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즐거움을빼앗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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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삼류대다를 보고 평소에 하던 생각을 적고 싶어서 이렇게 키보드 앞에 앉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미국의 대학원생들이 정말로 공부가 하고싶어서 하는 사람들 뿐이라는 사실이다. "남들이 가니깐" 대학에 간다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냥"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학생들은 전혀 없다.

같은 Engine Research Center (자동차 엔진에 대해 연구하는 그룹이다) 에서 연구하는 동료들 중 하나인 Steve (프라이버시를 위해 first name은 공개하지 않는다) 의 경우를 예를 들겠다. 그는 14살 때 친구와 함께 폐차처리되려고 하는 트럭 한대를 1불에 샀다. 그는 친구와 함께 여름방학 내내 책같은 것을 보고, 모르면 자동차 수리센터에 가서 도움을 얻어가면서 트럭을 분해하고, 고치려고 했다. 그 결과에 대해 물으니 "Oh, we made a lot of mistakes." 라고 하더라.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 결국 트럭의 시동을 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다른 동료들 중 하나인 David 은 고등학교 때 주 대항 자동차 페스티벌 - 경주용 자동차를 위한 정비기술 등을 겨루는 - 에서 일등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자동차는 물론이거니와 지게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운전할 수 있다.

이 두 미국학생의 예는 아주 extreme 한 예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놔두고, 우리나라와 같이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미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의미없이 노는 일에 젊음을 낭비한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부류의 학생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하고싶은 공부를 한다.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고 했던가. 즐기는 것을 공부하는 그들을 어쩌다보니 유학까지 오게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쫓아갈 재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즐긴다는 것은 "즐겨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즐기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아무리 강요해도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다른 일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린 학생들에게 무작정 공부만 하라고 강요한다. 한 학생이 자동차 엔진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자. 그 학생 주위의 사람들은 당장 학생의 손에서 스패너를 뺏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것은 대학교에 가서 해도 늦지않다. 지금은 공부를 해라." 그러나, 과연 이런 것을 대학교에 가서 해도 늦지 않은가? 자동차에 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은 대학교에 가서 해도 늦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 짓밟혀진 "즐거움"은, 대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에는 되찾을 방법이 없다. 이미 시들해진 마음으로, 그때 가서 공부한다고 해봤자 이미 늦은 것이다.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혹은 과외지옥으로 내모는 데 대해 옳다 그르다 하고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정말로 즐기는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Pion

대학에서도 공부만 하라던데요.. 뭔놈의 레포트는 시도 때도없이 나오고 맘편히 열중할 시간도 없고.. 정작 필요한건 독학해야하는.. -- Ged
정말 그렇습니다.'교양'학회(전문학회가 아니라)세미나가 따로 필요없어지는 그날을 꿈꾸며

대학에는 대학생도 있지만 고등학교 4,5,6,7 학년생들도 많습니다. 요즘은 8,9 학년생은 물론, 12학년생까지도 있다더군요. -_-;;; --LedZeppelin

무엇을 즐긴다는 경지, 그거 대단한거 아닌가요.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새벽에 학교가서 밤에 돌아오는, 외국신문 어느구석 믿거나말거나 코너를 장식한 일도 있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무얼 즐긴다는거 가당키나하겠습니까? --zetapai

우리나라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기 어려운 나라죠. 그에 비하면 미국과 같은 경우는 그런 면으로 부럽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나라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그것마저 잃어버리게 합니다. 자기자신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지 않는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마저 잃어버리기 쉽단 말입니다. 저도 대학교 1년을 지나면서 겨우 정신차린것 같네요. 아니 아직도 못차리고 있나? --Kwon

뭐.. 하기 나름인 것 같은데, 제 경우 하고 싶은 일 많이 하면서 살고 난 후 뒤돌아 보니 학점은 초라한 모습이더군요. T.T; 학점에 대한 아쉬움은 남습디다. 사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JikhanJung
진로상담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대부분이 대학입시지도로 바뀌어버린걸 보면서 고등학교시절을 마췄죠. 중고등학교시절 제대로 된 진로상담은 받아본 적이 없어도 제대로 된 대입상담은 몇번 인가 받았던 것 같네요. --Kwon

저는 미국대학과 우리나라 대학을 비교한 게 아니고, 대학 이전의 시기를 얘기한 겁니다. Pion도 우리나라 대학 나왔고, 대학 시절동안 안 해본거 없이 다 해봤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제대로 해보지를 못 했습니다. 과연 중.고등학교 때 모범생 소리 듣는 학생들 중에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본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획일성을 탓하는게 먼저라고 봅니다. 학교 선생님의 모든 이야기를 비판없이 수용하는 것이 문제이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비판없이 수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친구들이 공부하면 그렇게 해야하나보다, 그러면서 죽어라 공부합니다. Have you ever asked why or why not? 자신에게 맞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남들이 하니까 무작정 따라한 스스로를 탓해야 합니다. --Aragorn

미국학생들의스트레스지수가 한국학생들보다 높다고 하네요.

