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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 해답, 해답,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질문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Gertrude 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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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 해답, 해답,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질문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Gertrude 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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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포함해서 어떤 분야에서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을 경우, 대답이 처음부터 불가능하거나 잘못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복합질문의 오류 ¶
"자네, 부인 때리는 거 그만 두었는가?"
만약 부인을 때려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예라고 답해야 하는가 아니오라고 답해야 하는가. 이미 질문 속에 잘못된 가정을 내포한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잘못되어도 대답은 바로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의 가정을 정정해 주는 것")
- 나는 아내를 때린 적이 없다네.
- 나는 결혼조차 안했다네.
범주의 오류 ¶
철학자 길버트 라일의 용어. 질문과 대답 양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인데, 질문과 대답은 동일한 범주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묻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범주를 사용할 경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신존재 증명이었던 "시계공 논증"("시계를 만든 사람이 있듯이, 이 질서정연한 우주에도 제작자가 있어야겠지요? 그게 신입니다")은 이런 범주적 오류를 범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인공물과 자연물은 서로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둘 다 "제작자"를 물을 수 있다는 건 보장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