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들에게 권하는 WhatToRead
다음은 김창준이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는 "컴퓨터공학과" 후배에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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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존경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그 형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 4년 동안 책 300권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그 형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 4년 동안 책 300권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얼핏 유치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형은 정말 300권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믿음에 착실히, 충실히, 꾸준히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3년간(2학년 당시부터) 3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 때 300권 읽어둔 것이 졸업하고 최소 6년 간은 밑천이, 뒷심이 되더라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즉,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뒤로 빠지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거지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은 "인간의 모든 분야에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최대한의 깊이"의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있어야겠지요.)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그런 밑천이 이제 떨어져가서 다시 맹렬한 책읽기를 하고있다고 하는 형의 끊임없는 노력이었습니다.
4년간 300권이라고 하면 평균 4-5일에 한 권 씩을 본다는 이야기이고, 그 형의 경우는 평균 3-4일에 한 권 씩 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제가 정말 그 형을 존경하는 것은 책을 몇 백 권, 몇 천 권 봤다는 그 수치가 아닙니다. 꾸준하고 성실한 평소 삶의 태도입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난독(잡식성 독서)을 하는 사람들의 병폐는 읽은 것들의 줄기와 벼리가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대학생들은 고전을 많이 봐야 합니다. 대학을 나오고 나서는 이런 책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젊었을 때 고전을 제대로 읽어두면 평생을 두고두고 도움을 받습니다.
고전을 몇 백 년도 넘은 문학/철학 등의 서적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그 가치가 일시적이지 않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관통하는 책이면 모두 고전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전공 서적을 봐도, 최신 기술을 다룬 책도 중요하겠지만 출판된지 10년이 넘어도 아직 계속해서 읽히고 재해석되는 "고전"들도 중요합니다. 이런 고전을 읽어두면 나중에 새로운 지식/기술을 습득하기가 쉽습니다. 이미 고전이라는 것 자체가 일시적인 시대 유행을 초월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의 공부를 한다면 그 본령에 직접 뛰어 들어야 합니다. 자잘한 2차, 3차 서적들만 보는 것은 처음 접근은 쉬울지 몰라도 나중에 두고두고 고생을 합니다. 예를 들어 X라는 언어를 공부한다면 그 언어를 개발한 사람이 처음 쓴 문서를 볼 기회를 만드세요. 그 언어의 디자인 철학이나,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가 등을 알게 되면 비약적 발전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자기 수준에 맞지도 않는 "너무 어려운" 책을 들고 씨름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되기 쉽습니다. 도전할 만한 대상을 고르고, 혼자서가 힘들면 친구와 선배, 후배들을 모아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어찌되었든, 이런 일들을 시작하기 위한 첫 걸음은 "독서 목록"의 작성입니다(물론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독서가 진행되면서 더하기도 빼기도 해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선배, 후배, 동기, 교수님)에게 묻고 여기 저기서 자료를 구하고 해서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혹은 관심 없었던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의 리스트를 모으세요. 처음에는 이 리스트가 빈약해 보여도 걱정하지 말고 또 너무 욕심부리지도 마세요. 하나의 책은 또다른 세계로 통하는 대문입니다. 책 하나를 보고나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읽어야 할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 혹은 그 저자가 인용한 책 등이 굴비처럼 엮여서 줄줄줄 따라 나오는 것이죠. 간혹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 들게도 되는데,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가로지르기"를 통한 잡종적지식을 맛볼 기회가 될테니까요 -- 그 지식은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전공분야로 환급되어서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