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을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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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87608077]

거북이의 서평


98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나오자마자 바로 도서관에 구매신청을 했다. 신문에서 서평과 책 표지를 본 순간 멋진 책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책 분류작업도 제대로 하기 전에 빌려다가 읽기 시작했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다 읽었다. 그때는 학부 3학년이었고 나는 무기력하기만 한 대학생활에 한참 질려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갑자기 다시 읽고싶어져 이번에는 아주 사버렸다. 학부때 읽었던 것이 무조건적인 지식욕이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르다. 지금 나는 일본과 중국의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읽고있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인식하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때 근현대사 동아리에서 활동했지만 한국 현대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갖는데 실패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문학적 교양(SeeAlso 슈바니츠의교양)의 총체적 부재때문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래서 지금 내가 택한 방식은 우회로인 것이다. 주변을 파악해서 본질을 알고싶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근래에 얻은 인식중 하나인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다.'라는 방향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 책은 명대부터 1990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나는 아직 저자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저자는 현대 중국의 기원을 명대로부터 찾고 있는데 나는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거시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이 책의 미덕은 사료에 충실하면서도 저자의 역사해석이 잘 드러나있고 중간중간에 미술, 문학에 관한 언급을 통해 글이 윤기가 있으면서도 총체적 이해를 도와준다는 사실이다. 역자가 말해주어 인식하게 된 사실이지만 저자는 정치권의 움직임과 민중들의 움직임을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인 점이다.

나에게 가장 관심있는 부분은 쑨원에 의한 중화민국 성립과 마오쩌둥에 의해 성공한 중국의 공산혁명이다. 그중 공산혁명의 성공은 정말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인데, 마오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된 마오비판에서 '마오에게는 70%의 성공과 30%의 과오가 있으며 그 과오 대부분은 집권 말기에 벌어졌다. 그러나 그 과오때문에 마오의 올바름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내린 공산당의 공식적 논평을 나는 지지한다. 마오가 수행한 대장정은 비록 참담했지만 혁명을 향한 인간 의지의 승리라고 할만한 것이며 이후 공산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에서 마오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수행한 것이다. 잘은 몰라도 동북아의 역사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케이스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은 그렇게 도도할 수 있었을 것이며 결과가 어떻든 주체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북한과 중국의 어이없는 주체성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울 점은 분명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부른 것은 또다른 진시황을 낳았고 인민공화국의 앞길에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파악하지 못하는 독재자들에 의한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백화운동, 천안문 항쟁과 같은 비극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감동적인 것은 지도자들의 그런 오류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항거하는 민중들이 외친것은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실현하자!'는 구호였던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그런 구호를 외친것도 있겠지만 나는 중국 민중이 혁명의 승리를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그런 구호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각종 비극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안문 항쟁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무렵 국내에서 상영되었던 '태평천국의 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여기 그때 적은 감상을 잠깐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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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天安門 태평천국의 문 관련자료:없음
보낸이:정철 (zepelin ) 1998-12-08 23:56 조회:96

작년 초에 인권 영화제에서 틀려다가 중국측의 압력에 주최측인 삼성이 굴복하여 나중에 극장개봉이 겨우 가능했던 바로 그 영화이다. 본다 본다 하고있던 차에 결국 학교에서 상영하는걸 보게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영화보고 눈물흘린적은 없었다. 채플린의 키드를 보았을때 눈물이 어린적은 있었지만 그게 떨어지진 않았었다. 하지막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아마 내 눈물샘을 자극한건 배반당한 혁명에 분노하는 북경시민들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꼭 천안문항쟁 뿐만이 아니라 중국 현대사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화면들과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적절히 배치하여 천안문항쟁 이전의 배경, 항쟁의 경과, 항쟁 이후를 입체적으로 이해 가능하게 하였다. 다큐멘터리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 대해서 조금 알아야한다.
