다.

(뒷부분의 글이 쉽게 읽혀내려가지 않습니다. 문맥에 맞지 않게 저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연유입니다. 흐덥하군요. 나중에 고치지요.) --자하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테리어, 가구 등의 디자인쪽에서 일본쪽에서 발달된 절제되고 선적인 양식이 서양에도 유행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선불교와 헷갈릴 이유는 없습니다. 동양정신과 동양풍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듯이요. 다른 것은 다른 이름을 가져야지요.
우리들은 자신들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가 얼마나 서구에 물들어있는지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난 심지어 민속적인 것, 토속적인 것에 대한 취미도 서양인으로서 갖는 동양에 대한 향수에 이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말감

오늘날의 일반적인 한국인을 놓고, 동양적인 아이덴터티를 발견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
(확실한 답을 내리기가 힘들군요. ^^;)

아말감님 지적감사. 그부분은 고쳤어요 자하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동양인인 카자흐인들이 TV에서 일본 음악을 보면서 일종의 향수를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이나 카자흐인들은 동양이라고 하면, 일본과 북한을 더 잘 떠올리죠. 일본은 카작인들의 문화적 이상향입니다. 그곳에서 한국인이면서도, 명확히 한국적인게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 없는 나라는 것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러나 카작화 되고 러시아화한 고려인(스탈린의 강제 이주에 의해서 카자흐스탄까지 온 한국인들)은 한가지 특성을 진하게 갖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그게 곧, '한국인'이다라는 것이 되진 않지만, 카자흐스탄내의 러시아인들의 이혼율이 60%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들의 이혼율은 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이건 자료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도 느꼈던 고려인들의 가정, 가족에 대한 사유이자, 한국이 남아 있다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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