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서적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예술 이야기"의 저자 곰브리치가 서문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없다. 예술가들이 있을 뿐이다."(There really is no such thing as Art. There are only artists)라고 한 것이 생각난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였나, 이 책을 알게 되고는 큰 맘 먹고(한화로 육만원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바로 구입을 해서 유럽 여행을 이 책과 함께 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부피에서나, 중량에서나... 귀국해서 교보문고를 어슬렁 거리다가 이 책이 -- 물론 원서로 --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걸 보고는 무척 가슴 아파했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두가지 중 하나는 좀 조악한 번역이고, 다른 하나는 좀 낫다. 옆에 펼쳐 놓고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김창준
지난 연말에 대가 곰브리치가 숨을 거뒀습니다. 곰브리치는 장수한 사람입니다. <미술 이야기> 중 저자가 '화가 XX 는 행복한 사람이다. 죽은 뒤에야 유명해진 화가들과 달리, 그는 무명시절부터 유명세를 탄 뒤 자신의 작품이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볼 수 있을만큼 장수했다' 라고 썼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제 생각엔 이 말은 저자가 저자 자신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습니다. 곰브리치는 <미술이야기>가 반세기 동안 20여 판이 거듭되면서 자신의 저작이 미술사에, 비평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로 볼 수 있던 사람입니다. 곰브리치는 최근판에 "자신은 반세기전 초기 판에서 20세기 후반에 주목받을 미술가들을 지목했으나 20세기 후반 미술사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하였으며 자신의 견해가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했을 때 당시의 예상은 경솔한 것이었으며 이제 섣부른 추측은 하지 않겠다"라고 고백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고백을 읽고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설사 곰브리치와 같은 양의 지식과 같은 정도의 필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글은 도저히 쓸 수 없겠다'라는 벽을 느꼈습니다. 오직 시간과 연륜만이 그 글을 만든 것이니까요. 노 대가란 이런 것일테니까요.
덧붙여, 이 책은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지를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엄청나게 방대하고 깊은 지식과 심미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겸손하게 풀어나가는 글솜씨와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의 대상, 즉 미술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사랑.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별표를 주지 않는다'라는 대사를 낳은 몇몇 영화 비평가들, 그리고 필자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쓴 것같은 수많은 쓰레기 음악비평가들이 곰브리치에게 배워야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민중
덧붙여, 이 책은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지를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엄청나게 방대하고 깊은 지식과 심미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겸손하게 풀어나가는 글솜씨와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의 대상, 즉 미술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사랑.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별표를 주지 않는다'라는 대사를 낳은 몇몇 영화 비평가들, 그리고 필자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쓴 것같은 수많은 쓰레기 음악비평가들이 곰브리치에게 배워야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