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interdisciplinary를 학제적이라고 번역하는 용례가 많아졌다. 그러나 학제적(學際的)이라는 말은 일본의 번역어를 빌려온 말로서 한국어로서는 그 뜻을 본용어 interdisciplinary와 연결 혹은 상상하기가 무척 힘든, 안 좋은 번역어다. 그보다는 학문간(學問間) 또는 간학문적이라는 단어가 의미전달면에서나 형태소의 생산성면에서나 낫다.
interdisciplinary :서로 다른 학문 지식 간에 걸치는, 제휴하는
inter- : 전치사로서 ~사이, ~간(間), ~중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매우 생산성이 높은 형태소로, -제(際) 따위에 비할게 아니다.
제(際) : 옥편을 보면 가, 끝, 사귀다, 만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교제(交際) 실제(實際) 제회(際會) 등의 용법이 있으며, 문제의 '학제적'을 그럴싸한 것으로 지원하는 단 하나의 같은 부류어(자매어?)는 국제적(國際的)이 있다.
'학제적'이라는 단어가 기댈 곳은 단 하나 국제적으로서, 'international'이 '국제적'이기 때문에 'interdisciplinary'가 '학제적'이 된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당장 'international'과 상당히 가까운 부류로 분류될 intercontinental은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는 반론에 부딪치게 된다. 즉 '-제(際)'는 inter-의 번역어로서는 그 자체로 언중이 알아차릴 수 있는 의미정보가 거의 없다시피한, 덜떨어진 말이다.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소의 뜻을 언중이 인지하고 있고, 여타의 다른 쓰임이 있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간(間) : 한국어에서 상당히 생산적인 형태소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그 뜻도 언중에게 잘 인지되어있는 편이다. 그리고, inter- 의 번역어로서 이미 '성간'(星間 interstellar) 물질, '간격, 간주곡, 막간'(interval) 등이 있다. 그리고 'intercontinental'은 대륙간으로, intercity는 도시간으로 번역하는 등, 앞으로도 많은 단어를 손쉽게 의미손실이 적은 상태로 번역할 수 있다.
--아말감
일본식 용어의 무비판적, 무차별적 도입은 '학제적'이라는 용어뿐만 아니라 매우 많으며,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다. 저 또한 이러한 일들에 혐오와 증오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섭외'라는 용어가 그렇습니다. 글자만으로 풀면 '외부와의 교섭' 정도 되겠지요. 그러면 교섭은 또 뭔가? 암호를 푸니 그 속에 또 암호가 들어있는 격이죠. 교섭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굳이 어려운 뜻을 가진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본사회에서 일본문화라는 배경을 가지고 성장한 용어(그 용어 자체가 역사성을 가진 셈이죠)를 머리 짜르고 꼬리 짜른 채로 몸통만 들여오니 괴물 밖에 더 되겠습니까? '학제적'이라는 용어는 그 대표적인 용어입니다.
그런데, 소위 한국의 '식자층'(여기에 지식인이라는 고상한 용어를 피하고 싶음)에게 'international = 국제적', 따라서 'interdisciplinary = 학제적'이라는 공식이 마법처럼 통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학제적'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사이트에 그 사례가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학제적'이라는 일본용어를 '학문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왜 '학문간'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학제적'이라고 쓸까요? 제 생각에는 두 용어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학제적'을 거꾸로 영역하면 정확히 'interdisciplinary'가 되지만, '학문간'은 영역할 경우 'interdisciplinary'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단어나 구(예: between sciences)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언어학이나 번역학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제 지식이 짧아서 모르겠습니다. 비유가 적절할 지 모르겠는데, '학제적'은 고유명사처럼 범위가 정확히 규정되어 있는데 비해, '학문간'은 보통명사처럼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학문간'이라는 용어를 쓰기를 주저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학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학문적'도 간혹 쓰이기는 하는데, 조어형태가 극히 조잡한 용어라고 생각되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용어도 아니기 때문에 논외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학문교류적'이니 '학문교차적'이니 하는 용어도 크게 설득력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interdisciplinary의 번역어는 고심해봐야 할 숙제네요...
- kcjun
아말감은 '학제적'이라는 번역어가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현재 '학제적'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학제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된 것은 게으른 한국 학자들이 일본말을 그냥 따라한 때문이었지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많이 쓰이는 말이 결국 승자가 됩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쓰는 용어는 이 법칙 외에도 개념의 엄밀성, 용어의 통일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만약 바꾸려고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면 하루 아침에 바꿔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전의 '학제적'과 '간학문적'의 경쟁상태와는 달리 '학제적'이 눈에 보이게 이기고 있는 지금에 와서라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일반에 완전히 대중화된 말이 아니므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확장이 불가능한 용어는 확장이 다변적으로 가능한 용어보다 열등하다고 봅니다. 한 가지 용법, 한 가지 개념 밖으로 나아가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적하신 내용은 '학문간'의 범위가 넓다는 데에 촛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학문간'이라는 말이 'interdisciplinary' 외의 다른 뜻으로 오독될 소지가 있다는 얘기로 보이며, 타당한 지적입니다. 많이 쓰일 '학문간 연구'와 같은 경우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학문간 교류'라고 하면 상당히 곤란해지죠. 그런 약점을 감수하고서 '학문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이득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학문적'이라는 차선책을 택할 수도 있고요.
그 이득은 '한국인이 즉각 이해할 수 있는 한국말'입니다. 그리고 말과 개념의 높은 생산성입니다.
--아말감
제가 위의 글을 쓸 때는 예문 만들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네요... 아말감님이 예를 든 학문간 교류가 '학제적 교류'로 읽힐 가능성은 全無에 가깝고,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한 학문간 연구도 '학제적 연구'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interdisciplinary의 뜻을 살리려면 '학문간 연구'가 아니라 '학문간적 연구'라고 써야할 지도 모르겠네요.) '학문간'은 범위 때문에, '간학문적'은 그 생경함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서핑하다가 우연히 봤던(일본어를 모르므로 '읽었던'이 아님.) 다치바나다카시(立花隆)의 홈페이지에 있는 「知的亡國論」(『文藝春秋』1997. 9)이라는 기사에서 맨 아래쪽에'インタ-ディシプリナリ-(學際的)'라고 영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학제적'은 괄호 안에 묶었더군요... 뭐 米國이라는 표기를 놔두고 굳이 '아메리카'라고 말하고 쓰는 사람들이라서 정확한 뉘앙스는 알기 어렵지만, 거기도 '학제적'이라는 용어가 전면적으로 용인되지는 않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치바나 같은 유명 저널리스트가 유식한 체 하려고 영어 발음으로 표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 다치바나처럼 '인터디시플리너리'라고 표기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서핑하다가 우연히 봤던(일본어를 모르므로 '읽었던'이 아님.) 다치바나다카시(立花隆)의 홈페이지에 있는 「知的亡國論」(『文藝春秋』1997. 9)이라는 기사에서 맨 아래쪽에'インタ-ディシプリナリ-(學際的)'라고 영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학제적'은 괄호 안에 묶었더군요... 뭐 米國이라는 표기를 놔두고 굳이 '아메리카'라고 말하고 쓰는 사람들이라서 정확한 뉘앙스는 알기 어렵지만, 거기도 '학제적'이라는 용어가 전면적으로 용인되지는 않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치바나 같은 유명 저널리스트가 유식한 체 하려고 영어 발음으로 표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 다치바나처럼 '인터디시플리너리'라고 표기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통합학문적은 어떻습니까?
- kc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