20세기 초에 유럽을 휩쓸던 마르크시즘은 결국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성립을 이루어 세계 지성들의 이목을 집중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분할점령하고있을 때에도 이 새로운 '유령'은 의식있는자와 민중의 희망을안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공산당이 성립되고 있었다(조선 공산당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공산당중 하나이다). 마오쩌둥이 지도자가 되었던 중국 공산당은 그 중에서도 무척 독특한 의미를가진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침략당하고있던 중국이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장개석(SeeAlso 한글기계화)에 의해 중국 공산당은 궤멸적 타격을 입고(북벌) 국민당의 추적을 방어해가며 북으로 도주해(대장정) 재기의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이후 근거지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국민당의 썩을대로 썩은 관료정치에비해 비교적 도덕성을 확보하고있던 공산당은 농민층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넓혀나가게 되고 장개석도 결국 이들과의 연합을 허용하여 공동 항일전선을펴게되니 이겄이 국공합작이다. 결국 치열했던 공동투쟁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일본은 패망하였고 중국은 자주권을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2차대전 종료와 거의 동시에 국공내전이 시작되었고 중국은 또다시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은 국민당을 지원하고 있었고 공산당은 결국 내전을 위해서 근거지로 대규모 철수를 감행한 뒤 농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농업지대 위주로 재점령에 나선다. 부패한 국민당과 농민의 지지를 받는 공산당의 싸움은 엄청난 세력격차에도 불구하고 49년에 결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철수하여 공산당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이렇듯 자본주의에 대항해 아래로부터 발생한 최초의 진정한 혁명이 바로 중국혁명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자료화면에서는 이렇게 중국민에게 친밀한 인민해방군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혁명가지 정치가가 아니었다. 소련과의 노선 차이에 의해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걷기로 한 중국은 하루빨리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키 위해 '대약진' 운동을 펼치고 이 와중에서 과도한 산업화, 집단화를 시도하여 국가경제를 거의 파탄으로 몰아가 아사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거듭되는 실정에 자아비판까지 하며 실각위험에 놓인 마오쩌둥은 그 어떤 파시즘보다도 더 파시즘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중국은 문화혁명에 의해 엄청난 타격을 받게되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관료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미래를 암담하게여기던 젊은이들 중 마오쩌둥을 개인숭배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홍위병이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계속혁명'을 부르짖으며 마오쩌둥에게 조금이라도 반하는 이들이 있으면 폭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 반하는 이들은 모두 반동으로 몰려 숙청당하였고 이 와중에 수정주의자들이 대부분 제거되어 마오쩌둥과 그를 지지하는 '4인방'은 다시 권력의 핵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숙청당하거나 펜을 꺾게되고 경제, 문화등 사회 전반에 걸쳐 10년이상 후퇴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문화혁명의 피해는 생각 이상이어서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가 전 국가적으로 번졌고 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박해로 사망하거나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비교적 청렴한 정치가이자 외교가였던 저우언라이의 사망을 기하여 시민들이 천안문광장에 모여 추도식을 가졌다. 그러나 저우언라이나 덩샤오핑 등 반문화혁명파의 위협으로 간주한 정부와 충돌이 발생하였으니 이것이 '1차 천안문항쟁'이다. 이로인해 덩샤오핑은 다시 실각하게되고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에 의해 정국은 안정되게 된다. 이후 중국식사회주의로 불리는 자본주의의 물결이 생기고 이후 후야오방이나 덩샤오핑같은 인물들에 의해 개혁정치가 시도되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 시도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黑猫白猫(희든 검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다)'론이 나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결국 공산당 일당 독재의 권력집중이 문제가 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흐름이 생겨나는데 이에 대한 반혁명으로 인해 결국 후야오방이 실각하고 그는 얼마 있지않아 사망한다. 후야오방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 모인 시민, 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천안문사태'라고 알고있는 '2차 천안문 항쟁'이다.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본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내용도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시 북경 사람들의 정서는 미묘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도입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을 합리화해나가는 지도부에대한 불신감, 자신들을 진정으로 위했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들의 실각, 그렇다고 먹고 살만해지지는 않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만이 커져가는 초기 자본주의의 양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민주화를 요구하게 하였을 것이다. 학생운동 진영은 처음에는 조직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연발생적인 모임이 장기 점거 시위로 변하게 되고 연설하는 학생들중에 자연스레 지도자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중 지도적인 인물이 '왕단'이나 '자령'과같은 이들이다. 