University Dream이 아이들을 망치는게 아닌가 싶네요. (->) 우리나라 아이들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바로 위 문장을 쓴 사람은 아닙니다만) 우리나라 아이들 전체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이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과외와 단체 에서의 선생님 봉사등을 통해 접한 대다수의 초등, 중학교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개인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기도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단순한 예로 제가 과외를 했던 초등학교 6학년 한 학생의 경우 그당시 하고 있던 과외의 개수가 14개 였으며, 그 아이의 동생이었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15개였습니다. 너무 특수한 예라고 여기실 수도 있겠으나,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이 학교가 소위 치맛바람이 세다고 일컬어지는 학교였다는 점에서는 특수할 수도 있겠네요)의 대부분의 학생이 그 정도의 과외를 하고 있다고 그 아이 부모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본 그 아이는 책을 읽는 것에 흥미가 없음은 물론 그 어떠한 형태의 학습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외부의 자극도 본래 가지고 있었을 지적 호기심을 점화시켜 무언가 알기위한 행위를 하게끔 하지못하는 상황이었죠.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의지, 시간이 부족하고 주변 여건마저 그런 상황을 악화시킨다면 그 주체는 망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결과이던 타의에 의한 결과이던 간에요.

미국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니, 한국 입시생들을 다루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는, '이렇게 아시아의 학생'들은 죽도록 공부한다. 학습량도 대단하다. 본받을 만한 부분이 아니던가...라는 나레이션이 깔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교양에 있어서, 고등학교까지의 한국 학생들은 주입식이나마 많은 것을 넓게 배우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그러나 대학생으로 들어가자면, 한숨이 나오기 시작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각적으로 분석되고 있죠. 마냥 공부만 하고 살라고 태어난게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Roman
{{|2002/05/22 18:47

<세계의 눈>막스 카스/한국교육, 성적은 상위권인데…


몇 백년 동안 교육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평등주의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교육 또한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과거 교회가 주도했던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 되었으며, 대중은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계산법 등을 의무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의무적인 교육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었다. 대학 이상의 고학력을 취득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사회적 특권계층에 속한다. 독일의 경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4∼5%만이 이 같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선진국들의 모임이랄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립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곳은 드물다. 이들 국가의 교육체제도 공립과 사립의 혼합 형식으로 돼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OECD 국가 내에서 제도적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대학 이상)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은 인구비율이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10.6%에 불과했던 이 같은 특혜 대상 인구는 2000년 37.2%에 이른다. 농업과 생산업이 퇴보하고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는 경제적 변화 속에서 고학력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냉전시절 정치적 목적들에 가려 OECD 국가들의 교육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 공산체제가 붕괴되고 유럽이 통합되면서 세계 미디어산업, 자본시장 등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인터넷 또한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각국의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가들은 교육 분야의 벤치마킹을 통해 상호 발전 및 교육수준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학업성취도비교(PISA)가 어느 정도 이를 가능케 해준다. PISA는 OECD가 전 세계 32개국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능력시험이다.


한국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독일인 칼럼니스트로서 두 국가의 PISA 성적과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학의 경우 한국의 15세 학생은 세계 31개국 중 2위를 차지한 반면 미국과 독일은 20위권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은 읽기 평가에서도 공동 6위를 차지해 상위권에 들었지만 수 많은 세계적 작가를 배출한 독일은 겨우 21위에 머물렀다. 과학 분야 역시 한국과 일본이 1위를 차지했으며 독일은 20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성적이 독일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기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한국은 사회적 계급과는 무관하게 누구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독일의 경우 아직도 소수 계층만이 최고급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학생들은 독일 학생들보다 휠씬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방과후 학원에서 수업을 따로 받는 학생들은 36%에 달하고 있지만 독일 학생들은 전체의 3%만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같은 평가 결과에서 나타난 성별의 차이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읽기 시험에서는 모든 국가의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성적이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 차이가 가장 적었으며, 수학의 경우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그 어느 국가보다 월등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이 한번 되짚어 볼 문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육은 다방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여주는 주요한 자원이라는 점이다. PISA의 결과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모든 이들이 비교적 손쉽게 최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받는 한국이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는 분명 독일이 되씹어 봐야 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막스 카스 세계정치학회 수석 부회장·독일 브레멘대 인문사회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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