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만 올바르다면 확실성을 보장해주는 연역적 추론과는 다르게 전제가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틀린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귀납적 추론이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근본적인 난점
1. 귀납의 정의 ¶
- 약간 엄밀한 정의 : 귀납과 연역을 구분하는 관점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인 형식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추론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연역적으로 확실한' 추론과 '귀납적으로 강한' 추론으로 구별하는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고 본다. 연역적으로 확실한 추론은 논리적 형식에 의해서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의 참이 보장되는 형식의 추론을 말하는 것이고, 귀납적 추론이란 연역과 같은 확실성은 보장되지 못하지만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추론이다.(Susan Haak, "논리철학")
- 일반적 정의 : 그러나, 일반적으로 귀납의문제라고 말할 때의 귀납추론은 개별적인 판단에서 일반적인 판단으로 나아가는 "일반화"의 추론을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것이 일반적인 귀납의 형식이다.
x1에 대해 a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x2에 대해 a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xn에 대해 a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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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모든 x는 a일 것이다.
2. 귀납의 문제 ¶
- 흄의 문제제기 : 귀납의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최초로 지적했던 사람은 흄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사례가 어찌했다는 것이 그 다음 사례 또한 동일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문제제기였다.
- 사례 : "백조는 모두 하얗다"는 일반화가 흑고니의 발견에 의해서 반증된 사례.
러셀은 이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우스개를 통해 귀납의 문제를 새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영리해서 귀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 칠면조가 있었다. 이 칠면조는 매일 아침 9시면 먹이가 배달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는 매우 세심하게 다른 조건 속에서도 동일한 관찰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면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이건 겨울이건 사시사철 아침 9시면 먹이가 배달된다는 것을 관찰한 후에야 이 신중하고 영리한 칠면조는 "나는 아침 9시에 먹이를 먹는다"는 일반화를 귀납추론을 통해 확정하고 다시 연역을 통해 "나는 내일 아침 9시에 먹이를 먹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음날이었던 추수감사절 아침 8시에 목이 잘림으로써 그 추론은 슬프게도 거짓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 햄펠의 역설: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를 귀납을 통해 입증하는 예를 보자. 이 명제는 그 진리값이 대우명제와 같기 때문에 대우명제인 "희지 않으면 백조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것과 동등하다. 즉, 우리과 관찰하는 모든 "희지 않지만 백조가 아닌 것" -
예를 들어 검은색 머리카락, 초록색 나뭇잎 등 -은 모두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를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 된다.
- 귀납의 새로운 문제 : 넬슨 굿맨은 그의 "귀납의 새로운 수수께끼"라는 논문에서 이른바 푸파란(grue) 색의 역설을 보여준다. "푸파랗다"라는 술어는 "어느 특정한 시점-예를 들어, 2100년 1월 1일-까지는 푸른색이다가 그 다음에는 파란색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굿맨은 지금까지 우리가 푸른 색의 에메랄드만 관찰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에메랄드는 푸른 색이다"라는 보편명제와 "모든 에메랄드는 푸파란색이다"라는 보편명제 모두가 귀납적으로 지지된다는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적어도 특정한 시점-2100.1.1-까지는 두 종류의 귀납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주장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종류의 보편명제를 모두 거부해야 하는가? 여기서 굿맨은 우리가 "투사가능한 술어"와 "투사불가능한 술어" 두 종류의 과학적 술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푸른색이다"라는 술어는 투사가능한 좋은 과학적 술어인 반면에, "푸파란색이다"라는 술어는 투사불가능한 술어라는 것이다. 굿맨의 역설에 대해서 여러가지 평가가 가능하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귀납이 연역추론과 같은 정당화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