시간이 가면서 이에 공감하는 이들의 지원이 전국에서 몰려들기 시작했고 홍콩이나 화교들의 자금도 몰려 일종의 정치력이 확보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자발적인 흐름은 단기적으로는 강한 추동력을 보이나 정통성있는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탈자나 반감을 품은 자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 필름은 그러한 학생운동 진영의 혼돈과 방만함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학생운동진영의 자연스레 붕괴되어가는 사이에 지식인들 4명이 깨끗한 자세를 보여주며 단식투쟁에 나서자 이들 '사군자'를 중심으로 또다시 학생운동 세력은 결집을 시작한다. 이 사이에 정부쪽에서는 탄압결정을 내려 군대를 보내지만 광장 가득 메우고있던 시민들이 몸으로 이들을 막아 며칠간 진입에 실패한다. 잠시 퇴각했던 이들은 결국 발포명령을 받고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여 시위를 유혈진압한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부분은 여기였다. 시민들은 군인들을 막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인민해방군은 민중을 지켜주었던 친구이자 자식같은 존재였고 혁명의 대변자였는데 그들이 또다른 자식들인 학생들에게 총을 들이대는 상황이 너무나 기막혔던 것이리라. 그들이 지지했던 사회주의 혁명은 이런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몸으로 인민해방군을 막으면서 군인들에게 먹을것을 건네준다. 먹을것을 거부하던 이들도 아기가 건네주는 것까지는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이 뭉클하게 잡힌다. 학생들은 모두 모여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자유 의지를 뿜어대는 락밴드의 리듬에 맞추어 뭄을 흔드는 등 마치 60년대 세계적으로 휘몰아쳤던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을 보는듯 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이 앞으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군인들의 발포는 실탄이었고 무력으로 해산된 학생과 시민들은 대항한번 제대로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지거나 구속되었다. 마치 문화혁명때처럼 사람들에게는 무언의 압력속에 망각이 강요되었다. 주동자들이 수배되거나 잡히고 죄없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시민들에게 타인들은 그저 무관심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발포한 중국 정부도 문화혁명때의 홍위병같은 폭동을 두려워했고 입다물고 있던 사람들도 문화혁명때처럼 반동으로 몰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아직도 사람들을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배반되어갔는가를 3시간에 걸쳐 차분히 보고 있던 나는 무척 슬펐다. 우리의 역사는 숱한 반혁명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했던가. 슬픈 이유는 또 있다. 우리에게 저우언라이나 후야오방과 같은 민중의 마음속에 각인된 지도자가 있었는가? 김구(물론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다)이후 민중속에 다가갈 수 있었던 지도자는 '야당시절'의 김대중밖에는 없었다. 가슴아픈일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천안문 광장은 그자리에 있다. 이미 덩샤오핑마저 사망하고 중국은 70년대의 우리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화되고있다. '천안문 항쟁'은 역사의 뒤안길로 지나갔고 현재는 신흥 공업국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아가는, 홍콩을 반환받은 현재 이제는 마카오를 돌려받으며 타이완과의 관계만 개선하면 되는 초강대국 중국이 존재한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붕괴한지 이미 여러해가 지났고 중국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화 하는 지금 우리에게 민주화는 무엇인지, 북한은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라는 고민을 던져주고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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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시민들이 인민해방군의 베이징 진입을 몸으로 막으면서 느꼈던 좌절감이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배반당한 혁명이었다. 그토록 용감했고 인민의 편이었던 인민해방군이 자유를 외치는 자식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었을때 그들이 느낀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저우언라이라는 인물이다. 저우언라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공산혁명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당이나 민중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 외의 인물들은 각종 흥망성쇠 속에 놓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천안문 항쟁에서도 학생들의 대대적인 추모로 하나의 구심점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권력의 핵심을 놓치지 않기위해 자신의 혁명성까지 팔아먹은(조금 성급한 판단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오나 그 못지 않은 오뚝이 야심가 덩샤오핑과는 확실히 다른 인물이다. 그는 마오의 신뢰를 결코 잃지 않았으니 어쩌면 위협적이지 않고 말잘듣는 인물로 비쳤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 그는 가장 흥미진진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역사에서 영웅의 역할에 대한 의견은 정말 분분한데 나는 거인들의 영향은 민중들의 영향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같은 인간 대신 다른 인간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역사는 전혀 다르게 흘렀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런 개인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뒤틀려야 한다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말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했던 고민이 수천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전혀 풀리지 않은 채 내 머리속까지 올라와있다. 불교철학을 종아하는 내 동생은 업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겠지만. :)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도록 도와주는 이 책은 중국 현대사에 대한 입문서와 지속적인 참고서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구러 천페이지쯤 되는 부담스러운 책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중국에 관한 책을 몇권 보지도 못했지만 저자 조너선 스펜스는 레이 황과 함께 중국에 관해 가장 맛깔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읽을 예정인 그의 또다른 책 '천안문'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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