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수업이란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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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언제쯤에, 현대백화점 최대주주인 정몽근 회장의 장남인 정지선이란 친구가 서른 살 나이로 입사 5년만에 현대백화점의 총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아아, 이럴 땐 정말이지 우리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어쩌자고 현대그룹 아들내미로 태어나질 못했던가. 그렇다면 나도 지금쯤 백화점까진 못 돼도 회사 하나쯤은 갖고 띵가띵가 하고 있을 거고, 우리 외삼촌도 현대건설 부장대우 현장소장 나부랑이가 아니라 사장쯤을 해먹고 있어서 코앞으로 다가온 정년퇴임이나 애들 학비걱정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게 아닌가. 진짜 너무한다. 우리 아빠 정말 나쁘다.

애비 잘 둔 탓에, 썩혀뒀다 밭에 두엄으로 줘도 될만큼 돈을 많이 물려받는 놈들이 뭐 어쨌다는 얘긴 아니다.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말이다. 로또로 인생역전한 인간들한테 운 좋아서 돈 잘 벌었다고 적개심을 품는다는 건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진짜 열통이 터지는 건 그 소위 '재벌 2+α세'들이 단순히 돈을 많이 물려받는다는 게 아니라 돈 이상의 것, 즉 사내권력을 부당하게 상속받는다는 것이다.

이 '사내권력의 부당한 상속'을 아주 가치중립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누구인지 모를 씨발놈이 고안해 낸 단어가 '경영수업'이다. 아, 정말 좋은 말이다. '일제부역자'가 '친일파'가 되는 것 보다 1241241752배는 더 무색무취하지 않은가. 저 '경영수업'이란 단어를 어느 대학 경영학과 학생이 경영학 개론 시간에 수업받는 것쯤으로 알아들을 사람은 거의 없을진대, 애비가 밥상머리에 아들내미 앉혀놓고 예절교육 시키는 것같은 '동아시아적인 훈훈한 가치'가 물씬물씬 풍겨오지 않는가. 아아, 실로 향그럽기 그지없도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웃긴다 이거다. 주식 지분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총수'란 것들이 경영 전권을 틀어쥐고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대 기업집단을 제 구멍가게 굴리듯 하다가 막상 사단이 나면 '지분만큼만 책임진다'라는 아름다운 자본주의 원칙을 내세워 살짜쿵 우아하게 손빼고 도망가는 소위 '황제경영'이란 것이 한국 경제를 이모양 이꼴로 만드는 데 상당한 몫을 했음은 어느 정도 증명되었거나 증명되어가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이 짓거리를, 국내외 대학에서 경영/경제학 좀 배운 아들놈을 제 회사에 터무니없이 높은 자리로 취업시켜서 '단지 당신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상궤를 벗어난 승진을 시켜주다가 몇 년 후에 아비의 사내 권력, 다시 말해 소위 '경영권'을 대물림시키는 짓거리를 '경영수업'이란다. 따지자면 이건 빽 써서 친구 아들놈 회사 취직시켜 주는 것보다 더 나쁜 짓거리고, 비할 바 없는 독직에 의한 권력남용인데, 이 짓거리를 사람들은 아주 우아하고 정결하게 '경영수업'이라는 단 네 글자 단어를 써서 깨끗이 표백/탈취해버린다. 보통은 나쁜 짓을 무색무취하게 표현하려면 품이 더 드는 법인데 이 문제의 '경영수업'은 어찌된 영문인지 완전히 거꾸로다.

근데 진짜로 황당한 것은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이 '경영수업'이란 역겨운 단어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 재벌집단의 사내 권력 대물림이 일상화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이나 한국사람들이 '부는 대물림될 수 있지만 권력은 대물림되어선 안된다'라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원칙을 개무시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재벌 이데올로그들이 이 '경영수업'이란 전근대적인 단어를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어떻게 번역해서 들려줄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했을때 그 '해외 선진 자본주의 사회' 사람들이 그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나는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니들의 그 잘나빠진 '경영수업'을 영어로 뭐라고 할 거냐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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